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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쿠

빙신전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수모쿠
작품등록일 :
2017.11.30 00:48
최근연재일 :
2018.05.24 11:05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74,837
추천수 :
815
글자수 :
310,718

작성
17.12.25 13:08
조회
2,849
추천
27
글자
11쪽

잡힘

DUMMY

떨그렁!

쓰레기통을 바닥에 던진 중년 남자가 내 곁으로 와서 나를 부축한다. 오오, 우리의 시민의식은 이렇게나 건전하고 단단했던가.

간신히 살았다 싶은 순간, 키 작은 중년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괜찮으십니까, 나리?

그 말에 나는 다시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왠지 오늘 나는, 나를 나리라고 부르는 사람 손에 맞아 죽을 것 같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펴 몸을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거 오줌 지린 건 아닌가 모르겠네.

어? 근데 다들 왜 이렇게 키가 작지? 150센티미터 간신히 넘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여긴 왜 이렇게 평균 신장이 작은 건가.

─아... 예, 덕분에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말을 맺은 나는 또 움찔 놀란다.

세 명 모두 기가 막히다는 듯 입을 떡하니 벌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뭐 못할 말이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

아, 감사하다는 내 말을 뭔가 욕 같은 걸로 잘못 알아들은 건가? 너무 놀라서 발음이 잘못됐을 수도 있지. 다시 말해주자.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살았어요.

그러자 나를 일으켜 준 중년 남자가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사람이 시야에서 홱 사라지는 게 벌써 두 번째인데 적응이 안 된다. 아 이건 또 왜?

─나리, 저희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진작 알아보고 막았어야 하는 건데 멍청히 보고만 있다가 그만...

아, 이 몰카 이제 그만하고 싶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짜증만 나는데?

음? 나머지 두 명도 그 옆에 엎드린다. 계산대에서 유선전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던, 왠지 약삭빠르게 생긴 중년 남자도 달려와 그 곁에 무릎을 꿇는다.

아니, 이 사람들 무슨 무릎을 이렇게 세게 꿇는 거지? 그러다 무릎 나가겠어요. 혹시 돌바닥성애 같은 게 있으신가들?

─안심하십시오, 나리! 제가 버얼써 성에 전화를 넣었습니다. 천행으로 지금 이 근처에 순찰을 나와 계신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나머지 세 사람이 목을 홱 꺾어 전화를 하던 남자를 쏘아본다. 허를 찔린 표정들이다.

전화를 넣었다는 저 소리를 내가 먼저 했어야 하는 건데, 뭐 이런 얼굴들이라고 보면 될까? 2년 남짓이나마 직장생활을 했던 경력이 없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아, 이거 뭐라고 해야 되지? 내 답답함은 더 깊어진다. 이 사람들 정말 제정신인가? 아니, 이 정도 일이 터졌으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지 무슨 성에 전화를 해? 짜장면 시킬 것도 아닌데 왜 성에다가 전화를 하냐? 나 원 참.

이건 너무 불편하다. 이런 식의 몰카 대본을 쓴 작가가 제 정신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니 커터칼에 얼굴 그일 뻔한 사람을 구해줘 놓고 엎드려 비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개연성은 밥 말아먹었나.

어쨌거나 잠깐 숨 좀 돌리자. 아, 오늘 진짜 일진 엉망이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내가 아무 말이 없으니 그냥 침묵이 온다. 그 침묵이 길어지자 엎드린 사람들이 슬쩍 고개를 들고 내 눈치를 살핀다. 눈을 살짝 마주치는 것 같더니만 또 고개를 팍 숙여버린다. 응?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나리.

이거 뭐 이러냐.

─저희는 저 미친년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동정을 살피느라 잠시 가만히 보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숨을 돌렸더니 좀 진정이 된 것 같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저를 도와주신 분들...

무슨 말씀이세요, 저를 도와주신 분들인데. 엎드려 있지 말고 얼른 일어나세요. 아, 왜들 이러시지?

라고 내가 말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말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없을 거다.

물론 혼이 거의 나가 있던 탓에 내 목소리가 기어들어간 탓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내 말을 듣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어디선가 들려온 엄청나게 큰 배기음 소리 때문이었다. 그놈의 소리에 내 말소리를 잡아먹어 버린 탓이다.

아오, 무슨 배기음이 이렇게 커? 폭주족인가? 일부러 머플러를 깬 게 아니라면 이 정도 소음이 발생할 리 없다. 일부러 머플러를 깨 주변에 소음공해를 내뿜으며 민폐나 끼치고 다니는 덜떨어진 양치기들인가? 아니면 양카 몰고 다니는 지진아들이 근처에서 경주라도 벌이고 있는 거야?

뭐 둘 중 하나겠지. 아 더럽게 시끄럽네, 정말.

배기음은 차츰 커진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땅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점점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이쪽으로 오는 중인가?

끼이이이익!!!

브레이크를 저렇게 길게 밟는 걸 봐서는 접촉사고 정도는 난 거 아닌가 싶다. 쌤통이다, 폭주족 새끼들.

그런데 그 소리에 내 앞에 엎드린 사람들이 움찔하더니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기 시작한다.

왜들 이래, 나까지 불안해지게? 그런데 어느 쪽에서 사고가 난 거지? 유리창 너머를 바라봐도 뵈는 게 없다. 편의점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향에 차가 서 있을 거다.

사람들은 이미 공포에 젖어있다. 저런 표정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실수를 저지른 파견업체 사람들의 얼굴에서 저런 좌절감이 종종 묻어나오곤 했었지.

콰쾅!! 퍼퍽!

아잌! 깜짝이야. 편의점 강화유리문이 그냥 팡 떨어져 나가더니 산산이 부서진다.

이 새끼들 아직도 몰카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건가. 이거 진짜 민원 넣어야 될 프로그램인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 몰래카메라... 스토리는 똥망이지만 스케일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저건 설탕으로 만든 가짜 유리가 아니라 정말 강화유리문이다.

바닥에 가득한 강화유리 파편 위로 강인해 보이는 전투화가 올라선다. 유리조각이 밟히면서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우적우적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갑옷을 입고 안으로 들어온 거구의 남자가 나를 보고 빽 소리를 지른다. 저 갑옷... 아까 아침뉴스에 나온 사람이 입고 있던 거랑 같은 양식 아닌가 싶은데.

─도련님!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좋은 질문이야. 나도 그게 궁금하던 참이거든?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지를 통 모르겠어.

어? 그렇다고 내 쪽으로 오진 마.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오줌 지릴 것 같단 말이야. 이유는 모르겠는데 나도 이들처럼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 빌고 싶어진다.

190센티미터가 다 되는 키다. 만약 저 덩어리가 100킬로그램이 안 넘는다면 내 전 재산을 불태워버리겠어.

사각형 얼굴, 단단해 뵈는 턱, 갑옷 안을 꽉 채운 듯 두꺼운 몸피, 사극 스타일로 묶어 뒤로 넘겨 내린 새까만 머리카락...

손에는 언뜻 봐도 1미터는 넘어 뵈는 장검을 빼들고 있다. 칼을 빼든 채로 편의점 강화유리문을 걷어찬 거다. 어지간히 화가 났거나, 서둘러 온 모양이다. 얼굴이 벌개져서 씩씩대고 있다.

젊은 녀석 뒤를 이어 역시 거구의 노인 둘이 걸어 들어온다. 머리는 완전한 백발에, 둘 다 180 중반이다. 몸집도 상당하다.

저들이 입고 있는 갑옷은 절대로 플라스틱 소품이 아니다. 무겁게 내딛는 발걸음을 보고 들으면 안다.

저렇게 커다란 노인들, 아니 어르신들은 난생 처음인데? 늙으면 키가 줄어든다던데 무슨 키가 저렇게 크지? 허리가 굽은 사람도 없다.

한 노인의 뺨에는 깊은 칼자국이 나 있다. 이상한 모양의 상투를 틀어 올렸는데 한쪽 귀에는 귀걸이까지 끼고 있다.

무엇보다 저들이 아무리 두꺼운 갑옷을 입는다 해도, 아니지 뾱뾱이로 온몸을 말아서 둥근 공처럼 만들어놓는다고 해도, 저 인간들의 뼈대가 더럽게 굵다는 사실은 누구든 보자마자 알아챌 수 있을 거다.

이 양반들 정말 연기자 맞음? 혹시 어디 조직폭력배들 그대로 섭외한 거 아니야? 아니, 코스프레를 한 건가?

아, 그렇구나. 조직폭력배들이 코스프레를 한 게 아니라면 저런 결과물이 나올 리 없다.

범갑옷파? 로타리 코스프레파? 십자군서방파? 아이 식빵! 이것들 도대체 뭐야?

혹시 전현직 씨름선수들 섭외해서 노인으로 변장시킨 건? 그 왜 농구 축구 현역 선수들을 노인으로 변장시켜서 젊은 애들 골탕 먹이는 동영상을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몰래카메라고 뭐고 일단 도망치고 봐야지. 일단은 이 저주받은 편의점에서 빠져나가는 거야. 에익!

쿵 쿵 쿵!

어? 뛰네? 왜 따라 뛰고 그래? 무섭잖앙!

칼 든 젊은 놈은 편의점 문 앞을 지켜서고, 두 노인은 내가 어디로 움치고 뛰지 못하도록 통로를 막아선다. 아, 일사불란하네. 느아악! 포위망을 좁히고 있어!

뺨에 칼자국 있는 노인이 내 쪽을 보며 씨익 쪼갠다. 어, 어떡하지? 상처가 움직이는 모양을 봐서는 분장한 게 아닌 것 같다. 조직폭력배를 섭외한 게 맞는가 봐.

─도련님, 오늘은 어디 도망 못 가시겠네요. 허허허허.

어떻게 하지? 다가온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저기, 지금 몇 시죠?

─예?

노인이 벽시계를 바라보는 그 잠시, 나는 죽을힘을 다해 몸을 날린다. 돌파하고 탈출한다! 정신 나간 연놈들만 들어오는 편의점은 이제 굿빠이! 아쉽지만 우리 예쁜이도 아우비더제헨!

음? 근데 왜 편의점 천장이 보이냐?

어억! 통증은 한 박자 늦게 찾아온다. 숨이 확 차올라오더니 입으로 훅 빠져나간다. 그나마 바닥에 나뒹굴면서 본능적으로 고개를 당기고 목을 쳐들었던 게 다행이다. 등부터 떨어졌으니 망정이지 머리부터 떨어졌더라면 아마 기절했을 거다.

갑옷 입은 노인네를 있는 힘껏 들이받은 내가 되레 바닥에 쳐박혀 있다. 무슨 벽을 들이받은 것 같다. 아무리 거구라고 해도 고령이니만큼 조금은 밀릴 줄 알았는데.

얼굴에 칼자국 있는 노인이 나를 내려다본다. 킬킬대며 한손으로 내 뒷덜미를 잡고 온몸을 들어올린다.

무슨 여자들이 쓰는 핑크색 아령 들 듯이. 그리고 곧바로 다가온 젊은 놈에게 나를 넘긴다. 나를 넘겨받은 젊은 놈은 내 온몸을 쇼핑봉투처럼 들어서 사람들이 엎드려 있는 편의점 가운데로 걸어간다.

종아리까지가 바닥에 닿은 채로 질질 끌려가는데 어떻게 균형을 잡고 일어날 수가 없다. 아, 나 무슨 물건인 건가?

─도련님! 이른 아침이긴 한데, 오늘치 장난은 여기까지만 하시죠? 이런 판국에 갑옷도 안 입고 어딜 그렇게 쏘다니시는 거예요? 뭐 갑옷이야 원래 안 입으시는 분이지만, 옷이랑 장신구 다 어디 갔어요? 술집에 맡기신 거예요? 입고 계신 건 또 뭐고요? 날도 추운데 아주 홀랑 벗고 다니시네? 머리는 또 왜 그래요? 서양 오랑캐들 마냥?

아, 이 어린놈은 덩치에 안 맞게 말이 더럽게 많다. 목소리도 안 어울려. 이 덩치에 이런 새된 목소리는 또 뭐래. 잠깐... 이거 아직 변성기도 안 온 놈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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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꼬시다 +1 18.03.28 724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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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아첨 시작 +16 18.03.20 1,055 11 12쪽
39 바람이 분다 +5 18.03.18 723 14 11쪽
38 창 던지기 +8 18.03.16 790 8 11쪽
37 비무가 끝난 오후 +9 18.03.14 777 6 11쪽
36 접힌 투구 +6 18.03.12 874 13 11쪽
35 화염의 매 +10 18.03.10 1,176 10 11쪽
34 골육상쟁 +10 18.03.08 812 12 11쪽
33 아구창 +10 18.03.06 830 10 11쪽
32 판정 +13 18.03.04 811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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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아부의 신 +4 18.01.28 910 11 11쪽
27 영웅의 귀향 +6 18.01.26 953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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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갈등 +7 18.01.11 1,373 18 12쪽
12 수성치안대대 +5 18.01.10 1,383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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