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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쿠

빙신전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수모쿠
작품등록일 :
2017.11.30 00:48
최근연재일 :
2018.05.24 11:05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74,838
추천수 :
815
글자수 :
310,718

작성
18.01.12 21:11
조회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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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1쪽

승혜

DUMMY

아, 궁금해 미치겠네. 그런데 책을 보려니 까막눈이고, 칼 찬 양반들한테 물어보자니 무섭고...

대대장이 영기 옹에게 근엄하게 말한다.

─아니지, 도련님은 지금 장난치시는 게 아니야. 그놈들은 기억을 원하는 부분만 삭제할 수도 있고, 이상한 능력도 만들어서 넣을 수 있거든. 외계인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영기 옹이 신음소리를 내면서 솥뚜껑만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쥔다. 내가 보기엔 욕이 아까워서 참는 것 같다.

대대장이 노인1에게 손짓을 한다.

─야, 석구야,

─왜요?

노인1의 이름은 석구였군. 상급자가 부르는데 왜요? 라니 참나...

─가서 그놈 잡아와라.

응? 조금 전에 말실수하고 끌려 나가서 두들겨 맞은 뒤로는 겨우 서 있는 것 같은데. 순순히 갈 리가...

─예. 대대장님.

어라? 워낙 격의 없이 상급자를 대하는 모습만 보여서 우리 식으로 좀 빠졌다는 느낌도 받았었는데, 명령이 떨어지니까 반응이 칼 같다.

...어쩌면 내게 했던 말실수를 만회하려고 그러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누굴 잡아오라는 거지? 궁금해도 조금 기다리면 알게 되겠지. 어차피 지금 뭘 해야 될지 하나도 모르잖아. 나는 하릴없이 읽을 수 없는 책을 넘기며 시간을 보낸다.

쿠쾅!

석구 옹 아직 기력이 살아있네. 다들 노익장이다. 선천적으로 강골로 타고난 거야.

─야, 이 새끼야! 놓으라고! 내가 알아서 간다니까!

혀가 꼬부라진 백발노인이다. 체구가 작고, 뼈대가 가늘다. 그렇다고 아까 편의점에 있던 사람들 수준까지는 아니고, 젊은 시절에는 나랑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체구였을 것 같다.

아까 그 감시관이랑 비슷한 옷을 입고 있긴 한데 옷이 한참 낡았다. 아마 저게 관복인 모양이지? 그럼 대대장이나 영기 옹 보다는, 감시관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겠지. 아무래도 페이퍼공무원인 것 같아.

그런데 술 냄새가 오우... 아무리 그래도 아침나절인데. 도대체 얼마나 퍼 마신 거야? 이 사람은 별도로 분류해야겠어. 편의상 음주노인1이라고 하자.

─이게 뭐하는 짓이오?!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여기까지 끌고 온 거요? 이 무도한...

대대장이 조심스럽게 헛기침을 한다.

─커흠! 이렇게 급히 모시고 온 거는...

응? 조심스럽네? 연배가 비슷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직급 때문에?

참나. 아까 없을 때는 ‘그놈 잡아와’라고 했으면서.

─그... 도련님께서 글자 읽는 법이 잘 기억 안 나신다고 해서 모셔온 겁니다.

─아니, 이런 병신 같은 새끼가...

생각할 시간 같은 것도 두지 않고 쌍욕이 튀어나온다. 그 반응이 하도 급작스러워서 처음에 나는 그게 나에게 한 욕이 아닌 줄 알았다. 그래서 아무런 방비도 못하고

빠악!

보기 좋게 얻어맞는다.

아옥! 책 한 권을 집어 세워들더니 그걸로 내 머리통을 내려찍은 거다. 이거 더럽게 아프네! 아니, 잠깐만. 이런 미친 노인네가!

나 대신 영기 옹이 음주노인1의 멱살을 잡고 내게서 떨어뜨린다. 분위기가 어지간히 험악해졌는데도 쌍욕은 멈추지 않고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야, 이 새끼야, 네 아버님하고 할아버님의 반만 좀 닮아 봐라! 뭐? 글자를 까먹어? 그럼 네가 저 밖의 노비새끼들이랑 다를 게 뭐냐?! 이 미친놈이...

하도 황망하고 아파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때 석구 옹이 칼집에서 칼을 반 뼘쯤 빼낸다.

─죽일까요, 형?

대대장이 기겁한다.

─아니야! 이 새끼야. 그거 아니라고! 분위기 파악 좀 해.

영기 옹은 음주노인1의 멱살을 잡은 채로 소리를 지른다.

─그래, 일이 이 모양이 된 게 전부 다 도련님 잘못이라는 거요? 당신도 여태 봐왔으면 알 것 아니오! 그게 어디 도련님만 탓할 일이더냐고!

─이거 안 놔? 아무리 가정사가 복잡해도 그렇지, 애초에 저 놈이 제정신이었더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어! 진작 정신병원에 집어 쳐넣었어야 하는 건데...!

당장 칼부림이 날 성싶은 험악한 분위기에서도 꿋꿋하게 소리를 지른다. 거구들 틈에 둘러싸이게 된 뒤로 괜히 주눅이 들어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대대장이 둘을 뜯어말리려고 해보지만 영기 옹은 손을 놓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억지로 떼어내면 옷이 찢어질 거다.

─저기, 저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그만 놔주세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쿠당!

아잇, 깜짝이야. 문소리다. 귀청 떨어지겠네. 저 문 좀 어떻게 해야겠어, 정말.

─당장 그 손 치우세요!

비명에 가까운 새된 목소리다. 성 안에서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다. 그제야 영기 옹이 손을 뚝, 놓는다.

이건 뭐야? 내가 놔주라고 할 때는 십일조도 안 치더니? 잠깐, 그럼 나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라는 건가?

뒤돌아보니 음주노인1과 비슷한 옷을 입은 여자가 하나 서 있다. 키가 나만큼이나 크고 늘씬하다.

머리에 관모(?)라고 할 만한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벗어서 손에 들고 있다. 화가 많이 난 모양이야.

길게 기른 생머리를 그냥 한 번 묶은 포니테일이다. 여기 오면서 보니까 남자들은 다들 상투 비슷하게 틀어 올리고 여자들은 길게 길러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다양하게 묶는 것 같던데. 어떻게 된 건지 나중에 한번 물어봐야겠다.

대대장이 작은 소리(지만 내게까지 들리는 소리)로 중얼거린다.

─야이 씨... 석구야. 쟤까지 붙여갖고 오면 어떡하냐? 암만 명령이 급해도 상황은 좀 봐가면서 끌고 왔어야지.

그 말을 들은 석구 옹은 생각도 안 해보고 대뜸 이렇게 뱉는다.

─죽일까요, 형?

─...흐아아아...

분명해. 대대장은 지금 석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확신한다.

─뭐하는 짓이에요?! 근무 중인 사람을 납치해오다니 이게 말이 돼요?! 이거 분명히 공무집행방해고, 범죄행위예요! 오늘 이거 다 기록에 남길 거고요, 내일 영주님 오시는 대로 따로 보고드릴 거예요!

─근오야, 쟤는 누구예요?

깜빡하고 존댓말이 나온다. 긴장한 건가?

─승혜 누나요. 되게 사나워요.

그렇게 소곤거리면 내가 잘도 알아듣겠다. 에이, 물어본 내가 바보지.

그나저나 얘는 이상하게 이럴 때만 애가 되네? 아까는 쌍욕은 성희롱까지 예사로 하더니. 아 조금 억울하다.

그런데 잠깐만. 여자가 관직에? 고려가 언제부터? 하긴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니까 그것도 아예 안 될 일만은 아니려나.

영기 옹이 내 눈치를 알아차리고 설명을 해준다. 오, 눈치가 굉장히 빠르시네?

─승혜는 교육관님 손녀고요, 기록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국가직 아니고 지방직이에요. 당연히 영주님께서 임명권 갖고 계시고요, 전쟁 때문에 남자애들이 다 징발되고 보니 일할 사람이 없어서... 임시직으로 선발하신 거지요.

아하. 그러니까 남녀 모두에게 문호가 개방된 사회는 아니라 이거군. 아까 보니까 신분제도 아직 건재한 것 같고. 그런데 이렇게 폐쇄적인 사회가 어떻게 여태까지 존속해온 걸까?

─우리 할아버지가 뭘 잘못했다고 이래요! 아무리 전시여도 그렇지! 엄연히 절차라는 게 있는데! 그게 그렇게 만만한 건 줄 알아요?!

조금 더 소리 지르게 놔두면 제풀에 쓰러질 것 같다. 키가 크기는 해도 건장한 느낌은 아니다. 아니, 사실 그렇게까지 건강한 느낌도 아니다. 평생 독서실에서 책만 읽은 것 같다고 할까?

저 피부를 이야기할 때는 희다, 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창백하다, 라는 말을 써야 할 것 같다.

하관이 두터운 편이다. 약간 각이 진 듯한 느낌의 턱 선과는 대조적으로 목은 가늘고 길다. 불안정하다. 얼핏 보면 대가 셀 것 같은데, 시간 두고 들여다보면 옆에서 누가 부축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

무섭지도 않은지 계속 쏴붙인다. 삿대질만 안 하고 있다 뿐이지 동원할 수 있는 심한 말은 다 망설이지 않고 쏟아내는 중이시다.

어휴, 저런 것도 유전이 되나 봐.

─머리에 든 거 없이 사는 게 자랑인 줄 아냐고오?! 당장 복귀시키세요!

노인들은 뭐라 대거리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시선을 회피하고만 있다. 투쟁심은 간 데 없고, 그저 난관을 모면하고 싶은 내심만이 얼굴에 역력히 드러난다.

아하, 익숙한 상황인 거구나? 그렇지? 혼자 소리를 지르다가 더욱 빡쳐 버린 여자가 막장드라마처럼 고함을 지른다.

─안 그러면 당신들 다 고소해 버릴 거야아악!!

아니, 아무리 경우에 벗어난 행동을 했기로서니, 나이 먹은 사람들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털다니. 약간의 반감이 내 속에서 고개를 든다.

─저기요, 잠깐만요.

손을 들고 발언권을 청한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뭐요?!

아우 씨. 말 한 마디 붙인 거 가지고 잡아먹으려고 이러나.

─...지금 저분한테서 술 냄새 나거든요? 그것도 많이요.

─...

승혜는 입을 꾹 다문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얘기를 해줬는데도 노인들은 뭐가 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나마 영기 옹이 눈치가 빠르다.

─잠깐만, 지금 근무시간이잖아? 점심시간도 아직 안 됐는데 낮수ㄹ... 아니, 아침술 마신거야 뭐야?

딸꾹?

음주노인1의 딸꾹질 소리가 의문부호처럼 끝을 올린다. 승혜가 불안하게 눈알을 굴리기 시작한다. 이때를 놓쳐선 안 되지.

─그렇죠? 근무시간에 술 왕창 드시고 계셨던 거죠? 그러면 그... 죄목이 어떻게 돼요? 근무태만이라고 하나요, 아니면 직무유기라고 하나요?

어라? 이게 눈을 가늘게 뜨면서 웃는다. 손을 들어 입을 가린다. 표정을 감추려는 수작이군.

─어머, 도련니임. 실은 그것이 아니오라... 그, 어젯밤에 살짝 드신 술이 아직 안 깨는 바람에...

갑자기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낸다.

아쭈? 비음을 내?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혼구멍을 내줄 수 있을까.

─대대장님. 만일 제가 이 성에서 근무하는 특정인의 근무태도를 점검하고 싶다면, 언제든 저한테 데려오게 할 수 있는 거죠?

그제야 대대장이 손을 모아 쥐고 반색을 한다. 어휴, 반응이 이렇게 늦어서야.

─그럼요! 도련님. 그렇습니다!

─만일, 평상시 관리들의 근무태도 전반을 감시하고 있다가 직무에 태만한 자가 있을 시 제게로 데려오라는 명령이 있었다면, 그건 적법한 체포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도련님!

─그럼 이제부터는 아침부터 술에 절어서 직무를 유기한 공무원의 처분을 논의하면 되는 거죠?

승혜가 입을 떡 벌리고 있다. 한 대 맞은 표정이다. 조금 안쓰럽기는 하지만, 왠지 얄미워. 이유 없이 괴롭혀주고 싶단 말이야.

음주노인1이 고함을 지른다.

─네 이놈! 뚫린 입이라고 마음대로 지껄이다니! 그러는 네 녀석은 일 년 삼백육십오일 내내 성벽을 넘어 다니며 망나니짓을 하지 않았더냐!

왜요, 또 때리시게? 허나 이번에도 그냥 맞고 있지만은 않을 터!

─그랬었는지 모르죠. 그렇지만 오늘 아침은 아니었습니다. 이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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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창 던지기 +8 18.03.16 790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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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접힌 투구 +6 18.03.12 874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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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아구창 +10 18.03.06 830 10 11쪽
32 판정 +13 18.03.04 811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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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아부의 신 +4 18.01.28 910 11 11쪽
27 영웅의 귀향 +6 18.01.26 953 15 11쪽
26 자리다툼 18.01.26 865 13 11쪽
25 예복 +7 18.01.24 975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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