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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쿠

빙신전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수모쿠
작품등록일 :
2017.11.30 00:48
최근연재일 :
2018.05.24 11:05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74,847
추천수 :
815
글자수 :
310,718

작성
18.03.01 23:08
조회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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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1쪽

엔터테이너

DUMMY

─그렇지만 여진족은 끊임없이 저항을 하고 싸움을 걸어왔죠. 소모적인 전쟁이 계속되는데 돈 나올 곳은 없는, 그런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마님께서 돌아가신 뒤 영주님께서는 상인집안의 여자와 혼인을 하셨던 것이고... 그리고 지금까지 중상주의 노선을 걸어오신 겁니다.

영 집중이 안 된다. 승혜가 너무 멀리 앉아 있는 것 같다. 물론 가까이 있다고 해도 그 무서운 양반 등쌀에 말 한 마디 건네기 어렵겠지만...

확실히 풀이 죽어있는 것 같다. 행사 끝나고 집에 가면 무서운 아빠한테 또 털리겠지? 으으.

아까는 그... 잠시 눈에 먼지가 들어가는 바람에 잘 안 보였지만, 오늘 승혜는 관복이 아닌 예복을 입고 있다. 오늘은 연구소장 가족으로 나와서 그런 것 같다.

한복이랑은 약간 다르게 생겨먹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대동소이한, 여성여성한 옷이다. 노란 비단옷에 빨간 술과 장식들이 달려있다.

그러고 보니 그 모양이 산수유나무를 닮았다. 노란 꽃과 붉은 열매가 한꺼번에 열린 것 같다고 할까.

봄에 가장 빨리 꽃을 틔우는 게 산수유이기는 해도 아직은 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때를 기다리지 못해 철모르고 일찍 피어난 봄꽃 같다.

나랑 눈이 마주치니까 뭐라 할 말이라도 있는 듯 애타는 눈길을 보내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수그린다.

물론 한 성깔 하는 애였지만 저렇게 입으니까 여성스러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귀... 귀여운 것 같지 아니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

아, 어젯밤에 미친 작가 새끼가 훼방만 놓지 않았어도 지금쯤 전통혼례 올리고 있었을 텐데 진짜... 아오 진짜...!

─도련님? 지금 제 말 안 듣고 뭐하시는 건가요? 아, 서럽네요. 늙으면 죽어야 된다더니 옛말이 틀린 게 없는 모양입니다...

─아! 아닙니다. 아니, 잠깐 딴 생각을 제가... 그... 하도 괘씸한 광경을 보게 돼가지고요.

─음? 무슨 일입니까? 아 이 개새끼들 진짜 또 뭔 짓거리를...

─저거 보세요, 연구소장님 좌석도 아주 구석진 곳에다가 쑤셔 박아놨네요.

─아쭈? 의전서열은 아예 안중에 없네 새끼들이? 모가지가 여러 갠가...

영기 옹과 대대장이 같이 씨근댄다. 휴우, 다행. 무사히 하나 지나갔다.

─아, 그런데... 중상주의 노선이라는 건?

─그... 사실 저는 무인이라서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그래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역시 무역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저희도 몰랐지만, 이곳은 무역과 장사를 하기에는 지리적 여건이 꽤 좋은 곳입니다. 옛 백제의 수도였고, 지금도 고려 남부지방 육로 무역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예전에는 그냥 산간영지였다고...?

─예. 위치적인 이점은 그 시절에도 분명히 있었는데, 선대영주님께서 워낙 욕심이 없으셨던 분이셔서 개발보다는 안온을 선택하셨던 거죠. 지금은 여러 가지가 들어와 있습니다. 거래를 주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상설시장, 은행, 신용조합... 뭐, 이런 거 없으면 그 막대한 전비가 다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아하. 그러니까 그 돈 나오는 구석을 아버지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 돈줄은 계모 일파가 쥐고 있고, 그거 믿고 저 놈들이 저렇게 설치는 거다?

─무역을 하자면 1, 2차 성곽이 없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여기는 후방이고, 딱히 위협적인 세력이 있는 게 아니라면...

영기 옹이 답답한지 말을 자르고 나온다.

─아니죠, 도련님. 어떻게 그렇게 답답한 말씀을...! 이쪽에 위험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그놈들이 한날한시에 다 어디 가서 뒈져버린다고 해도, 영주님께서는 군수장비공장을 세워 생산까지 직접 하고 계시니까요. 기밀유지 차원에서라도 꼭 필요합니다.

조금 과격한 표현을, 대대장이 받아 부드럽게 주무른다.

─장사만 놓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사실 영주님께서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1차 2차 성곽을 축조한다고 하셨을 때 저쪽에서 엄청 반대했다고 해요.

허허, 영주가 결정을 했는데 대놓고 반대?

─그리고 저렇게 꼴같잖은 짓을 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너무 가증스럽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 전쟁비용을 감당 못하고 파산한 영주들 영지 가보면 정말 비참하거든요. 그런 영지에서 양인으로 사느니 차라리 여기 와서 노비로 사는 게 낫겠다, 이런 소리하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여기는 최소한 밥 굶는 일은 없으니까요. 실제로 이미 많이 들어와 있기도 하고요. 그런 놈들이 급료를 받고 보라색 망토를 입는 겁니다.

전쟁은 반드시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한다. 굳이 직접 겪어보지는 않아 절실히 체감할 수 있는 진실이다.

영기 옹이 미안한지 뒤늦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한다.

─못마땅하시겠지만, 영주님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전혀 개발돼 있지 않던 산간영지를 여기까지 일궈놓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곧 세력 판도가 크게 바뀔 수도 있습니다. 영주님께서 준장 지위를 얻으셨으니까 이제 조정이랑 직접 계약이 가능하거든요. 윗선에 돈 좀 풀어서 공식군납업체 선정되고 군수물자 납품하기 시작하면 돈이야 뭐... 하하하. 그때는 저렇게 대놓고 무시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때까지만 참으시면 됩니다, 도련님.

그 말이 어쩐지 오싹하게 들린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거였으면 좋겠는데...

─사실 저희도 그렇습니다만, 저놈들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대대라고 할 수 있는 병력은 아닙니다. 저희는 참전경험자들로만 이뤄져 있지만, 다들 늙었고 수가 많지 않지요. 그렇지만 저놈들은 저놈들대로 다 상병신들입니다.

─예? 그럼 이렇게 큰 성을 어떻게 방어하죠?

영기 옹이 내게 윙크를 해 보인다.

─그야 뭐... 잘 하면 되는 겁니다, 잘. 허허. 당장 전쟁나가시는 영주님께서 여분으로 두 개 대대씩이나 남겨놓고 가실 리가 없잖아요? 알고 보면 전국 이곳저곳이 다 그렇습니다. 다 가라로 돌리고 있는 거예요.

그때 마이크 음성이 터진다.

─영주님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경호대대 책임자인 제가 직접! 검술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여태까지는 뭐한 거지? 아하, 시합장 위에 뭐 이것저것 소품 가져다 놓느라고 말이 없었구나. 저것들은 뭐야? 짚단? 훌라후프?

─책임자? 아 놔 이 씹새끼가 관등성명을 ㅈ같이 대네?

─예? 왜 그러시죠?

─도련님, 저쪽에는 지휘관이라는 게 없습니다. 양인들은 지휘관이 될 수 없거든요. 저 경호대대라는 애들이 진짜 웃긴 게, 유사시 작전권이 없어요. 당연하잖아요, 지휘관이 없으니까요. 편제상 전시에는 저희 지휘를 받게 돼 있는 놈들입니다.

아하. 그러니까 원래는 직급을 못 가지게 돼 있는 놈이 은근슬쩍 책임자라는 이상한 직급으로 자기소개를 한 거다? 보라색 망토의 남자가 시합장 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보라색 망토를 박력 있게 벗어던지자 경기장에 가득 찬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그러나 내 주변 사람들은 다 팔짱을 끼고 있다.

스릉!

허리에 찬 칼을 뽑는다. 오늘 두 번째다.

─하압!

난데없이 허공으로 폴짝 뛰며 등을 돌리고 뒤쪽을 벤다. 그리고 사방팔방으로 걸음을 옮기며 허공에 칼을 휘두른다. 무슨 연무형 같은 건가 보다.

영기 옹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이마를 감싸 쥔다.

─아... 저 씹새끼, 기어이 저 짓거리를 또 하네. 쪽팔리지도 않나...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일본도를 쓰는 거죠?

─일본도라는 것이...? 아, 왜도倭刀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 유송이라는 놈은, 양인 계급에게도 지휘관 보직을 부여해 달라고 요즘 떼를 쓰고 있는 놈인데요, 정작 무술수련을 핑계로 군역을 기피한 놈입니다. 군대에서 인생을 낭비할 시간에 왜에 가서 검술을 배우고 국위를 선양했다느니 어쩌느니 하는데, 전부 다 개소립니다.

어? 나 누구 생각난다. 온몸에 근육이 잘 발달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대에는 못가겠다던 분이 있었지. 그러고 보니 이름도 유송이네? 유... 송.

─계모 아들 검술스승이네 뭐네 하면서 거드름피우는데, 설령 저놈이 귀족이었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죠. 애초에 전쟁 나갔던 적이 없는 놈한테 누가 지휘를 맡기겠습니까? 전멸하고 싶어서 환장한 놈들 아니고서야... 그리고 애초에 행방불명처리 돼서 군복무 면탈한 놈한테는 뒷간청소도 믿고 못 맡기는 거거든요. 저놈 별명이 뭔 줄 아세요? 행불유송입니다. 행불유송.

크하하하하하핫!!!

예비역들이 단체로 웃음을 터뜨린다.

─어, 왜들 이러시는 거죠?

영기 옹이 키득거리며 대답한다.

─저거 보세요, 도련님. 다리가 거의 펴져 있잖아요. 그리고 발 놀리는 거 한번 보십시오. 전쟁터에서는 절대로 저렇게 걸음을 잘게 놀릴 수가 없습니다. 아니, 바닥에 뭐가 놓여있을지 어떻게 압니까? 시체 밟고 비틀거려가면서 칼 휘두르는 일도 일상다반사입니다.

대대장도 거든다.

─발놀림을 저런 식으로 하게 되면, 난전 터졌을 때 간격을 제대로 잡기가 굉장히 힘들어지지요. 그리고 보시다시피 칼이... 우리 군 제식 갑옷을 제대로 착용하면, 왜도로는 절대로 쇄자갑을 벨 수가 없습니다. 찌르기는 카본에 막히고요.

이번에는 석구 옹 차례인가.

─도련님. 어디 길 가다가 저런 놈 만나시면, 칼 휘두르는 건 그냥 갑옷으로 받으시고 소매 잡아서 옆으로 기울이시면 알아서 넘어가요. 정강이를 차서 자빠뜨려도 되고요.

그렇군요. 흥미로운 얘기를 해준 건 정말 고마운데, 그걸 굳이 체육관 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필요가 있냐 이거지. 지금 하신 말씀들은 1차 성곽 밖에서도 들리겠는데요.

아, 왠지 안쓰러워진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하지만 왜도에 열선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왜도에는 열선을 못 집어넣습니다. 날 면적이 너무 좁고 칼 두께가 얇아서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지요. 지금 백병 의장으로 차고 나오셨죠? 그게 오늘날 열선검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무기입니다. 우리 기술로는 거기에 근접해갈 수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백병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열선병기는 저희 정도 체구가 되어야만 다룰 수 있어요. 왜인들은 똑같은 전자병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사용할 수 있는 병력이 우리보다 더 적습니다. 군사강국이었던 왜倭가 결국 군소세력으로 전락해버린 데는 그런 사연들이 있는 겁니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첫 번째 연무형이 끝난 것 같다. 유송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혀있다. 계모 아들이 마이크에 대고 설명을 한다.

─다음 선보일 연무형은, 일대다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검식들만을 조합한 것으로...

크하하하하핫!!!

아, 귀 따가워.

─저기... 이번에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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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발걸음 +4 18.04.12 565 6 11쪽
50 리얼타임 +4 18.04.10 735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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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목숨 +4 18.04.05 1,099 8 11쪽
47 교착 +6 18.04.03 685 7 11쪽
46 움직이는 인형 +4 18.04.01 945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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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꼬시다 +1 18.03.28 724 10 11쪽
43 악녀 +8 18.03.26 749 6 11쪽
42 아버지 +2 18.03.24 688 8 12쪽
41 꽃보다 화살 +10 18.03.22 801 10 11쪽
40 아첨 시작 +16 18.03.20 1,055 11 12쪽
39 바람이 분다 +5 18.03.18 723 14 11쪽
38 창 던지기 +8 18.03.16 790 8 11쪽
37 비무가 끝난 오후 +9 18.03.14 777 6 11쪽
36 접힌 투구 +6 18.03.12 874 13 11쪽
35 화염의 매 +10 18.03.10 1,176 10 11쪽
34 골육상쟁 +10 18.03.08 812 12 11쪽
33 아구창 +10 18.03.06 830 10 11쪽
32 판정 +13 18.03.04 811 12 11쪽
31 결전 +4 18.03.03 781 7 11쪽
» 엔터테이너 +7 18.03.01 1,014 10 11쪽
29 비무원 +6 18.01.30 933 15 11쪽
28 아부의 신 +4 18.01.28 910 11 11쪽
27 영웅의 귀향 +6 18.01.26 953 15 11쪽
26 자리다툼 18.01.26 865 13 11쪽
25 예복 +7 18.01.24 975 14 11쪽
24 첫날 밤 +2 18.01.24 1,017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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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비밀과외 +4 18.01.20 1,231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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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열선검 +3 18.01.19 1,013 14 11쪽
19 고산성 +4 18.01.19 970 12 12쪽
18 올라가는 오후 +3 18.01.17 1,049 10 11쪽
17 여단 승격 +2 18.01.16 1,204 13 11쪽
16 다들 어디가 +3 18.01.15 1,627 17 11쪽
15 흔들린 역사 +5 18.01.13 1,419 17 11쪽
14 승혜 +1 18.01.12 1,215 17 11쪽
13 갈등 +7 18.01.11 1,373 18 12쪽
12 수성치안대대 +5 18.01.10 1,383 19 12쪽
11 감시관 +2 18.01.09 1,464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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