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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광검사 狂劍士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5:35
최근연재일 :
2020.04.16 16:33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4,507
추천수 :
249
글자수 :
140,352

작성
20.04.1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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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일장춘몽 (一場春夢)

DUMMY

준경은 가늘게 눈을 뜨고 열어젖힌 방문을 통해 보이는 앞산을 바라보았다.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이지만, 북방의 산답게 몹시 거칠고 수려한 산세.

그 산에도 봄이 짙어가고 있었다.

혹독했던 지나 겨울은 지나고 봄이 한창인 계절.

누가 그리하라 이르지도 않았건만 계절은 때가 이르면 바뀌고 산야는 옷을 갈아입는다.

이미 준경의 나이 고희(古稀).

전장을 무인지경(無人之境)처럼 누비던 젊디젊던 날,

그리고 여진과의 화해, 이자겸과의 반란, 정권을 잡은 이자겸과의 분쟁과 반목,

인종에 의해 다시 마음을 먹은 후 이자겸 척살,

이어진 귀양살이와 이자겸 제거의 공로로 인한 복권.

돌이켜보면 언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질곡(桎梏)의 삶.


어찌 보면 최전방 미천한 말단 관료의 자식으로 태어나,

타고난 용력과 거침없는 성격 하나로 고려라는 귀족 중심의 사회에서,

검교 태사 수태보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판호부사(檢校太師守太保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判戶部事)로 임명되는 한편,

서경유수사(西京留守事) 상주국(上柱國)을 겸하는 대단한 출세를 한 셈이니,

후회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는 삶이었다.

처음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으로 하위 무사로 시작하였고,

여진과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만주 벌판과 요동 땅까지 용맹을 떨쳤으니 사나이로 태어나 맛볼 수 있을 영광은 모두 맛보았다고도 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국제정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여진이 세운 금나라를 섬겨야 하는 처지가 되고,

금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는 굴욕을 맛보기도 하였으니.

온갖 영욕(榮辱)을 다 겪어내고 그 분기를 못 이겨 이자겸과 함께 나라를 뒤엎어 보려고도 하였었지만, 세상이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음도 깨닫고,

그럴듯한 토설(吐說)로 뭔가 국가에 이바지할 것처럼 했지만 결국 자신의 욕심을 앞세웠던 이자겸.

그러한 세월을 지내오면서 정치에는 신물이 나서,

오히려 임금에 칼을 겨누었다는 죄목으로 귀양살이하러 가게 되었을 때가 맘이 편했던 준경이었다.


『 2월 신유일. 내시지후(內侍祗候) 김찬(金粲), 내시녹사(內侍錄事) 안보린(安甫鱗)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지녹연(智祿延), 상장군(上將軍) 최탁(崔卓) · 오탁(吳卓), 대장군 권수(權秀), 장군(將軍) 고석(高碩) 등과 함께 이자겸과 척준경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도리어 이자겸과 척준경이 군사를 동원해 궁궐로 침범해 왔다.

임술일. 그들이 궁궐을 불태웠다.


계해일. 이자겸과 척준경이 왕을 협박해 남궁(南宮)으로 옮기게 한 다음, 안보린·최탁·권수·고석과 숙의하던 좌복야 홍관(洪灌) 등 17명을 죽였다. 이 외에도 죽은 군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고려사』 권15, 세가15 인종1 』


그 모든 세월이 다 의미 없어진 것은 이미 천하의 준경 또한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노쇠한 늙은이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홀로 뒷방 늙은이가 되어 죽지 않고 살아가는 요즘 들어 부쩍,

준경의 꿈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는 젊은 날 그의 부장이었던 설중매였다.

그녀는 세월이 흘러도 전혀 늙지 않은 얼굴로,

언제나 준경의 꿈속에서 함께 말을 달리거나 사냥을 하거나, 혹은 사랑을 나누거나 했다.

그런 꿈을 꾼 며칠간은 준경답지 않게 멍하니 넋을 놓고 목적지도 없이 말을 타고 정처 없이 떠나는 게 준경의 일상이었다.

그 세월 이후로 준경이 순정을 지킨 것만도 아니었고,

이미 처자식도 있었으며 전쟁터를 오가며 숱한 여인들을 겪어 보았으나,

준경에게 설중매와 같은 여인은 없었다.

그것은 준경 자신도 믿기지 않는, 기이한 마음이었다.

이미 국세가 기울기도 한 시절이었다.

돌이켜 보면, 죽음을 무릅쓰고 치열하게 벌여왔던 전쟁.

여진의 오랑캐들에게 ‘고려의 미친 호랑이’로 불리던 시절.

그리고 그들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스러져 간 꽃같이 젊던 젊은이들.

혜승 사형도 공유 사제도, 음유 사제도, 그리고 그의 가슴에 남은 마지막 여인 이자 전우이고 사매였던 설중매.

그 꽃 같던 젊은이들이 피와 목숨을 바쳐 빼앗고 지켜냈던 수많은 전장 들은 그저 한 줄 기록으로 남을 뿐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다투었던 오랑캐 여진의 무리는 대국(大國)이 되어 고려가 조공을 드려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고려는 자존의 지킴보다는 굴욕적 평화를 택했고, 그 덕택에 편안한 세월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지나쳐 결국 국운이 다해 보이는 것 또한 어쩔 도리 없는 세월의 힘일 터.


그렇게 변해 버린 세상사를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일장춘몽(一場春夢).

준경은 과연 무엇을 위하여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어 갔는지라는 화두(話頭)를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국경 너머의 멀리 자신이 만들어 놓고 온 설중매의 묘.

그곳을 가 볼 수 없음도 준경에겐 천추의 한이었다.

준경은 하릴없이 진물이 고이는 눈을 들어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리도록 푸른 북방의 하늘을 송골매가 맴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하늘에 설중매의 미소 지은 얼굴이 언뜻 보였다.

준경도 마주 미소를 지어 보았다.

“ 사매. 잘 지내지. 나도 곧 따라갈 거야. 늙었다고 구박하진 말아 주시게.

그래도 이 못난 놈. 사매를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네. 알지 않는가. ”


준경의 식사를 가지고 방으로 온 사미승은 의자에 앉아 미소를 지은 채 잠든 준경을 보았다.

나이가 한참 들었음에도 과거의 명성답게,

늘 호랑이 같은 눈빛에 기가 질리던 사미승은 모처럼 혼곤하게 잠든 준경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았다.

그것은 마치,

노쇠한 백호가 깊이 잠든 모습처럼 보였다.


小尾




『가시리 작자 미상 고려가요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는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위 증즐가 대평성데(大平盛代)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위 증즐가 대평성대(大平盛代)

잡사와 두어리마는

선하면 아니올셰라

위 증즐가 대평성대(大平盛代)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는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위 증즐가 대평성데(大平盛代)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위 증즐가 대평성대(大平盛代)

잡사와 두어리마는

선하면 아니올셰라

위 증즐가 대평성대(大平盛代)



가시겠습니까 가시겠습니까?


버리고 가시겠습니까?


나는 어찌 살라고


버리고 가시겠습니까?


잡아두고 싶지마는


서운하면 아니 올까 두렵습니다.



작자·연대 미상의 고려가요. 일명 ‘귀호곡(歸乎曲)’이라고도 한다.

≪악장가사 樂章歌詞≫에 가사 전문이,

≪시용향악보 時用鄕樂譜≫에 1장에 대한 가사와 악보가 실려 있다』

꾸미기_캡처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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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광검출도 (狂劍出刀) 20.04.15 289 2 12쪽
35 광검출도 (狂劍出刀) 20.04.14 269 2 9쪽
34 광검출도 (狂劍出刀) 20.04.10 296 2 8쪽
33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8 274 2 6쪽
32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7 273 3 8쪽
31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6 307 2 14쪽
30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2 343 3 9쪽
29 옥오지애(屋烏之愛) 20.03.31 364 3 9쪽
28 옥오지애(屋烏之愛) 20.03.30 357 3 8쪽
27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7 356 4 9쪽
26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6 355 3 8쪽
25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5 366 3 7쪽
24 전화위복 轉禍爲福 20.03.23 407 6 9쪽
23 전화위복 轉禍爲福 20.03.20 414 5 8쪽
22 춘설난분분 春雪亂紛紛 20.03.19 444 7 7쪽
21 춘설난분분 春雪亂紛紛 20.03.18 434 7 8쪽
20 춘설난분분 春雪亂紛紛 20.03.16 468 7 9쪽
19 천방지축 天方地軸 20.03.13 498 6 8쪽
18 오비이락 烏飛梨落 20.03.12 478 6 8쪽
17 오비이락 烏飛梨落 20.03.11 527 6 10쪽
16 전신강림 戰神降臨 20.03.10 538 6 10쪽
15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6 579 6 9쪽
14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5 614 7 9쪽
13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4 658 9 9쪽
12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3 709 9 8쪽
11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2 765 9 9쪽
10 적반하장 賊反荷杖 20.02.29 766 9 8쪽
9 오합지졸 烏合之卒 20.02.27 862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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