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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광검사 狂劍士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5:35
최근연재일 :
2020.04.16 16:33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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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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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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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전화위복 轉禍爲福

DUMMY

설중매도 따지고 보면 원래는 고려 변방에서 살던 사냥꾼의 무남독녀였다.

할아버지가 신라의 무관이었기에 고려가 건국된 이후에 정책적인 이주로 경주와 먼 변방으로 오게 된 것이다.

어차피 이전의 나라에서 직책을 가졌던 터라 관직은 꿈도 못 꾸고,

그렇다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어서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본래 무관이었던 만큼 사냥으로 생업을 삼기로 했다.

다행히 그녀의 조부는 꽤 실력이 있던 무관이었고, 그 무예는 아버지를 거쳐 어린 설중매에게 남겨졌다.

그녀의 집안 어른들은 본업이 사냥꾼이었던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실력으로 근처에서 소문이 자자한 호랑이 사냥꾼이 되었다.

당시에 호랑이들로 인해 생기는 우환이 적지 않아,

관군이 아니어도 호랑이를 사냥할 수 있는 사냥꾼들은 대우가 꽤 좋았다.

그녀 나이 일곱 살 때 국경에서 분쟁이 일어나면서 그녀가 살던 지역이 여진의 세력권으로 넘어갔다.

그녀 집안이 원래 망한 신라의 무관 출신이라 국경을 수비하는 고려군의 편제에서도 아예 빠져있던 탓에, 그녀의 집안은 별 탈 없이 그냥 사는 지역이 여진족의 지역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물론 새로이 주변에 자리 잡은 여진의 부족들에게 그들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긴 했지만,

여진의 추장들도 그들의 영역을 넓히고 안정화를 하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점령지역의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하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부여의 유민이 많았고, 고려 접경에 사는 백성들 태반이 과거 신라의 귀족들이 유민처럼 이동해와서 정착한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백성들에게는 국가라는 개념이 좀 희박한 편이었다.

너무 자주 바뀌었고, 어찌 바뀌어도 크게 말이 달라지거나 풍습이 완전히 달라지는 일은 적었기 때문이고 백성들이 있어야 어찌하든 그 지역을 다스릴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여진의 아이들과 어울렸고,

무인 집안의 여식답게 그들의 승마술과 각종 사냥법도 배워나갔다.

만약 지역이 그대로 고려에 속했다면 오히려 여자아이라서 그런 기술들을 배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여진족은 애초부터 남녀 차별이 없이 실력으로 증명하는 유목민에 가까워서,

설중매는 그중 단연 독보적으로 소문난 싸움꾼이었다.


그렇게 천둥벌거숭이처럼 자라나던 그녀도 한번 낭패를 당한 일이 있으니 그게 바로 스승이 된 무허 대사와의 만남이었다.

그녀가 살던 마을에 삿갓을 쓴 승려가 나타나는 것은 드물긴 해도 가끔 있는 일이었다.

여진에서도 불교를 믿는 이들이 제법 있었고,

가끔 탁발승이 나타나서 가벼운 병도 치료해주고 장례를 도와주기도 했었다.

본래 고려인이던 사람들이 제법 사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면도 있었지만,

일부 여진족들은 고려군에 항마군이 있음을 알기에 썩 달가워하진 않았다.

어릴 때부터 여진 아이들과 어울리던 그녀도 여진 아이들처럼 승려에 대해 반감이 있던 터라,

아이들과 함께 노승을 향해 돌팔매질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노승은 아이들 여럿이서 던지는 돌팔매를 가볍게 들고 있는 선장으로 툭툭 쳐대며 호통을 쳤다.

말이 아이들 돌팔매질이지, 벌판에서 새를 잡거나 여우나 너구리도 돌팔매질로 잡던 아이들이다.

그런데 노승은 아무렇지 않게 그 많은 돌멩이를 툭툭 받아치며 아이들에게 다가왔었다.

그게 무허 대사였고, 그날 아이들은 노승에게 붙들려 호되게 혼이 났다.

그렇게 해서 무허 대사의 눈에 든 설중매는 거의 일 년이 넘게 무허 대사로부터 수박 술을 배웠다.

그대 무허 대사는 무예뿐 아니라 그녀가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었다.

비록 정치적인 이유로 변방 주민들이 고려인도 되었다가 여진족도 되는 기구한 상황이지만,

가장 근본은 불필요한 살생을 피하라는 것과,

무예의 근본은 자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이니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말.

훗날이라도 고려군과 다툴 일이 생긴다면,

그때 만약 자신과 사승관계가 있는 장수들을 만나거나 승려들을 만나면 손속에 인정을 두라는 말이었었다.

물론 들판에서 별을 이불 삼아 잠자고 말 위에서도 느긋하게 잠을 잘 정도로 거친 야생의 세상에 길든 그녀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는 말들이긴 했지만.

그런 사연으로 무공이 뛰어나서 그걸 눈여겨본 여진의 장수가 그녀를 위사로 등용한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었다.

그런 그녀가 산성의 전투에서 준경을 마주치게 된 것도 마찬가지였다.


준경의 설득 때문에 설중매는 고려군에 편입되었다.

처음 고려군에 맹렬한 증오심을 보인 그녀였지만,

원했건 아니건 사제관계임이 증명되고 대사형인 혜승의 꾸준한 설득 때문에 이해하게 된 부분도 있었다.

실은 그것보다는 그녀의 복잡한 신분 내력 때문에 이라는 것이 더 컸다.

그녀는 다민족으로 이뤄진 여진 무리에서도 배척을 받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타고 난 무예와 용맹 덕택에 여진족 내에서도 중간계급에 해당하는 위치에 오른 것이었지만, 결국 준경 또한 신라에서 패망한 집안의 후손.

어찌 보면 혈족을 중심으로 따진다면 고려군에 더 가까운 게 그녀의 핏줄이었거니와,

대개의 당시 변경에서 전투를 벌이던 군사들은 고려 혹은 여진 소속은 다르지만 실은 패망했던 전 국가의 유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편에서 싸우든 그들은 큰 맥락의 북벌정책( 北伐政策 )과는 무관한, 백성끼리의 전투밖에 될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용병(用兵)들과 같아서, 때론 이쪽 때론 저쪽으로 포로가 된 이후에 입장을 달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므로 의리를 앞세워 탓할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족이었으니까.

설중매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 준경의 부장(副將)격이 되었다.

처음 준경을 보필하던 왈패 출신들이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녀와의 겨루기를 모두 하고 나서야 그녀가 준경 다음가는 무력(武力)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예종 3년(1108년) 1월을 축일에 윤관과 오연총이 정병 8천을 거느리고 가한 촌(加漢村) 병목의 작은 길로 나섰다.

정월 눈은 깊고, 날은 몹시도 춥고 스산하였다.

8천 이란 정병이지만, 그들이 진입하게 된 장소는 하늘을 찌를 듯 원시림이 무성한 곳이었다.

넓고 깊은 숲에 다다르기 전에는 초병들이 앞서 매복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었으나,

연이은 승전과 다수의 군사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윤관 대장군은 빨리 병목 지를 지나도록 지시했다.

날이 곧 저물어 갈 텐데 다음 숙영지인 영주 성까지의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팔천의 병사는 앞서 오천이 선발대로 출발하였었고, 장군이 지휘하는 중군(中軍)은 천, 후위대 이천이 멀찌감치서 행렬을 따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동안 앞선 선발대에게서도 문제가 없었기에 중군은 거침없이 숲속의 병목 도로로 진입했다.

북방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서 마상에 올라타고 있는 장수들은 모두 고개를 수그리고 있고,

보군(步軍)들도 잔뜩 어깨를 움츠린 상태였다.

숲속의 병목 지는 매우 좁아서 진입로는 기껏해야 병사 십여 명이 나란히 서서 들어갈 정도였는데, 숲 중앙에 다다르자 마치 호로병처럼 둥그런 개활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오연총 장군이 웃으며 윤관 대장군에게 말을 걸었다.

“ 대장군. 이거 참 여진의 오랑캐 놈 들은 어쩔 수 없군요. 이런 천혜의 지형에 매복을 놓는다면 능히 오백 정도의 기병들만 가지고도 충분히 기습에 성공하지 않겠습니까? ”

윤관은 입김을 펄펄 내며 입을 벌린 오연총을 흘깃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 오 장군. 하지만 여기 숲을 좀 보게나. 저리 나무가 빽빽한데 그런 곳에서 어찌 기병을 부린단 말인가? 게다가 기병이 아닌 보군으로 매복을 해 보아야, 우리 보병과 마주쳐도 거기서 거기. 설마 이런 곳에 그들이 매복을 세울까? 그 정도로 병법을 모를 것 같진 않네만. ”

오연총이 껄껄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 대장군. 여진 병들은 막 걸음마를 떼고 나서부터 안정도 없이 말을 타는 놈들입니다. 그래서 오랑캐 무리라고 부르는 거죠. 게다가 그들이 타는 말들은 초원 말입니다.

다리도 짧고 덩치도 저희 고려마 에 비해 작죠. 대신 체력이 강하고 특히 이런 눈벌판 같은 악천후에 강합니다. 잘 지치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기병 정도는 이렇게 비좁은 숲에서도 충분히 ······. “

그것이 시작이었다.

오연총이 입을 다물기도 전에 어디선가 문자 그대로 쏜살같이 화살이 날아와 오연총의 어깨에 박혔다.

억, 하고 오 장군이 화살의 서슬에 신음을 내며 마상에서 휘청거리는 걸 윤관은 보았다.

당황하여 주변을 재빨리 살펴보자, 숲으로부터 눈송이처럼 많은 화살이 날아온다.

고려군의 시체들이 순식간에 공터에 쌓이기 시작하고,

숲으로부터 시커먼 갑옷을 입은 여진 군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윤관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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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일장춘몽 (一場春夢) 20.04.16 354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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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광검출도 (狂劍出刀) 20.04.14 269 2 9쪽
34 광검출도 (狂劍出刀) 20.04.10 297 2 8쪽
33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8 274 2 6쪽
32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7 274 3 8쪽
31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6 307 2 14쪽
30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2 343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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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옥오지애(屋烏之愛) 20.03.30 357 3 8쪽
27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7 357 4 9쪽
26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6 356 3 8쪽
25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5 367 3 7쪽
» 전화위복 轉禍爲福 20.03.23 409 6 9쪽
23 전화위복 轉禍爲福 20.03.20 415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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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3 709 9 8쪽
11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2 766 9 9쪽
10 적반하장 賊反荷杖 20.02.29 766 9 8쪽
9 오합지졸 烏合之卒 20.02.27 862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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