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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광검사 狂劍士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5:35
최근연재일 :
2020.04.16 16:33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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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06
추천수 :
249
글자수 :
140,352

작성
20.03.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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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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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만부부당 萬夫不當

DUMMY

추장은 힘껏 큰 칼을 휘둘러 앞을 가로막는 고려군의 친위대를 베어 넘겼다.

이미 마상에서 흔들거리는,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꽂힌 장수는 일격에 넘어갔다.

윤관을 향한 짧은 거리에 걸리는 것은 이제 없었다.

추장의 눈에 당황하여 장군 검을 요격세( 邀擊勢 )로 치켜드는 윤관이 보였다.

추장의 눈에는 그것은 윤관의 마지막 발악으로 보였다.

일단 윤관을 제압하여 인질로 삼는 방법이 첫 번째요,

그게 어렵다면 이 자리에서 윤관을 척살하는 것이 추장의 두 번째 대안이었다.

생각을 마치고 말에 박차를 가하는 순간 추장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무엇인가가 자신의 시선이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로부터 불쑥 튀어 나왔다.

요동의 들판에서 어릴 때부터 반 짐승처럼 살아온 추장의 예민한 육감에 뭔가가 거슬렸다.

그것은 자신의 주변에 밀집한 여진 기병들의 마상 위로 가볍게 뜀 걸음을 하며,

순식간에 추장의 말 뒤편으로 뛰어 건너온다.

그 와중에도 형체가 징검다리처럼 밟고 지나온 기마의 주인들은 목이 떨어져 나가고 있고.

위기를 느낀 추장은 윤관을 향하려던 말머리의 고삐를 재빠르게 잡아채고,

몸을 돌려 피했다.

아니,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그 흑표범 같은 형체는 벌써 자신의 등 뒤로 돌아올라 목에 날붙이를 바짝 붙이고 있다.

놀란 추장은 본능적으로 목을 돌려 뒤를 보려고 했으나,

목덜미에 차갑고 뜨거운 느낌이 들면서 뭔가가 축축하게 흐르는 게 느껴진다.

“ 멈추라 해라. 아니면 죽는다.”

여인의 목소리. 들은 적 있다. 고려군에 투항한 여진 출신의 암표범.

목덜미의 아픔에 앞서 분기가 확 치솟는다.

“ 네가 여진의 무사를 뭐라고 보는 거냐? 감히 협박을.”

“ 여진의 무사가 뭐? 그게 누구든 사람 모가지가 별다르단 말이냐? ”

“ 네 이년. 네가 그런다고 우리 병사들이 다잡은 고려놈들의 대장을 놓아줄 것 같으냐?

당장 네년의···.”

추장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시원찮은 답이 시작되자마자 설중매의 보도가 사정없이 추장의 목을 몸뚱이와 나누어 놓았기 때문이다.

목을 잃은 몸뚱이는 허공에 선혈을 흩뿌리며 멈칫하더니 말 아래로 썩은 통나무처럼 떨어져 내렸다.

맥없이 목이 떨어져 나가는 걸 본 여진 장수 두 명이 노하여 좌우에서 동시에 설중매를 향해 요격한다.

한 몀의 여진 장수는 커다란 태감도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설중매의 상반신을,

또 한 명의 장수는 준경처럼 언월도를 설중매의 목을 겨냥하여 휘둘렀다.

말에 올라있어서 하반신은 윤신이 안되는 상태에서 상체 두 곳에 동시에 공격을 받는 상황.

윤관은 저도 모르게 ‘저런!’하고 탄식을 발했다.

저 지경에서는 달리 어찌 대응을 한데도 둘 중 하나에는 요격을 당할 판이다.

순간 설중매가 빼앗아 타고 있던 추장의 말 등에서 솟구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반응에 조금 빠르게 언월도를 휘둘렀던 적 장수는 어? 하고 당황했다.

말 등을 박차고 솟은 설중매는 마치 깃털이 내려앉듯 자신의 목이 있던 자리로 들어온 언월도의 넓적한 도신을 다시 밟고 뛰었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설중매의 발이 언월도의 기다란 손잡이를 타고 날 듯이 뛴다.

아차 하는 사이에 적장수는 언월도를 흩뿌리는데,

이미 손잡이 중간에서 몸을 띄운 설중매가 들고 있던 쇠 도리깨를 바람개비처럼 휘둘렀다.

‘퍽!’

도리깨는 원래 추수할 때 곡식의 낱알을 터는 기구다.

기다란 봉 끝에 끝이 갈라진 서너 개의 휘추리를 달아서 작물들을 두드리는 도구.

그걸 변형시켜서 봉 끝에 뾰족한 철침이 다닥다닥 솟아난 무기로 편곤 編棍이라고도 불렸다.

편곤에 머리통을 맞은 적장수는 어어 하며 말에서 맥없이 떨어졌다.

순간에 일어난 일에 태감도를 휘두르던 적장도 멈칫했다.

그게 적장의 순간적인 실수.

적장의 머리를 쳐내며 생긴 반동을 이용하여 설중매는 다시 한번 허공에서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그 회전축에서 일어난 포물선의 끝에는 편곤의 추가 있었고,

추는 포물선을 그리며 태감도를 든 장수의 팔목에 정확하게 꽂혔다.

“으악!”

순간 비명을 지르며 적장은 손에 들고 있던 태감도를 떨구었다.

마치 곡예사처럼 허공에 몸을 솟구치고 적의 창대를 타고 걷고,

다시 몸을 회전시켜 반대편에 있던 적장의 무기까지 떨구어낸 설중매는 그제야 중력에 끌리듯 아래로 내려섰다.

내려서는 와중에도 휘둘렀던 도리깨를 다시 한번 수직으로 휘두르니,

그 끝에는 태감도를 놓치고 반사적으로 쇠 도리깨에 맞아 부러진 팔목을 왼손으로 붙든 적장의 머리가 있다.,

‘퍽’

크지 않은 소리가 나면서 남은 하나의 적장도 스르르 말에서 고꾸라졌다.


윤관 장군은 준경 휘하의 여장수가 자신을 향해 짓쳐 들던 추장의 목을 단칼에 날리는 것을 보았다.

그 전에, 오장 여의 거리를 마치 무인지경(無人之境) 걷듯 말과 말을 건너뛰어 밟으며 보도로 여진 기병의 머리를 쳐내면서 뛰어넘어 오는, 곡예단 같은 그녀의 기예도 보았다.

추장의 목을 날린 그녀를 향해 적장수 두 명이 동시에 공격을 할 때는 윤관도 아, 이제 끝이구나, 아깝다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대응은 윤관이 알고 있던 상식을 한참 벗어났다.

그녀가 빼앗아 타고 있던 추장의 말에서 위로 솟구쳐 자신의 목을 쳐오던 언월도의 창대에 올라선 것.,

창대의 절반을 발끝으로 걷다시피 하며 적장의 머리에 편곤을 명중 시킨 것.

다시 그 반동을 이용하여 반대편에서 큰 칼로 공격하던 적장의 손목을 편곤으로 쳐내고,

땅바닥으로 내려서며 찰나에 다시 편곤을 돌려 적장을 참살하는 것.

그 모든 것은 사실 길게 숨 한번 쉴 정도의 시간도 안 되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마치 사전에 잘 짜인 무예 비무 시범처럼 여병사가 보여준 한바탕 무위가 놀랍다.

게다가 그 여병사는 그런 활극을 벌이고도 헉헉대거나 얼굴이 상기 되지도 않았다.

윤관은 멈췄던 숨을 길게 뱉었다.

설중매는 무슨 일 있었냔 식으로 추장의 말고삐를 다시 채어 윤관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윤관의 앞에 말을 멈춰 세우고, 마상에서 보도를 역검으로 돌리며 가슴에 손을 올려,

군례(軍禮)를 취했다.

“ 척준경 낭장의 별동대 교위 설중매, 대장군을 모시기 위해 왔습니다.”

고른 호흡에, 숨 하나 찬 기색이 없다.

윤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 어떻게 우리 고려에는 저만한 사내들도 부족한가.

네 무공이 정녕 무섭구나.

아마 내 휘하에서 실전에서 너를 능가할 만한 장수는 척준경밖에 없을 것이다.

너와 같은 자가 아직 교위에 머물고 있다니.

내 너를 별장으로 품게 하리라. “


준경의 돌격대들이 장군을 향해 다가왔다.

추장의 목이 달아난 것을 본 여진 군은 일패도지(一敗塗地)했다.

윤관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구하러 온 돌격대를 보았다,

처음 협곡 호로병의 입구로 들어오던 오십여 기 중 온전하게 말을 타고 다가온 돌격대는 불과 십 여기.

하지만 그들의 피 칠갑한 모습 뒤로 둥그렇게 펼쳐진 공지에는 여진의 무리가 삼십 명 넘게 쓰러져있다.

준경이 설중매와 같은 모양으로 윤관에게 다가와 타고 있던 말을 멈추며 군례를 갖췄다.

돌격대 승병들은 대장군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방진을 형성했다.

” 낭장 척준경, 항마군과 함께 대장군을 모시러 왔습니다. “


『예종 3년(1108년) 1월 을축일에 윤관ㆍ오연총이 정병 8천을 거느리고 가한촌(加漢村) 병목의 작은 길로 나가니, 적이 군사를 풀숲 사이에 매복하고 있다가 윤관의 군사가 이르는 것을 기다려서 이를 급히 공격하여, 우리 군졸이 모두 무너지고 다만 10여 명이 남았다. 적이 윤관 등을 몇 겹으로 포위하였는데 오연총은 화살에 맞아 형세가 매우 위급하니 척준경이 용사 10여 명을 거느리고 이를 구하려 하자, 그 아우 낭장(郞將) 척준신(拓俊臣)이 이를 말리며 말하기를, “적진이 견고하여 깨뜨릴 수 없으니, 헛되이 죽음은 무익합니다." 하였다. 척준경이 말하기를, “너는 돌아가 늙으신 아버지를 봉양하라. 나는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의리상 가만있을 수 없다." 하고 곧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적진을 뚫고 들어가 10여 명을 격살하니 최홍정ㆍ이관진(李冠珍) 등이 산골짜기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와서 구하였다. 이때에 적이 포위를 풀고 달아나므로 추격하여 36급을 베었고 윤관 등은 날이 저물어서 돌아와 영주성으로 들어갔다. 윤관이 눈물을 흘리고 울며 척준경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이제부터 내 너를 마땅히 아들과 같이 보고, 너는 마땅히 나를 아버지처럼 보라." 하였다. 제를 받들어 척준경을 합문지후(閤門祗候)로 임명하였다. 』 고려사절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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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6 307 2 14쪽
30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2 343 3 9쪽
29 옥오지애(屋烏之愛) 20.03.31 364 3 9쪽
28 옥오지애(屋烏之愛) 20.03.30 357 3 8쪽
»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7 356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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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적반하장 賊反荷杖 20.02.29 766 9 8쪽
9 오합지졸 烏合之卒 20.02.27 862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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