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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광검사 狂劍士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5:35
최근연재일 :
2020.04.16 16:33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4,536
추천수 :
249
글자수 :
140,352

작성
20.03.03 14:13
조회
709
추천
9
글자
8쪽

무신출림 武神出林

DUMMY

준경은 건들거리는 것처럼 하면서 주먹을 우두둑거리며 단단히 그러쥐었다.

육중한 상체가 마치 성난 황소가 도사린 것처럼 한껏 도사려 들었다.

이미 선승으로부터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얕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크기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승려에게 질 것이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선승도 그런 정도의 체격 차이긴 했지만,

이 세상에 선승과 같이 특별한 무위를 지닌 사람이 둘이나 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느닷없이 번갯불처럼 내지르는 준경의 주먹은 당연히 혜승의 얼굴을 맞출 것이며,

그 막강한 기운에 혜승이 기절하거나 얼굴 뼈가 부러질 것이라 왈짜들은 생각했다.


분명 중놈의 면상에 주먹이 꽂혔다.

아니, 꽂혔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타고난 주먹질에 자신이 있던 준경이었지만 최소한 항마군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중놈 이니,

팔뚝을 틀어막거나 머리를 틀어 피할 것이라는 계산이 준경에게 있었다.

막으면 아예 팔뚝을 잡아 자신의 커다란 체구로 와락 끌어당겨 드잡이할 속셈이고,

만약 머리를 틀어 피한다면 그 찰나에 어깻죽지를 잡아 드잡이할 속셈이었다.

자신이 체구가 크고 쌈질이라면 이력이 나긴 했지만,

반대로 몸이 날랜 중놈을 상대로 거리를 두고 다투는 건 불리하다는 생각을 찰나에 할 만큼 준경은 신중하고 영악스러웠다.

산중의 제왕 호랑이조차도 토끼를 사냥 할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고 하지 않는다.

한데 이 중놈은 전혀 주먹을 피하긴커녕, 그저 인사라도 하듯 고개를 까딱거릴 뿐이다.

그 촌음의 순간에도 준경은 살짝 의아심을 느꼈지만 이미 나아가고 있던 주먹 인지라,

에라이 대가리가 터지건 말건, 이란 생각으로 힘껏 중의 정수리를 질러 버렸다.

거의 혜승의 머리통보다 조금 작은 거대한 주먹이 반들반들한 혜승의 머리 한복판에 꽂혔다.


“으악!“

둘의 대거리를 지켜보던 왈짜들은 드디어 대장이 중놈을 죽였구나, 싶었다.

그런 잠시, 비명을 지른 쪽이 그들의 대장인 걸 깨달은 왈짜 패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준경이 누군가.

일찌감치 타고 난 용력으로 무술을 배우지 않았어도 어지간한 무인들 두서넛쯤 그냥 힘으로 박살 내 버리는 장사가 아닌가.

공력을 들이지 않고 오직 가진 힘만으로도 강가 차돌을 깨버리는 게 준경 아니던가.

그런데도 중놈의 머리를 정통으로 내지른 준경이 손목을 잡고 볼썽사납게 쩔쩔매는 모습.

이어서 그 중놈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비틀며 슬쩍 몸을 띄웠다.

중놈은 마치 학 같은 자세로 떠올라 가벼운 몸짓으로 손목을 잡고 쩔쩔매는 준경의 턱 즈음까지 떠오른다.

이어진 슬격(膝擊 무릎 치기).

준경은 눈을 까뒤집으며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아름드리 통나무 같은 준경의 몸뚱이가 자갈밭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일자로 뻗어 버렸다.

혜승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뒷짐을 지고 서서 큰대자로 드러누운 준경을 내려다보고 있고.


왈짜 패들은 찍소리도 못 내고 숨을 죽였다.

노승이 손뼉을 짝짝 치며 멀찍이 떨어져 눈만 끔벅거리는 왈패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 보았느냐? 이놈들아.

혜승이 만약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이 무지한 놈의 주먹질에 머리가 깨지던가 목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준경이놈 손뼈가 어긋났을 거다. 아니면 금이 갔을지도 모르지.

이것이 바로 철두공(鐵頭功 머리를 단련하는 법) 이란 것이다.

만약 준경이 몽둥이나 철봉 같은 것으로 혜승의 머리를 내리쳤다면,

그 반탄력으로 오히려 때린 놈의 얼굴에 몽둥이가 튀었을 것이지.

손이 뭐냐. 온갖 작은 뼈들이 모여있는 예민한 곳이 손이다.

그런 손이 무식하게 돌덩이보다 단단하게 단련된 철두공을 쳤으니 손 감각도 사라졌을 거다.

게다가 손의 힘이 빠지니 온몸의 기가 다 빠졌을 터.

그 순간을 이용해서 턱에 슬격 한방을 주니 이 덩치 큰 곰 같은 놈이 기절하지 않았느냐?

네놈들이 길거리에서 보잘것없는 힘으로 어린 백성들이나 괴롭히고,

제대로 무예를 배우지도 못한 포졸 같은 녀석들이 나에게 행패를 부리던 것으로는,

진짜배기 무술을 배운 사람을 절대로 당해내지 못한다.

하물며 전장에서 살다시피 한 무승들에야 말할 것도 없지.

보기 흉하구나, 어서 내려와 이놈을 좀 정신 차리게 갯물로 씻겨라! “


선승으로부터 두 번 정신을 잃은 기억이 있던 준경에게 이번의 깨어남은 지독한 수치심이었다.

선승도 아닌 그의 제자.

자기 또래에 덩치도 힘도 보잘것없어 보이는 무승에 단 한 방을 맞아 기절하다니.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다.

이번에 눈을 뜬 곳은 한창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절터의 귀퉁이이었다.

아마도 공사장 근처 어딘가에 깔린 돗자리 위에 눕혀진 듯 멀리서 나무 자르는 소리와 망치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눈을 뜬 준경의 눈에 파란 하늘과 흔들리는 나무들이 보인다.

뭔가 신음을 내려고 했는데 턱이 열리지 않았다.

순간 준경은 당황했다.

한 방 맞은 곳이 하필 턱이라, 아무래도 턱뼈가 어긋난 것 같았다.

주체못한 침이 주르르 입가로 흐르는 게 영 볼품없다.

그때였다.

누운 상태로 눈을 끔벅이는 준경의 시야에 하늘을 가리는 민머리 얼굴이 쑥 들이밀어 진 것은.

혜승이라고 했던가.

”입을 열 수가 없느냐? “

준경은 아무 말 못 하고 누운 채로 고개를 주억였다.

갑자기 혜승이 턱 옆에 발질해서 준경은 두 번째 기절할 뻔했다.

” 뭐야! 에이 썅!“

준경의 입이 열리자 참고 있던 쌍욕이 터져 나온다..

이때 혜승의 매 같은 눈이 준경을 바라보자 준경은 슬그머니 중얼대며 일어나 앉았다.

” 아 턱뼈를 맞춰주려면 미리 좀 말을 하든지······.

뜬금없이 턱을 걷어차니 안 놀랄 수가 있수.

정말 더럽게 아프네. 좋수. 내가 졌으니 이제 뭘 해야하우? “

구시렁거리며 일어나는 준경을 향해 혜승이 빙긋 미소를 띄웠다.

” 달리할 게 있나 사제. 오직 수련이지. “

” 뭐요? 어차피 선승께서 가르침을 주시고 있었는데, 왜, 왜 댁이 나를 가르친단 말이오? “

거품을 물며 대드는 준경은 하필 저보다도 어려 보이는 혜승에게 무공을 가르침 받는다는 게 영 마땅치 않았다.

선승은 그렇다 해도 혜승은 좀 그렇지 않냐 말이다.

누가 엉덩이를 푹 찔렀다.

화가 치민 준경이 홱 뒤돌아서자 선승이 짚고 다니던 선장으로 준경의 두툼한 엉덩판을 찌르고 있다.

” 네 이놈. 준경아.

내가 이 나이 먹어서 네놈을 끌고 이산 저산 뜀박질을 해야 하겠느냐??

네 사형인 혜승은 오래전 내게서 무공을 배웠을 뿐 아니라,

항마군으로 여진 군과 수차례에 걸친 전투를 치른 역전의 용사다.

감히 네 놈 정도가 배우니 마니 할 그런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 증거로 너는 혜승의 일 초 지적도 못 되지 않았느냐?

그만 투덜거리고, 네 졸자 중에 근골이 좋은 놈 몇 놈을 추려와라.

내 특별히 혜승에게 부탁하여 내일부터 네 녀석은 공사를 하지 않고 혜승에게서 무공을 전수할 것이다.

너희같이 밥만 축내고 민초들이나 뜯어먹는 쓰레기들이 사회에 남아 있으면 뭘 하겠느냐?

일찌감치 군문에 들어가서 사람 노릇 좀 하거라! “

마치 사전에 이리될 줄 알고 외우고 있었던 듯 장황하게 잔소리를 하는 선승을 바라보는 준경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이다.

어차피 신라 유민의 후손.

군문에 들어가 봐야 맨 하급 졸자 노릇밖에 못 할 터인데.

그래서 군에 들어갈 생각은 애당초에 하지도 않고 그냥 길거리 건달로 살아왔는데.

이건 좀 억울하다 싶지만, 선승과 혜승의 서슬이 퍼렇다.

못하겠노라 했다가는 둘에게서 몰매를 맞을 지경인 것이다.

준경은 선승 몰래 긴 한숨을 내뱉었다.

‘ 도리 없지.

최대한 따라주는 척하다가, 기회를 봐서 도망치는 거야.

저 향 냄새나는 중놈들에게 허구한 날 얻어터져 가며 무술을 배울 수는 없지.

이 나라 따위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괄시받아가며 군 생활을 하나?

난 들, 이 전방 골짜기까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고. ’


그 이튿날부터 준경은 혜승으로부터 혹독한 수련을 받아야 했다.

혜승은 준경과 왈패 들 로부터 ‘사형’ 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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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적반하장 賊反荷杖 20.02.29 766 9 8쪽
9 오합지졸 烏合之卒 20.02.27 862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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