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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광검사 狂劍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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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5:35
최근연재일 :
2020.04.16 16:33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4,500
추천수 :
249
글자수 :
140,352

작성
20.03.25 19:33
조회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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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7쪽

만부부당 萬夫不當

DUMMY

‘아악!’

고려군이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공터에 쌓이기 시작하고,

숲으로부터 시커먼 갑옷을 입은 여진 군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윤관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고려군 중 화살을 맞지 않은 병사들은 본능적으로 방진(方陣)을 짜서 여진 군의 쇄도(殺到)를 막으려고 했으나, 이미 승기(勝機)는 여진 군에 넘어간 상황.

“ 뭣들 하느냐?! 어서 방진을 완성하고 등갑방패를 앞에, 장창 대는 그 뒤로 자리 잡아라! ”

어깨에 화살이 꽂힌 상태에서도 오연총의 기합이 대단하다.

하지만 이미 고려군의 방진은 어지러이 흐트러지고,

쐐기처럼 고려군 가운데를 파고든 여진의 돌격대는 이미 쇄도했다.

낮고 빠르고 강한 말.

그리고 그 위에 곡예단처럼 고삐도 잡지 않은 채 두 팔에 짧은 칼을 양손에 움켜쥔 무리는,

숲으로부터 쏟아져 나오자마자 호로병처럼 생긴 공지에 둥글게 방진을 형성하려는 고려군의 중앙부를 가르고 질풍처럼 들이닥쳤다.

“ 뭣하나! 빨리 진을 오므려! 돌파당한···.”

오련총의 피맺힌 절규는 사방에서 내지르는 적들의 함성과 고려군의 처절한 비명으로 묻혔다.


사방에 피어오르는 피 안개.

난무하는 고려군의 목, 목, 목.

어어 하는 사이 여진 군은 벼락처럼 무리의 중앙을 가르고,

이어서 좌우로 산개하여 다시 나누어진 두 개 무리의 고려군을 재차 쪼개어 갈랐다.

순식간에 고려군은 무리가 산산이 깨어지고 흐트러져 군기(軍氣)마저 흐트러졌다.

그렇게 나눠진 고려의 중군(中軍) 무리는 문자 그대로 오합지졸(烏合之卒),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정확하게 두 개의 오(伍)를 이루고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활약하는 여진의 기병들 때문에 각개격파(各個擊破)로 도륙(屠戮)당했다.

그야말로 향 한 대 사를 정도의 시각에 일천에 이르던 고려 중군의 무리는 윤관 대장군을 둘러싼 친위대(親衛隊) 오십여 명을 제외하곤 뿔뿔이 흩어지거나 태반이 무력화되었다.

그들이 들어섰던 공지에 깔린 눈밭은 이미 피바다로 덮여서 벌겋게 진창을 이루고,

고려군의 시체가 뒤덮여 김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어이없는 실책. 그리고 어이없는 죽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친위대 위사 한 명이 허공을 향해 명적(鳴鏑 : 화살촉에 구멍이 뚫린 소리 나는 화살, 신호용으로 쓰임)을 쏘아 올리자마자, 여진 장수의 칼에 의해 목이 날아갔다.

윤관의 눈에 핏발이 섰다.

“ 내가 정녕 오늘 오랑캐 놈들에게 수모를 당하며 죽는단 말인가! ”

윤관의 옆을 지키며 어깨에 화살이 박힌 채 방패를 휘두르던 오연총은 대장군의 탄식에 등골이 서늘하다.


멀찌감치 후위로 따라서 오던 무리는 그 명적의 소리를 듣지 않아도,

이미 어느 정도 전위( 前衛 군에서 전술 행진을 할 때 앞에 따로 무리를 지어 전방을 살피는 무리)를 통해 상황이 전해진 상태였다.

문제는, 그들과 중군 사이의 거리도 문제지만 지형에 가장 큰 약점이 있었다.

중군이 진입한 곳은 숲의 중앙 부분 호로병처럼 생긴 공지.

그리고 그곳을 진입하려면 병 주둥이처럼 좁은 병목 부분을 통과해야 했는데,

이미 그곳을 여진 군이 장악하고 매복한 상태임을 아는바,

무작정 진입을 시도하다간 들어서는 족족 몰살이 자명한 곤란한 전황(戰況) 이었다.

후위를 맡은 이관진 장군의 얼굴이 창백해 졌다.

대장군을 구해야 하는 건 자명 한 일.

그러나 후위의 병력이 있다 해도 호로병 같은 적지(敵地)로 들어갈 길목의 폭은 좁다.

어떻게 진입을 시도해도 여진의 매복 병에게 당할 것은 너무 뻔한 상황.

결국, 사지를 뚫어야 하는 상황에서,

병력의 우세를 가지고도 돌격대(突擊隊)를 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

그러나 누굴 보내야 하나?

이미 적들이 승기를 잡은 데다 지형마저 유리한 곳으로 고려군을 끌어들인 터라,

오늘의 운수가 사납기 그지없다.

누가 나서서 돌격하더라도 비좁은 통로, 그 통로 좌우에 깔린 적들.

설사 공지로 나선다 해도 이미 사방 천지가 온통 적이다..

아군의 전체적인 숫자는 적보다 월등하다 해도 길게 계곡에 늘어서 있는 이상,

힘을 집중할 수 없으니 적들이 자신들이 힘이 다할 때까지 호로병 입구에서 고려군을 치고,

배를 불린 이후에는 뒤로 빠질 것이다.

아마도 그사이에 대장군과 호위대는 이미 몰살할 것이 뻔했다.

이 장군의 시선이 무심코 준경을 향했고, 준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장군!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

“ 음, 음! 척 낭장. 이번은 지난번 산성과는 비교되 되지 않을걸세.

어쩌면 대장군은 이미···.”

“ 아닙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대장군이 적도들에 욕을 보시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그때 준경의 뒤편에서 그의 친아우인 낭장(郞將) 척준신(拓俊臣)이 이를 말리며 말하기를, “적진이 견고하여 깨뜨릴 수 없으니, 헛되이 죽음은 무익합니다!" 하였다.

척준경이 말하기를,

“너는 돌아가 늙으신 아버지를 봉양하라.

나는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도리상 가만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준경이 말을 마치곤,

말 머리를 돌려 항마군(降魔軍) 소속의 승병 오십 기를 간추렸다.

승병들은 말없이 말머리를 모아 전투종대(戰鬪縱隊)를 만들었다.

준경의 곁으로 설중매가 탄 전마가 투레질을 하며 다가왔다.

“ 장군. 저도 돌격대에 참가 하겠습니다.”

준경의 범 같은 시선이 사매의 얼굴로 향했다.

죽음을 각오한 돌격대의 무리로부터 광기와 같은 투기(鬪氣)들이 뻗쳐 나오고,

음산한 기운들이 무리를 둘러싼 가운데 이름 그대로 눈 덮인 매화 같은 사매의 파리한 얼굴.

붉디붉은 입술은 암팡지게 꾹 다물려 있고,

가뜩이나 매섭게 꼬리가 올라간 것이 마치 도사린 흑표범처럼 표독하다.

그 순간 엉뚱하게도 준경은,

문득 사매가 인제 보니 무척 아리땁고 요염하다고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절박한 전장의 입구에서 이 무슨 망발인가.

자신의 당황한 심경을 떨치기라도 할 듯, 준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발이 멈춘 들판에 이 열 종대로 기마의 무리가 늘어섰다.

준경은 돌격대의 좌우에 방패를 두르도록 지시하고, 장창을 놓고 모두 칼을 들도록 지시했다.

앞의 절반은 칼을, 뒤의 절반은 쇠 도리깨를 장비하도록 이르고,

뒤로 돌아서서 이관진 장군에게 출진 보고를 한 후 앞장서 말에 박차를 가했다.

지축을 울리는 소리를 길게 남기며 준경의 무리는 앞에 놓인 적의 함정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범 아가리를 향하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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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광검출도 (狂劍出刀) 20.04.14 269 2 9쪽
34 광검출도 (狂劍出刀) 20.04.10 296 2 8쪽
33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8 274 2 6쪽
32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7 273 3 8쪽
31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6 307 2 14쪽
30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2 343 3 9쪽
29 옥오지애(屋烏之愛) 20.03.31 363 3 9쪽
28 옥오지애(屋烏之愛) 20.03.30 356 3 8쪽
27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7 355 4 9쪽
26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6 355 3 8쪽
»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5 366 3 7쪽
24 전화위복 轉禍爲福 20.03.23 407 6 9쪽
23 전화위복 轉禍爲福 20.03.20 414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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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춘설난분분 春雪亂紛紛 20.03.18 434 7 8쪽
20 춘설난분분 春雪亂紛紛 20.03.16 468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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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오비이락 烏飛梨落 20.03.12 478 6 8쪽
17 오비이락 烏飛梨落 20.03.11 527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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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5 614 7 9쪽
13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4 658 9 9쪽
12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3 709 9 8쪽
11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2 764 9 9쪽
10 적반하장 賊反荷杖 20.02.29 766 9 8쪽
9 오합지졸 烏合之卒 20.02.27 862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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