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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광검사 狂劍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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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5:35
최근연재일 :
2020.04.16 16:33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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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37
추천수 :
249
글자수 :
140,352

작성
20.04.0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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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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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백척간두 百尺竿頭

DUMMY

준경의 몸에는 점점 칼집이 늘어났다.

그것은 청랑대가 일부러 준경을 약 올리며 고양이가 쥐 놀리듯 하는 양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준경의 무기는 짧게 만들었어도 언월도. 중병(重兵) 이다.

한번 부딪쳐도 뼈를 가르고 살을 쪼개는 무기다.

반면에 청랑대가 쓰는 무기는 전문 살수들답게 얇고 가볍고 짧은 곡도(曲刀).

날렵하고 영활 하긴 하지만 중량감은 부족하다.

만약 언월도와 곡도가 부딪치면 칼이 부서질 확률이 높다.

그 때문에 청랑대 무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준경의 빈틈을 통해서만 공격을 가하다 보니,

그들도 원치 않는 지구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법.

준경도 몸에 늘어나는 칼집들에 점점 고통이 늘어간다.

아무리 갑옷을 겹쳐 입어도 한계가 있고, 상처가 얕다는 점 말곤 지나치게 상처가 많다.

준경은 점점 시야가 흐릿해져 가며 이대로 그냥 누워 버릴까 싶도록 몸이 천근만근.

거의 내려가는 눈꺼풀에 하얀 표범이 청랑대 무리를 뒤로부터 덮쳐드는 모습이 보인다.

준경은 그 와중에도 ‘ 이 산중에도 설표(雪豹)가 있었나.······.저리 하얀 표범이 있다니······.’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상처 입은 호랑이가 주저앉자 득달같이 청랑의 무리가 준경의 목을 향해 칼을 내리긋는다.


준경은 눈을 떴다.

분명 눈을 떴다고 생각했건만 눈앞이 깜깜하다.

‘이제 내가 죽어 지옥에 온 것인가?’ 그답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준경은 혀를 굴렸다.

입술이 겨울나무 껍질처럼 마르고 딱딱해서 잘 벌려지질 않는다.

그제야 준경은 자신이 죽은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혼절한 경우 한, 오래전 사형 혜승에게 한 대 얻어맞은 대련 이후론 처음.

자기도 모르게 ‘끙’ 하고 신음이 나간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 보드랍고 따뜻한 것이 준경의 갈라 터진 입술에 닿았다.

이어서 차가운 물이 준경의 입으로 들어온다.

준경은 무슨 상황 인지도 모른 채 입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달게 삼켰다.

잠시 보드라운 기운이 사라졌다가 다시 입에 붙는다.

그리곤 또 이어지는 차가운 물.

몇 번의 접문(接吻)이 끝나고야 준경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찬물로 의식이 완전히 돌아왔는지 어둠 속에서도 서서히 형체가 보인다.

그곳은 비좁은 굴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엄청난 누린내가 진동한다. 아마도 짐승의 둥지였을 터.

그리고 준경의 눈앞에는 하얀색 전복(戰服)을 입은 그녀, 설중매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준경은 그 와중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그녀의 손이 순식간에 준경의 코를 쥐어 비튼다.

그 손이 얼마나 맵던지 준경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정신을 차린 준경에게 설중매가 간단히 들려준 자초지종은 이랬다.

준경이 모두에게 ‘ 절대 따르지 말라 ’ 고 전언을 하고 성벽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가자,

설중매는 전복을 갈아입고 멀찍이 떨어져서 바로 뒤를 따랐다.

몸이 날래고 경공이 준경보다 높은 그녀에게 추종술(追從術)은 문제도 아니기에.

실제로 준경이 맞닥뜨린 청랑대의 숫자보다 준경을 추적하던 청랑대의 숫자는 훨씬 많았다.

이미 여진의 무리 들 사이에도 고려군의 호랑이 로 알려진 준경에 대한 용모파기(容貌疤記)는 널리 알려져 있었고, 야간이었지만 여진의 추장은 성을 빠져나온 것이 척준경임을 직감했다.

다른 일반 무인들이라야 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절대 고려접경으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을 장담하던 추장이었다.

날씨도 그렇지만 9개 성을 제외한 나머지는 여진의 땅.

고려군 무사 정도가 극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척준경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이미 숱한 무용담을 통하여 여진군 사이에 공포로 자리 잡은 그였다.

그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추장은 반드시 그를 격살해야 했다.

그 때문에 휘하에 있는 청랑대 전원, 백 명을 모조리 준경의 척살 임무에 동원했다.

준경은 쓰러졌을 때의 흐릿하던 기억들이 설중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또렷하게 떠올랐다.


청랑대의 무리는 지쳐 쓰러지는 준경의 목에 칼날을 내리쳤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지구전으로 늘어나는 칼질에 힘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러나 청랑대의 뒤로 갑자기 쌓인 눈발이 솟구쳐 올랐다.

정신이 혼미해져 가던 준경에게는 그것이 설표 雪豹 한 마리가 청랑대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다.

온몸을 하얀색 눈표범의 가죽으로 둘러싼 여인.

설중매였다.

눈 속에 엎드려 있다가 갑자기 솟구치며 칼을 휘두르는 그녀에게 순식간에 청랑대 셋의 목이 날아갔다.

“ 매복이다!”

소리치며 준경을 포위해 가던 청랑대 서너 명이 훌쩍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앞서 세 명의 목을 동시에 참수한 설중매가 다시 허공으로 공중제비를 돌며 그들에게 쇄도했다.

청랑대 대원들은 곡도를 휘두르며 그녀를 맞았다.

그들로서는 당연히 그녀가 앞서 공격해오던 대로 칼로 공격하리라 예측한 것.

하지만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내려서는 그녀의 양손에서 달빛에 번뜩이는 기다란 빛이 채찍처럼 떨어져 내렸다.

‘차차창!’

설중매의 공격을 받아친 네 명 중 두 명은 곡도가 산산조각이 나고,

나머지 두 명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머리가 깨어져 나뒹군다..

곡도를 놓친 두 명이 손목을 부여잡은 채 설중매를 노려보았다.

가뿐한 몸짓으로 눈 위에 내려선 설중매의 양손에서 달빛을 흩뿌리며 은색 빛줄기가 빙빙 돌아간다.

“ 유성추? ”

주먹만 한 철퇴가 사슬에 매달려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좋은 병기를 맞춰 꺼내든 셈이다.

칼로 유성추를 맞춰봐야 부러질 것이고,

날아드는 사슬을 칼로 맞추면 빙글 돌아가며 원심력에 의해 몸뚱이에 맞을 판이니 청랑대의 늑대들에게는 아주 귀찮은 병기의 형태.

준경을 둘러싸고 있던 인원들이 거의 쓰러지자 후발대로 포위망을 좁히던 몇몇이 나타났지만,

서슬 파란 설중매가 그들의 전의를 압도한다.

“ 자, 다음은 어느 놈의 머리통이···.”

그녀가 매섭게 말을 시작함과 동시에 여러 발의 석궁이 그녀에게 쏘아졌다.

‘파파팍“

그녀가 회전하고 있는 유성추로 방패막이를 형성하자 근거리에서 날아들던 쇠뇌들이 부러져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 틈을 뚫은 쇠뇌 두 발이 그녀의 허벅지에 꽂혔다.

”음···.“

크게 신음도 못 하는 그녀에게 나머지 청랑대의 늑대들이 덮쳐들었다.

그녀는 양팔에 돌리던 유성추를 뛰어오른 적을 향해 던지고,

허리춤에 꽂아 두었던 비단검 두 자루를 펼쳐 맞서 나갔다.


준경이 맞닥뜨린 청랑대는 불과 삼십여 명.

각개 흩어져 준경을 추종하던 무리는 삼십여 명으로 이뤄진 세 개의 무리였다.

그들 중 두 개의 무리는 뒤를 따르던 설중매에 의해 준경을 좇는 과정에서 모조리 눈벌판의 고혼(孤魂)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설중매 역시 지체될 수밖에 없었고,

미친 듯 흔적을 쫓아오니 준경은 거의 목이 달아날 지경이었던 것.

설중매는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물리쳤다.

이로써 준경을 따르던 청랑대 일백 명은 동북의 벌판 여기저기에 한 줌 흙이 될 것이었다.

암살대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시간은 짧아도 오 년.

앞으로 당분간 여진세력에서 청랑대를 마주칠 일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목적지인 정주성까지는 아직 절반 정도의 거리가 남긴 했지만,

추종의 무리가 다 소탕된 상황에서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그냥 달리고 달리면 되는 것.

비록 적지라곤 하나, 현재 포위에 동원된 군사 외엔 거의 무주공산(無主空山)인 적지이니,

거칠 게 별로 없다.


우여곡절을 담담히 읽어내듯 말을 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흘렀다.

말을 마친 설중매가 갑자기 준경의 바지춤을 들추더니 차가운 손으로 양물을 불쑥 움켜쥔다..

준경은 차가움과 동시에 그 와중에 솟구치는 뜨거움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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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7 275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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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5 367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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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3 710 9 8쪽
11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2 766 9 9쪽
10 적반하장 賊反荷杖 20.02.29 766 9 8쪽
9 오합지졸 烏合之卒 20.02.27 862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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