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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광검사 狂劍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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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5:35
최근연재일 :
2020.04.16 16:33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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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02
추천수 :
249
글자수 :
140,352

작성
20.03.3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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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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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옥오지애(屋烏之愛)

DUMMY

윤관의 일행은 무사히 영주 성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희생된 고려군의 병사들을 생각하면 무사히라고 할 순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결정하고 지시한 것은 결국 대장군의 몫일 터.

‘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란 말은 이럴 때 참 좋은 변명이 되곤 한다.

대장군을 무사히 구출하여 돌아왔음을 기뻐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과정에서 중군의 대다수가 궤멸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새로운 부대 재편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군세를 몰아 여진부락으로 공격을 할 목적이었으나,

대장군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마당에 중군의 태반이 없어진 상황에서,

당장 진격을 하기에는 상황이 닿지 않았기도 했지만,

여진 군의 일사불란한 진퇴를 목격한 고려군 전체의 사기 저하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영주 성에 들어와 윤관은 돌격대를 비롯한 지원군 모두를 앞에 두고 일장 연설을 했다.

“ 나의 지휘력이 불민하여 고귀한 목숨을 잃은 병사들에게 사죄하노라.

내 비록 대장군이라는 중한 직을 맡아 그대들의 생사를 가름하는 일을 결정하고 있지만,

나 역시 아직 전장에서 벌어질 일에 대해 전부를 살피는 일이 부족하여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고 그대들이 던지는 돌멩이를 맞아 죽어도 변명은 없음이다.

하나, 나라로부터 받은 소임이 있어 아직은 오랑캐들과의 전쟁을 이끌어야 하는 몸이니,

훗날 나를 저승에서 만난다면 그때는 그대들이 전부 내게 돌을 던져도 기꺼이 맞으리라.

비록 저 오랑캐들의 용맹이 하늘을 찌른다곤 하나,

오늘 나를 사지에서 구해낸 고려의 병사들 또한 그들보다 더욱더 용맹을 보여주었으니,

모두 함께 오랑캐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자!”

윤관의 피맺힌 부르짖음에 모든 병사가 일제히 소리를 질러 화답했다.

문신 출신인 윤관다운 독려였다.


준경은 대장군으로부터 중랑장 中郞將이라는 직급을 받고 숙소로 돌아왔다.

전장이라는 곳은 원래 그렇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산 자는 산 자들끼리의 논공행상(論功行賞)이 반드시 필요했다.

죽은 자는 빨리 잊고, 산 자는 빨리 살길을 찾아야 한다.

그건 이겼건 졌건 필요악 같은 것에 이어서,

그 과정을 통해 죽은 자를 잊고 산 자를 치하하여 다음 전투에서의 전투 의욕을 북돋우는 효과가 있었다.

그 때문에 사지에서 대장군을 구한 준경에게 준 벼슬치곤 좀 약하다 싶었지만,

그 또한 기존의 귀족무장 들에 대한 예의 차원이라 할 수 있었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선 준경은 멈칫했다.

늘 지니고 다니는 언월도를 문 옆 병가대( 兵架垈 )에 걸치고 뒤로 돌아선 순간 뭔가 스산한 느낌이 뒷덜미를 스친다.

준경은 본능적으로 주먹을 움켜쥐곤 그리 넓지 않은 방 내부를 범의 눈으로 훑었다.

아무도 없다. 그러기에는 별로 넓지 않기도 하고.

달랑 딱딱한 침상 하나, 그리고 불을 피워 둔 질화로.

침상 위에는 거적이라고 불려도 좋을 낡은 이불 한 채.

분명 무엇인가 살기 비슷한 것을 느꼈는데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준경 자신,

스스로 기감(氣疳)을 믿고 살아서 지금껏 살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뭘까. 무언가 자신 외에 느껴지는 이 불편한 시선은.

준경은 무심코 흘깃 고개를 쳐들어 대들보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들보에 납작 엎드려 있던 검은 형체가 준경을 향해 날랜 고양이처럼 덤벼온다.


준경은 반사적으로 닥쳐오는 형체를 향해 주먹을 찌르다 순간적으로 멈췄다.

그 촌음(寸陰)의 순간에도 그 형체가 낯설지 않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형체는 준경을 향해 덮쳐들던 그 기세 그대로 박쥐처럼 팔을 펼쳐 준경의 쳐든 팔 사이로,

준경의 가슴을 끌어안으며 두 다리로 허리를 불끈 옥죈다.

“ 이······.이게 무슨 짓이냐?”

당황한 준경이 어울리지 않게 말을 더듬는다.

이 추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거의 반라에 가까운 매무새의 여인이 그의 가슴에 착 달라붙어 있다.

흑단 같은 그녀의 머리는 굳게 틀어 올려져 있고, 얼핏 백옥처럼 하얀 목덜미와 매끄러운 어깨가 보인다.

그 하얀 나신에는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긁은 지렁이 같은 흉터가 그득하다.

그녀, 설중매가 고개를 쳐들고 준경의 눈을 쏘아 본다.

가뜩이나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더 사납게 올라붙어 흡사 가죽을 벗은 암표범 같다.

“ 하! 뭐긴. 여자가 남자 방에 들어와 옷 벗고 있으면 뻔한 거지.

뭘 그리 순진한 채 하는 게요?”

“ 설 교위! 아니 사매! 전장에서 이게 무슨 짓이냔 말이다. 게다가 네가 왜 내게?”


준경의 두서없는 말에 설중매는 꽉 껴안았던 팔과 다리를 풀며 바닥에 내려섰다.

그녀는 간신히 하초(下焦)를 가릴만한 속곳 한 장뿐, 완벽한 나신이다.

전혀 부끄러움도 없이 도도하게 서 있는 그녀의 가슴이 준경을 겨냥이라도 하듯 꼿꼿하다.

“ 이보시오. 사형. 무슨 설명이 그리 필요하오?

오늘 사형과 나는 생사의 고비를 넘겼소.

부초(浮草)같은 우리 일생, 당장 내일 죽어도 모를 일 아뇨?

날도 춥고, 생사의 고비도 넘긴 남녀가 까짓 온기 나누며 잠 한번 잔다고 대수겠소? “

“ 뭐라고! 아니 이런 계······.”

준경의 어눌한 꾸중은 더는 계속되지 못했다.

설중매가 재빠르게 그의 두툼한 입술을 그녀의 입술로 덮으며 다시 준경의 상체에 달라붙었기 때문에 이다.

거친 그녀의 혀는 맹수처럼 능란했고, 준경은 자신이 누구이고 그녀가 누구인지를 순간 잊었다.

종일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다시 맹렬한 전투가 이어질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좁고 딱딱한 침상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두 남녀는 산중 맹수들처럼, 바닥과 벽과 들보를 오가며 미친 듯 서로를 탐닉했다.


전선의 밤은 길고 깊었다.

그날 영주 성에서 숙번(宿番)을 서던 병졸들은 어디서 호랑이 포효를 들었다고도 하고,

표범의 앙칼진 울부짖음이 들렸다고도 했다.



이상곡(履霜曲) - 작가 미상 고려가요


비오다가 개야 아 눈하 디신 나래

서린 석석사리 조븐 곱도신 길헤

다롱디우셔 마득사리 마득너즈세 너우지

잠 따간 내 니믈 너겨

깃단 열명 길헤 자라오리잇가.

죵죵 벽력(霹靂) 아 생함타무간

고대셔 싀여딜 내 모미

죵죵 벽력(霹靂) 아 생함타무간

고대셔 싀여딜 내 모미

내 님 두삽고 년뫼랄 거로리

이러쳐 뎌러쳐

이러쳐 뎌러쳐 기약이잇가

아소 님하, 한대 녀젓 긔약이이다

<악장가사>


현대어 역


비 오다가 개어 눈이 내린 날에

서린 나무 숲 좁은 굽어도는 길에

다롱디우셔 마득사리 마득너즈세 너우지

잠을 앗아간 내 님을 그리워하여

그렇게 무서운 길에 자러 오겠습니까?

때때로 벽락이 쳐서 무간지옥에 떨어져

바로 죽어갈 내 몸이

때때로 벽락이 쳐서 무간지옥에 떨어져

바로 죽어갈 내 몸이

내 임을 두옵고 다른 임과 걷겠습니까?

이렇게 저렇게

이렇게 저렇게 기약이 있겠습니까?

아소 임이시여, (임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기약(뿐)입니다


● 윤관(尹瓘, 1040년 7월 12일 (음력 6월 1일) ~ 1111년 6월 15일 (음력 5월 8일[1]))은 고려 중기의 문신·군인이다. 숙종, 예종 때 여진족 토벌에 출정하였다. 본관은 파평, 자는 동현(同玄)[2],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처음 시호는 문경(文敬)이었으나 뒤에 문숙(文肅)으로 개시되었다. 파평 윤씨의 시조 삼한공신(三韓功臣) '윤신달'(尹莘達)의 4대손으로, 아버지 윤집형(尹執衡)은 검교소부소감(檢校少府少監)을 지냈다. 어머니는 경주 김씨이다.[3] 여진족을 몰아내고 북진 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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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광검출도 (狂劍出刀) 20.04.10 296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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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7 273 3 8쪽
31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6 307 2 14쪽
30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2 343 3 9쪽
29 옥오지애(屋烏之愛) 20.03.31 363 3 9쪽
» 옥오지애(屋烏之愛) 20.03.30 357 3 8쪽
27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7 355 4 9쪽
26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6 355 3 8쪽
25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5 366 3 7쪽
24 전화위복 轉禍爲福 20.03.23 407 6 9쪽
23 전화위복 轉禍爲福 20.03.20 414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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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춘설난분분 春雪亂紛紛 20.03.18 434 7 8쪽
20 춘설난분분 春雪亂紛紛 20.03.16 468 7 9쪽
19 천방지축 天方地軸 20.03.13 498 6 8쪽
18 오비이락 烏飛梨落 20.03.12 478 6 8쪽
17 오비이락 烏飛梨落 20.03.11 527 6 10쪽
16 전신강림 戰神降臨 20.03.10 538 6 10쪽
15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6 579 6 9쪽
14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5 614 7 9쪽
13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4 658 9 9쪽
12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3 709 9 8쪽
11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2 764 9 9쪽
10 적반하장 賊反荷杖 20.02.29 766 9 8쪽
9 오합지졸 烏合之卒 20.02.27 862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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