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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광검사 狂劍士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5:35
최근연재일 :
2020.04.16 16:33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4,508
추천수 :
249
글자수 :
140,352

작성
20.03.13 18:49
조회
498
추천
6
글자
8쪽

천방지축 天方地軸

DUMMY

오래 볼 것도 없었다.

여진의 여인은 창대를 앞세워 둥그렇게 포위진을 짜려고 하던 병졸들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미 머리 위로 날아올랐고,

연달아 두발당성(이단차기)을 함으로서 창졸(倉卒)간에 병사 두 명의 머리를 걷어찼다.

두 병사는 투구를 쓰고 있었음에도 비명도 못 지른 상태로 나뒹굴고,

여인은 날랜 제비처럼 바닥에 내려서기 무섭게 다른 두 명의 병사들을 향해 날치기와 후려차기를 날린다.

순식간에 네 명의 병사가 끽소리 못 내고 나뒹구는데,

처음 요인을 욕보이려던 놈은 아직도 어설피 걸쳐진 바짓자락을 움켜쥔 채 당황한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준경의 눈치를 본다.

그러던 병사가 고함을 지르며 여인을 향해 곁차기를 벼락같이 내지르는 순간,

여인의 어깨가 푹 주저앉으며 낚시걸이로 한쪽 발이 허공에 뜬 병사의 남은 다리를 걸었다.

‘꽝!’

창졸간에 바닥에 머리를 찧은 병사는 기절해 버렸다.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로 병졸들을 정리하고 난 그녀는 바닥에 내려서기 무섭게 다시 굼실거리며 준경을 노려보았다.

여차하면 발질이 날아올 기세.

팔짱을 끼고 하는 양을 지켜보던 준경은 한숨을 쉬며,

낑낑대고 있는 병졸들을 발로 툭툭 걷어찼다.

여인은 독살스러운 눈빛으로 준경을 노려보다 사전 준비 동작도 없이 몸을 붕, 띄웠다.

매섭게 내리 꽂히는 꼭두질 ( 뛰어 뒤 후려 찍기 ).


여진의 여인이 제아무리 용맹하다 해도 중과부적의 상태에서 탈출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애초, 무술 실력이 여인보다 처지는 병사들이 그 여자 병사를 잡을 수 있던 것도,

승병 돌격대의 성공으로 성내에 진입한 고려군이 성내 골목을 누비며 잔류적병을 찾아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다수의 고려군에 내몰려 도리깨를 맞은 상태로 쓰러진 여자 병사를 우연히 붙든 것이 그 원인이었다.

만약 원래의 병사 다섯과 맞붙었어도 여진의 여병사가 잡힐 일은 없었을 터.

하지만 그녀도 이미 성곽에서 준경이 떨친 지옥도를 이미 목격했던지라 준경에게서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작정 준경에게 돌진한 것은,

죽을 때 죽더라도 적군에게 녹녹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아마 남은 고려군의 장수가 준경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여진의 병사가 이 자리를 피할 수 있었을지는 모른다.

만에 하나 그 자리를 피하게 된다 해도 이미 온통 고려군이 점령해 버린 성 어디로 도망칠 수 있을까.

하지만 여인은 아주 어린 시절 인형 대신 말을 다루고,

장난감 대신 활을 쏘며 사냥을 하던 시절 때부터 사내들에게 진 적도 없었고, 포기하거나 체념한 적도 없었다.

그녀의 매서운 들어 찧기가 준경의 커다란 머리통을 향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준경의 손아귀에 발목이 잡힌 상태로,

볼썽사납게 허공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의 산토끼 모양새가 되었다.

그녀는 준경의 머리통을 내려찍으려 힘껏 솟았지만 가늠한 것 보다 준경의 키가 컸다.

게다가 준경이 누군가.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들판에서 말을 타고 사냥을 해왔다면,

준경은 어린 시절부터 저잣거리에서 왈패들과 드잡이를 하며 자란 몸.

적어도 사람과의 다툼은 준경이 훨씬 윗길인 것이다.

사실 사람을 한 손만으로 허공에 들어 올린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용력(勇力).

게다가 그 대상이 버둥거리고 있는 상태라는 건 두 배로 힘이 드는 일이었지만,

준경은 아주 가볍게 그녀를 든 채 이리저리 움직이며 쓰러져 있는 병졸들을 발로 걷어차 깨웠다.

졸지에 거꾸로 매달린 그녀는 수치심과 자세 때문에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고래고래 욕지거릴 내뱉고 있고.

그러다가 그녀는 매달린 자세에서 번쩍 허리를 접었다.

반동을 이용하긴 했지만 놀라운 유연성.

발끝이 자신의 턱에 닿는 광대 같은 재주로 상체를 벌떡 일으켜 그녀가 노린 것은 순간적인 박치기였다.

‘ 빡 ’

엄동설한에 수박 깨지는 소리가 나자 병졸들은 주춤대며 일어나다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반동을 이용하여 여진 여자는 거세게 박치기를 했고, 준경은 그냥 서 있던 자세 그대로

여자의 박치기를 받았다.

병졸들은 곧 준경이 넘어갈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여인의 상체는 처음과 같은 상태로 툭 떨어졌다.

뭔지 모를 욕지거리를 웅얼거리면서.

거꾸로 그녀가 실신해 버린 것이다.


준경은 기절해 버린 여인을 포로 감옥으로 넘기고,

사고를 친 병졸들의 상관에게 그들을 징치(懲治: 죄를 다스림)하도록 지시하곤 돌아섰다.

장수들의 군막에 돌아가기도 싫고, 눈은 자꾸 쌓여가고,

아까의 곳간이라도 돌아가서 잘까 망설이던 준경의 눈앞에 갑자기 병졸 셋이 나타났다.

왕년에 준경과 왈패 짓을 하던 무리 들.

공적으론 아니지만, 밖에서 만나면 예전처럼 ‘형님, 아우’ 하는 사이들이 어느 틈에 나타났다.

“ 아따 형님! 아 무신(武神)께서 승리연(勝利宴)에도 참석 않구 노상에서 뭘 하시는 게요?”

한 놈이 대거리를 건다.

“ 이놈아, 내 그 잘난 귀족 장수들 술 마시는 자리를 왜 간단 말이냐.

차라리 풍찬노숙(風餐露宿 이슬을 먹고 한데 잠을 잠)이 났겠다.”

“ 형님. 그러시면 여기 성 뒤편에 알아봐 둔 주막이 있는데, 한번 가시려우?

오랜만에 약주도 하시고 회포도 풀고······.”

준경은 포로 학대를 싫어할 뿐, 여성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 엄동설한 최전방 석성에 술집이? 여자가? 좀 믿기지 않았다.

“ 이 산꼭대기에 그런 게 있단 말이냐?”

“ 에이, 어디든 남정네들이 득시글하면 또 돈벌이에 나서는 놈들도 있잖습니까.

오히려 전방에서 장사하면 벌이가 나은가 봅디다.

어차피 오늘 갈지 내일 가는지 모를 신세 들 아닙니까. 우리 같은 병졸 들이야······.

그러니 이럴 때 그런 애처로운 인생들끼리 돈도 좀 벌어주기로서야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습니까 만.“

준경을 뒤에 두고 척하니 앞길을 잡는 왈패 들이었다.

” 이놈아 그렇다고 아직 전장 정리 중인 성내에서 주막을 찾는다는 말이냐?

그건 군기 위반인데···.“

짐짓 상관으로서의 체통을 챙기는 준경의 모습이 의외였던지 왈패들이 픽, 하고 웃었다.

” 아이고. 부장님. 그렇지만 이미 대장군과 휘하 장수들은 일찌감치 회식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째 부장님은 그냥 주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

은근히 준경을 곯리려 드는 왕년의 졸자들을 향해 준경이 눈을 부라리자 이크 하고 놀란 졸자 하나가 서둘러 길을 나선다.

준경도 오랜만에 술이 동했는지라 휘적휘적 그들을 따라나섰다.

때는 십이월 보름이라 휘영청 밝은 달이 눈 쌓인 산야에 길잡이 불 없이도 밝은 밤.

북녘의 삭풍은 그네들 신세처럼 호곡성(號哭聲) 요란한 밤이었다.

먼 산에서는 피비린내를 맡은 늑대들이 길게 우짖고,

성내에서는 전장 정리를 끝마쳐가는 병사들이 고함치고 으쓱대는 소리,

전투의 와중에 가장을 잃은 아낙네들이 울부짖고 아이들이 우는 소리가 낭자했다.



* 고려 시대 초기 삼국 통일 과정에서 발생한 포로를 관리하기 위해 고려 정권은 남자 포로를 '노', 여자 포로를 '비'로 관리하였다. 이 '비' 중에서 가무와 예악에 뛰어난 여성들은 따로 골라내어 국가가 직접 관리하였다. 후백제의 후예로 고려에 반항적이었던 양수척 중에서도 예악이 뛰어난 여성들을 뽑아 '기'로 삼았다. 왕실 주요 행사인 팔관회와 연등회에는 항상 '여악'이 뒤따랐는데, 위의 여성들이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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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백척간두 百尺竿頭 20.04.02 343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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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만부부당 萬夫不當 20.03.26 355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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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전화위복 轉禍爲福 20.03.20 414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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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춘설난분분 春雪亂紛紛 20.03.18 434 7 8쪽
20 춘설난분분 春雪亂紛紛 20.03.16 468 7 9쪽
» 천방지축 天方地軸 20.03.13 499 6 8쪽
18 오비이락 烏飛梨落 20.03.12 478 6 8쪽
17 오비이락 烏飛梨落 20.03.11 527 6 10쪽
16 전신강림 戰神降臨 20.03.10 538 6 10쪽
15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6 579 6 9쪽
14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5 614 7 9쪽
13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4 658 9 9쪽
12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3 709 9 8쪽
11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2 765 9 9쪽
10 적반하장 賊反荷杖 20.02.29 766 9 8쪽
9 오합지졸 烏合之卒 20.02.27 862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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