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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광검사 狂劍士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5:35
최근연재일 :
2020.04.16 16:33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4,509
추천수 :
249
글자수 :
140,352

작성
20.03.06 16:16
조회
579
추천
6
글자
9쪽

무신출림 武神出林

DUMMY

아비규환.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합친 단어.

이런 전투상황을 표현하기에 그보다 적합한 단어는 없다.

그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아무 뜻도 목적도 없는 울부짖음과 부르짖음 일 뿐,

인간으로서의 ‘말’이라는 장점은 하나도 없다.

그냥 미친개들이 떼로 모여 물고 뜯는 상황과 다를 게 없다.

10장에 달하는 공성용 대나무 사다리를 절반도 오르기 전에 돌격대의 절반이 죽었다.

비처럼 거세게 흩날리는 눈발과 함께 소나기처럼 내리꽂히는 화살.

그렇게 화살 비가 몇 번 스치면 여지없이 외마디 비명이 사다리 아래로 사라진다.

귓전을 스치는 화살의 시위 소리가 송골매의 그것처럼 섬찟하다.

그 사이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육중한 돌멩이들은,

등패를 머리 위에 지다시피 하고 있어도 전신을 흔들 만큼 강력하다.

안 그래도 휘청 이는 사다리에서 한번 삐끗 하고 나면 여지없이 떨어졌다.

게다가 떨어지면 바로 화살 받이 상태였다.

화살에 맞아 땅에 떨어지자마자 뒤이어 떨어져 내리는 돌멩이들에 치어 머리며 갈비뼈며 남아나지 않는다.

그렇게 떨어진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짐승처럼 단말마를 지르고,

그 꼴을 보며 사다리에 매달린 다른 병사들도 공포와 절망과 분노에 휘말려 고함을 지른다.


선봉에서 등갑 방패를 휘저으며 최대한 자신의 아래로는 적의 공격이 미치지 않게 하려는 준경이,

그 난전 중에도 흘긋 이십 여장 떨어진 곳에서 공성전을 벌이고 있는 사제 공유의 무리를 보았다.

공유 역시 사다리의 선봉에서 등패를 휘두르며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뒤를 따르는 승병들을 화살과 떨어지는 돌멩이로부터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무공을 수련했어도 애초 준경처럼 타고난 체격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모호한 자세로 사다리에 매달려 커다란 등패를 휘두르는 공유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인다.

순간 준경은 보았다.

커다란 등패를 휘젓다 잠시 힘에 부쳐 멈칫하는 공유의 어깨와 팔과 가슴에 동시에 내리꽂히는 화살을.

어? 하는 듯한 사제의 표정이 이십 장 이 넘는 거리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공유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꼭 쥐고 있던 등패가 허무하게 떨어져 가는 것을 내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준경은 눈발과 화살이 정신없이 흩날리는 가운데에서도 똑똑히 보았다.

그 순간 공유의 머리에 떨어져 내린 커다란 돌멩이, 그리고 돌멩이가 두부 으깨듯 공유의 머리를 터뜨리는 장면도.

사제의 머리가 없어졌다고 느낀 순간 이미 공유는 오장 아래 성벽 밖으로 떨어져 내렸다.

뒤이어 성벽에서 기쁜 고함소리와 함께 다시 비 오듯 화살과 돌멩이가 떨어져 내려 공유의 밑에서 허덕이며 사다리를 오르던 승병 몇이 비명을 지르며 공유의 사체 위로 떨어져 내린다.


준경은 분노와 흥분으로 머리가 하얗게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바로 밑에서 사다리에 매달린 사형 혜승의 얼굴을 보았다.

사형의 얼굴도 하얗게 질렸고, 눈에서는 불길이 솟아오를 것 같았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공력을 끌어 올렸다.

이럴 때의 두 사람은 따로 말을 맞출 필요도 없이 통하는 것이다.

자신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눈발이 얼기설기 맺혀 매끄럽기 짝이 없는 돌벽을 벽호공( 壁虎功 벽을 타고 오르는 기공 )만으로 오르기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사제의 죽음을 목도한 두 사형은 거의 동시에 무모한 생각을 했고,

허공으로 몸을 박찼다.

등패를 성벽 위로 쳐올림과 동시에 준경과 혜승은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사다리의 좌우로 나뉘어 성벽 위까지 남은 삼 장여의 거리를 뛰어올랐다.

제아무리 수직에 가까운 성벽이라 하더라도 구조상 약간의 기울기가 있다.

그리고 야전에서 잘 다듬은 돌이라 하더라도 반들반들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준경과 혜승은 경공으로 몸을 가볍게 띄우고 마치 성벽을 발로 밟고 올라가듯 달음질쳤다.

거세게 내리는 눈발이 쌓인 돌벽은 매끄럽기 그지없다.

준경과 혜승은 벽호공 壁虎功 과 접인공 椄引功을 번갈아 펼치며 성벽을 밟듯이 뛴다..

성벽 위의 여진 군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있다가 사태를 깨달은 듯 뒤늦게 화살과 돌팔매를 시작했지만,

이미 준경과 혜승은 마치 성벽을 내달리듯 종횡으로 뛰어들고 있는 형상이라 적중시키기 어려웠다.

말은 길어도 그야말로 촌음의 시간.

두 마리 성난 호랑이는 적들이 어, 어 하는 사이 순식간에 성벽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곤 약속이라도 한 듯 혜승은 올라온 그 자리에,

준경은 이십 여장 떨어진 곳에 걸쳐진 또 하나의 사다리를 향해 날아갈 듯 뛰어갔다.


준경이 뛰어드는 앞으로 성벽에서 방어하던 여진 군들이 덮쳐들었다.

그들 또한 여기서 틈을 보이면 밀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쇠 도리깨를 든 병사와 낭아도를 든 장수 둘이 나란히 덮쳐들고 그 뒤로 창과 도끼를 든 자들이 우르르 몰려 달려온다.

척 보아도 공유가 오르려던 사다리를 막아서던 적병들의 숫자는 스물은 넘어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성벽의 위 통로.

병사 서넛 이상이 나란히 움직일 수 없고, 무기를 휘두른다면 둘 이상의 전면이 생길 여유가 없다.

준경은 멈추지도 않고 등에 차고 올라온 짧게 다듬어놓은 청룡 언월도를 꺼내 들었다.

햇빛도 없이 잿빛 하늘에서 눈발만 몰아치는데도 청룡도는 더 서늘한 냉기를 번뜩이며 내뿜는다.

처음 쇄도하던 쇠 도리깨가 단단한 오동나무 자루와 그것을 움켜쥔 병사와 함께 두 토막으로 나뉜다..

포물선을 긋던 청룡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옆에서 짓쳐 드는 낭아도를 든 여진 장수의 허리를 횡으로 그어 날렸다.

앞장섰던 둘이 순식간에 사람이 아닌 덩어리로 흩어지자 뒤를 이어 쫓아오던 여진의 병사들 얼굴이 경악으로 굳어간다.

그 이후로는 일도 필살.

피와 비명과 살점이 눈보라와 함께 나부낀다..


준경이 마치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성벽 위를 달려가는 모습을 힐긋 바라본 혜승에게 여진 군이 폭발 같은 일격을 가했다.

상대의 복장을 보고 승려라는 것을 알아챈 여진 병사들은 조금 만만하게 생각을 했던지,

거침없이 칼과 창으로 공격을 했다.

혜승은 어쩔 수 없는 불살 계를 버릴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내키지 않고 싫었으나,

그도 인간인 지라 자신의 사제 공유가 머리가 깨져 죽은 모습을 본 뒤라 인간적 노여움이 극에 달했다.

그래서인지 평소 혜승은 전투에 임해서도 상대방을 죽이기보다는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정도로 살법을 아껴왔었는데,

성벽에 올라서는 처음부터 냉혹한 검무를 펼쳤다.

본 모습이 보이지 않은 정도의 쾌검으로 칼이 번뜩일 때마다 앞에 닥쳐오는 적병들의 팔다리가 마구잡이로 끊겨 나간다.

지금 혜승의 모습은 불법 자가 아니라 사뭇 얼음 지옥 속의 아수라였다.


맨 앞 돌격대장의 등패가 사라져 허둥거리던 두 개의 사다리에 남은 대여섯 명의 승병 돌격대 들은.

갑자기 눈처럼 쏟아지던 화살 비가 멈추자 본능적으로 사다리가 걸쳐진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갑자기 성벽으로부터 떨어져 내리는 피와 살의 비를 뒤집어써야 했다.

마치 도살장이 열리기라도 한 듯,

성벽 위로부터 눈발에 섞여 피와 살점들이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사다리 옆으로 인간이었던 조각들이 마구 쏟아져 내린다.

승병들은 조금 전까지 죽을 둥 살 둥 했던 것도 잊고 소름이 끼쳤다.

성벽 위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여진 군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어두워져 가는 흐린 하늘에 비명만 낭자하였다.


멀찍이 성벽에서 떨어져 언제 다 죽고 끝나나,

이제 본대로 되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하며 궁리를 하던 이관진은 얼어붙었다.

그래, 저 준경이란 산적 놈의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전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과장된 무용담이라 생각했었다.

현실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황당무계했었으니까.

그리고 소문이란 늘, 지나치게 미화되고 과장되게 마련이었으니까.

그래서 놈이 돌격대를 자청하고 나설 때도, 결국 미련한 놈이 제 죽을 길을 스스로 찾는다고 생각을 했고, 하필 자신을 그 돌격대 대장이라 대장군이 지시했을 때는 화도 났다.

하지만 그것이 선봉에 서란 말은 아니었으니, 멀찍이서 그들이 전멸하는 걸 지켜보고 나서,

나중에 일부 시신이라도 수습하는 척하면 그만이라는 게 이관진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승병들이 고군분투하며 사다리의 반 이상을 올랐을 때 만 해도,

잘 버티네. 라는 생각이었었다.

그러다 두 미친 호랑이가 마치 벽을 뛰어오르듯 삼 장 높이를 차고 오르고,

이내 살벌하게 피가 튀어 오르면서 온갖 비명이 난무하는 지옥도가 펼쳐지는 걸 멀리서 목도 하곤,

이관진 자신도 부들부들 떨려 오는 건 단지 눈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그저 두 마리의 성난 짐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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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적반하장 賊反荷杖 20.02.29 766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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