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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광검사 狂劍士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5:35
최근연재일 :
2020.04.16 16:33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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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41
추천수 :
249
글자수 :
140,352

작성
20.03.0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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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무신출림 武神出林

DUMMY

준경은 점점 짙어지는 눈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신의 앞에 늘어선 무리를 바라보았다.


“ 알겠다. 장군 이관진(李冠珍)이 너희 돌격대를 인솔 할 것이다. 따르라.”라고 윤관 대장군이 지시했지만, 이관진 이란 자는 애초 선봉에 설 마음 같은 건 없었다.

어차피 중과부적. 고려군이 그냥 포위망만 지키고 있어도 지지 않을 전투였다.

그런데도 대장군이 서두르는 이유를 이관진도 모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압도적 군세로 이 석성에서 며칠간 소수의 적에게 붙들려 있다는 건,

정치적으론 치명적인 것이다.

알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그 선봉에서 소모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물론 애국심이 없거나 무인으로서의 긍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소규모 전투에서 돌격 선봉을 하다 개죽음당해 보았자 누가 알아주냐 말이다.

무릇 장수란 죽을 자리를 택해야 한다는 게 이관진의 가치관이었고, 이 자리는 아니었다.

대장군 윤관 또한 이관진이 이곳에서 목숨을 걸 자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명목뿐인 직책을 가진 하급장수에 불과한 준경에게 돌격대의 책임 자리를 돌릴 수도 없는 터라 그저 관례적인 절차로 이관진을 임명 했을 뿐,

그것으로 이관진이 책임을 지라는 뜻은 아니다.


준경은 “ 네게 일임하겠다. ‘ 란 말을 던지고 멀뚱멀뚱하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이관진 장군의 속내를 모르지 않았다.

이른바 관료적인 장수의 속성. 알고 있었다.

비록 대장군 지시로 돌격대장으로 임명은 받았지만,

돌격대를 자청했던 것이 준경이므로 네가 책임을 지고 목숨을 걸 든지 라는 표현이라 생각했다.

함께 종군해 말단 졸병을 하고 있던 왈패들 역시 준경에게 툴툴거리곤 했다.

굳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고역스러운 전투에 늘 선봉에 서다 보니 죽는 동료도 많고,

그런 곳에서 전과를 세워 보아야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목숨 건 보람도 없이,

그저 장기판의 졸처럼 소모되다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준경과 더불어 돌격대를 자청한 항마군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함께 수련할 때는 엄격한 사형이고 사제였지만,

함께 전장에 나섰을 때는 함께 죽어도 좋다는 끈끈한 동지애가 있었다.

그들에겐 전투로 인해 생기는 명예나 명분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조국에 위해를 가하는 오랑캐들로부터 백성을 지킨다는 대의.

그것이면 충분한 것이 항마군이었다.

게다가 조금 직책이 다르긴 해도 엄연히 준경은 군에서 상사의 위치였다.

돌격대로 나선 승병의 숫자는 이십여 명.

열 명의 무리는 사형 혜승이 이끌고, 남은 무리는 사제 공유가 이끌기로 했다.

준경 자신이 혜승과 함께 선두에 서서 일차 활로를 뚫고,

공유가 이끄는 무리는 일종의 예비대 같은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이다.


두 개의 공성용 사다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이상을 걸칠 만큼의 공격로가 없을 만큼, 석성의 전면은 비좁고 험했다.

구릉 지대라곤 하지만 성 주변에 늘어선 바위들과 나무들로 인해 공격을 집중할 수 있는 면적은 생각보다 좁았다.

일단 사다리를 걸치고 언덕을 올라 성벽에 걸쳐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질 것이 뻔했다.

사다리를 성벽에 걸치고 나면 성벽으로부터 화살과 돌덩이, 혹은 끓는 기름 같은 것이 쏟아질 것이 뻔했다.

하지만 정면돌파를 하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거의 팔 장에 가까운 성벽의 높이 (1장은 성인 남자 키에 해당한다)를 극복할 다른 공성 무기를 들어놓을 공간도 없었다.

게다가 눈발이 점점 거세게 쌓이고 있었다.

하룻밤을 지나고 나면 성벽이든 성 주변이든 온통 얼음판으로 변할 상황.

그리되면 성을 공략하는 고려군의 입장은 더더욱 난감해질 터였다.

돌격대의 복장은 가벼웠다.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질 터이지만 그렇다고 든든한 갑옷을 입고 공성 사다리를 오르긴 어려웠다.

대신 등나무로 짠 등갑옷을 입고, 한 손에는 커다란 등패( 등나무 방패 )를 들고 있었다.

그 등패가 적의 화살과 돌 세례를 막아낼 유일한 수단.

그 외의 것은 모두 제각각의 운과 기량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거창하게 준경이 연설을 하거나 독려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돌격대’라는 이름을 걸고 나섰을 그 시점부터 그들 중 반 이상이 죽을 것이란 말 않아도 알고 있던 사실.

모두가 죽음을 각오했고, 각오는 했지만, 덜덜 떨리는 손발은 자연스러운 현상.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너무나 확연한 상황.

그들은 화살과 불과 돌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가며 외줄기 사다리 하나에 의지하여 드높고 미끄러운 성벽을 올라야 했다.

천우신조로 성벽을 올라도 성벽 위에 포진한 여진의 무리와 일전을 치러야 했다.

오히려 올라간 이후라도 돌격대 처지에서는 중과부적으로 몰릴 상황이었다.

그러고도 거기서 살아남아도,

다시 성안으로 내려가 성벽 밑에 있는 적과 일전을 치러야 했고, 성문을 열어야 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적으로 가득한 성내에서 끊임없이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뜻.

돌려 생각해 보아도 성공 가능성은 무척 희박했다.

그래도 그 이상의 무리로 대적할 수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다수의 인원으로 성을 공략하려면 성 주변의 숲과 바위들을 다 치워가며 공성 무기가 도달할 수 있는 길까지 닦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노출된 상태로 공격을 끊임없이 받을 상황.

중간중간 성내에서 기마대가 기습한다면 꼼짝없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저 들로서는 잃을 게 별로 없었지만, 포위를 하고 있는 고려군을 무엇을 해도 잃을 판이다.


준경은 쌓여가는 눈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거칠고 사나운 준경이었지만, 이 순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승병들의 형형한 눈빛,

곧 대부분 죽어 사라져갈 그 들의 눈빛을 마주하자 가슴에 울컥 솟는 게 있었다.

하지만 크게 배운 것도 없고 용기만 무식하게 높은 준경에게서 뭔가 심금을 울리는 연설 같은 것을 기대하는 동료들도 없었다.

“ 사형, 사제들! 우리 오늘, 이 돌산에서 죽어 봅시다!

저승에서 만납시다! 가서 저 오랑캐들을 한 놈이라도 베어내고 함께 저승에서 봅시다!”

멋대가리 없는 출진의 일성을 듣고도 승병들은 ‘와아! 아미타불······.’ 이라 크게 호응을 했다.

그리곤 열 명씩 한쪽 어깨에는 등패를 걸고, 반대편 어깨에는 사다리를 걸고 일제히 언덕을 뛰어올랐다.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이관진 장군이 어슬렁거리며 무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멀어지는 돌격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관진이 혼잣말로 입을 열었다.

“ 뒈지지 못해 환장한 중놈들 같으니라고.”

이관진의 곁에 남아있는 부장이 이관진의 말에 입을 연다.

“ 장군님. 저게 가능성이 있을까요? 저 인원으로 저토록 비좁게 노출된 공격로로 정면돌파를 해봤자 설사 성벽에 오른다고 해도 다 몰살당할 것 같은데요. ”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장을 돌아보는 이관진의 얼굴이 추위 탓인지 기분 탓인지 퍼렇다.

“ 그걸 모르는 장수는 아마 이곳에 없을 게다.

대장군께서도 기대하며 저들에게 출진 허락을 내린 건 아닐 테지.

저들이 저 자리에서 몰살을 당하면 우군들이 적들에게 품은 증오심도 더 커진다는 효과도 있고, 저들도 고려군에게도 저런 미치광이 같은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 함부로 야습하거나 하는 일이 적어질 것을 참작하셨을 것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도 무모한 돌격작전을 하라고 허락하시겠나? ”

이관진의 말을 듣고서야 부장은 크게 깨달은 바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준경이 이끄는 돌격대가 아직 성벽에 다다르지도 않은 구릉 지대인데,

벌써 성벽으로부터 화살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돌격대는 한쪽 팔에 두른 등갑방패를 비스듬히 세운 상태로 눈이 쌓인 미끄러운 구릉을 오르기 시작했다.

구릉 지대를 돌파한 돌격대가 성벽 아래 공성 사다리를 놓을 장소로 집결하자,

이제 쉴 틈 없이 화살이 성 아래로 내리꽂히다시피 쏟아졌다.

죽음을 각오하고 돌격 선봉으로 나선 이들이지만,

머리에 삿갓처럼 올려놓은 등갑 방패에 꽂히는 화살들의 무게가 제법 매섭다.

‘ 쉬잇! ’

근거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화살은 긴 소리도 내지 않는다.

활이 당겨졌다 쏘아지는 반탄력과 중력이 맞물려 보통 포물선을 그리는 화살보다 더 빠르고 강하다.

‘ 팍!팍!팍! ’

우박이 쏟아져 내리듯 화살의 비가 쏟아진다.

준경은 이를 악물었다.

“ 돌겨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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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5 615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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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3 710 9 8쪽
11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2 766 9 9쪽
10 적반하장 賊反荷杖 20.02.29 767 9 8쪽
9 오합지졸 烏合之卒 20.02.27 863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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