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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광검사 狂劍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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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5:35
최근연재일 :
2020.04.16 16:33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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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40
추천수 :
249
글자수 :
140,352

작성
20.02.2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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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오합지졸 烏合之卒

DUMMY

제아무리 길거리 왈짜 패라곤 해도 어릴 때부터 불교에 대한 신심을 귀가 닳도록 들어온 작자 들인지라,

놈의 사정없는 발길질을 목도 하는 순간 ‘그놈 멋지게 차네. 라기보다는 ‘ 좀 심하다는 생각들이 먼저 머리들을 스쳐 갔다.

준경은 오히려 그 돌중이 여기서 뒈지면 어떻게 처리할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편으론 굳이 힘없는 노인을 굳이 저렇듯 과격하게 공격하는 졸자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한편 천지 분간 못하고 함부로 왈짜들에 시비를 거는 노승도 좀 마뜩잖았다.

그래도, 불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이다 보니 막돼먹은 준경조차도 괜히 마음이 뜨끔한 부분도 없지 않다.

누군가의 입에서 ‘저런!’ 이란 탄식이 들린 건 그와 같이 불교를 우선시하던 세상 풍토에 길든 탓이었다.


허공에 떠오른 왈짜 놈의 발이 돌중 머리를 부수었다고 본 그 순간 패거리들은 엉뚱하게 돌중으로부터 서너 걸음 뒤 계곡물이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첨벙” “ 아이코” 물이 튀는 소리와 외마디 비명이 패거리들에게 동시에 들렸고,

일당들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돌중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방금 중머리에 발길을 꽂던 왈짜 놈이 계곡물에 빠졌다는 것과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는 꼴을 보았다.

패거리들이 보기에는 멋지게 뛰어올라 노승의 머리를 마치 공을 차듯 하던 그들의 동료가,

뜬금없는 허물어진 자세로 개울물에 처박히는 모양으로만 보여서 어리둥절하다.

그때 준경은 분명히 보았다.

아무리 거리에서 배운 주먹질이라곤 해도 준경에겐 타고난 빠른 눈이 있었다.

왈짜의 오른발이 늙은 중의 머리에 닿기 직전,

기묘한 손놀림으로 중의 손이 날아오는 발을 잡아챔과 동시에 가볍게 계곡물로 던져 버리는 것을.

촌각의 시간이었지만 준경의 눈에는 분명하게 보였다.

그것은 한 푼의 힘으로 열 푼의 힘을 당해내는 고도의 수법이다.

그러나 함께 있던 왈짜들의 눈에는 그게 안 보였던 모양이다.

“ 어라? 이 중놈이 요술을 쓰네? 요것 봐라, 한 수가 있다 이거지. 잘 걸렸다.”


처음 나이든 중을 핍박한다는 게 꺼림칙하던 패거리들은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는 듯,

먹고 있던 고기와 술을 내팽개치고 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가 뭐래도 타고난 바탕은 장터의 왈짜 패.

안 그래도 딱히 여자가 끼어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준경 때문에 술은 있으나 여자 하나 없는 꽃놀이가 심심하고 재미없던 차였다.

이대로라면 없는 시비라도 만들어 서로 치고받고 할 정도로 심심함이 지나친 감이 있었는데,

울고 싶은 애 뺨 때려준 격이라고 묘한 노승이 시비를 건다.

그들에게 누군가가 도전을 한다는 것은 결코 넘어가 줄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다 쪼그라든 돌중이라면 야.

패거리들은 주섬주섬 자리를 털며 일어나서 노승을 향해 둥그렇게 둘러섰다.

본능적으로 포위를 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준경은 갑자기 흥미가 생겨서 고개를 앞으로 빼고 늙은 중이 하는 양을 살펴보기로 했다.

준경이 보기에 노승이 보인 한 수는 우연한 행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준경으로도 좀 어려운 기술에 해당한다.

타고난 완력과 체구가 있는 준경이라면, 노승과 같이 앉아 있는데 공격을 받았을 경우라면

그냥 상대방 발목을 붙잡아 던졌을 것이다.

보통 발은 손의 세배라는 말이 있다.

손으로 내는 힘의 세배가 발에서 나온다는 의미.

그건 두 다리로 걷는 인간의 신체적 특성상 기본적인 근육만 해도 당연히 팔보다는 다리가 강하다는 이유다.

하물며 뭔가 무술을 조금이라도 단련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발의 힘이 더 강한 법.

그렇지만 준경처럼 타고난 근력과 체구가 남다른 입장이라면,

어지간한 장정의 다리 힘보다도 준경의 팔 힘이 더 강하니 당연히 잡아 던져도 무방했다.

하지만, 보이는 대로 체구도 작고 별로 근육도 없는 데다 나이까지 한참 먹은 노승 같은 경우에 준경이 생각하듯 젊고 거친 상대의 발목을 잡는다면 십중팔구 팔이 부러졌을 것이다.

그것을 노인은 가볍게 마치 바람을 털어내듯 여유 있게 빗겨 던진 것이다.

그건 좀 차원이 다른, 이른바 ‘무예’라고 할 만하다.


왈짜들은 바닥에 앉은 중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포위를 했다.

그래 보아야 공터가 넓진 않은지라,

대여섯 명이 중을 둘러싸고 그 뒤에 남은 녀석들이 둥그렇게 돌아선,

마치 군에서 창수 들이 적장을 가운데 두고 원형 방진을 짠 듯한 모양새.

준경은 노승을 둘러싼 왈짜들이 점점 못마땅했다.

그래 봐야 늙은 중인데, 마치 필생의 대적을 만난 듯 시커멓고 거칠은 사내들이 빙 둘러서서 포위한 것처럼 보이는 모양새가 영 별로였다.

하지만 워낙 노인이 여유만만하니 두고 볼 참이다.

돌중은 그 흉흉한 기세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가까이에 있는 돼지 다리를 들고 쩝쩝대며 한입을 다시고 있다.

“에이, 무식한 놈들.

이런 고기를 잘게 잘라서 구워야지 이게 뭐여? 속은 안 익고 겉은 시커멓게 타버렸구먼.

먹는 것도 가르쳐 줘야 할 무지몽매한 놈들 같으니라고.

고기라는 것도 다 먹는 방법이 있고, 같은 고기라도 똥개 입에 들어가는 개밥이 되고 어린아이 입에 들어가면 장래의 희망이 되며 호랑이 입에 들어가면 소중한 한 끼니가 되는 법 이거늘.

어째 무식한 놈들은 좋은 고기도 개처럼 먹어대는구먼. ”

이건 사뭇 왈짜들을 ‘개 놈’이라고 욕함에 다름 아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는 어쩐 영문인지 마치 불경을 읊듯 단조로운 음성으로 낭랑하게 귓전을 파고든다.


그 소리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중을 둘러싼 다섯 놈의 왈짜가 일제히 꼭두질 (내려찍기)을 중에게 퍼부었다.

원래 그렇게까지 집단으로 행동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승이 돼지 다리를 뜯으며 들으란 듯 일행들을 개 같은 패거리라고 욕을 하니,

앞뒤 가릴 것 없이 먼저 발질이 나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은 다섯 중 하나의 발만 맞아도 돌중의 머리가 깨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 순간 다섯 놈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선불에 멧돼지 튀어 오르듯 뒤편을 둘러싸고 있던 패거리들 사이로 나가떨어졌다.

뒤편에서 그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놈들은 모두 멍청하게 무슨 일이지? 하는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왜 앞서 공격을 한 다섯 놈이 일제히 뒤로 튀어 나간 것인지,

한결같이 마치 바위를 발로 찬 듯 발목을 붙잡고 죽는소리를 하는 것인지,

그들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준경은 그 짧은 찰나 노승이 어떤 동작을 했는지 또렷하게 보았다.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던 중이 한 손에 쥐고 있던 돼지 다리를 한 번에 휘저어,

왈짜들의 복숭아뼈를 거의 동시에 후려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을.

이제 중을 둘러싼 왈짜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딱히 뭐가 있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한 놈은 개울가에 처박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리고 있고,

너덧 놈은 모두 한쪽 발목을 움켜쥐고 죽는다고 소리를 지른다.


준경은 바위 위에서 일어섰다.

그의 주변에 늘어서 있던 졸자들이 ‘ 아니, 뭐 형님이 직접······.’ 이라며 말리는 척했지만, 준경은 그놈들 또한 저 밑에 늘어져 있는 놈들보다 딱히 나을 것 없는 그야말로 시장판 주먹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준경은 적당히 손사래를 치며, 삼 장 높이의 바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육중한 체구 임에도 불구하고, 자갈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다지 요란하지 않다.

뭔가를 정식으로 배운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산으로 들로 동물들을 사냥하며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경공 탓이다.

준경의 몸놀림을 바라보는 돌중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준경은 열 보도 안 되는 거리에 태연자약하게 앉아서 한 손에 돼지 뒷다리를 들고 있는 노승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용모.

머리를 밀지만 않았다면 비렁뱅이로 보아도 이상할 게 없는 돌중.

게다가 그들처럼 보기만 해도 ‘나 도둑놈, 상놈’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듯한 패거리 앞에서도 태연자약하다.

그리고 두 눈.

노인의 두 눈은 마치 바닥을 알 수 없는 우물처럼 검고 깊었다.

그 우물 같은 눈길과 정면으로 부딪치자, 준경은 저도 모르게 훅,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그건 마치,

깊은 산 속에서 범을 마주쳤을 때 느낀 것 같은 근원적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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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4 658 9 9쪽
12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3 710 9 8쪽
11 무신출림 武神出林 20.03.02 766 9 9쪽
10 적반하장 賊反荷杖 20.02.29 767 9 8쪽
» 오합지졸 烏合之卒 20.02.27 863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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