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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남화북룡전 南花北龍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4 15:56
최근연재일 :
2020.04.22 17:1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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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글자수 :
181,617

작성
20.04.2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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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정무문 (情武聞)

DUMMY

소룡은 느린 걸음으로 힘겹게 계곡을 벗어났다.

한참을 힘겨이 산길을 내려가느라 소룡은 탈진 할 지경 이었다.

진원 진기를 끌어쓴다는 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를 모조리 써 버리는 것.

그 이후 찾아오는 급격한 노화의 고통은 만만치 않았다.

피부가 탄력을 잃어 우글쭈글 주름지는 것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이가 흔들리며 빠져나오고,

눈앞이 흐릿하게 변하며 귓속에서 이명이 들린다.

온몸의 뼈마디는 마치 정으로 쪼아대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몇 걸음을 걷는 것조차 천근을 짊어진 짐꾼처럼 헐떡여야 하는 것.

그런 노화의 과정이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될 때에야 육신도 정신도 그 속도에 맞춰,

서서히 길 들어가는 시간이 있어서 그나마 덜 고통스러울 것이었다.

그 지난한 과정들을 불과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급격하게 겪어오다 보니,

소룡은 광풍 마장을 벗어날 즈음에는 실로 기어 다녀야 할 지경이 된 것이다.

고통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판단력도 이지도 굳어버리게 만든다.

과거 금강불괴공을 연마하며 세상의 모든 고통은 다 겪어봤노라 생각하던 소룡이지만,

진원 진기가 빠져나간 육신을 감당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점점 시력이 떨어져 흐릿해가는 소룡의 눈에 희미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소룡은 뭔가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하다가 그게 실제의 여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여인을 보는 순간 소룡은 노쇠해 버린 심장이 멈춰 버리는 줄 알았다.


여인은 바로 이년 전 숭산의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리겠노라 말하였던 남궁숙이었다.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조금도 나이를 들지 않은 듯 한 떨기 꽃처럼 화사했다.

다만 미간에 수심이 깃들어 보이는 점만 빼면.

“ 잠시 여쭈겠습니다. ”

소룡을 발견한 남궁 숙은 선뜻 옆에 차고 있던 검에 손을 가져가며 딱딱한 말투로 물었다.

처음에 소룡은 이게 뭔가 싶었지만,

이내 자신의 급격한 노화가 심해서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함을 깨닫곤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 말씀하시오.“

남궁숙은 구부정하게 허리가 굽은 노인을 계곡 입구에서 마주하곤 바짝 긴장했다.

누가 뭐래도 이곳은 악명이 자자한 광풍사의 근거지 근처.

주변을 오가는 인물들이 결코 범상하리라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 혹시, 노인은 광풍사와 관계된 분이신가요? “

소룡은 그녀의 질문을 듣자 역시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함이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주름이 늘어가는 자신의 쭈글쭈글한 손등과,

점점 더해가는 온몸의 통증들이 현실을 일깨운다..

” 아니오, 광풍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소이다. “

소룡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자신의 목소리는 거칠고 걸쭉하게 쉰 목소리가 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음성마저도 바꾸는 모양이었다.

노인이 광풍사와 무관한 사람이라 말은 하지만,

남궁숙은 여전히 노인을 경계했다.

그만큼 광풍사의 악명은 인근에 자자했었으니까.

” 그렇다면 혹시 광풍 마장에서 나오시는 길인가요? “

그녀의 질문에 소룡은 고개를 힘없이 가로젔는다.

” 아니요, 그저 이 산에서 약초를 캘 일이 있어서 올라온 것뿐이오. “

노인의 대답을 듣고 남궁 숙은 그 노인이 뭔가 속이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노인의 옷차림은 결코 심마니나 산에서 뭔가를 채취하며 먹고 사는 모양새가 아니다.

게다가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노인의 여기저기에 피가 묻은 듯도 보이고..

아직도 선혈의 냄새가 비릿하게 풍겨왔다.

노인의 뒤로 보이는 흔들다리와 그 건너의 둔덕 뒤로는 어둠이 내려오는 하늘 위로 시커먼 연기가 점점 더 짙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광풍사에는 오늘 어떤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눈앞의 노인은 그 일과 무관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년이 넘게 숭산 근처 남경표국의 지부에서 소룡의 소식을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는 것을 소림의 방장 광오대사는 알고 있었다.

금강불괴공을 대성한 소룡이 여인의 기다림을 외면한 채 둔황으로 떠났다는 것도.

어느 날 남경표국 지부에 탁발승 한 명이 나타나 염불을 외웠다.

크게 외부 일을 하지 않고 지부의 안살림을 돌보던 남궁숙은 시주할 쌀을 큰 주머니에 담아 들고 승려를 맞았다.

”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여시주. “

” 아닙니다. 스님. 괜찮으시면 점심을 드시고 가시지요.

마침 점심 공양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

남궁숙의 제안에 중년의 승려는 환하게 웃으며 그러마 하고 대답을 한다.

표국의 점심은 비교적 간소한 소채와 채소국으로 차려진 단출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유서 깊은 표국답게 제법 맛깔스러웠다.

공양을 마친 승려는 남궁숙을 향해 다시 읍을 했다.

반장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승려를 이채로운 눈으로 바라본 남궁숙이 입을 열었다.

“ 스님께서는 소림에 적을 두고 계시는가 봅니다. ”

“ 네. 소림에서 장경각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

“ 아, 그래서······.”

남궁숙의 반응에 승려는 빙긋 웃었다.

무공으로 유명한 소림이지만, 모든 승려가 무술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장경각에는 불경과 더불어 소림에서 소장하고 있는 무공의 비급들도 수천 권이었다.

소림의 승려 중 무공을 수련하지 않는 학승들은 장경각을 관리하고 불경을 연구하는 일을 했다.

그러니 남궁숙이 전혀 무공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승려를 소림의 승려라 생각하지 않은 것은 무리가 아니다.

탁발을 구할 때는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으니 알 수 없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예를 하는 과정에서 승려가 반장을 올린 것을 본 남궁 숙은 그가 소림승임을 알아챘다.

남궁숙이 승려가 소림승이라는 것에 반가운 얼굴을 하자, 승려가 뜻밖의 말을 했다.

“ 여시주가 남경 표국의 무남독녀 남궁숙 시주지요?

저는 장문인의 명을 받들어 하산한 장경각의 각주입니다.

여 시주께서 아마도 소룡 시주를 기다릴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

낯선 승려의 입에서 소룡의 이야기가 나오자 남궁 숙의 가슴은 쿵, 내려않았다.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운남(雲南).

늘 날씨가 온화하고 남국의 열기로 가득한 그곳은 대리석의 산지인 대리국이다.

대리국은 별개의 왕조를 중심으로 자치 운영되는 작은 왕국이었다.

그곳에 몇 년 전부터 중원으로부터 넘어온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무관이 있었다.

그 부부는 기이하게도 마치 아버지와 딸처럼, 나이 차이가 무척 있어 보였다.

하지만 당대에는 부자인 노인이 젊은 아내 나 첩을 얻는 일들이 많았으므로,

그것이 특이한 건 아니었지만 노인은 그리 재력도 없어 보인다는 것.

그런데도 그 아내인 젊은 여인은 뛰어난 미모와 더불어 무공 실력도 만만치 않았는데,

남편인 노인을 끔찍하게 아낀다는 소문이 돌았다.

노인은 무공을 할 수는 없다고 했는데,

특이하게도 투로 와 단련법은 잘 알고 있어서 관원들에게 주로 말을 이용하여 외공을 가르치는 것이었지만, 실제 대련이나 시범은 아내가 보여주고 해서 관원들은 노인을 관장이라 부르고 아내를 사범이라 부르곤 했다.


두 사람은 바로 소룡과 남궁숙이었다.

광풍 곡까지 쫓아 온 남궁 숙은 처음에는 소룡을 몰라볼 뻔했다.

머리까지 하얗게 세어버린 노인.

사연을 알게 된 남궁 숙은 목놓아 울었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다시는 소룡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그 길로 두 사람은 아무 인연도 무엇도 없는 운남 으로 떠났다.

기력이 쇠해버린 소룡을 위해 남궁 숙이 직접 마차를 몰았고, 그들은 마차에서 먹고 자며 길을 재촉했었다.

그렇게 도착한 대리국에서 무관을 열었다.

무관의 이름은 정무문 情武聞 이었다.


사람들은 무관 정무문의 관장이 비록 직접 무공은 못 하지만,

그 눈썰미와 초식들에 대한 이해가 소림과 무당파의 정수라는 것을 알고 북쪽에서 온 진정한 용이라고 존경의 예를 다했다.

또한, 그 아내는 현숙할 뿐 아니라 무공의 실력이 탁월하며,

아미파 무공의 진수를 가르침을 주었으며 노쇠한 소룡을 보필하면서도 그 예의가 진중하니 남궁 숙을 남국의 꽃이라 칭송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정무문의 주인인 부부를 일컬어 남화 북룡 이라 불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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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망탑 死網塔 20.04.21 204 3 14쪽
42 사망탑 死網塔 20.04.20 213 3 11쪽
41 사망탑 死網塔 20.04.16 263 3 8쪽
40 사망탑 死網塔 20.04.15 248 3 9쪽
39 사망탑 死網塔 20.04.14 279 3 8쪽
38 사망탑 死網塔 20.04.13 300 3 9쪽
37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10 298 4 9쪽
36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8 325 3 8쪽
35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7 313 4 9쪽
34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6 330 3 8쪽
33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2 361 3 6쪽
32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1 349 3 8쪽
31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31 355 3 8쪽
30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30 363 3 10쪽
29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7 385 3 9쪽
28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6 412 3 9쪽
27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5 397 2 10쪽
26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4 393 2 8쪽
25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3 400 3 8쪽
24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20 418 3 8쪽
23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9 416 3 9쪽
22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8 425 4 10쪽
21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6 441 3 9쪽
20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3 449 5 9쪽
19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2 451 3 9쪽
18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1 456 4 9쪽
17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0 474 4 13쪽
16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6 51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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