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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남화북룡전 南花北龍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4 15:56
최근연재일 :
2020.04.22 17:1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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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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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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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구곡간장 九曲肝腸

DUMMY

표행이 목적지인 둔황에 도착하기까지는 두 달이 더 걸렸다.

그나마 치안이 안정된 관도를 따라 마차를 끌고 가는 길이라 수월한 편이었다.

이따금 소규모 도적 떼의 도발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 정도의 도적들 이란 단련된 표사들 만으로도 충분히 격퇴되었다.

상대가 규모가 제법 큰 도적들이라면 피차 목숨 걸고 다툴 일이 아니라서,

서로 적당한 합의로 통행세 명목을 내고 지나쳤으므로 표행은 순조로웠다.

삼 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때로는 객잔에서,

때로는 들판이나 숲속에서 노숙하는 중간중간에 소룡과 남궁숙은 일행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 들에서 만남을 가졌다.

대부분의 만남은 소룡 으로부터 무공지도를 받는다는 명목이었지만,

대행수인 남궁훈 과 금호신니는 단지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십 대 후반, 이십 대 중반인 그들의 만남이란 단지 무공 전수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어느 사이 엔가부터 둘은 만나면 말없이 팔짱을 끼거나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걸었다.

남궁숙은 자신이 자라 온 평화롭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과,

정략으로 시작된 불행한 결혼 생활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그럴 때면 소룡은 몹시도 분개한, 그러나 서글픈 표정으로 남궁숙의 가슴은 체한 것처럼 늘 먹먹했다.

소룡도 띄엄띄엄 자신이 자라 온 세월을 이야기하곤 했다.

아마도 난생처음이었을 것이다.

그가 살아온 세월이란 누구에게 드러내어 말할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창피한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러운 일도 아닌.

때때로 운명이란 특별히 몇몇 에게만 유독 가혹해서,

운을 잘 타고나는 것도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 게 현실의 세상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룡은 참 재능이 없어도 많이 없는 편이었다.

어머니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 자신을 놓고 도망친 어머니.

늘 엄격하였지만, 세상에 단 하나 의지할 수 있던 아버지와 보낸 불우한 어린 시절,

산골마을이었던 덕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거두어 먹여 늘 눈칫밥을 먹던 시절.

산골이라 해도 천진한 아이들도 타고난 잔인함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엄마 없는 자식이라 놀림당하던 때였다.

어쩌면 늘 엄하던 아버지를 따라서 무공을 배우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외로움으로부터, 아이들의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남은 고요하던 어린 시절을 산산조각 내 버린 비적들의 습격.

눈앞에서 비적의 두목에게 단번에 목숨을 빼앗긴 아버지.

소룡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강인하던 아버지가 단 한 번의 손짓에 처참하게 죽어간 모습.

그 아버지는 소룡에게 말 한마디를 남길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비적들의 희롱으로 잃게 된 왼팔.

처절하게 살아나려 몸부림치던 산속에서의 추격전.

죽음의 문턱 앞에서 만난 괴승, 사부 광승의 혹독한 가르침.

괴짜 사부를 모시고 구걸을 해가며 배우던 고단했던 무공수련.

세상 모든 문파를 목숨 걸고 상대해야 했던 처절한 비무의 길.

늘 생사의 칼날 위에서 춤을 춰야 했던 고난의 길.

지치고 절반은 체념이 된 상태에서 남해 검문의 문주로부터 받은 솔깃한 제안.

그로 인해 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치른 기묘한 결혼과 기묘한 가정.

누군가에게서 진정으로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사랑을 해 본 적도 없었던 지난날들.

고난을 넘어서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그 이후 다시 생긴 또 다른 고난들.

소룡의 이야기들은 늘 남궁숙의 눈물로 마무리되곤 했다.

“ 그래도. ”

긴 사연, 짧은 평생 아무에게도, 심지어 스승인 광승조차 분명하게 다 알지는 못하던 시절까지를 전부 남궁숙에게 털어놓은 소룡은 엷게 미소지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 난 그래도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생각하오. 만약 그때 사부님을 만나지 못했었다면,

나는 그 비적 떼의 저녁거리 정도로 끝났을 인생이니까.

그래도 운이 좋게 사부님을 만났고, 그 사부님 덕에 무공을 배워 어디 가서 장애인이라고 괄시받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오.

그리고 비록 온전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없었다면 철천지원수를 이 넓은 중원 천지 어디에서 찾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소.

그 과정이 험하고, 때로 견디기 어렵기는 했지만, 이 모든 고난은 내가 가슴에 품고 있는 복수, 그 복수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니까. ”

소룡의 허허로운 웃음을 바라본 남궁 숙의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어쩌면 저렇게 자신을 스스로 아프게 위로하는 것일까.

자신도 불행하다 생각을 해왔지만, 소룡이 겪은 고난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아마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소룡처럼 별별 일을 다 겪다 보면 복수, 그까짓 거 버리고 어떻게든 편히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게 맞을 일이다.

아니어도 신의 장난 같은 운명에 원망하며 살아가는 게 보통일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 알고 있었다.

이 표행이 끝나는 시점이 바로 그들의 모호한 연애의 끝 이 되리라는 것을.

소룡은 자신의 원수를 찾아 언제 끝날지 살지 죽을지 모를 길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남궁숙은 다시 돌아가는 표행을 따라 남하해야 했다.

넓디넓은 중원 천지 어디에서고 두 사람이 우연히는 마주칠 일은 없을 터.

알고 있었지만 둘 다, 난생처음으로 마주한 자신들의 감정을 어찌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렇다고 훗날을 기약하기에는 둘 다 얽힌 관계들이 너무 많았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무공수련과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어려움 들이었다.

서로에게 무작정 이끌려 버린 연정은 현실과 세상의 법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늘 남궁숙을 바라보는 소룡의 눈길에는 애처로움이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복수에의 길을 놓을 수 없는 그의 고독함.

그걸 바라보는 남궁숙의 눈길에는 늘 안타까움과 애잔함이 가득했다.

북권 과 남권. 북퇴 와 남퇴.

그들이 예정하는 만큼 수련은 늘 치열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마음이 교차했다.

팔이 부딪쳐 얽히다 보면 눈길이 마주치고, 그러면 서로 민망하여 고개를 돌리고.

다리와 다리가 얽혀 오가다 보면 뭔가 민망하여 멈추고.

전혀 살기를 발하기는커녕 온통 도화꽃이라도 만발한 듯 그들의 비무는 싱겁고도

아름다웠다.

중원의 끄트머리에 도달할 때 즈음 계절은 깊은 가을로 바뀌어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소룡은 남궁숙으로부터 옷을 받았다.

그동안 입어왔던 남루한 무복은 얇았고 제아무리 무공을 닦는 자라고 해도 기온은 점점 차가워졌다.

대부분이 본향을 남쪽인 중경과 쓰촨 일대에 두고 있는 표사와 쟁자수 들은 표행이 노숙을 시작할 때마다 모닥불부터 지폈다.


깊은 숲이었고 늦은 저녁이었다.

산을 건너기에 늦은 시각이라 모처럼 표행을 일찌감치 노숙으로 바꾼 상태였다.언제나 그랬듯 남궁숙은 소룡을 찾아 숲으로 나섰다.

남쪽 지방의 커다란 활엽수에 익숙하던 그녀에게 강북의 짙게 물든 단풍잎 들은 이채로웠다.

그리고 빽빽이 자란 침엽수림 들.

그 숲 가운데 생겨난 공지에 소룡이 있었다.

그는 남궁숙이 마련해 준 검은색 무복을 입고 있었다.

소룡은 마보를 취한 채로 마치 느린 춤을 추는 것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좌우로 천천히 오갈 때마다, 땅바닥에 깔린 노란 은행잎들이 마치 바람이 쓸어가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떠오른 은행잎들은 소룡의 손짓을 따라 둥싯 떠오르다가,

다시 소룡의 손이 가슴께로 모일 때마다 둥글게 뭉쳐지곤 했다.

그러다 다시 소룡이 손을 내뻗으면 우수수 은행잎들이 앞으로 화살처럼 쏘아졌다.

어둠이 내려앉는 숲속에 노란색 은행잎들이 원호를 그리며 나부끼는 모습은 그림 같았다.

소룡이 마보를 틀어 두 다리를 태극 형태로 휘젓자 바닥에 깔린 은행잎들이 발끝을 따라 둥그렇게 원호를 그리며 맴돈다.

이내 깊은숨을 내쉬며 소룡은 마보를 풀고 천천히 일어섰다.


소룡의 연무가 끝나자 남궁숙이 다가섰다.

“ 무당 태극권인가요? ”

그녀가 다가와 있는 줄 알고 있던 소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 태극권 면장과 태극 보법이오. 거기에 소림의 탄지신공을 섞은 거지. 다만. ”

잠시 말을 마친 소룡이 씁쓸하게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 내 팔이 하나밖에 없어서 완벽한 태극권을 펼칠 순 없다오. 원래는 낙엽들이 태극의 형태로 돌아가야 하는데, 내 손이 하나뿐이니 그냥 원만 만드는 거요. 그게 한계인 거지. ”

자조하는 듯한 소룡의 품에 남궁숙이 와락 안겼다.

그녀는 소룡을 꼭 껴안고 속삭이듯 말했다.

“ 당신은 그 한쪽 팔로도 충분히 강해요. 그러니 자책하지 말아요. 이미 당신은 내겐 영웅이에요. ”

그녀의 난데없는 껴안음에 소룡은 멈칫했지만 이내 하나뿐인 팔로 힘껏 마주 안아 주었다.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소룡이 입을 열었다.

“ 숙매 에게 태극 면장을 좀 전수할까 해요. 아무래도 여자에게 맞는 무공이기도 하고 ”

“ 바보! ”

남궁숙이 갑자기 소룡의 가슴을 밀치며 뒤돌아서 뛰어갔다.


* 구곡간장 九曲肝腸

九 아홉 구

曲 굽을 곡

肝 간 간

腸 창자 장


시름과 한이 가득찬 마음 속을 일컫는 사자성어 입니다.

굽이굽이 이어진 창자를 가리키는데, 비유적으로 한과 시름이 쌓여 꼬일 대로 꼬인 마음속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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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사망탑 死網塔 20.04.16 264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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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사망탑 死網塔 20.04.14 280 3 8쪽
38 사망탑 死網塔 20.04.13 300 3 9쪽
37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10 298 4 9쪽
36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8 325 3 8쪽
35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7 314 4 9쪽
34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6 330 3 8쪽
33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2 361 3 6쪽
32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1 349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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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30 364 3 10쪽
29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7 385 3 9쪽
28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6 412 3 9쪽
27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5 397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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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20 418 3 8쪽
23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9 417 3 9쪽
22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8 426 4 10쪽
21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6 441 3 9쪽
20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3 449 5 9쪽
»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2 452 3 9쪽
18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1 456 4 9쪽
17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0 474 4 13쪽
16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6 51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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