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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남화북룡전 南花北龍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4 15:56
최근연재일 :
2020.04.22 17:1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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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32
추천수 :
174
글자수 :
181,617

작성
20.03.1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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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중경삼림 (重慶森林)

DUMMY

잔도에서 떨어져 죽은 줄 알았던 중경화(重慶花), 남궁숙이 삼일여 만에 살아 상단을 쫓아 돌아오자 표행의 행수(行首)인 오빠 남궁 훈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이미 표행을 나설 때는 모든 것을 각오하는 법.

무너진 잔도를 고치고, 분루를 뿌리며 다시 표행을 재촉했지만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가업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공은 공. 사는 사.

슬픔과 분노를 삭이고 그대로 표행은 계속되었다.

사실 어느 정도 그의 매제인 모용사군의 문제점을 소문을 통해 대강 알고 있던 남궁 훈은 여동생이 거칠고 먼 장도를 오르겠다는데 말리지 않았다.

그것은 대놓고 말 못 하는 여동생의 고충과,

그런데도 가문의 체통을 지켜야 하는 현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이었다.

그 또한 사랑하는 연인이 없지 않았으나 가문의 장래를 위한 정략결혼에 희생양 아닌 희생양이 되었던 터라 여동생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대놓고 모용 사군과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은 것은 자기 생각에도 가족 개개인의 삶 보다 상단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혈육은 혈육.

비록 몰골은 엉망이 되었지만, 사지가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남궁숙을 본 남궁 훈은 옅게 눈에 눈물까지 어렸다.

그리고 그녀가 목숨을 구한 자초지종을 듣고는 따로 소룡을 불러 깊이 감읍을 했다.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상처를 입어가며 남궁숙을 구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

단지 표행 호위무사로 계약했을 뿐인데도 목숨을 걸고 여동생을 위해 서슴없이 천 길 낭떠러지로 몸을 던진 용기.

그리고 그 높은 곳에서 추락하고도 한군데 부러진 곳조차 없는 엄청난 무공에 대한 존경.

자고로 강한 자는 부끄러움이 없는 법이라 했다.

무림의 세계에서 강한 자는 그 어떤 사회적 통념을 위반하며 살아도 크게 손가락질받지 않았다.

물건을 훔치는 자는 좀도둑이요, 나라를 훔치는 자는 영웅이라 하던가.

남궁 훈은 소룡의 엄청난 무공을 보고, 무조건 그를 믿고 의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작을 계약직 표사로 시작은 했지만,

남은 표행에서는 계약직 표사들을 이끄는 표두(鏢頭) 로 일해 달라 청했고,

소룡은 한사코 사양했으나 거듭된 권유와 곁에서 거드는 남궁숙의 애원에 못 이겨 결국 임시 표두 역할을 승인했다.

단,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만 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금호신니는 나란히 달리는 말 위에서 끊임없이 재잘대는 남궁숙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돌아봤다.

최근 들어 그렇게나 밝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본 일이 있었던가.

늘 얼굴 한구석에 그늘이 있거나, 웃더라도 씁쓸하게 마무리 짓곤 하던 그녀.

그녀가 지난 사고 이후 살아 돌아온 후로는 너무나 밝고 맑았다.

아직 몸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있지만, 그것은 피륙의 상처에 불과했으니,

비록 여성이지만 무림인인 남궁 숙은 개의치 않았다.

그건 과연 죽을 뻔하다 살아 돌아온 자의 마음인 것인가.

처음 절벽에서 그녀가 떨어져 내릴 때, 금호 신니 조차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호신니는 분명히 보았다. 앞서 잔도 끄트머리에 나가 있던 광룡.

그자가 일말의 지체도 없이 비익조( 比翼鳥 )처럼 머리를 아래로 한 자세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타인들은 잔도와 함께 광룡이 떨어지면서 우연히 남궁 숙을 구하게 된 것이라 심상하게 생각하지만 자신은 분명 보았다.

그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서슴없이 뛰어내린 것이다.

그것도 먼저 떨어진 남궁숙을 잡아챌 것 같은 자세로 말이다.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금정사의 주지, 연화 사태로부터 무공을 전수하여 경공과 검술에 일가를 이룬 그녀였다.

그렇지만 그녀로서도 그런 깊은 절벽에 떨어진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건 불가능했다.

과거 아미산에서 무공을 전수할 때 금호 신니도 벽호공 이라거나 낙법에 대한 무술들을 수련했었고, 꽤 높은 곳에서 혹시 떨어지는 상황이 있다 해도 무력하게 죽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죽지 않는다는 것뿐, 죽지 않을 정도로 상처를 입게 된다는 의미였다.

떨어지는 속도를 이기면서 석벽에 팔을 꽂아 속도를 늦추고, 거기에 더해 사람을 등에 매달은 상태로 추락속도를 줄여 살아난다는 것.

그건 단순히 무공의 문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혹은 용기였다.

그리고 광룡은 일체의 망설임 없이 그걸 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얼핏 그 광경을 보았던 금호신니는 어쩌면 남궁숙이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둘 다 예상대로 살아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이후, 남궁숙은 무척이나 쾌활해진 것이,

그 사기극 같던 결혼 전의 모습을 되찾은 듯싶었다.

하필 아끼는 사질을 구한 사람이 마음속에 응어리를 두고 있던 광룡이라는 사실이 씁쓸했지만,

금호 신니도 무림인 인지라 그 모든 은원은 이번 광룡의 의협심을 보고는 어느 정도 풀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남들이 억지로 씌운 감투이기는 하지만, 졸지에 표두가 되어버린 광룡도 좀 이상했다.

그의 무술 실력이나, 장애인임을 고려해도 일단 중경화를 살려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표두를 맡게 된 걸 감히 시기하는 자는 없어 보였다.

그런데 늘 얼굴에 수심을 지나 아예 무심해 보이는 표정 하나로 일관하던 그가,

어쩐지 촉잔의 사고 이후로 이따금 빙긋 웃는 얼굴이 보인다는 것.

그것도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남궁숙과 나란히 말을 달릴 때 표정들이 그러했다는 것.

금호 신니 스스로 불문에 몸을 담고 오직 무공과 불경에만 정진하던 차라,

남녀 간의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뭔가 그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묘했다.

행여나 아끼는 사질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염려된 그녀는 대행수를 찾아갔다.


대행수 남궁 훈은 정중하게 신니를 맞이하여, 표행이 잠시 머물던 객잔의 내실로 안내했다.

촉잔에서의 험로를 극복하고 내려온 후로는 거의 평탄하고 안전한 관도행이고,

중원의 중심부를 지나는 길이라 치안도 괜찮고 대형마차를 사용하므로 표행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위험했던 촉잔길을 선택했던 덕분에 표행이 약속된 기한도 꽤 여유가 있었다.

한참 망설이던 금호신니는 자신이 바라보는 두 사람.

광룡과 남궁숙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들의 관계가 자신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남궁훈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망설임 없이 답변해서 오히려 금호 신니를 놀라게 했다.

“ 저도 그 둘이 지난번 구명지은 이후로 뭔가 남다른 사이가 된 것 같다 생각합니다.

신니께서도 대충 아시지요? 제 매부. 모용 사군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를.

사실 가문의 체면과 모용 세가의 입장이 아니라면 당장 두들겨 패도 시원찮을 자입니다.

하필 저희 가문의 외동딸이 저런 놈에게....알죠.

그렇지만 어쩌지 못하는 것도 압니다.

그리 불쌍한 제 누이가 생전 처음 남자에게 마음을 준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압니다. 그도 역시 해남 파에 묶인 몸이란 것도 요.

그리고 그 또한 해남파 장문인의 음흉한 속셈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참, 슬프고 힘든 운명에 얽혀 있지요.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제가 사업이란 걸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이겁니다.

남녀 관계의 마음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끼어들어서 무엇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연이란 건 옆에서 말린다 해도 언젠가 이어지고 아니라면 끊어질 거라는 것.

그겁니다. “

마치 사전에 준비라도 하였던 듯 거침없이 말을 하는 대행수의 말을 들은 신니가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대행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 광룡은 잠시 표행을 스쳐 지나는 인물입니다.

이번 촉잔에서 그의 협행을 보았고, 그가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그는 복수의 일념으로 처자식도 남해에 놓아두고 먼 길을 떠난 사람이기도 하죠.

물론 그 복수가 성공할지, 원수를 만나지도 못할지, 아니면 거꾸로 원수에게 죽을지도 모르고.

한마디로 불나방 같은 사람인 데다 원했건 아니건 처자식이 매달린 사람이오.

그런 사내에게 우리 숙이가 마음을 둔다면 그게 좋은 일은 아니잖소.

게다가 숙이 또한 아무리 싫어도 남편을 두고 있는 처지고 말이오. “

금호신니의 말에 남궁 훈은 신니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더니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그 모든 것을 숙이가 몰라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모든 걸 알겠지만 그런데도 각자 갈 길로 헤어져야 할 순간이 곧 올지라도,

그 모든 인연과 마음을 아주 오래도록 추억으로만 간직하는 결과가 될지 몰라도,

그런 모든 슬픔과 회한을 다 감수하고자 하는 마음.

그게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


금호신니는 대행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목에 서서 가만히 밤하늘을 우러렀다.

두 손을 합장하며 조용히 금호신니는 읊조렸다.

“ 불경을 외지 않아도, 세상이 돌아가는 섭리는 참으로 묘하구나.

그걸 모르고 산중에서 제아무리 수행한 다 한들······.

어찌 진리에 들겠는가.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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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정무문 (情武聞) 20.04.22 196 2 9쪽
43 사망탑 死網塔 20.04.21 204 3 14쪽
42 사망탑 死網塔 20.04.20 213 3 11쪽
41 사망탑 死網塔 20.04.16 263 3 8쪽
40 사망탑 死網塔 20.04.15 247 3 9쪽
39 사망탑 死網塔 20.04.14 279 3 8쪽
38 사망탑 死網塔 20.04.13 300 3 9쪽
37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10 297 4 9쪽
36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8 325 3 8쪽
35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7 313 4 9쪽
34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6 330 3 8쪽
33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2 360 3 6쪽
32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1 349 3 8쪽
31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31 355 3 8쪽
30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30 363 3 10쪽
29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7 385 3 9쪽
28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6 412 3 9쪽
27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5 397 2 10쪽
26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4 393 2 8쪽
25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3 400 3 8쪽
24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20 418 3 8쪽
23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9 416 3 9쪽
22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8 425 4 10쪽
21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6 441 3 9쪽
20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3 449 5 9쪽
19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2 451 3 9쪽
»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1 455 4 9쪽
17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0 474 4 13쪽
16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6 51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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