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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남화북룡전 南花北龍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4 15:56
최근연재일 :
2020.04.22 17:1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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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42
추천수 :
174
글자수 :
181,617

작성
20.04.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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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사망탑 死網塔

DUMMY

소룡은 점점 정신이 아득해 왔다.

금피철골( 金皮鐵骨 ).

상하게 할 수 없고 부러트릴 방법이 없는 몸.

그러나 숨이 딸리고 호흡을 할 수 없다면 그야말로 숨 막혀 죽을 것이다.

의외로 단순 무식해 보이는 권패의 공격은 효과가 있었다.

권패 스스로가 당해 보았듯,

어떤 경우라도 압도적인 힘으로 졸려서 숨을 쉬지 못하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장백산에 터를 잡고 살던 동이족의 사냥꾼으로부터 기절했다 살아난 후,

의형제를 맺고 그 씨름기술을 터득한 것은 무공이라면 무엇이든 집착하는 권패의 성격 탓이었고,

나중에 결국 그 사냥꾼을 기습해서 죽인 것은 은혜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 권패의 포악함이었다.

바로 그 동이의 기술로 인해서 소룡의 목숨은 경각에 달렸다.


소룡은 권패에 둘러싸인 한쪽 팔에 힘을 모았다.

이 년간 매일 밤 소림외당을 목숨을 걸고 기어오르던 하나 남은 팔이 이제 다시 한번 소룡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해봐야 했다.

기운을 잔뜩 모아서 팔을 뽑아내려 하니 권패도 눈치챘는지 더욱 강하게 팔과 허리를 동시에 감은 팔뚝에 힘을 준다.

그 와중에도 여유가 넘치는 권패는 느물느물하게 비웃음을 흘리며 입을 연다.

” 어이, 사제. 어찌 이리 나약한가?

아무리 팔이 하나밖에 없다곤 하지만 너무 힘을 못 쓰는 거 아닌가?

제아무리 금강불괴공을 익혔으면 뭐해?

겉만 안 부서진다고 안 죽는 건 아니지.

물에 빠져 숨을 못 쉬면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역시 철불 그 노인네는 쓸데없는 일에 평생을 바친···. 윽! “

느물거리며 말을 이어가던 권패가 한쪽 눈을 부여잡고 뒤로 주춤 물러섰다.

아무리 권패라고 해도 힘을 쓰며 말을 이어가는 동안은 호흡의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는 법.

소룡은 그 순간에 팔을 뽑아 올리며 일지관수 壹指串手 로 권패의 눈을 찔러갔다.

소림의 승려라면 누구나 익히는 기본 권각법 중의 하나.

하지만 오직 한쪽 팔로만 절벽을 오르내리던 소룡의 일지관수는 그 힘이 달랐다.

권패는 한쪽 눈알이 파괴되진 않았으나 소룡의 손가락에 상처를 입어 피가 흘렀다.

과거 소룡이 철불에게 금강불괴공을 사사할 때도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눈동자였다.

제아무리 금강불괴의 몸이라고 해도 눈이 취약할 수밖에는 없다.

그 부분을 눈꺼풀 위를 가볍게, 나중에는 점점 더 강하게 타격을 가하여 안구를 단련하는 법.

물론 그 또한 활명석유의 공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과거 철불은 같은 방법으로 권패를 단련시키려 했으나,

이미 내공이 높고 온몸이 금강불괴의 경지에 이른 자가 굳이 눈을 공격당하겠느냐며 수련을 게을리했던 것이 권패였다.

그리고 그 시절 권패의 태만함이 오늘 소룡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권패는 한쪽 눈에 흘러내리는 피를 솥뚜껑 같은 손으로 막으며 이를 갈았다.

”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어르신의 눈을 찔러?

내 네놈의 허리를 꺾어 반으로 접어 버린 후 네 놈의 남은 한쪽 팔과 눈알과 혀를 모조리 뽑아버리겠다! “

소룡은 잠시 권패의 팔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조금 전까지 졸려있던 허리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비틀댔다.

” 권패. 네놈은 사부가 시킨 대로 안법을 제대로 수련하지 않았구나.

사부님의 지시대로 수련했다면 완전하진 않아도 눈동자에 상처를 입진 않았을 텐데.

그게 내 놈의 오만함이라면 오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권패는 소룡의 말에 다친 눈알을 홱 빼버리더니 입에 삼켜 버린다.

” 좋다! 네 놈을 잡는데 이 정도 희생을 할 줄 몰랐다만,

내 눈알의 값은 네 목숨과 더불어 타호가 치러주겠지!

오늘 네놈 덕분에 내가 오랜만에 통증이라는 것을 느꼈으니,

네 놈도 화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지! “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권패는 성난 멧돼지처럼 소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룡은 단 한 번뿐인 기회라 생각하고 다시 한번 검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한쪽 눈을 잃은 탓인지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든 권패는,

의외로 소룡의 허리를 아까와 같이 붙들려던 시도가 조금 빗나가서 허공을 잡았다.

어? 하는 사이 소룡의 일지관수가 권패의 남은 눈동자에 격중했다.

”아악!“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비명을 지르며 권패가 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소룡은 그사이,

권패를 지나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권패의 곁을 스치는 순간에 소룡은 권패의 굵은 팔뚝에 다시 허리가 감겨듦을 느끼고 기겁했다.

” 윽!‘

다시 권패의 쇠스랑 같은 팔뚝에 갇힌 소룡은 신음을 냈다.

“ 이놈!

내가 비록 눈을 잃었지만, 네놈이 달리는 기척을 못 잡을 정도는 아니지.

이제 내가 네놈 따위를 잡느라 양쪽 눈을 다 잃었으니 기가 막히는구나!

오늘 네놈이 제아무리 금강불괴라 해도 내가 네놈을 조각조각 오체분시하지 않는다면 천하의 권패가 아니다. ”

분노에 차오른 권패가 양 팔뚝을 서로 감아 잡고 있는 힘껏 공력을 돋운다.

“ 헉!”

순간적으로 소룡은 허리가 조여지며 오장육부마저 바윗돌 사이에 끼인 것 같이 느껴졌다.


소룡의 아득해지는 정신 너머로 문득 남궁 숙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는 슬픈 얼굴로, 원망하는 모습으로 소룡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먼 남해에 두고 온 어린 딸의 모습.

늘 마음 한구석에 빚처럼 남아 가슴을 아프게 하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 스승 철불 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만약, 죽을 것 같은 상황이 되면 마지막으로 써 보라던 구명절초.

문자 그대로 살아날 순 있지만, 이전의 내공을 잃었던 것처럼, 아니 오히려 더 크게 진원 진기가 손상될 각오를 해야 할 거라고.

그 수법을 써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수십 년 분의 선천 진기를 끌어 쓰는 것이라,

결국, 몇 년 살 수 없다는 것과 급격히 노화가 될 거라는 것.

소룡은 마음을 굳게 먹고 스승이 알려 준 대로 구결을 떠올리며,

내공을 잃은 지 실로 오랜만에 진기를 돌렸다.


퍽.

큰 소리도 아니었다.

서서히 소룡의 허리를 쇠사슬처럼 가두고 있던 권패의 팔뚝이 스르르 풀렸다.

권패는 거대한 통나무처럼 큰소리를 내며 전각 바닥에 쓰러졌다.

소룡도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권패를 피해 옆으로 벗어나다 쓰러져 버렸다.

한동안 가쁜 숨이 전각을 가득 채웠다.

두개골이 부서진 권패가 바닥에 머리가 붙은 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눈동자도 없는 빈 눈으로 소룡을 향했다.

권패가 입을 열자 입안에서 피가 부글거리는 게 보인다.

“ 대체, 어. 어떻게?”

숨을 헐떡이며 소룡도 대답을 했다.

그게 마지막 가는 자에 대한 예의라 생각을 했으므로.

“ 철골 사부께서는 금강불괴를 깰 수 있는 마지막 절기를 창안하셨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말을 이어가는 소룡을 보고 권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사부는 내공이 아니라,

사람이 타고 난 진원 진기 (眞源 眞氣)가 가장 큰 힘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진원 진기를 끌어내면 어떤 금강불괴라도 파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지.

선천 진기를 모아서 상단전에 끌어올린다..

그리고 소림의 철두공 鐵頭功으로 단 한방, 공격을 할 수 있지.

다만, 그건 선천 진기인 만큼 끌어 쓰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알았지.

결국은 단 며칠 내에 노화가 진행되는 거야.

그리고 노인처럼 어린애 정도의 힘 밖에 쓸 수가 없지.

어이없게도 구명절초가 되긴 하지만, 살아나도 폐인이 되어 버리는 것.

금강불괴인 상대방을 죽일 수 있지만 결국은 본인의 수명과 맞바꾸는 것이다.

잠시 생명을 연장해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늙어 죽게 되는 거다.

그래서 사부는 이 절초의 이름을 하늘이 무너지는 그것과 다름없다는 뜻으로 천붕(天崩)이라 지었지. “


바닥에 쓰러져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권패는 소룡의 나지막한 설명을 듣고는 쿡쿡 웃었다.

이제 피거품과 더불어 대춧빛 같던 안색이 점점 하얗게 탈색되는 것이 곧 절명할 것 같았다.

“ 흐흐. 그렇단 말이지.

참 그 철불이라는 노인네는 고약하단 말이야.

너, 내가 왜 민머리인지 알고 있나?

금강불괴 공을 수련하다 보면 양기가 지나치게 치솟아서 결국 사내구실을 못 하게 돼.

고자가 되는 거지.

일반 승려야 상관없지만 내가 왜?

그걸 알고 나서 나는 화가 나 파문을 자처했고 대환단을 훔쳐 나온 거야.

하지만 내 실수였지.

대환단은 그 또한 양기가 응축된 약.

그걸 복용하는 바람에 지나치게 양기가 치솟아 머리카락까지 다 밀어내고 완벽한 고자가 되었다.

이건 무슨 억하심정이란 말이냐?.

천하제일 무공을 갖고 힘을 가지되 그 힘으로 얻을 수 있는 열락 따윈 없어진 몸이라니.

계집 하나 품을 수 없는 천하 영웅이 당최 무슨 의미가 있지?

게다가, 네놈에게 전수한 구명절초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너 죽고 나 죽자는 동귀어진

同歸於盡의 수법 아니냐?

천하제일의 금강불괴를 이루면 결국 고자가 되어 사는 낙이 없어지는 것이고,

그 금강불괴공을 깨고 나면 결국 금세 노인이 되어 늙어 죽으라는 건 무슨 악취미냐? “

” 알고 있다. “

조용히 시인하는 소룡을 보고 죽어가는 가운데에서도 권패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 내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지.

그녀가 일 년이 넘도록 소림 밖에서 기다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금강 공을 사사할 때부터 이미 그 대가로 불능의 몸이 되어 버린다는 것도 알았지.

남녀 사이라는 게 운우지락(雲雨之樂) 만이 모든 게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그녀의 젊음을 두고 내가 불능의 몸으로 다가설 수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복수의 길을 떠났었지. “

잠시 말을 마친 소룡은 힘없는 눈으로 권패를 바라보았다.

권패의 얼굴에는 이제 거의 죽음의 그림자가 내리고 있었다.

“ 하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지.

일전에도 그랬지만 이젠 복수의 코앞에 와서 진원 진기까지 다 쏟아붓고는 힘없는 병자가 된 꼴이니 내게 주어진 운이 그 정도인 거지.

이미 오래전 죽었어야 할 몸, 하늘이 준 인연으로 우연히 살아남고 무공을 배웠고,

그걸 다시 순간의 오만으로 잃었다가 다시 하늘이 준 기회로 이렇게 여기까지 도달했으니 되었다.

원수의 얼굴이라도 보고, 그의 손에 의해 죽더라도 좋으니 이 질긴 복수를 끝내야지.

너처럼 신의도 의리도 최소한의 도덕도 없는 인간말종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세상에는 그런 인간적 욕망이나 하늘이 정해준 수명을 줄여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


말을 마친 소룡은 벽을 붙들고 간신히 일어섰다.

이미 권패는 눈을 부릅뜬 채 깨어진 이마에서 흥건하게 피를 흘리며 죽은 상태였다.

금강 공을 완성한 이후 처음으로,

소룡의 전신에 온몸이 깨어져 나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예전에 계곡에서 추락하며 무리하게 공력을 써서 하단전의 내공을 잃었을 때와는 또 다른,

전신에 칼질을 당하는 것 같은 통증과 상단전의 타오르는 듯한 느낌.

소룡은 계단 난간을 붙들고 한 발짝 한 발짝을 간신히 옮겼다.


이제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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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사망탑 死網塔 20.04.16 264 3 8쪽
40 사망탑 死網塔 20.04.15 248 3 9쪽
39 사망탑 死網塔 20.04.14 280 3 8쪽
38 사망탑 死網塔 20.04.13 300 3 9쪽
37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10 298 4 9쪽
36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8 325 3 8쪽
35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7 313 4 9쪽
34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6 330 3 8쪽
33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2 361 3 6쪽
32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1 349 3 8쪽
31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31 355 3 8쪽
30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30 364 3 10쪽
29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7 385 3 9쪽
28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6 412 3 9쪽
27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5 397 2 10쪽
26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4 393 2 8쪽
25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3 401 3 8쪽
24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20 418 3 8쪽
23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9 416 3 9쪽
22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8 426 4 10쪽
21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6 441 3 9쪽
20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3 449 5 9쪽
19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2 451 3 9쪽
18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1 456 4 9쪽
17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0 474 4 13쪽
16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6 51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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