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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남화북룡전 南花北龍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4 15:56
최근연재일 :
2020.04.22 17:1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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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30
추천수 :
174
글자수 :
181,617

작성
20.04.0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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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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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분골쇄신 (粉骨碎身)

DUMMY

소림사가 위치한 숭산의 초입.

이른 아침 밤이슬이 마르지도 않은 시각에 향객들을 맞이하는 접객당 앞뜰에는 일군의 승려들이 모여 있었다.

중앙에 장문 방장과 집법당 당주, 장로들이 모인 무리 앞에는 남루한 흑빛 무복을 입은 소룡이 말없이 서서 아침볕을 맞이하고 있었다.

장문 방장이 낮은 음성으로 소룡에게 말을 걸었다.

“ 이 년이 지났구나. 그래, 참회 동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느냐?”

소룡은 장문 방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표정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 죄인으로 깨달음을 얻은 바 없습니다.

다만, 분골쇄신(粉骨碎身)이라는 네 글자를 얻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심에도 모든 것을 넓은 도량으로 받아들여 주신 장문인께 감사드립니다.”

주변의 장로들은 탄식하듯 아미타불을 연호하고 장문 방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 소룡아. 너는 소림의 인사법이 왜 두 손을 합일하는 합장이 아니라 한 손만 세우는 반장인지 아느냐?”

반장.

소림의 승려들은 전통적으로 합장을 하지 않고 한 손을 가슴에 세우는 반장을 예법으로 한다.

소룡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소림사 스님들은 한 손으로 절을 한다. 그 전통이 혜가스님으로부터 유래했다.

혜가스님이 유불선을 통달하고 달마를 찾아가 제자가 되겠다고 하자, 달마는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지 않으면 제자로 삼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안 받겠다는 의미다.

이에 혜가는 자신의 팔을 잘라 눈을 붉게 물들이며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고 한다.

소림사 스님들이 한 손으로 인사하는 이유는 바로 한쪽 팔이 없는 혜가스님에서 비롯됐으며, 한쪽으로 붉은 천을 두른 복장 또한 달마가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가사를 벗어 잘린 팔을 감싸니 붉게 물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혜가단비(慧可斷臂)’라고 하며, 지금까지 전한다.


햬가단비 : 혜가가 달마에게 입문을 빌었으나 허락하지 않자, 구도의 의지를 보이려 왼쪽 팔을 절단하고 허락을 받았다는 고사. 화제(畫題)로 많이 쓴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


“ 너는 그와 같은 이유는 아니었으나 혜가 사조와 마찬가지로 팔이 하나이니,

그것으로 법을 얻는 다른 길을 찾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육신의 불구와 그에 얽힌 은원으로 세상을 살아가려 하지 말고 네 삶의 길을 찾는 것이 너와 네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한 것일 터.

세속의 은원을 잊을 수는 없다 해도 지나친 살심으로 새로운 은원을 쌓지 말기를 바란다. “


말을 마친 장문 방장은 소룡의 보퉁이에 무엇인가를 잘 싼 보자기를 보태 넣어주었다.

“ 너는 광승 사형의 제자. 내겐 사질인 셈이다.

광승 사형은 끝내 본문에 복귀하기를 거절했었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게 그리 간단치 않아서 너와 이렇듯 인연을 맺게 되는구나.

참회동의 일 년이 무척 힘겨웠겠지만,

네 살심을 다스리고 너의 육신을 다듬는 기간이었기를 바란다.

언제든 소림은 네게 문을 열어 둘 것이다. 아미타불······. “

장문 방장의 불호를 따라 모든 장로가 반장을 올리며 소룡을 향해 불호를 외웠다.

소룡도 한 손을 가슴에 올려 불호를 외웠다. 오랜 선조 혜가가 그러하였듯.


소룡은 머나 먼 길을 다시 떠났다.

숭산을 내려오자마자 자신에게 기다림을 말했던 여인의 생각이 났다.

이 년이 지나도록 소식 한 점 없는 자신을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참회동에서 하루하루를 치열한 고통 속에서 수련해가는 와중에도 그녀 생각이 안 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소룡에게 더 이상의 인연이란 서로에게 힘겨움을 더하는 일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녀의 앞길을 행복하게 해 줄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이 소룡을 괴롭혔다.

소룡도 사내.

그것도 한창나이의 사내인 것이다.

복수에 일생을 걸고 살아왔지만, 생전 처음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목숨까지 걸고 자신을 위해 주던 여인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끼는 마음이니만큼, 단장 절벽에서 뛰어내릴 만큼 목숨을 걸었던 그녀에게 더 이상의 희생과 불행을 줄 순 없었다.

자신은 어찌 보면 맹목적인 복수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아버지 하나의 죽음이라면 어쩌면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건 좀 다르기는 해도 타호와 일대일로 겨룬 것.

늘 칼날 위를 살아가는 무인의 길에서 언제든 그럴 수 있음이니 분하지만, 실력의 부족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공 한 가닥 모르는 마을 주민들을 무참하게 도륙한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어린 자신의 팔을 자른 그 참혹함은 무인으로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피투성이 인과에 얽힌 자신을 남궁숙에게 내밀 수는 없었다.


소룡이 다시 복수를 위해 머나먼 둔황으로 떠난 길.

숭산 근처에 있는 표국의 지점에서 이 년여가 넘도록 소룡의 출도를 기다리던 여인.

남궁 숙은 소식을 가져온 소림에서 온 승려가 전한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는 소림에 객승으로 나와 있던 아미파의 비구니 이자 남궁 숙 에게는 사매 뻘이 되는 금정 신니의 제자 혜불 이었다.

“ 광룡은 출도 후 그대로 둔황을 향해 떠난 듯합니다.

광룡은 소림 방장의 배려로 참회동에 들어 그간 소림에서 단 한 명만 완성하였었다는 금강불괴공을 수련한 모양입니다.

그가 금강불괴 공을 완성했는지는 모르나, 참회 동에서 나와 소림의 장문 방장까지 배웅을 한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대공을 완성한 듯 보입니다.

다만, 그가 오래도록 이곳에서 사매가 기다린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터, 무엇 때문에 사매를 한번 만나지도 않고 살지 죽을지 모를 멀리 있는 길을 그냥 떠났는지는 모르겠군요.

광룡이 떠날 때 장문인을 통해 내게 사매에게 소식을 전해달라 말한 것이 전부입니다.”


산중에서 오래도록 불도에 매진하던 혜불은 정말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궁 숙을 바라보았다.

남궁 숙은 혜불의 말을 듣고는 잠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표국 지점의 안채에 마련된 남궁 숙의 거처는 복잡한 표국에서도 비교적 호젓한 장소에 있어서, 창밖으로는 늘 푸르른 대나무밭이 보였다.

그녀는 문득 일 년여 전 둔황을 향하던 대나무 숲에서 소룡에게 태극권을 전수하던 시절이 떠올라 빙긋 미소를 지었다.


“ 전 알 것 같습니다.”

알 수 없을 슬픈 미소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 숙을 보면서 혜불은 의아해졌다.

“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혹여 누가 될까 염려되어 차마 다가오지 못하는 마음.

그런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제 욕심만 내어 사람을 취하려 한다면 그것도 사랑이긴 하지만,

진정으로 아낀다면 자신의 앞길이 불투명하고 목숨까지 내걸어야 가능할 거로 생각한다면 마땅히 차라리 외면하려고 하는 게지요.

저는 그 마음 알 것 같습니다. 다만.”


잠시 말을 멈춘 남궁 숙이 창밖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고 그 눈가가 파르르 떨리며 눈물이 맺히는 걸 혜불은 바라보았다.


“ 사랑하는 마음은 그런 게지만,

안타깝게도 그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은 모르는 게지요.

그렇기에 더욱더 함께하고픈 게 여자의 마음이라는 것을요.

비록 그것이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셈이 된다고 하더라도요.”

혜불은 남궁 숙의 처연한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 아직 그가 떠난 지 오래지 않으니, 사매가 다시 쫓아갈 수도 있을 터, 왜 그냥 포기합니까? ”

남궁숙은 혜불의 말을 들으며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 제 마음이 그렇다는 것도 해도 이미 결심을 하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제가 그의 마음에 뭔가 흔들림을 줘서 그 오랜 세월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온 사내의 뜻을 어그러지게 하는 것 또한 사랑한다는 사람이 할 짓은 아닙니다.”


불자로서 남녀 간의 정을 알지 못하는 혜불은,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는 그것 같은 두 남녀의 마음들을 도무지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서도 희미하게나마,

사랑이란 자신을 누르고 상대를 위한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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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정무문 (情武聞) 20.04.22 196 2 9쪽
43 사망탑 死網塔 20.04.21 204 3 14쪽
42 사망탑 死網塔 20.04.20 213 3 11쪽
41 사망탑 死網塔 20.04.16 263 3 8쪽
40 사망탑 死網塔 20.04.15 247 3 9쪽
39 사망탑 死網塔 20.04.14 279 3 8쪽
38 사망탑 死網塔 20.04.13 300 3 9쪽
37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10 297 4 9쪽
36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8 325 3 8쪽
35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7 313 4 9쪽
»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6 330 3 8쪽
33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2 360 3 6쪽
32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1 349 3 8쪽
31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31 355 3 8쪽
30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30 363 3 10쪽
29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7 385 3 9쪽
28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6 412 3 9쪽
27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5 396 2 10쪽
26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4 393 2 8쪽
25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3 400 3 8쪽
24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20 418 3 8쪽
23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9 416 3 9쪽
22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8 425 4 10쪽
21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6 441 3 9쪽
20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3 449 5 9쪽
19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2 451 3 9쪽
18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1 455 4 9쪽
17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0 474 4 13쪽
16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6 51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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