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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남화북룡전 南花北龍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4 15:56
최근연재일 :
2020.04.22 17:1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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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39
추천수 :
174
글자수 :
181,617

작성
20.03.3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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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사망유희(死亡遊戲)

DUMMY

괴노인의 혹독한 힐난을 들은 소룡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노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광승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을 때부터 나중에 해남으로 가서 남해 검문의 데릴사위가 되기까지.

광승의 제자로 고련 苦練을 쌓을 때도 공짜라 행운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늘 광승의 먹을거리와 술을 마련하기 위해 무공 수련의 도중에도 부둣가로,

들판으로, 상가로 나서서 어린 나이에도 끊임없이 밥벌이해야 했다.

사정을 모르는 무인들의 눈에 그들은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불구의 어린아이를 부려먹어 앵벌이를 시키는 것이라고 볼 지경이었었기에, 결코 공짜로 무술을 배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광승의 무공으로 어느 문파이든 표국이든 의탁을 했다면 훨씬 호의호식하며 살았을 것이다.

생각하면 광승이 어린 제자가 세파를 헤치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오랜 비무행의 끝에 남해에 가서 마음이 약해져 데릴사위의 길을 선택한 것도 자기 자신.

누구의 탓을 할 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남해 검문의 힘을 이용하여 광풍사의 정보를 얻으려던 마음이 있었으니 자기 자신부터 문제가 있었음이다.

머나먼 둔황까지 적도를 쫓고도 타호의 말에 휘말려서 함정에 빠진 것도 물론이다.

말을 나눌 필요도 없이 다리를 건넜다면 자신이 함정에 빠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 남궁 숙이 쫓아오지 않았으면 그대로 계곡에서 죽었을 목숨이었다.

그녀의 말을 따라서 숭산으로 온 것도, 온전한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다.

한때 고개를 숙이더라도 소림의 힘을 빌려서 복수할 수 있는 공력을 행여나 얻을까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소룡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참회동에서 오랜 시간 면벽 수행을 했어도 불만과 억울함 투성이던 마음이 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그 모든 일과 과오의 선택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하지만 여러 불운의 구덩이에서도 언제나 자신을 돕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에 의해 자기 자신은 불구의 몸을 가지고도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건 운이 몹시 나쁜 인생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 나빴던 운에서도 늘 좋은 운들과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 자신을 이끌어준 것이니 감사해야 옳았다.

소룡의 눈에서 회한의 눈물이 흘렀다.

“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야 제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온 어리석은 인간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세상을 살아갈 이치를 깨닫게 해주신 어르신께 감사드립니다. ”

소룡이 고개를 조아리자, 괴인은 픽 하고 웃었다.

“ 그놈 참. 포기도 빠르고 이해도 빠르구나. 게다가 반성도 빠르니 나쁘지 않아.

일단 내가 네놈의 몸뚱어리가 얼마나 망가졌나 한번 살펴볼까.

괴인은 갑자기 머리를 한 바퀴 빙글 돌렸다.

그러더니 온몸에서 우두둑거리며 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노인이 소룡과 밖을 가로막은 철창으로 다가섰다.

철창 사이가 비좁지는 않아도, 성인이 통과할 만한 틈은 아니었는데,

노인의 몸이 마치 고양이처럼 흐느적거리며 철창을 쑥 통과해서 소룡이 서 있는 철창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소룡은 깜짝 놇랐다.

마치 괴인의 몸은 밀가루 반죽처럼 매끄럽게 철창 사이를 빠져나와 어느새 소룡의 앞에 서 있었다.

” 아니, 어. 어떻게?“

” 귀신 보듯이 하지 마라. 천축 天竺의 유가 기공 瑜伽氣孔 을 익히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괴인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소룡의 오른손 완맥(緩脈)을 덥석 잡았다.

그러더니 한참 동안 맥을 짚었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번개같이 손을 놀려 소룡의 상, 중, 하 단전을 툭툭 치면서 훑었다.

이전의 소룡이라면 당연히 반사적으로 방어를 할 것이었으나 그러기엔 괴인의 손이 너무 빨랐고,

지금의 소룡으로서는 내공을 잃은 상태에서 방어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난 괴인은 번뜩이는 안광(眼光)을 빛내며 소룡을 쏘아 보았다.

“ 네 놈은 지금, 내공을 잃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뜬금없는 괴인의 말에 소룡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괴인은 입맛을 쩍 하고 다시더니 화난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내공 이란 게 뭐냐? 기를 모아서 응축해서 쓴다는 거지.

그런데 그 기를 가지고 인간 이 낼 수 있는 수십 배 힘을 쓴다.

너처럼,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놈이 기공을 써서 안 죽고 살아난다는 그런 거.

그게 정상 같으냐?

너처럼 내공을 수련해서 바탕으로 삼은 놈들은 내공만 조금 딸리면 속된 말로 기도 못 펴는 바보가 아니냔 말이다.”

소룡은 큰 바위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금 무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게 무언가.

내공이다.

내공을 극성(極性)으로 수련한 자들만이 무공의 극의(極意)를 터득한다고 배웠고.

무림각파 어디나 그런 문제 때문에 파별로 고유의 내공심법이 있는 것이고,

그 내공심법을 통해 각 사문에서 비전되는 무공들을 배우는 게 아닌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짐작한다는 듯 괴인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 내 말이 믿기지 않느냐?

좋다. 그럼 네 놈이 공력을 잃었다고는 하나,

보통 사람만큼은 기운을 쓸 것이니 네 팔목을 묶고 있는 쇠사슬로 내 머리를 힘껏 쳐 보아라.”

소룡은 괴인이 좀 미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러려니 생각했다.

기공을 몸에 두르는 건 소룡도 많이 쓰던 수법.

그 기공으로 어지간한 무기들의 타격을 막아내는 것은 내가고수들이라면 대부분 할 줄 아는 것.

물론 상대방이 보통의 무인이어야지 기공을 수련하여 기를 뿜는 자라면 서로의 내공 여하에 따라 다치기도 하겠지만.

소룡은 오른팔을 힘껏 휘둘러 괴인의 정수리를 향해 쇠사슬을 내리쳤다.

‘땅’ 예상하지 않은 소리.

소룡은 잠시 쇠사슬이 내려친 힘만큼 반탄력이 돌아와서 팔목이 시큰거렸다.

보통 기공을 두른 자를 타격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미끄러진다.

직접 피부에 닿기 전에 기공의 반탄력에 의해 빗맞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그대로 상대방 머리를 타격한 느낌.

그런데도 마치 쇠 종을 두드린 것처럼 반탄력이 그대로 돌아오고, 쇳소리가 난다.


오기가 치솟은 소룡은 잠시간 미친 듯 쇠사슬을 휘둘러 괴인의 전신을 타격했으나,

처음과 마찬가지로 쇳소리만 나고 강하게 반탄력이 돌아와 오히려 소룡의 팔뚝은 멍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대신 괴인의 누더기 같은 옷은 쇠사슬 매질을 못 견뎌 더욱 너덜너덜 해가 졌다.

제풀에 숨이 차 버린 소룡이 헉헉대며 숨을 골랐다.

역시 내공이 없어진 상태에서 기운을 오래 쓰는 건 힘들다.

괴인은 말없이 자신의 누더기 같은 상의를 올려 배를 보였다.

소룡은 순간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멀쩡한 피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괴인의 드러난 뱃살은 온통 상처 흉터투성이.

그 중에서도 하단전에 해당하는 부분은 불 인두 로 지져 버린 듯 깊은 상처.

그건 괴인 역시 내공을 강제로 잃어버렸다는 의미.

더는 내공을 쌓을 수도 없는 몸뚱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놀랐느냐? 내공도 없이 네 무식한 공격을 몸으로 버텼다는 것에.”

소룡은 괴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내공을 잃은 줄 알았다면 그처럼 공격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괴인이 축골공 縮骨功 을 써서 자신의 감옥에 들어올 때부터 소룡은 당연히 내공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

괴인이 소룡에게 앉으라고 한 뒤 자신도 털썩 주저앉았다.

“ 광승과 광오는 내 사질이다.”

괴인의 말에 소룡은 다시 한번 놀랐다.

두 고승의 사백 치곤 너무 젊어 보이지 않는가?

아무리 어두운 동굴이라곤 하지만.

“ 놀랄 거 없다. 나의 나이는 그들과 비슷하다.

다만 선사가 나를 늦게 제자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네 놈처럼 졸지에 항렬이 높아졌을 뿐 이니까.

넌 혹시 소림 무술이 외공과 내공 파로 나뉘어 있었다는 얘길 들은 적 있느냐?”


들은 바 있었다.

본디 소림의 무공 근원은 천축국에서 넘어온 달마대사였다.

천축의 무공은 철저하게 육신을 고련 하여 신기에 가깝게 단련하는 무공.

그러나 중원 본래의 무공이랄 수 있는 도교의 심법 같은 것들이 더해지면서 내가 기공이라는 무공의 길이 열렸다.

그것은 인간의 잠재적인 힘을 끌어내어 본디 육신이 가진 기운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하게 한다는 것.

의술과 경락들에 관한 기술들이 더 해지면서 중원의 무공은 철저하게 내공을 바탕으로 한 무술로 자리 잡았다.

반면에 근본을 따지는 무리가 있었으니 이른바 ‘외공(外功)’파라 할 수 있었다.

이 들은 소림의 근본 무공은 육신을 단련하여 지극에 이르는 것이라 주장하였고,

아미 파와 같은 불문에서 시작된 유파들에는 그렇게 외공 파를 지지하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이백여 년 전 무당, 화산, 청성, 공동, 종남, 곤륜 등 도교를 중심으로 내가 기공에 치중하던 무리와 소림, 아미의 외공파 들이 모여 어느 무공이 올바른 것 인가를 판가름하자는 회합이 열렸는데 강호에서는 이 회합을 일컬어 숭산논검이라 불렀다.

결과적으로 내공파 가 외공 파를 압도했다.

그 이후로 소림과 아미에서도 외가 기공을 수련하던 무리는 알게 모르게 핍박을 받았다.

그리고 이백 년이 흐르자 외공만을 수련하는 무인들은 강호에서 표국 이나 군인이 된 무리를 빼곤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정신적 수련이 육체적 수련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지금 괴인은 스스로가 지금은 거의 잊힌 외가 기공 파의 전인임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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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정무문 (情武聞) 20.04.22 197 2 9쪽
43 사망탑 死網塔 20.04.21 204 3 14쪽
42 사망탑 死網塔 20.04.20 213 3 11쪽
41 사망탑 死網塔 20.04.16 263 3 8쪽
40 사망탑 死網塔 20.04.15 248 3 9쪽
39 사망탑 死網塔 20.04.14 280 3 8쪽
38 사망탑 死網塔 20.04.13 300 3 9쪽
37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10 298 4 9쪽
36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8 325 3 8쪽
35 대도무문(大刀無門) 20.04.07 313 4 9쪽
34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6 330 3 8쪽
33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2 361 3 6쪽
32 분골쇄신 (粉骨碎身) 20.04.01 349 3 8쪽
31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31 355 3 8쪽
»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30 364 3 10쪽
29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7 385 3 9쪽
28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6 412 3 9쪽
27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5 397 2 10쪽
26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4 393 2 8쪽
25 사망유희(死亡遊戲) 20.03.23 401 3 8쪽
24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20 418 3 8쪽
23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9 416 3 9쪽
22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8 425 4 10쪽
21 용쟁호투 (龍爭虎鬪) 20.03.16 441 3 9쪽
20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3 449 5 9쪽
19 구곡간장 九曲肝腸 20.03.12 451 3 9쪽
18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1 456 4 9쪽
17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10 474 4 13쪽
16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6 51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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