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메레이라 대륙에서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첫 번째 이야기
Prologue. 메레이라 대륙의 예비 역사학자
메레이라 대륙의 기술발전사를 보면 꼭 마주하게 되는 암흑기가 있다.
인외 종족의 출몰과 유목민족의 대규모 이동, 재해 등이 겹친 시기였다.
그전까지 융성했던 문화와 기술이 사라지고, 동시에 마법도 사라진 그런 시절.
중간 암흑기라고 불린 이 시기는 기사와 귀족들과 교황들의 시대였다.
다시 말해 다른 이들은 죽도 밥도 못 먹는 시기였다는 거다.
그전까지는 꽤 괜찮게 살았던 마법사들에게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였는지, 당시 마법사들의 기록을 보면 늘 이런 식의 푸념이 있었다.
【이제 오래된 지혜와 지식 역시 사라지고 있다.
오망성의 지혜를 누군가에게 전해주면 좋단 말인가.】
지혜의 전승을 신경 쓰다니, 아마도 이 시기 초기의 글일 거다. 후기에는 이 정도의 형편도 안 됐으니까.
남겨진 기록을 보면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들고, 때마다 역병이 창궐했다.
생활수준 하락이 모든 분야에서 심각했는데, 지금 기준에서 보면 이때 귀족들은 짐승처럼 살다 죽었다.
당연하게도 모든 학문이 쇠퇴했다.
학문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배워서 당장의 생존에 도움이 안 되면서 배우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법 역시 학문으로 칠 수 있다.
마법.
자연에 가득한 마나의 기운을 활용하는 다섯 가지 방법.
마도학, 약초술, 정령술, 연금술과 마나공학,
신화시절에나 환영받던 기술들이다.
꿈과 같은 말들이고.
지상에 없는 것들을 상상을 통해 끌어내는 비전의 학문.
말이 쉽지, 대다수는 사기꾼이다.
그럼에도 어떤 노인들은 마법에 얽힌 전설을 동네 아이들에게 떠벌리곤 했다.
“위대한 정령술사가 말을 달릴 때는 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단다. 물의 정령과 불의 정령이 번갈아 나타나 적을 물리쳤고, 그녀의 손에서는 번개의 정령이 투창처럼 뻗어나갔지.”
그녀가 누군지는 다 알 거다.
에밀리아 포겔.
이 시리즈가 재밌긴 하다.
나도 어렸을 때는 밤이고 낮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전설은 그녀가 죽은 지 오래고, 제자를 두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어린 시절 재밌게 들었던 전설을 되짚어 보게 되는 게 슬플 뿐이다.
학자가 되려는 지금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과연 에밀리아 포겔이 실존하는 인물이었을까?
젊은 나이에 그토록 대단한 성취를, 귀족들과 왕들이 덜덜 떨 정도의 힘을 보였던 이가 왜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무슨 이유로 제자마저 남기지 않았는가.
전설은 그녀의 실종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악하고 강력한 이종족과의 대규모 전쟁을 앞두고, 에밀리아 포겔은 정령왕의 힘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고, 그 힘으로 이종족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전쟁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자신 역시 산화하고 말았다고.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증거가 남았을 거다. 허황된 이야기에도 일말의 사실이 포함되는 경우가 꽤 많으니까.
많이 부풀려서 그렇지.
그러나 메레이라 대륙의 모든 역사학자가 전설의 증거를 찾지 못 했다.
에밀리아 포겔은 전설 속의 인물 아닐까?
내 학위 논문은 에밀리아 포겔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녀가 실존했는지, 과연 우리가 그녀의 실증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휴식이 필요한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인 것은 오래된 마도학 자료였다.
학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책은 아닌데, 심심풀이 삼아 읽어보려고 샀다.
헌책방에서 싼값으로.
아마 누구도 이 오래된 책의 가치를 몰라봐서 그런 가격이 됐을 거다.
나 역시도 그렇게 큰 기대를 갖고 있진 않다.
책의 제목은 <안드레이프, 어느 마법사의 기록>
이 책은 ‘오망성의 지혜’ 운운하며, 초반 넋두리를 하지 않았다.
오 좋은데?
스윽 내용을 한 번 훑어본 결과로는 나름 제자를 뽑아 키웠다는 거 같다.
또 한 가지 더.
에밀리아 포겔을 언급하는 내용이 없어 흥미로웠다.
메레이라력 450년 전후의 마도서는 대부분 향수에 젖은 말투로 에밀리아 포겔을 언급하곤 하는데······.
이 책에는 그게 없지?
에이미 포그리아라는 인물이 나오긴 하는데, 이름은 비슷하다.
그 행적에 대해서 전설처럼 허황되게 떠들어대지 않기도 하거니와 굉장히 진솔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면에서 추억보정을 제거한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게 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책장의 삽화가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몸집에 긴 수염을 기른 마법사가 말에 오르고 있다.
“나갔다 온다, 뉘른하르트 공 오시면 말씀 잘 드리고.”
“네, 다녀오세요.”
옆 방에서 지도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 잠시 한눈을 팔았다.
어라, 방금 삽화 속의 말이 움직인 것 같았는데?
착각이겠지.
차분히 글자를 읽어나가는데, 또다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흑백으로 인쇄된 종이가 천연색처럼 느껴졌다.
책속으로 너무 빠져들었나.
‘요새 너무 책을 많이 봤나. 헛것이···.’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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