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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랑고래
작품등록일 :
2024.02.09 05: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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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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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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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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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The Hanged Man

DUMMY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서른네 번째 이야기






막심은카드에 그려진 도안과 글자, 상징을 살펴보느라 정신없다.

막심다운 행동이었다.

올던이 나섰다.


“재밌겠네. 뭘 생각하라고?”


“지금 가장 알고 싶은 미래든 무엇이든, 아무거나 떠올려 봐. 누군가의 과거도좋고. 준비되면 이야기하고.”


올던은 빙긋빙긋 웃으면서 할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멈은 카드를 여러 차례 뒤섞었다. 한 장 떨어져 나온 카드를 그대로 펼쳤다.


The Hanged Man.


거꾸로 매달린 남자였다.

한 발이 줄에 묶여 대롱대롱 하늘에 떠 있었다. 말뚝 같은 것도 보이고. 그림 참 희한하네.

안드레이프를 처음 만날 날이 떠오르기도하고.


“거꾸로 매달릴 아이여. 너의 운명이 다가온다. 사람들 앞에서 하늘과 땅이 뒤집히기 싫다면 늦지 않은 시기에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거다.”


음.

안 좋은 카드인가?

궁금한 게 있다.


“더 자세히 알아봐 줄 수도 있다. 세 장의 카드를 뽑을 수도 있고, 나인테리어를 할 수도 있어.”


할멈의 말을 흘려 들으며 질문했다.


”그런데 내가 거꾸로 매달렸던 건 어떻게 알았어? 안드레이프가 얘기해줬나? 안드레이프랑 아는 사이야?”


기대감을 품은 눈빛들이 점술사에게 쏠렸다.

저 사람이 안드레이프의 지인?

지인의 지인은 곧 인맥.

오늘 인맥 좀 제대로 쌓아 보나?

시민 하나가 할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뭐야, 동쪽 성문 밖의 은자잖아.”

“뭐하는 사람이길래?”

“베드로 교의 심판관 피해서 도망다니는 사람.”

“혹세무민이야?”

“혐의가 있어서 붙잡혀 들어갔었는데, 풀렸대.”

“재주도 좋네. 거기서 어떻게 나온 거래.”


어? 이게 아닌데.

노파는 자기한테 과분한 관심이 쏟아지자 적이 당황스러워했다.

막심이 올던에게 귓속말했다.


“알고 있었어?”

“뭐를?”

“저 할멈, 나머지 사람들 점괘는 다 좋은 이야기만 해 줬어.”

“아니, 표정이랑 눈빛이 이상해서 떠 봤어.”


할멈은 눈이 올 거 같다며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빨래를 널어놓고 와서······”


올던과 막심은 할멈의 수상쩍은 뒷모습을 바라봤다.


“뭔 속셈이었을까?”

“글쎄······.”


더 알아보고 싶었는데 가 버렸지 뭐야.

아쉬워라.


“그런데 질문이 뭐였어?”

“스승을 계속 괴롭히던 인간의 미래.”

“스승님을 누가 괴롭혀? 그 대단한 사람을.”

“시청 갔다올때마다 표정이 썩었잖아.”


그랬나.


막심의 어깨 뒤를 훑어본 올던이 재빨리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군수업자 마이클이 꼬마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



루밀레코의 집사는 점술가에게 짤막한 보고를 들었다.


실패라.

열 살짜리 꼬마를 꾀어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임무인데, 이걸 실패를 하네.

입을 다물고 조용히 지내라는 의미에서 잔금을 줬다.

말만 안 새어 나가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



축제가 열린 광장.에

어느 소녀가 안드레이프게 다가왔다.


“저, 안드레이프 씨. 이렇게 좋은 날에 이런 말씀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괜찮다, 얘기해보라는 안드레이프의 말에도 소녀는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사라지셨어요. 어떻게 된 건지 알아 봐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요. 걱정돼요.”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루밀레코 파의 시 위원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가씨,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말이야, 이런 날에 그런 이야기를 해서 되겠어? 안드레이프 씨는 아주 중대한 임무를 맡으신 몸이라고. 그런 바쁘신 분께서 아가씨의 일을 어떻게 살펴주겠어?”


안드레이프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며 막아서는 거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방인이었던 자신에게 말해 볼 정도면, 소녀의 고민은 해결이 안 되고 있을 터였다.

누구도 해결을 못 해 주고 있거나, 의지할 데가 없거나.


다른 한 명의 루밀레코 파 시 위원이 안드레이프에게 말을 건넸다.


“술꾼으로 유명한 남자입니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금방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아니요, 저희 아버지는 그래도 매일 저녁 집에 들어오셨어요. 며칠 전부터 보이지가 않으셔서······”


딱한 사정이긴 해도 안드레이프는 신이 아니었다. 마키아 시의 모든 안타까운 사정을 돌보기엔 몸이 부족했다.


“아가씨 아버님을 찾게 되길. 큰 도움이 못 돼 미안하네.”


열혈 시민위원은 안드레이프의 눈짓을 눈치챘다.


‘뭐가 있나 보지?’


안드레이프가 수심에 젖은 소녀를 가리켰다. 얼굴이 낯에 익은데···

주조업자의 딸이던가?

열혈 시민위원이 소녀에게 다가갔다.


“이 좋은 날에 추위를 부르는 표정이라니. 무슨 걱정이라도 있니?”


소녀의 사연을 듣고 나니 떠올랐다. 며칠 전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던 타번의 고주망태 젠트리.


“글쎄······. 나도 큰 도움은 못 되겠구나.”


루밀레코 파의 시 위원들이 흩어지는 게 보였다.

열혈 시민위원은 소녀의 뒷머리에 대해 속삭이듯이 말해줬다.


“저기, 저 3층짜리 타번 보이니? 그곳 2층에서 네 아버지를 본 적이 있어.”


무슨 일이 없길 바라며. 전 젠트리든, 현 젠트리든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거다.


소녀는 축제의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



여전히 안드레이프가 고려해야 할 것이 꽤 많았다.

전초기지를 거주할 만한 방어기지로 바꾸는 데는 돈이 많이 들었고, 시간도 문제였다.

우선 무엇으로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


먼저 찾아간 목수의 이야기.


“목조로 짓는 게 가장 싸기는 한데, 물과 불이 문제일 겁니다. 그런데 방어용 건물을 목재로 지어도 되나요?”


목수의 말대로 불이 붙으면 도망갈 곳이 사라졌다.

인세에 강림한 지옥이 되겠지.

앞에는 적, 뒤로는 불길.

이걸 알면서도 돈을 아끼려고 물어본 말이었다.

역시, 안 되겠지.


조적 방식은 어떨까.

벽돌을 쌓아서 짓는 방식.

벽돌공과의 상담.


“지금 남아있는 벽돌이 없어서요. 고운 흙을 가져다 굽고, 말려야 하는데, 시간이 충분하세요?

첫 가마에서 벽돌 나오는 데 10일 걸리는데, 그 양으로는 부족해요. 다 못 지을 겁니다.”


벽돌이 나온다고 해도 그걸 쌓아 올릴 조적공의 임금이 꽤 비쌌다.


“한 명당 하루에 15코퍼고, 최소단위가 2인 1조인데, 작업 환경을 보니 두 명이선 좀 어렵겠네요.

세 명이서 작업을 해야 될 거고요. 그리고···”


뜸을 들이던 조적공은 수당 이야기를 꺼냈다.

겨울 해안가 프리미엄을 고려해야 한다며.


“한 2할 정도는 더 붙여서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마키아 시의 영웅이라 하셔도, 수당은 수당이니.”


벽돌 가격을 빼고 하루에 54코퍼.

흠.

생활비보다 조적공 임금이 더 나가겠네.


마지막으로 알아본 건 채석장에서 캔 돌을 그대로 옮겨다 쌓는 방식. 가장 비싸고 무겁고 돈이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금방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난감하네.’


전초기지를 완전한 실내로 만드는 건 이처럼 요원한 일이었다.


임시방편으로 헝겊과 동물의 가죽을 이용해 천막을 치기로 했다.

싸고 현실적인 선택지는 그것뿐이었다.


‘바람막이라도 있는 게 낫지.’


방어기지 말고도 한 가지 더.

고블린 토벌에 들어간 비용이 벌어들인 현상금보다 많았다.

적자라는 말.

1실버 남짓 차이긴 해도 적자는 적자다.

돈 쓸 곳은 여전히 많았다.


‘겨울용 활동복도 사야 하고. 따뜻하고, 물이 안 스며드는 짐승 가죽이 좋겠는데.’


안드레이프가 말하는 짐승털 망토는 비싸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거주지가 필요했다.

고블린을 더 잡아야.


***


축제가 끝나고 며칠간 안드레이프는 성문을 여러 번 드나들어야 했다.

이러저러한 직공들을 만나고, 텐트를 사 와서 치고, 셋집에서 짐을 옮겨오고.


“이거 여름에 쓰는 거 아니야?”

“겨울에도 쓰면 되지.”

“바람에 다 날아가게 생겼는데?”

“지지대 박고 고정하면 괜찮을 거다.”


안드레이프가 산 천막은 설치도 간편하고, 재료도 별로 안 들어가서 이동하기에도 편리했다.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연기도 잘 날아갔고.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단열이 잘 안됐다.

봄가을에 쓰면 딱일 거 같다.


어설프게나마 정리되어갔다.

슬슬 2차 토벌에 나서야 할 때였다.


‘이번에는 우리가 공격에 나선다.’


공격이라고 해야 할지, 사냥이라고 해야 할지.


***



여기 사냥에 나선 또 다른 생물들이 있다.

숲속에서 무리를 나눠 먹이를 찾는 고블린들.

카히르 일족의 분대는 조그맣고 동글동글한 검정 덩어리를 발견했다.


‘토끼똥?’


점점이 이어지는 발자국. 아마도 물을 마시러 가는 길일 거다. 토끼 굴에 먹이를 저장해 놓을 순 있어도, 물은 못 하니까.


“우리 토끼 잡는다, 카히르. 여기서 몰아간다, 너희는 저기로 돌아.”


겨울 별미를 맛볼 찬스다.

모두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자리를 잡았다는 신호음이 들리고 이쪽에서도 움직였다.

발자국을 따라 전진.

쌓여 있는 눈이 움직임을 불편하게 했어도, 고블린을 막을 순 없다.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추울수록 따끈한 걸 먹어야.’


카히르 둥지에 있는 커다란 놋쇠 항아리에 넣고 푹 고아서 탕으로 먹으면 그만일 거다.


뒤로 돌아갔던 고블린들이 신호를 보냈다.


“샘물에 없다, 토끼.”


그렇다면 토끼가 남겨 놓은 흔적을 따라 계속 가 보자.

토끼의 발자국은 이어지고 이어져서 숲 밖으로 나갔다.


‘저기 있다.’


고블린들이 좌우로 흩어져서 토끼를 둘러쌌다.


‘카히르, 자세 낮추고 매복.’


토끼가 먹고 있는 게 뭐지?

말린 사과?

점점이 이어진 말린 사과를 따라왔나 보네.

누가 뿌렸을까, 저 사과는.


“어서 와라, 고블린들아.”


인간의 말소리와 함께 수북하니 쌓여 있던 눈더미 뒤에서 인간이 나타났다.

구릉으로 알았는데, 아니었어?


‘거대한 인간? 매복?’


고블린 분대장은 소리를 질렀다.


“튀어!”

“카히르, 둥지에서 만나자.”


고블린 분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


고블린들에게는 허벅지까지 닿는 폭설이었다. 말을 몰아가면 고블린들은 따라잡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모조리 잡으려면 그런 방식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머리를 좀 썼다.


말을 타고 나와 샘물 주위에서부터 건포도와 말린 사과를 뿌리며 토끼를 유인했다. 계속해서 내리는 눈이 말 발자국을 덮었다.

다시 전초기지로 돌아와 말을 묶어 뒀다.


“당근아, 우리 나갔다 올게, 잘 지켜줘.”


말을 데리고 나가 매복을 하긴 어려웠다. 참호라도 미리 파뒀으면 모를까.


토끼가 곧 나타났다. 한 마리를 산 채로 잡아 두고, 한 마리는 미끼로 묶어놨다.

그리고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숲을 향해 도망가는 고블린 앞으로 눈보라가 몰아쳤다. 꼬마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사해, 바람정령들이야. 블리자드라고 해.”


앞에선 눈뜨기 힘들 정도로 몰아치는 바람, 뒤에서는 안드레이프와 물골렘이 쫓아왔다. 여기에 더해 침엽수 위의 꼬마들이 눈덩이를 던졌다.

돌을 넣은 눈덩이다. 맞으면 피가 흐른다.

이러다 다 죽겠네.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달리다가 숲속으로 뛰어들자.

눈 밑에 숨겨뒀던 그물이 오므라들면서 고블린들을 낚아채 올렸다.


왼쪽으로.

왼쪽으로 달리다가 샘물을 향한 오솔길로 빠져들자.

이쪽 길에는 매복도, 그물도 없었다.


“살았다.”

“안 쫓아오지?”


뒤를 돌아보면서 달리면 쓰나.

발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면서.

선두의 고블린이 내디딘 땅이 꺼지면서 다 같이 추락했다.


고블린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우리가 파 둔 구덩이에 이렇게 한 번에 빠져주시다니.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하고요, 아프지 않게 단칼에 귀를 베어 드리겠습니다.


그날 카히르 일족의 분대는 전부 귀 컷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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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마르-아시르의 결단 24.03.16 63 4 12쪽
» The Hanged Man 24.03.15 58 7 12쪽
33 마법사의 상상력 24.03.14 61 4 13쪽
32 맥없이 물러나는 고블린 (수정) 24.03.13 66 8 12쪽
31 그는 좋은 추장이었습니다 +1 24.03.12 80 5 12쪽
30 타리우스의 소문 (2) +1 24.03.11 81 6 11쪽
29 타리우스의 소문 +2 24.03.10 98 9 15쪽
28 토성을 지켜라! (4) +3 24.03.09 108 12 12쪽
27 토성을 지켜라! (3) 24.03.08 117 9 12쪽
26 토성을 지켜라! (2) +1 24.03.07 114 6 13쪽
25 토성을 지켜라! +1 24.03.06 123 7 12쪽
24 고블린 전쟁의 서막 (3) 24.03.05 112 8 12쪽
23 고블린 전쟁의 서막 (2) +1 24.03.04 117 8 12쪽
22 고블린 전쟁의 서막 24.03.03 119 8 12쪽
21 낙하산 대장과 함께, 출정! +2 24.03.02 121 9 12쪽
20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3) +1 24.03.01 123 7 14쪽
19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 24.02.29 128 8 12쪽
18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4.02.28 142 8 13쪽
17 마도학과 무기술 24.02.27 158 9 13쪽
16 정령술에 능숙한 기사 24.02.26 150 11 12쪽
15 계획의 재구성 (5) 24.02.26 138 9 13쪽
14 계획의 재구성 (4) 24.02.25 149 9 12쪽
13 계획의 재구성 (3) +1 24.02.24 146 11 11쪽
12 계획의 재구성 (2) +4 24.02.23 153 12 12쪽
11 계획의 재구성 24.02.22 151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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