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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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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고래
작품등록일 :
2024.02.09 05: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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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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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타리우스의 소문 (2)

DUMMY

[메레이라 대륙에서 살아가는 법] 서른 번째 이야기






열혈 시민위원은 시민들의 시선이 모이고, 장내의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한 쪽 손을 들고 서 있었다.


“잠시만 말을 멈춰주십시오, 시민 여러분.”


시민들의 여론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려면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잡담 소리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 정도면 됐다.


“경비대원에 대한 처분을 결정하기 전에, 우리가 한 가지 더 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키아 시의 사라진 경비대장입니다.

그에게는 경비대원들의 기강 해이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잘못된 지시를 하여 시의 운명을 좌우할 토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금 안드레이프와 그의 두 제자들은 대장없이 서쪽벌판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토벌대의 책임자는 경비대장이었습니다.

그는 어디 있습니까? 그의 말과 그의 검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마키아 시를 수호하겠다는 경비대장의 맹세는 어디로 간 겁니까?

도대체 경비대장 자이트는 어디에 있습니까?”


잠잠해지던 시민들의 술렁임이 커졌다. 열혈 시민위원이 일렁이는 분노의 파도, 그 고점에 올라탔다.


“진실을 사랑하고 거짓말을 모르는 시민 몇 분을 모시고 서쪽 성문 위로 올라가 볼까 합니다. 우리가 본 것을 토대로 우리가 직접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


성벽 위에서는 안드레이프의 진지가 잘 내려다보였다.


씻지 못 해 꼬질꼬질한, 자지 못 해 초췌해진 세 명의 인간, 그리고 말 한 마리. 줄로 묶어 세워놓은 수십 마리의 고블린과 고블린들의 피로 젖어 있는 마른 풀 따위가.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안드레이프가 손을 흔들었다. 거센 바람이 불면 가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도, 대체로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우리 쓸 물건을 세고 있었습니다.”

“경비대장은 어디 갔습니까?”

“······첫 전투 이후 사라졌습니다.”


안드레이프가 잘 모르겠다는 듯 무덤덤하게 이야기하자,

올던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숲에서 고블린을 끌고 와서는 남쪽으로, 저 멀리 사라졌어요.”

“뭐라고? 꼬마야, 잘 안 들리는구나.”

“그 자식은 고블린한테 쫓기다가 도망갔어요.”


다시금 웅성거림이 커졌다.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그대로 도망간 게 아니라? 끌고 왔다고?”


거듭 꼬마의 말을 확인하고도 믿어지지 않아, 열혈 시민위원은 성벽에 동행한 타리우스에게 사실인지를 확인했다.


“사실입니다. 고블린 앞에서 도망쳐 오더니 이 방어기지 앞에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다른 중도파 위원이 물었다.



“자네가 어제 봤을 때도 지금과 비슷했었나?”

“어제는 훨씬 더 격렬하고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위망도 지금처럼 촘촘하지 않았어요. 경비대장 자이트는 싸우려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었습니다.”


타리우스는 시민위원과 다른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보고 들은 바를 설명했다. 고블린의 대대적인 공세와 세 명이서 이걸 막아내던 장면을.


시민들의 마음속에 경비대장은 이미 유죄, 사형이었다.


“후퇴를 하거나 패배를 하는 건 이해합니다. 아군을 사지에 몰아넣고 도망가는 건 뭡니까!!! 이건 배신행위입니다.”

“교수형에 처해 성문에 걸어 놓읍시다.”

“겁쟁이에게 교수형이라니요! 72참형에 처해야 합니다.”


루밀레코파 위원들은 불똥이 튈까 봐 노심초사하며 말을 삼갔다. 이때다 싶어 한 중도파 위원이 불꽃을 붙였다.


“경비대장을 부실 선정하고, 그 과정에서 시 위원회의 규정을 어긴 루밀레코를 고발해야 합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부실 선정이요?”


위원회 사정을 모르던 시민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여들었다.


열혈 시민위원의 이마가 살짝 굽이쳤다. 안드레이프와 의사소통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책임소재를 묻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일의 순서를 잊어서는 안 됐다.


‘전쟁에 나선 이들을 지원하는 게 먼저다.’


그렇다고 중도파 위원을 말리기에도 좀 그렇다. 이번 기회에 잘못된 것을 끊어내기는 해야 되니까.


‘고생하고 있는 아군을 먼저 배려해 주는 게 저 사람에겐 어려운 일이었을 지도.’


마키아 시는 고블린과 전쟁 중이었다. 전쟁에 먼저 집중하길 바랬다.


단 세 명에게 시의 운명을 건다는 게 우습게 보일 수 있어도, 현실은 인정할 순간이다.

마키아 시는 군사적으로 허약했다. 성벽이 없었다면, 진작에 사라졌을 도시였다.


루밀레코의 사병들은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열혈 시민위원은 마키아 시의 남은 희망에 집중해야 했다.


‘경비대는 치안 유지 말고는 별 도움이 안 되면서 돈이 많이 들어간단 말이야.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고.’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다. 비용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먼저 안드레이프에게 물자를 내려주고.


루밀레코의 고발.

중도파 위원이 인기 관리를 위해 던진 말이긴 했어도,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다.

루밀레코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했으니.


시 위원에게는 면책특권이 부여되어 있었다. 따라서 고발이 이뤄지려면 루밀레코가 시 위원에서 물러나야 했다. 아니면 물러나게 하든가.


“자진해서 사퇴하지 않으면 불신임 절차에 들어가야 합니다.”


중도파 위원이 경비대장 건을 주도하고 나서자 도시 가 시끌시끌해졌다. 부실 선정을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불투명했다.


‘곧 시들해지지 않을까. 의혹은 있는데, 증거도 증인도 없다.’


열혈 시민위원과 타리우스는 안드레이프에게 보급품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우선 안드레이프가 불러준 물품들을 사 들였다. 이 일에는 타리우스가 발품을 팔았다.

열혈 시민위원이 나서 지급을 보증하자 외상으로 리스트의 물품을 구해오는 건 일도 아니었다.


【 빵 5리브라.

건포도 1리브라.

가죽주머니에 넣은 물과 벌꿀주 되도록 많이.

소시지와 치즈 바구니 하나 분량.

짚단 매트리스 셋

모포 셋

육포 1리브라.

땔감 반 호멜. 대장간에 주문한 스틸레토 대거 두 자루.

고블린 포박용 밧줄 많이.

출정 때 못 가져온 뿔피리, 폭죽. 】


“안드레이프 씨, 이거 준비는 다 했는데요. 어떻게 보내드립니까? 성벽 밖으로 던질까요?”

“우리에겐 바다가 있습니다.”


안드레이프는 방어진지 끝의 해안절벽을 가리켰다.


“해안가 바위에 와서 신호를 주세요. 밧줄을 내려드리겠습니다.”


모든 지휘관은 보급선을 염려에 둬야 한다. 지금의 방어기지는 성문을 나섰을 때부터 고려했던 위치였다.

날씨만 좋다면, 해안절벽을 통한 보급선이 끊길 염려가 없었다.


물품 리스트를 불러줄 때 안드레이프의 생각은 이랬다.


‘날씨가 급변할 수도 있으니 삼일치 정도를 한 번에 받는다.’


이미 있는 물품과 합치면 5일 정도를 더 버틸 수 잇을 거였다.


이제 물품만 공급받으면.

그럼 장기전도 손쉽게 풀릴 거다.

장기전은 결국 체력과 보급품 싸움이었다.


***


다음날 아침.

바다는 잔잔했다.

타리우스와 그 동료 한 명이 해안절벽으로 접근했다.

무사히 물품이 올라오고, 대금을 치뤘다.


“이거 오늘까지 모은 고블린 귀요. 백스물일곱 마리. 시에서 이걸 환전하시고, 1할은 수수료로 떼 가세요. 뱃사공한테 품삯도 주시고.”


사공 역할을 한 타리우스의 동료는 손을 내저었다.


“군역세를 면제받고 대신 배를 저어 주기로 했습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기사님.”


타리우스도 거들었다.


“이미 시 위원이랑 얘기가 끝났습니다, 수수료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럼, 사흘 후에 뵙죠.”


타리우스와 사공이 멀어져 갔다.

그럼 물품비용만 치르면 되는 건가. 한시름 덜게 됐군.


올던을 보초로 세워놓고 막심에게 산수를 시켰다.

벽골렘 건설비용과 초기 물품 구매비용, 그리고 오늘의 보급비용까지 합해서


【 벽골렘 6마리를 위한 준보석류 : 30실버 = 3000코퍼

감베손, 스틸레토 대거, 나이프 등 장비류 : 210코퍼

땔감과 먹을 것, 마실 것 : 80코퍼

자그마한 뿔피리와 폭죽 하나 : 60코퍼

매트리스와 모포 등의 침구류 : 30코퍼

밧줄 세 묶음 : 30코퍼


총 3410코퍼. 】


막심이 혀를 내둘렀다.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는데요···”

“목숨으로 치르는 것보다는 낫지 않니.”


수입은 그만큼 되지 않았다.


【 안드레이프의 출정수당 이틀치 : 20코퍼.

고블린의 귀 127 : 2540코퍼.


총 2560코퍼. 】


골드로 환산하면 1골드가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꽤나 거금이었지만, 그보다 들어간 금액이 더 컸다. 850코퍼 차이.


“저, 스승님. 대장간에도 비용을 지불해야 할까요?”


막심의 말을 자세히 들어봤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군역세 대신 무기로 물납을 받으면 안 될까 하는 이야기였다.


‘막심은 정말 영리하구나.’


이제 아홉 살이 다 되어가는 조그만 아이가 벌써부터 세상의 이치에 이리 밝다니. 영특하다고 해야 할지, 조숙하다고 해야 할지.


“글쎄다, 그건 대장장이랑 시 위원회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구나.”


비용을 따져 본 후 받은 물품의 검수를 했다. 상하거나 잘못된 물건은 없었다. 보급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타리우스가 꽤 신경을 쓴 듯했다.


안드레이프는 확신했다.


‘이겼다.’


고블린들은 입이 많은 만큼 많은 수의 자원을 필요로 했다. 버티지 못할 거였다. 장기전은 곧 누가 오래 버티냐의 싸움.

보급이 비슷하다면 방어태세가 굳건한 소수에게, 교전비가 우월한 쪽에 훨씬 유리한 건 자명한 사실.


내친 김에 벽골렘을 하나 더 세웠다.


‘어차피 남겨봐야 당분간 쓸 곳이 없다.’


지금은 부족한 인원수를 대체하고, 피로도를 줄여야 했다.


골렘이 하나 더 늘어나자 마음이 든든했다.

하루가 지나면 토성의 모든 성벽이 벽골렘이 될 것이다.

벽골렘도 무적은 아니지만.


‘저장한 마나가 떨어질 때까지 공세를 이어가면 무력화가 되긴 하지.’


고블린들이 이런 사실을 알 거 같진 않았다.

안다 한들 어쩌리.

벽골렘 여섯이 마나를 전부 소진할 때까지 소모전을 펼치려면 얼마나 많은 숫자의 고블린을 갈아 넣어야 할까.


‘고블린만으로는 희생이 너무 많다. 오우거라도 데리고 오면 모를까.’


먹이 구하기 힘든 이 영역에서 고블린과 오우거가 연합할 가능성은 없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고블린 특유의 무지성 대공세를 취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양쪽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거다. 토성이 무력화되고 무너질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든 길을 열고 도망가야 할 거고, 고블린들 역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겠지.’


다행히 지금 고블린을 지휘하는 리더는 아예 상식이 없는 고블린은 아니다. 무지성 대공세는 상식적으로 채택할 이유가 없는 전술이다.

제대로 된 공성무기도 없이 성벽에 꼬라박는 걸 누가 하나.


이렇게 공멸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나면 피로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광기 어린 대공세만 아니라면, 이 토성은 함락되지 않는다.


전쟁은 집단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최후의 폭력수단. 그렇게 본다면 안드레이프는 자신의 의지를 거의 관철했다.


마키아 시가 빼앗긴 땅을 조금씩 되찾아 오겠다는 것.


승리가 눈앞이었다.



***



승리가 눈앞이든, 코앞이든 루밀레코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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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맥없이 물러나는 고블린 (수정) 24.03.13 66 8 12쪽
31 그는 좋은 추장이었습니다 +1 24.03.12 78 5 12쪽
» 타리우스의 소문 (2) +1 24.03.11 79 6 11쪽
29 타리우스의 소문 +2 24.03.10 96 9 15쪽
28 토성을 지켜라! (4) +3 24.03.09 105 12 12쪽
27 토성을 지켜라! (3) 24.03.08 115 9 12쪽
26 토성을 지켜라! (2) +1 24.03.07 111 6 13쪽
25 토성을 지켜라! +1 24.03.06 121 7 12쪽
24 고블린 전쟁의 서막 (3) 24.03.05 112 8 12쪽
23 고블린 전쟁의 서막 (2) +1 24.03.04 114 8 12쪽
22 고블린 전쟁의 서막 24.03.03 116 8 12쪽
21 낙하산 대장과 함께, 출정! +2 24.03.02 117 9 12쪽
20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3) +1 24.03.01 121 7 14쪽
19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 24.02.29 128 8 12쪽
18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4.02.28 140 8 13쪽
17 마도학과 무기술 24.02.27 156 9 13쪽
16 정령술에 능숙한 기사 24.02.26 147 11 12쪽
15 계획의 재구성 (5) 24.02.26 137 9 13쪽
14 계획의 재구성 (4) 24.02.25 148 9 12쪽
13 계획의 재구성 (3) +1 24.02.24 144 11 11쪽
12 계획의 재구성 (2) +4 24.02.23 151 12 12쪽
11 계획의 재구성 24.02.22 150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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