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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랑고래
작품등록일 :
2024.02.09 05: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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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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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의 재구성 (2)

DUMMY

[메레이라 대륙에서 살아가는 법] 열두 번째 이야기






마키아 시의 서기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고집불통인 남자였다.


‘이 법사를 어찌하면 좋아.’


읽고 쓰는 것만 간신히 하는 자신이라도 흐름은 읽을 줄 알았다.

위원회니 시장실이니 하는 윗분들 마음의 흐름.

그분들은 서쪽으로 또 누군가가 나가서 죽었다는 말이 들리는 걸 싫어했다.


‘마공학자 혼자서 고블린들을 어떻게 상대하겠다고······’


서기는 안드레이프의 얼굴을 기억했다. 축성위원회에 편지를 전해달라고 찾아오고, 보내고서는 결론을 알려달라며 여러 차례 찾아왔었다.


‘보수책임을 맡은 젠트리하고도 친해진 거 같던데······’


그래서 문제였다.

윗분들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라면, 규정에 없다며 무시해도 됐다.


‘토벌대 구성 규정은 살아 있지만,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사문화된 규정이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다.

무시하고 차나 한잔 마시면 됐다.

도시에 갓 정착한 뜨내기 상대로는 그래 왔다.

그러면 안드레이프는 뜨내기인가?


‘잘 모르겠다.’


마공학자 계열은 그래도 급이 있다. 마냥 무시하기는 껄끄럽다. 그리고 안드레이프가 만약 보수책임자와 꽤 친한 사이가 됐다면?

보수책임자는 시의 젠트리 중에 한 명을 선임하게 되어 있고, 소도시의 젠트리는 웬만한 위원회 사람들과 두루 친했다.


‘이 사람이 인맥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어떤 사정인지 모르니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웠다.

안드레이프가 아직 성밖의 셋집에 거한다는 걸 알았다면, 칼같이 대답하며 내보냈겠지만.

고심 끝에 답했다.


“제가 알아보고······”


그 때 시장의 비서가 점심을 마치고 들어왔다.


“서기님, 점심 먹어야지요?”


기분 좋게 들어온 비서의 눈에 고민 가득한 서기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을 막고 있는 거대한 남자의 등도.


“무슨 일 있어요?”


약간의 우연과 무지, 그리고 또 다른 요소가 하나 겹쳐 원래는 안 될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기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은 비서가 안드레이프에게 말했다.


“시장님이랑 상의해 볼 테니, 우선은 돌아가시죠, 법사님.”



***



시청 사무실의 2층에는 마키아 시의 시장실이 있었다. 소도시가 으레 그렇듯, 외장을 화려하게 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어서 수수하게 꾸며진 곳이었다.

시장은 비서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결론을 내려줬다.


“우리 도시에 거주하던 자유민도 아닌데 생사를 걱정해 줄 이유가 있나. 규정대로 20코퍼로 하고, 따로 토벌대 구성은 안 해준다고 해.”


간단한 일이었다.

더불어 부업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비서와 눈을 마주치며 한 마디 덧붙였다.


“지출은 규정대로 하고, 지급은 한 마리당 15코퍼로 ······.”


시장에게 고개를 숙인 비서가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점심을 마친 서기가 들어왔을 때 비서의 지시는 한결 더 간결했다.


“지출은 규정대로 하고, 지급은 한 마리당······”


이 부분에서 비서는 2층을 향해 턱을 올리며,


“15코퍼.”


그리고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12코퍼.”


이렇게 말해주고는 외근을 나갔다.

서기는 비서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 마공학자는 연줄이 없거나, 호구였다.

다시 말해, 용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숫자만 몇 개 바꾸는 건데, 뭐.’


시장에게 5코퍼, 비서에게 3코퍼, 그리고······.


***


다음날.

홀로 시청 건물을 나오는 안드레이프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토벌은 가능하다는데······’


기분이 매우 구렸다. 가격을 후려쳐도 적당히 해야지.

대다수의 자유도시는 방어를 주로 성벽에 의존했다. 평소의 치안유지를 위해 경비대를 고용하며, 큰 일이 생겼을 때는 용병단을 채용해 일임한다.

경비대와 용병을 채용하는 건 시의 크나큰 권한이자 의무. 이 부분만큼은 마키아 시 전체의 운영위원회가 정보를 공유하게 되어 있다.

투명성을 위해 용병 채용 규정을 만들어 공고도 했고.

그래서 그런 점을 믿고, 고블린 토벌에 나서겠다는 거였다. 적어도 제대로 돈은 지급해줄 거라는 계산 속이 있었다.

아니었다.

고블린 한 마리에 10코퍼.


‘어떤 놈이 또 돈을 빼먹고 있겠지.’


놈인지, 놈들인지.

공고와 규정에 명시한 금액, 이미 정해진 금액을 줄였다는 건 그 돈에 누군가 손을 뻗는다는 얘기였다.

덕분에 돈벌이가 반으로 줄어들게 생겼다.

이 개차반 같은 녀석들에게 호구로 보인 게 분명했다.


‘어딜 가나 돈 벌어다 주는 노예 신세니, 원.’


책상을 뒤집어서 반으로 접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느라 고생했다.


‘이대로 계약해야 하나.’


하늘을 올려보는 안드레이프에게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누군가 다가왔다.

얼굴을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경비대장이었다.


“안드레이프, 당신, 용병으로 지원할 겁니까?”


느낌이 별로다.

소문이 벌써 저 사람한테까지 퍼졌나?

경비대장은 코를 한 번 휑 풀었다. 어제저녁 서기에게 술을 한 잔 사고, 그는 정보를 하나 얻었다. 괜찮은 호구가 있다는 정보를.

지금 자신의 눈앞에 그 호구가 서 있었다.


“서쪽 성문은 열릴 때마다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안드레이프는 솟구치는 짜증을 참았다. 점점 표정이 굳어갔다.


“그래서 한 번 여는 데 얼마입니까?”


경비대장은 씩 웃고는 안드레이프의 얼굴을 올려봤다.

안드레이프의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오간다.

내가 정중하게 나가니까 만만해 보이는 건가?


“싯가요.”


제철 과일도 아니고 이건 무슨.

자기가 부르는 대로라는 거지?

안드레이프는 눈을 감았다. 이성의 끈이 끊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참자, 참자. 제대로 정착도 못 했는데, 벌써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된다.’


그 때 뒤에서 시청 서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안드레이프 씨. 아까는 말씀 안 드렸는데요······.”


또 뭐?

뭐가 더 있나?


“토벌 허가서에 인장 찍어드리는 데도 비용을 내셔야 하거든요.”


기어코 이 사람들이 이성의 끈을 끊어 놓았다.


***


야이개새끼들아아.

안드레이프가 분노에 찬 기다란 고함을 내질렀다.

서기는 잠깐 기세에 질려 물러섰다가, 곧 그런 자신을 다잡았다.


‘내가 물러설 게 뭐람.’


보잘것없는 게 짐승처럼 덩치만 커서 흥분하는 꼴이 우습고,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빴다.

공무를 하는 이 몸에게 욕을 한다고?

인맥도 없는 놈이, 지가 어쩔 건데.

여기 있는 경비대원이랑 경비대장을 다 두들겨 팰 건가? 그러면서 무사할 수는 있고?

서기는 그 정도 셈을 빠르게 돌릴 수 있고, 또 꽤나 강단이 있는 사람이었다.

약한 사람에게만.

강단 있는 마키아 시의 서기가 마저 말을 이었다.


“욕은 하지 마시고요. 인장 찍는 거 10코퍼 정도면 되거든요. 별거 아니······”


서기는 말을 맺지 못하고 공중으로 끌려 올라갔다. 멱살이 잡혀 올라가 목이 막혔다.

친절한 안드레이프 씨가 서기와 눈높이를 맞춰주고 있었다.

켁켁.

목을 잡은 손을 탁탁 건드리며 쳤다. 덜그럭하고 땅에 부딪는 나무 소리.

지팡이를 놓은 건가.

그 순간 뺨이 돌아갔다.

눈앞이 번쩍하며 귀에서 이명 소리가 들리고 세상이 돌아갔다.

뭐라도 말을 하고 싶은데.

어지럽다.

안드레이프가 온 광장이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너, 이 썅놈아. 다시 한번 말해 봐. 뭐라고? 고블린을 토벌하려면 돈을 내라고?”


시청광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경비대장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입을 막아야 한다.’


사건이 더 커지고 소문이 퍼지기 전에, 이 무식하게 힘만 좋은 인간의 입을 닫아야 했다.

인간은 도구를 쓰는 생물.


‘니가 아무리 힘이 좋아도 내가 먼저 칼을 빼들면 무조건 이긴다.’


허리춤의 칼집으로 손을 가져가며 낮은 목소리로 엄숙하게 선언했다.


“안드레이프 씨 그 손을 놓으시죠. 아니면 시장의 이름으로 치안권을 행사······”


안드레이프는 들고 있던 서기를 양손으로 잡아 머리 위로 올린 다음 경비대장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래, 이 도둑놈아. 니 동료 여깄다. 토벌대에 통행료를 받아?”


경비대장이 자기 몸을 덮친 서기를 옆으로 내던지고 붉게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지금 시간부로 당신을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그리고 치안방해 현행범으로······.”


말과 함께 허리춤의 칼집에 손을 갖다 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일어서기 전, 안드레이프의 무릎이 눈앞으로 다가오더니 이마 쪽에 세찬 통증이 느껴졌다.

충격을 감당 못 한 몸이 뒤로 나자빠졌다.

저항할 새도 없이 발로 밟혔다. 무게가 제대로 실린 장화가 손목을 짓눌러댔다.

팔목이 둘로 나눠지는 듯한 통증에 신음소리도 제대로 안 났다.

으헉.


‘갑옷 없는 부분만 밟아댄다.’


경비대장은 근육이 쪼개지는 듯한 충격을 몸 곳곳에 받다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 손과 발을 움직여 갑옷 없는 부분을 최대한 피하거나 막았다.

그러자 안드레이프도 이를 눈치챘다.


‘이게 잔머리를 굴리네.’


허리를 숙여 경비대장의 허리춤에서 칼을 칼집째로 떼어갔다.

칼을 빼서 저 멀리 내던져놓고, 칼집을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칼집은 공기저항을 받아 잘 안 휘둘러진다. 속도 손해를 보는 만큼 힘을 안 빼고 휘둘러도 되겠지.’


매타작이 다시 시작됐다.

경비대장이 몸통을 막으면 발목을 밟았고, 바닥을 굴러 발길질을 피하면 칼집이 목젓을 세게 쳤다.

경비대장이 맞는 모습에 놀란 사람들 두어 명이 경비원을 부르러 갔다.


안드레이프의 도구선택은 탁월했다.

안드레이프 같은 장사한테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으면 경비대장은 이미 기절했어야 했다.

칼집으로 때려서 더 오래, 더 많이 때릴 수 있었다.

경비대장이 땅바닥을 구르며 미친 들개가 두들겨 맞듯 맞는 동안 경비대원 둘이 다가왔다.


두들겨 맞는 경비대장을 지키려고 나섰던 건 좋았다.

그 정도는 해야 월급을 받지.

막상 거대한 남자의 흉흉한 기세를 마주치자 행동이 움츠러들었다.

창을 들고 앞을 겨눈 경비대원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찌, 찌른다. 진짜 찌를 거야······.”


한참 동안 엄포만 놓는 사이에도 경비대장을 향한 매타작은 멈추지 않았다.


‘대장님이 어째 점점 피떡이 되는 거 같아.’


경비대원은 망설였다.

창으로 상처를 내면 회복이 쉽지 않다.

배라도 찔리면 으,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창에 찔린 남자에게 끓는 기름을 부어 지혈을 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끔찍한 소리를 내며 고통에 일그러지던 남자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옆의 동료가 자신을 바라보며 재촉했다.


‘지가 찌를 것이지, 왜 나한테.’


그러는 순간에도 경비대장은 맞았다.

퍼억.

경비대장의 입안이 터졌는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더 이상 두고볼 순 없다.


‘니가 자초한 거다. 난 몰라.’


이름 모를 남자의 명복을 빌며 눈을 딱 감고 내질렀다.

그러나 경비대원이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명복은 무슨, 실력이 돼야지.

안드레이프의 덩치에서 나왔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유연하고 재빠른 회전과 함께 경비대원이 내지른 창이 물 흐르듯 안드레이프에게 넘어갔다.

순식간에 창의 소유주가 바꼈다.

경비대원은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이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이건 무슨 무술이지.’


안드레이프의 손에서 창이 장난감처럼 힘없이 부러졌다.

투둑.

안드레이프도 살짝 당황스러웠다.


‘이거······ 창이 왜 이래? 납품비리라도 있었나? 아무리 내가 힘이 좋아도 이렇게 쉽게 부러지면 안 되는데······.’


안드레이프는 어이가 없어 씨익 웃었다. 날 부분은 버리고 나무 부분을 휘두르면서 다가갔다.

창날이 몸에 박혔다 빠지면 상처가 커지고, 피가 크게 쏟아진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한 행동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창날은 쓸모없는 부위였다.

혹시나 의도치 않은 인명사고가 크게 나면 뒷감당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야수처럼 날뛴다 해서 내가 야수는 아니니까.’


물론 안드레이프의 그렇게 친절한 마음씨와 침착한 마인드를 경비병이 알 순 없었다.


‘설마 저 창대로 날 두들겨 패겠다는 건가?’


경비병은 안드레이프가 다가올 때마다 한 걸음씩 뒷걸음질했다.


“오, 오지 마.”


안드레이프의 험상궂은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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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맥없이 물러나는 고블린 (수정) 24.03.13 66 8 12쪽
31 그는 좋은 추장이었습니다 +1 24.03.12 78 5 12쪽
30 타리우스의 소문 (2) +1 24.03.11 78 6 11쪽
29 타리우스의 소문 +2 24.03.10 96 9 15쪽
28 토성을 지켜라! (4) +3 24.03.09 105 12 12쪽
27 토성을 지켜라! (3) 24.03.08 115 9 12쪽
26 토성을 지켜라! (2) +1 24.03.07 111 6 13쪽
25 토성을 지켜라! +1 24.03.06 120 7 12쪽
24 고블린 전쟁의 서막 (3) 24.03.05 112 8 12쪽
23 고블린 전쟁의 서막 (2) +1 24.03.04 114 8 12쪽
22 고블린 전쟁의 서막 24.03.03 116 8 12쪽
21 낙하산 대장과 함께, 출정! +2 24.03.02 117 9 12쪽
20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3) +1 24.03.01 121 7 14쪽
19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 24.02.29 128 8 12쪽
18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4.02.28 140 8 13쪽
17 마도학과 무기술 24.02.27 156 9 13쪽
16 정령술에 능숙한 기사 24.02.26 147 11 12쪽
15 계획의 재구성 (5) 24.02.26 137 9 13쪽
14 계획의 재구성 (4) 24.02.25 147 9 12쪽
13 계획의 재구성 (3) +1 24.02.24 144 11 11쪽
» 계획의 재구성 (2) +4 24.02.23 151 12 12쪽
11 계획의 재구성 24.02.22 150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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