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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랑고래
작품등록일 :
2024.02.09 05: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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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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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정령술에 능숙한 기사

DUMMY

[메레이라 대륙에서 살아가는 법] 열여섯 번째 이야기






단상에서 내려오면서 안드레이프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마음속으로 정했다.


‘해자 준설이 끝나는 대로 고블린 사냥을 해야겠다.’


해자 준설 기간에는, 당연하겠지만, 토벌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게 상식이었다. 한창 방어시설을 보강하고 있는데, 토벌하러 갔던 부대가 고블린 대군에 쫓겨 온다든가 하는 불상사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간간이 공사도 나가고, 때로는 올던과 막심을 가르친다.’


토벌 기간이 되면 당분간 생계는 현상금으로, 더 벌 수 있다면 좋고. 모아뒀던 돈은 집을 짓는 데 쓰기로.


지금 셋집 위치에 집을 지을까도 고민해 봤지만, 위치가 아쉬웠다.


‘이왕이면 좋은 데 지어야지.’


경치 좋고 인적 드문 곳에 마법사의 집을 짓고, 연구할 공간도 만들자. 한쪽에서는 마공학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도 괜찮겠지.

먼 미래의 꿈은 지금의 한 발짝부터.

고블린 사냥을 준비해야 했다.


초겨울을 알리는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왔고, 해가 지평선 쪽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도 하나 둘 집을 향해 흩어지고 있었다. 시장의 퇴근길을 막아섰던 사람들도 분이 가라앉아 갔다.

당장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광장을 빠져나가 남쪽 성문을 향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남쪽 성문길로 접어드는 안드레이프의 뒤를 올던과 막심이 쫓아갔다.


“스승,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슈욱하고 몸 돌리면서 한 번에 창을 뺐던데?”


보고 있었던 건가. 막심 역시 옆에서 조잘댔다.


“말씀 정말 잘하시던데요.”


올던과 막심은 안드레이프가 자신들의 스승이어서 우쭐대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강하고 말 잘하는 멋진 사람이 우리들 스승이라니. 안드레이프를 의심하고 못 믿었던 날들은 이미 기억 속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도 좀 알려줘.”

“그렇게 말하려면 무슨 책을 읽어야 해요?”


안드레이프는 떠들썩한 아이들의 말을 웃음으로 넘겼다.


“그런데 말은? 두고 왔니?”

“응. 거기 그대로 있을걸?”


그래.

별일이야 있겠니.

마당 안쪽에 매어둔 말을 누가 어쩌겠어.



***



어쩔 수도 있다.

그들은 시의 불량배들이었다.

폭력배라고 볼 수는 없고, 싹수는 노란, 그저 그런 양아치들.

가죽 공방에 도제로 취업한 옛 친구랑 한잔 걸치고, 남쪽 성문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아, 잠깐만. 나 소변이 마려운데······.”

“대충 갈겨.”

“아니, 아니야. 여기 세탁부들 쓰는 통이 있거든. 여기다 세제를 모아 줘야지.”

“저 병신, 뭐라는 거야.”


그러면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삭히지도 않은 오줌을 시발, 어느 옷에 붙여 먹으라고.”

“놔둬라, 저렇게라도 지 고추를 쓰고 싶다잖아.”

“닥쳐, 이 새끼들아. 이건 성수야, 성수.”


다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그게 성수면 임마, 니네 엄마는 성모 마리아냐? 어쩐지 아비 없는 놈처럼 굴더라.”

“너 그거 신성목독이야, 딸꾹.”

“저거 취했네. 혀 꼬이는 거 들었냐? 목독이양, 딸꾹.”


따라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양아치4가 세탁통에 소변을 봤다. 양아치들은 기다려면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거시기는 쪼매난한 게 졸라 오래 싸네.”

“여물어.”


그때 나무집 하나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창의 덧문 이 열렸다.


“아니, 거기다 오줌을 싸면 어떡해요, 이 쓰레기들아.”

“아줌마, 창 닫고 들어가 있어. 대 줄 거 아니면.”

“뭐, 뭐, 뭐라는 거야! 아줌마 아니거든?”


양아치 2와 3이 이죽거리면서 세탁부들의 집으로 다가섰다.


“어, 그러셔? 그러면 오늘 아줌마 돼보든가.”

“뭐 이딴 미친놈들이 다 있어.”


덧문이 쾅 하고 닫혔다. 세탁부들이 안에서 밖의 쌍놈들을 향해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쌍년들 입 놀리는 거 보소.”


양아치 1이 마당 한쪽에 매여 있는 말에게 관심을 보였다.


“야 ,저년들 건가 본데.”


양아치 4가 양아치 1을 앞서며 말 안장에 발을 올렸다.


“난 너무 취해서 이걸 타고 가야겠다.”

“저 병신, 저거 또 염병한다. 말 탈 줄은 아냐?”


낄낄낄낄.

양아치 4는 안장에 발을 올리다 헛디디며 말의 옆배를 건드렸다. 안 그래도 긴장했던 말이 깜짝 놀라 앞으로 두 세 발짝 뛰었다. 말이 매여 있던 나무가 살짝 휘어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를 본 양아치 2와 3의 표정에 사특한 웃음이 번졌다.


“어, 이것 봐라. 제법 앙탈 부리면서 반항하는데?”

“길들여볼까?”


양아치 1이 말했다.


“니들이 말을 길들여서 뭘 어쩔 건데, 그냥 끌고 가.”

“그러는 넌 끌고 가서 뭘 어쩔 건데?”

“광산마을에다 팔면 되잖아.”


오.

양아치 1의 신박한 얘기에 모두가 솔깃한 표정이었다.

광산마을은 마키아 시 동쪽 성문 밖에 있었다.

거리가 조금 되는 편이라 집과 도시만 오고 가는 얼간이들한테 걸릴 일이 없었다. (이 양아치들은 정상적으로 일하며 사는 모든 인간들을 얼간이라고 불렀다.)

안 그래도 술값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양아치들은 묶인 줄을 풀고 안드레이프의 말을 마당에서 끌어냈다.


그렇게 그들은 셋집을 향해 돌아오던 안드레이프와 마주쳤다.


“거기 아저씨, 스톱. 우리가 이 말을 꺼내면 지나가. 우리가 말야, 말 다루는데 서툴거든.”


양아치 2는 교통정리를 맡았다. 맡은 바 임무대로 다가오는 안드레이프와 올던 일행을 멈춰 세웠다.

술이 약간 깬 양아치 3은 안드레이프의 거대한 떡대에 다소 눌리는 느낌이었다.

양아치 2를 뒤로 잡아당기며 귀에 속삭였다.


“야, 봤어? 저 아저씨 얼굴에 상처?”


안드레이프는 이 녀석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깨를 한 번 풀고 올던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내맡겼다. 스승의 의도를 짐작한 올던이 질문했다.


“그래도 지팡이가 있는 게 낫지 않아?”

“그거 흑단나무야. 썼다간 얘네들 죽는다.”


안드레이프가 앞쪽의 양아치 둘을 밀치고 자신의 말 쪽으로 다가갔다.

고삐를 당기며 오던 양아치 4와 마주했다. 술냄새가 풍겨왔다.


“오늘 내 꺼가 된 말이거든. 아저씨가 이 말 살래?”


말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막심이 항의하려 할 때, 올던이 낮게 속삭였다.


“스승한테 맡겨. 아까 그거 한 번 더 보자.”


안드레이프가 보여준 눈부신 몸 움직임이 눈에 선했다.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양아치 4는 아직 분위기 파악이 안 됐다.


“야, 내가 말하잖아. 너 뭐 돼? 왜 사람 말을 씹냐고, 이 자식아.”


양아치 1은 심상찮은 안드레이프의 덩치와 분위기에 바짝 긴장했다. 품 안의 단도를 쥐고 언제든 칼집에서 꺼낼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

안드레이프의 무심하게 착 가라앉은 눈이 양아치 1과 4를 보고는, 뒤쪽의 2와 3을 한 번 둘러봤다.


양아치 4가 말고삐를 놓고는 안드레이프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근데 너 좀 크다? 어깨 좀 내려봐. 눈이······”


아아아.

양아치 4는 말을 맺지 못 하고 비명을 질러야 했다.

안드레이프의 양손에 잡힌 팔이 그대로 꺾이며 뼈가 부러지는 기분나쁜 소리가 났다.

투두두둑.

양아치 4가 비명을 내지르던 순간, 양아치 1은 바로 칼을 꺼내 들며 눈앞에 보이는 안드레이프의 옆구리를 찔러 들어갔다.


안드레이프의 약점을 찌를 셈이었다. 이쪽이라면 사각지대. 방어할 수 없다.

생각대로였다.


‘됐다. 덩치가 아무리 커도 저 상태로 옆은 못 보호하거든.’


양아치 1은 싸움센스가 있는 편이었다. 망설임도 없고. 보통 사람에게는 양아치1의 방식이 분명 통했을 거였다.


그러나 안드레이프는 마법사였다.

싸움방식이 달랐다.

단도가 안드레이프의 몸에 닿기 직전에 양아치 1의 눈앞에서 번쩍하고 강한 불빛이 터졌다. 햇빛을 마주한 것처럼 강렬한 느낌이었다.

눈알이 알싸해지면서 타는 듯한 느낌에 눈물이 흘렀다.


양아치 1이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고, 주춤거리는 사이 안드레이프는 양아치 2를 공략했다.

술기운이 과한 놈을 발로 걷어찼다. 중심을 잃고 자빠진 놈의 상체를 발로 밀어서 눕힌 다음, 머리를 연달아 찼다.

그 옆의 양아치 3이 의리를 지켰다.


“너, 이 새끼. 뭐야?”


소리도 지르고 주먹도 휘둘렀다. 그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한 셈.

안드레이프는 양아치 3이 뻗어 오는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턱에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이어지는 안드레이프의 연타가 모두 정통으로 들어갔다.

눈 흰자를 보이며 쓰러지는 양아치 3.

안드레이프는 돌아서서 아직도 제대로 눈을 못 뜨는 양아치 1을 향했다.

단검 든 손목을 잡고 비틀었다.

으악.

손목뼈에 강해지는 엄청난 힘에 몸부림치며 자신도 모르게 몸이 반 바퀴 돌아갔다.

끄으윽, 소리와 함께 손에서 단검이 떨어졌다.


“올던, 단검을 주워라.”


서서히 양아치 1의 시력이 돌아왔다. 한 명의 동료는 기절해 있었고, 두 명은 고통 속에 바닥을 기고 있었다.

어깨 뒤로 넘어간 팔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안드레이프의 목소리.


“내 말 들리나?”

“들, 들립니다.”

“부러지고 싶나?”

“아, 아니요. 그것만은······.”


뼈가 부러지면 큰일이다.

우선 양아치들이 사는 쪽에는 제대로 된 약초술사가 없었다. 있다고 해도 골절상 치료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적절하게 치료한다고 해서 제대로 붙을지도 몰랐다.


‘그 얘기는······’


그동안 싸움질을 할 수 없다는 거다. 오른손을 못 쓰는 양아치가 누구를 협박하기도 어렵고.

돈을 버는 중요방법이 끊긴다는 거다.

안드레이프의 목소리가 머리통을 울렸다.


“일어나면 니 동료들을 챙겨서 도시 안으로 돌아가라. 복수를 할 거면 체인메일이라도 챙겨입고 제대로 무장을 해서 오고. 그렇게 와서 결투를 신청하면 받아주겠다. 기사와 추는 왈츠, 그 리듬이 어떤 건지 알려주지.”


양아치 1은 멍청이가 아니었다.

자기들이 이길 수 없는 상대를 건드렸다는 걸 방금의 말로 십분 이해했다. 그것도 꽤나 강한 사람을. 자존심 같은 게 있다면 어디 제대로 한 번 덤벼보라는 자신감 섞인 경고도.


“죄, 죄송합니다. 자비를 부탁드립니다.”


안드레이프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안드레이프는 양아치 1의 팔을 풀어주며 부가서비스를 넣어줬다. 무릎 뒤를 걷어차고, 자세가 낮아지는 양아치1에게 수도를 세게 한 대 선물해줬다. 목 뒷덜미에 정확하게 떨어진 타격을 맞고, 양아치 1은 허물어지듯 무너졌다.


볼 일을 마친 안드레이프는 양아치1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가 말고삐를 잡았다.


“들어가자.”


올던은 좀비 같은 소리를 내며 땅바닥을 기고 있는 양아치 4의 팔을 힘주어 밟고 지나갔다.

으어어.

연달아 막심도.

으어.


당신의 부러진 뼈가 아예 아작나기를.

숲의 어머니와 정령의 이름으로, 에이멘.



***



올던은 방금 봤던 싸움을 되짚어봤다.

원래의 빛을 숨기고 양아치 앞으로 몰려든 빛의 정령이 포인트였다.


‘정령들이 싸움의 판도를 바꿔 버렸다.’


잊혀지지 않았다.

안드레이프의 통제를 따르던 빛의 정령들이 일순 모든 힘을 다 해 빛나던 장면이.

그리고 이에 연계한 안드레이프의 기막힌 움직임들.

다시 떠올려 봐도 감탄만 나왔다.


‘그렇게 싸울 수도 있구나. 정령을 그렇게 쓸 수도 있어.’


산딸기 숲에서의 일도 떠올랐다.

산성 멧돼지의 특성을 이용해서 불의 정령이 활약하던 모습도.

몸을 잘 단련하고 정령술까지 같이 익힌다면, 굉장히 쓸모가 많을 것 같았다. 이 시대에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득이 됐다.


‘하도 날을 든 강도들이 많으니.’


아까 그 양아치처럼.


‘스승한테 검술도 배우고, 정령술도 배우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나?’


희망에 부푼 올던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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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The Hanged Man 24.03.15 57 7 12쪽
33 마법사의 상상력 24.03.14 61 4 13쪽
32 맥없이 물러나는 고블린 (수정) 24.03.13 66 8 12쪽
31 그는 좋은 추장이었습니다 +1 24.03.12 80 5 12쪽
30 타리우스의 소문 (2) +1 24.03.11 81 6 11쪽
29 타리우스의 소문 +2 24.03.10 98 9 15쪽
28 토성을 지켜라! (4) +3 24.03.09 108 12 12쪽
27 토성을 지켜라! (3) 24.03.08 117 9 12쪽
26 토성을 지켜라! (2) +1 24.03.07 114 6 13쪽
25 토성을 지켜라! +1 24.03.06 123 7 12쪽
24 고블린 전쟁의 서막 (3) 24.03.05 112 8 12쪽
23 고블린 전쟁의 서막 (2) +1 24.03.04 117 8 12쪽
22 고블린 전쟁의 서막 24.03.03 119 8 12쪽
21 낙하산 대장과 함께, 출정! +2 24.03.02 121 9 12쪽
20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3) +1 24.03.01 123 7 14쪽
19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 24.02.29 128 8 12쪽
18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4.02.28 142 8 13쪽
17 마도학과 무기술 24.02.27 158 9 13쪽
» 정령술에 능숙한 기사 24.02.26 150 11 12쪽
15 계획의 재구성 (5) 24.02.26 138 9 13쪽
14 계획의 재구성 (4) 24.02.25 149 9 12쪽
13 계획의 재구성 (3) +1 24.02.24 146 11 11쪽
12 계획의 재구성 (2) +4 24.02.23 153 12 12쪽
11 계획의 재구성 24.02.22 151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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