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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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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고래
작품등록일 :
2024.02.09 05: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6:0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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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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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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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맥없이 물러나는 고블린 (수정)

DUMMY

[마법사로 살아가는 방법] 서른두 번째 이야기








안드레이프는 이 절호의 학습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온다, 온다.”

“준비!”


올던과 막심이 신이 나서 외쳤다.

벽골렘이 모두 자리를 잡고 나자, 고블린들은 그저 현상금 벌이용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정령술 수업용 교재가 되기도 했다.


오늘의 실습 대상은 토성 안쪽의 눈치를 보며 최대한 몸을 숙이고 접근해오는 고블린들이었다.

시체 수거반.


“발사!!”


막심은 대지에 가득한 물의 기운을 활용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는 습기가 가득했고, 마나 역시 풍부했다.


“에게?”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어정쩡한 덩어리가 조금 흩뿌리다 그쳤다.

눈으로 보는 결과는 좀 초라해도, 아이디어는 좋았다.


막심의 정령술이 모자른 건 아니었다.

나이를 고려하면 훌륭했다.

공기 중의 습기를 응결시켜서 물로 바꾸고, 고블린에게 뿌린다는 게 말로만 쉬운 일이다.


이제 올던의 차례.

두근대는 긴장감을 누르며 앞으로 나섰다.

올던은 오랜 시간을 거쳐 떠올린 회심의 정령술을 선보이려고 했다.


앞으로 나선 올던이 수거한 고블린들의 무기에서 뜯어낸 고철 쪼가리를 뿌렸다.

공중으로 철 쪼가리를 던질 때마다 바람의 정령들이 이를 붙잡고 고블린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전격의 마나를 활용해 대기 중에서 번개를 불렀다.

삐직, 삐직. 뽁.

하늘 저 위에서 전격 쥐의 수염이 나타나는 듯싶더니 사라졌다.

망연자실한 올던.


“뭐야, 그게. 하하하.”


의기소침했던 막심이 크게 웃었다.

안드레이프는 진지하게 평가해줬다.


“여름이라면 정말 잘 통했을 거 같구나.”


창공에 맴도는 전격의 마나를 활용해보겠다는 거 괜찮은 발상이었다.

발동조건을 못 맞춰서 그렇지.

두 정령을 연계해서 써보겠다는 아이디어도 뛰어났고.


“자, 이번 주 생활비는 벌어놔야지.”


안드레이프가 나섰다.

우선 바람의 정령으로 눈을 가리고.

세차게 바람이 불어 마른 풀들을 뒤흔들었다. 고블린들이 바람을 피해 눈을 가린 사이 말을 타고 달려나간 안드레이프가 지팡이를 공중 위로 휘둘렀다.


“반칙이다, 스승. 무기술을 쓰는 게 어디 있냐?”


있어 봐라.

무기술을 쓰려는 게 아니니까.


“올던, 스승님 옆에 저건 뭐야?”


물과 얼음이 뒤섞인 조각상 같은 것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안드레이프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바람의 정령이 또 다른 마나를 이끌고 지팡이 끝의 마나석으로 휘몰아쳐 왔다.

물의 정령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모여든 물의 정령과 마나들이 일순 뻗어나가 조각상을 더 크게 만들었다.


“물골렘?”


저기엔 준보석이 필요 없나?

아, 내 관념을 깨라고 했었지.


***


안드레이프는 낭패한 표정을 감췄다.

물골렘은 도망치는 고블린을 얼어붙게 했다. 부가효과는 괜찮았는데.

의외로 물골렘은 고블린을 광역으로 잡아내는 데는 효율적이지 않았다. 이거 스승 체면이 말이 아니군.

올던과 막심은 새로운 정령활용법을 본 걸로 만족한 듯하다.


‘다행이군.’


물골렘으로 물을 뿌린 위에 전기를 흘릴 셈으로 전격의 정령을 불렀다. 노랑 돌고래의 모양으로.


“오? 스승, 이 물고기는 뭐야?”


···?

처음 보는 물고기가 나타났다.

코가 뾰족하니 길고, 등 위로 넓은 지느러미가 달린 생선들이 땅바닥에서 튀어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머나먼 땅에서 전래한 책에 저런 모양의 생선이 그려져 있긴 했는데··· 훨씬 크지 않았던가?’


청새치라고 했던 이 물고기들은 퍼져나간 물 위에서 더 빨라졌다.

뾰족한 앞코를 찌르며 쾌속으로 전진해 꽤 많은 고블린들을 지나쳤다.


심장이 멎은 듯 바로 쓰러져 버리는 고블린, 사지를 떨며 눈이 뒤집히는 놈, 단백질 타는 냄새 위로 암모니아 냄새를 더하는 녀석.

수많은 고블린이 쓰러졌다.

짝귀가 될 운명을 받아들이다니, 고맙다.


안드레이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효과가 확실하긴 한데, 오늘 전격의 마나가 뜻대로 활용이 안 되네?


정령술, 참 어렵다.

이러니 아무도 안 배우지.

안드레이프 모자 위에 앉아 있던 물의정령이 한 소리 했다.


- 정령이 그럼 인간들 뜻을 다 따라주리?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이렇게 통제가 어려워서야.



***



올던은 차분히 숫자를 셌다.


“서른 여덟, 서른 아홉, 마흔···”


총 마흔 다섯.

막심이 고블린 귀를 넘겨받아 다시 세 봤다.


그리고 타리우스에게 내려보냈다.


“마흔 다섯 개에요, 타리우스 씨.”

“응, 알겠어. 안드레이프 씨는 언제쯤 돌아온대?”

“아직 모르겠어요. 말이 없던데요.”

“그래, 몸조심하고.”


타리우스는 친근한 형 같았다. 나이대도 그렇고, 스스럼 없고 붙임성이 좋아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기분이좋아졌다.

올던과 막심은 기분이 좋았다.

첫 원정이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서 쉴 수 있었다.


“올던, 집에 가면 뭐 먼저 할 거야?”

“내가 집에 돌아가면은 불정령을 이용해서 물부터 데울 거야. 따뜻한 물을 만들어서 모락모락 반신욕을 즐길 거라고.”


그리고 갓 구운 부드러운 빵과 양지에서 말라가는 빨래들.

언제 돌아가지?

꿈에 부푼 두 꼬마가 복귀 일정을 물어봤는데 안드레이프가 뜻밖의 대답을 했다.


“여기가 이제부터 우리의 집이다.”

“에?”

“뭐?”


올던이 재빨리 반박에 나섰다.


“아니, 여기는 좀, 그래. 바닷바람이 다 불어오고 춥잖아. 좋은 집 두고 왜 여기서 고생을 해.”


안드레이프는 요지부동이었다.


“시에서 벽돌을 사 올 거다. 목수도 불러서 지붕을 놓을 거고.”


“마법사의 소굴은 어쩌고. 좋은 데가 있다며, 정령의 천국 같은 곳이. 저 안쪽에 좋은 데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너 고블린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숲속에서 살 거냐? 고블린들이 니 뒤통수에 칼을 날려도 좋아?”


그건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여기 산다니···.


안드레이프는 전초용 방어기지를 당분간 있을 집으로 꾸미려고 했다.

방어가 좋은 이곳에서 살면서 고블린을 토벌하다가, 치안이 안정되면 천천히 이사 가자는 계획을 들려줬다.


올던과 막심은 안드레이프의 말에 상당히 일리가 있어 수긍하면서도 갑작스런 환경변화가 어리둥절했다.


춥고, 바람 새고, 지붕 없고.

너무 거지꼴이잖아.



***



고블린들은 싸울 의지를 잃어갔다.

먹을 건 여전히 부족했고, 반수 가량이 이탈해 둥지가 있는 산쪽으로 돌아갔다.


“리더, 우리는 간다. 남아있는 고블린들을 챙겨야 해.”

“리더, 우리도 반수는 보낼게. 둥지의 고블린들은 지금쯤 먹을 게 떨어졌을걸.”


추장들이 매일 같이 마르-아시르를 찾아왔다.

오슈르령의 징집병들만큼 개판이었다.


날이 추워지면서 굶주림은 심해지고, 숫자는 줄어들었다.

산발적으로 이어지던 공세는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상대의 보급선을 끊지도 피로도를 늘리지도 못 하면서 작전은 목적을 잃었고, 전망은 어두웠다.


어두운 밤이면 늑대소리가 들렸고, 포위망을 가로지르며 곰이 달려들었다.


안드레이프가 두번째 보급을 받은 날,

마르-하르-아시르는 포위망을 풀라고 명령했다.


더 큰 피해를 입기 전에 패배를 인정하고 산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


흐리흐리한 날씨였다.

새로 뽑힌 경비대원들은 서쪽 성벽의 경계를 철저히 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 이상징후가 포착됐다.


“저거, 지금?”

“어? 어??”


고블린들이 물러난다?

믿기지 않는 현실을 확인한 경비대원이 뿔피리를 주워들었다. 시 위원회에 알려야 했다.

그러나 숙련도가 부족해 약속된 소리가 안 나왔다.


“줘 봐. 내가 불어볼게.”


마찬가지다.

결국 발로 뛰어야 했다.


“보고하고 올게.”


경비대원이 계단을 뛰어와 시청 사무실로 달려가는 모습을 본 시민들이 무슨 일이 났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서쪽에서 또 뭔 일이 났어?”

“대공세인가?”


경비대원이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 열혈 시민위원이 출입문을 박차고 나왔다. 뒤따르는 비서와 서기, 관종 시민위원.


“서기는 어서 다른 시민위원들에게 알리게.”


경비대원까지 네 명이 서쪽 성벽으로 달려 한달음에 올라갔다.


 보고가 사실이었다.


‘고블린이 물러나고 있다.’


2년 만에 거둔 값진 승리였다.

신에게 감사기도를 올린 열혈 시민위원이 다음 일을 살폈다.


“비서, 어서 가서 광장의 경비대원에게 종을 울리라 하게.”


성벽 위를 기웃거리던 시민들이 말을 전하면서 점차 소문이 퍼졌다.


“서쪽에 큰일이 났대.”

“큰일이 아니라, 큰 경사가 난 거래.”

“내 말이 그거야.”

“그래서 뭔 일인데?”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추측들이었다.


열혈 시민위원은 안드레이프에게 다시 한 번 확인을 거쳤다.


“이거 지금 후퇴하는 거 맞습니까?”


안드레이프가 크게 웃으며 머리 위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막심, 우리 폭죽 한 번 시원하게 터뜨릴까?”

“가자, 올던. 쏴 버려!”


서쪽 성벽 밖에서 폭죽이 올랐다.


안드레이프의 확인을 받은 관종 시민위원은 광장으로 갔다. 얼굴을 내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존경하는 마키아 시민 여러분, 여러분한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참으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오늘, 마키아 시는 고블린의 공세를 물리쳤습니다.···


뎅 뎅 거리는 맑은 종소리가 마키아 시의 하늘 위로 퍼져나갔다.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모여드는 족족 이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내 도시 곳곳에서 함성소리가 터져나왔다.


“안드레이프 만세!!! 마키아 시 만세!”


베드로 교의 대축일을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흐리흐리하던 하늘에서 첫눈이 내렸다. 포근한 함박눈이었다.


일 잘하는 열혈 시민위원도 이날만큼은 흥분해서 앞뒤가 없었다.


성문을 열게 하고, 토성까지 뛰어나와서 안드레이프를 설득했다.


“안드레이프 씨. 지금 들어오시죠.”


안드레이프는 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이 흐렸습니다. 다시 눈이 온다면 시계가 안 좋아 질 겁니다.

고블린들이 기만전술을 피는 걸 수도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방어에 전념하고, 내일 들어가겠습니다.”


흐음.

마지막까지 열심이시구나.


안드레이프는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던데.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



열혈 시민위원은 눈 쌓인 벌판을 바라봤다.


안드레이프의 활약 덕분에 이제 마키아 시로 돌아올 수도 있을 땅을.


“물어볼 게 있습니다.”


겨울바람이 한 차례 그들 사이를 쓸고 가며 입을 막았다. 바람이 지나고 열혈 시민위원은 얼굴을 한 번 손으로 비벼 눈가루를 걷어냈다.


“그 정도의 무위와 능력이라면 어느 곳에 가서 정착을 해도 될 겁니다. 굳이 마키아 시를 택하신 이유가 뭡니까?”


“저와 아이들이 머무를 공간을 위해서죠.”


올던과 막심이 고개를 내밀어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토끼가죽으로 짠 모자를 쓰고 눈 쌓인 토성위로 머리를 내민 모습이 어미를 기다리는 작은 동물 같았다.


‘귀엽긴 하군.’


열혈 시민위원이 원했던 답은 아니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여쭤봐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말은 마키아 시에서······”


열혈 시민위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자기의 생각을 골랐다.

무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되도록 자세하게 안드레이프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마키아 시에서 수많은 고생을 하시고, 억울함을 겪으셨는데도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은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요.

마키아 시에 어떤 특별한 기억이 있으십니까?”


“말하자면 마키아 시의 옛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서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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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뚱뚱한 참주의 과도한 욕심 +2 24.03.17 56 3 17쪽
35 마르-아시르의 결단 24.03.16 63 4 12쪽
34 The Hanged Man 24.03.15 58 7 12쪽
33 마법사의 상상력 24.03.14 61 4 13쪽
» 맥없이 물러나는 고블린 (수정) 24.03.13 67 8 12쪽
31 그는 좋은 추장이었습니다 +1 24.03.12 80 5 12쪽
30 타리우스의 소문 (2) +1 24.03.11 81 6 11쪽
29 타리우스의 소문 +2 24.03.10 98 9 15쪽
28 토성을 지켜라! (4) +3 24.03.09 108 12 12쪽
27 토성을 지켜라! (3) 24.03.08 117 9 12쪽
26 토성을 지켜라! (2) +1 24.03.07 114 6 13쪽
25 토성을 지켜라! +1 24.03.06 123 7 12쪽
24 고블린 전쟁의 서막 (3) 24.03.05 112 8 12쪽
23 고블린 전쟁의 서막 (2) +1 24.03.04 117 8 12쪽
22 고블린 전쟁의 서막 24.03.03 119 8 12쪽
21 낙하산 대장과 함께, 출정! +2 24.03.02 121 9 12쪽
20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3) +1 24.03.01 123 7 14쪽
19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 24.02.29 128 8 12쪽
18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4.02.28 142 8 13쪽
17 마도학과 무기술 24.02.27 158 9 13쪽
16 정령술에 능숙한 기사 24.02.26 150 11 12쪽
15 계획의 재구성 (5) 24.02.26 138 9 13쪽
14 계획의 재구성 (4) 24.02.25 149 9 12쪽
13 계획의 재구성 (3) +1 24.02.24 146 11 11쪽
12 계획의 재구성 (2) +4 24.02.23 153 12 12쪽
11 계획의 재구성 24.02.22 151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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