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노랑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랑고래
작품등록일 :
2024.02.09 05: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6: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6,413
추천수 :
396
글자수 :
220,424

작성
24.03.06 12:20
조회
120
추천
7
글자
12쪽

토성을 지켜라!

DUMMY

[메레이라 대륙에서 살아가는 법]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마르-아시르는 이 상황이 답답했다.


‘하필이면 무리 인솔자가 쓰러져서.’


돌고래에 직통으로 들이받힌 무리 인솔자가 제일 먼저 쓰러지면서 겁먹은 붉은발 고블린들이 통제를 벗어났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데···’


저게 정령술인지 마법인지 뭔지는 모르겠어도 연달아 이적을 보여줄 순 없는 거 아닌가. 그런 인간이 있다면, 저 뾰족가시 뒤에 숨을 이유가 없지.


마르-아시르는 아까부터 계속 같은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돌격, 돌격하라고!”


전격에 맞아서, 또 겁에 질려서, 붉은발 고블린들은 따뜻하고 흥건한 액체를 흘렸다.


후퇴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마르-아시르의 입에서 기어코 한숨이 나왔다.


‘이대로 뒀다가는 두려움이 다른 고블린 무리에도 퍼진다고.’


이 무슨 한심한 꼬락서니인가. 고작 인간 한 명을 상대로.


결국 마르-아시르가 손을 들었다.

붉은발 고블린을 뒤로 물렸다. 겁에 질린 고블린들을 수습하고, 몸을 못 가누는 고블린들을 끌어내서 진입로를 비우느라 시간이 걸렸다. 안드레이프가 원하는 흐름이었다.



***


올던은 집중하고 있는 스승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스승은 아까부터 땅의정령을 불러 모으며 애쓰고 있었다.


‘또 뭔가를 하는 거겠지.’


그래서 막심에게 의견을 물었다. 대단한 대답이 나올 거 같지는 않았지만.


“왜 안 오는 걸까, 쟤네.”

“글쎄······. 포기한 거 같지는 않은데······.”


사실대로 말하자면, 고블린 사이에서 내분이 났다. 고블린 군대를 구성하는 각 무리가 하나의 일족이었다.


그러니까 무리 인솔자는 말하자면 대가족을 이끄는 추장 같은 거였는데, 그 추장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진 거였다.


“야, 니가 먼저 가.”

“야아-? 니 이름이 뭐고? 말 똑바로 안 하나?”


마르-아시르는 속이 타 죽을 지경이었다.


‘여기서 왜 나이 싸움을 벌이고 있어, 그런 사소한 거에는 조금도 신경 안 쓰던 것들이.’


마르-아시르는 답을 알고 있었다.

그 역시도 고블린 전체의 리더이기 이전에 일족의 무리 인도자였기에.


‘이 멍청하고 소심한 고블린 녀석들이, 일족의 세를 보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눈치싸움을 벌이다니.’


숫적 우위를 활용하려면 지금 돌격을 해야 한다고, 바로 지금! 계속해서 돌격해서 먹이의 힘을 빼야 한다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렀다. 무리 인솔자들이 저렇게 눈이 뒤집힌 상태에서는 아무리 고블린 전체의 리더라도 말빨이 안 먹혔다.


그의 권력은 결국 무리 인솔자들의 추대에서 나오는 것. 자신의 무리인 직속 아시르 족을 투입해야 이 상황이 해결될 건데, 그러기는 싫었다.


그 역시도 자기 일족의 세력을 중요시했다.

몇몇 고블린 추장 사이에서 시작된 말다툼이 점차 난잡하게 번져갔다.


“우리는 저번 전쟁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저번 전쟁이 언제야? 3년 전?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냐!”


마르-아시르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제비를 뽑는다!”


고블린 리더의 말에 충직한 부하가 쓸만한 나뭇가지를 꺾어 왔다. 한 군데에 표시를 해 놓고, 여러 등분을 했다.


제비의 제작 장면을 지켜보는 고블린 추장들 사이에서 항의가 터져 나왔다.


“아니, 등분을 먼저 하고 표시를 해 놔야지. 이러면 기억할 수가 있잖아.”

“리더 실망이야. 이따구로 할 거야?”


하이고, 정말. 언제는 제발 리더가 되달라며 떠받들듯이 모시더니.


다시 만들었다.

이번에는 제작 과정을 보지 말라 했더니 또 야단이다.


“리더네 일족은 빼려고 하는 거지?”

“아시르 일족은 참. 좋.겠.어?”

“밑장이네, 밑장이야.”


이거 골치 아프네.


제비를 만들고 뽑는 데 또 한 세월이 걸렸다.



***



고블린 추장들 사이의 말다툼이 길어지면서 안드레이프는 두 군데에 더 정령의 축복을 내릴 수 있었다. 여섯으로 나눠 올린 흙벽 중 세 군데에 대지정령이 깃들었다.

마법진 가운데 박힌 마석이 땅에서 계속해서 마나를 끌어모았다.


가동에 충분한 마나가 찰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일단 가동만 되면, 방어가 한결 쉬워질 거다.


심력을 너무 소모한 탓일까. 눈이 침침하고 몸이 몹시 피곤했다.


전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짬이 났을 때 쉬어야 했다.


안드레이프는 보급품 더미에서 마실 것과 빵, 소시지를 꺼냈다.


“모닥불을 좀 피워라, 올던.”


올던은 스승이 대체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왜 저러지? 어디 안 좋나.


“태울 거는 어디서 구하고?”

“그래, 그렇네.”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수긍하는 안드레이프.

평소 같지 않았다.

왜 저래.


‘여기가 어딘지는 아는 거겠지?’


그만큼 안드레이프의 상태가 안 좋았다.

올던은 스승을 주의깊게 살폈다.

다크서클이 드리운 눈가며 주름이 깊어진 얼굴.

피곤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대지정령을 불러들이는 게 그토록 피곤한 일인가.

안드레이프는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붙잡으며 횃불을 바라봤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횃불이 흔들리며 일렁거렸다.


‘아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 할 거다. 심력을 많이 소진했으니.’


하루에 세 개라니, 이 나이 먹고 무리하긴 했지.

잠이 쏟아졌다.

안드레이프는 횃불 옆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옛 생각이 났다.

루체나와의 3연전.


‘그 때 좋았지, 루체나는 아름다웠고 나도 젊었어. 연달아 세 번 정도는 끄떡없었거든.’


그때보다 더 졸립네.


연달아 떠오르는 스승이 기도를 올리던 모습.


아, 스승님.

스승이라기보다는 어머니 같던. 매몰차던 나의 어머니보다도 더 어머니 같던 분.

그분이 묻는다.


“안드레이프, 피곤한가요?”


애정에 찬 눈빛과 걱정스러운 목소리.

눈이 감기네요, 스승님.



***



고블린의 귓모양이 그려진 깃발이 토성으로 다가갔다. 녹색귀 고블린 일족. 무리 인도자는 기분이 더러웠다.


“재수 없게 내가 그걸 뽑았네, 아.”


번개 표시가 된 나뭇가지를 뽑아드는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전격의 투창이었다.


‘불길한 상상은 접어 두고.’


다시 뽑자고 우길까? 내던지고 도망갈까? 그가 고민하는 짧은 찰나에 깃발이 올라가고, 진격 명령이 내려졌다.

그를 둘러싼 다른 추장들이 용단에 고맙다며, 등을 떠밀었다.


‘용단은 무슨 용단이야. 억지로 떠밀려 나가는 걸.’


인간들의 임시둥지에서 한눈에 내다보이는 걸 알지만, 숨죽여 접근했다.

그러면 도망갈 틈이라도 나올 것처럼.

성벽까지 오십 아르신.


‘아까처럼 번개라도 맞으면 어쩌나.’


성벽까지 사십 아르신.

덩치 큰 인간, 이상한 뾰족모자를 쓴 인간은 안 보인다.


성벽까지 삼십 아르신.

작은 인간 둘이 잠깐식 보였다.


성벽까지 이십 아르신.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한 운 나쁜 고블린의 머리를 맞췄다. 피가 조금 났지만, 싸울 수 있단다.

이게 끝이야?


뒤를 돌아보자 리더의 신호수가 깃발을 수평에 가깝게 내지른 게 보였다.


‘전속력으로 돌격?’


번개만 없다면 그래도 되지.

무리 인도자는 용기백배했다. 고블린 리더의 판단이 상황을 명확하게 만들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이제는 번개가 안 날아온다.


숨죽인 이백 여 마리의 고블린들이 무리 인도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소오오옥 돌겨어어억!”


무리 인도자의 외침에 일족의 모든 고블린들이 뛰어갔다.


가운데 말뚝을 피해 내달린 첫 고블린이 성벽 사이의 틈으로 진입했다. 달려가던 기세는 좋았으나, 이어지지 못 했다.

그대로 뒤로 날아가 말뚝에 거세게 부딪히는 고블린.


‘뭐지?’


번개 보고 놀랐던 고블린, 날아간 일족에 또 화들짝 놀랐다. 일순간 돌격의 기세가 줄더니 멈췄다.


무리 인도자는 말뚝에 부딪힌 선봉대원을 확인했다. 올해 전투대원으로 합류한 어린 고블린이었다.


가슴과 얼굴에 무늬가 생겼다.

U자 모양이 선명하고 깊숙하게 박혀 있다. 몸통의 장기가 잘못됐는지 피를 울컥 토하더니,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피한다고 피하려 했는데······.”


그러면서 떨리는 손을 뻗어 앞을 가리킨다.

선봉 고블린의 뻗은 손가락이 히힝, 거리며 뒤를 곁눈질하는 말을 가리켰다.

그리고 인간 꼬맹이의 목소리.


“당근아, 잘했어.”


저, 저, 비열한 놈들. 말을 군사용으로 쓰다니. 말은 식용으로 써야지!

먹을 거 갖고 무기로 쓰면 돼요, 안 돼요?

무리 인도자는 나쁜 어린이들을 혼내주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정면은 피하자.


‘인간, 비열한 수, 피한다.’


자신 눈앞의 어린 고블린이 피거품을 물고 숨이 끊어져 가는 걸 본 무리 인도자가 일어나 외쳤다.


“마히르 일족의 고블린이여! 고블린 계단을 만들어라! 고블린, 성벽 넘어간다!”


선봉대원처럼 될까 걱정하던 주위의 고블린들이 재빨리 성벽으로 달려가 도랑으로 몸을 던졌다.

대부분 같은 생각이었다.


‘말의 뒷발차기에 날아가는 것보다는 고블린 계단으로 봉사하는 게 훨씬 낫다.’


꿇어앉은 고블린들 위로 또 다른 고블린이 올라탔다. 그 위로 뒷열의 고블린이 달려왔다.

3단 계단이 만들어졌다.

상황을 지켜보던 무리 인도자가 소리 질렀다.


“그 앞에 2단을 만들어라.”


달려온 고블린들이 3단 계단에 몸을 붙였다. 그 위로 또 뒷열의 고블린이······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또 외쳤다.


“3단을 4단으로 만들어라.”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도합 5단의 고블린 계단이 토성 앞에 나타났다.


***


올던과 막심은 방어구역을 나눴다.


“막심, 니가 오른쪽으로 가.”


올던은 왼쪽 성벽 위에 기어 올라갔다. 되도록 조용하게, 고블린들이 알아채지 못 하도록. 손을 뻗어 허리춤의 검집에서 대거를 뽑았다.

이 거리면 가장 위에 있는 놈은 찌를 수 있다.

내가 찌를 만한 맨 위 고블린의 약점은.


‘목덜미.’


부들부들 떨리는 손아귀에 힘을 주면서 단검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살 말고 다른 딱딱한 것에 부딪혔는지 단검이 끝까지 안 들어갔다. 손끝에 지진이 난 것처럼, 살아있는 생물이 요동치는 감각이 전해졌다.

올던은 그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뗐다.


대거가 꽂힌 고블린이 계단을 굴러내려 갔다.

무기를 놓치다니.


‘야단났네.’


케헥.

괴상한 소리를 내지른 고블린이 성벽 위의 올던을 노려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어째 원하는 대로 몸이 안 움직이는 듯하다.

고블린의 눈에서 독기가 쏟아졌다.

저주를 받은 부두인형처럼.

어이없다, 정말.


‘지들이 달려들어 놓고 저 원한에 가득 찬 눈빛은 뭐야.’


주위를 돌아다니며 소리 지르던 고블린 대장이 굴러떨어진 고블린을 봤다.

맨 윗단의 고블린들이 고개를 돌려 위를 경계했다.

올던의 눈이 그들의 눈을 일별했다.


단봉을 꺼내 들고 그 얼굴을 한 대씩 때려줬다. 처음 겪어 보는 전투 감각, 날 것 그대로의 감각이 낯설었다.

온몸이 후들거리도록 떨렸다.


고개를 들고 반대쪽 벽을 봤다. 막심이 어떻게 하고 있나 살펴봤다.

고블린의 녹색 피가 묻은 칼날을 들고 막심이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나도 저랬나.


저러다 대거 놓치겠네.


“막심, 정신 차려! 못 올라오게 막아! 안 그러면 우리가 죽어.”


막심이 겨우 손을 들어 칼을 휘둘렀다. 안 돼, 우리가 쓰는 대거는 날도 없다고.


“막심, 찔러! 아니면 곤봉을 써!”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 표정. 올던은 곤봉을 허공에 휘둘러 보였다. 막심에게서 반응이 돌아왔다.

끄덕끄덕.

괜찮을까, 우리?


계단을 쌓느라 동원된 고블린이 절반.

저 고블린들을 무너뜨린다면, 나머지 절반은 상대 안 해도 됐다. 성벽에 올라올 수단이 없으니까.

막심만 힘을 좀 내주면.


안드레이프는 아직인가.


모닥불을 찾던 스승은 횃불 옆에서 잠이 들었다. 손발이 차갑길래 모포를 덮어주긴 했었는데. 주변이 이 지경이 되도록 안 일어나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안드레이프! 일어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비축분 소진 후 잠정적으로... 24.03.14 133 0 -
39 얼굴 없는 자 +10 24.03.29 31 2 16쪽
38 전열을 갖춰라 +4 24.03.28 43 4 17쪽
37 혼란 속에 희미해지는 기회 +2 24.03.19 44 3 13쪽
36 뚱뚱한 참주의 과도한 욕심 +2 24.03.17 52 3 17쪽
35 마르-아시르의 결단 24.03.16 61 4 12쪽
34 The Hanged Man 24.03.15 54 7 12쪽
33 마법사의 상상력 24.03.14 60 4 13쪽
32 맥없이 물러나는 고블린 (수정) 24.03.13 66 8 12쪽
31 그는 좋은 추장이었습니다 +1 24.03.12 78 5 12쪽
30 타리우스의 소문 (2) +1 24.03.11 78 6 11쪽
29 타리우스의 소문 +2 24.03.10 96 9 15쪽
28 토성을 지켜라! (4) +3 24.03.09 105 12 12쪽
27 토성을 지켜라! (3) 24.03.08 115 9 12쪽
26 토성을 지켜라! (2) +1 24.03.07 111 6 13쪽
» 토성을 지켜라! +1 24.03.06 121 7 12쪽
24 고블린 전쟁의 서막 (3) 24.03.05 112 8 12쪽
23 고블린 전쟁의 서막 (2) +1 24.03.04 114 8 12쪽
22 고블린 전쟁의 서막 24.03.03 116 8 12쪽
21 낙하산 대장과 함께, 출정! +2 24.03.02 117 9 12쪽
20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3) +1 24.03.01 121 7 14쪽
19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 24.02.29 128 8 12쪽
18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4.02.28 140 8 13쪽
17 마도학과 무기술 24.02.27 156 9 13쪽
16 정령술에 능숙한 기사 24.02.26 147 11 12쪽
15 계획의 재구성 (5) 24.02.26 137 9 13쪽
14 계획의 재구성 (4) 24.02.25 147 9 12쪽
13 계획의 재구성 (3) +1 24.02.24 144 11 11쪽
12 계획의 재구성 (2) +4 24.02.23 151 12 12쪽
11 계획의 재구성 24.02.22 150 1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