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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랑고래
작품등록일 :
2024.02.09 05: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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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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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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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계획의 재구성 (4)

DUMMY

[메레이라 대륙에서 살아가는 법] 열네 번째 이야기






시청 맞은편 건물의 지붕 위에서 눈빛이 빛났다. 안드레이프가 시청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숨어 지켜봤다.

올던과 막심이었다.



***



안드레이프가 올던과 막심을 두고 셋집을 나설 때부터 올던은 몸이 근질근질했다.

올던이 자꾸 보내는 눈빛을 모른 체 하고, 막심은 얌전히 스승이 내준 숙제를 했다.


‘올던은 이럴 때면 꼭 뭔가 저지르더라.’


아니나 다를까, 올던이 막심을 떠 봤다.


“스승이 어디 가는 걸까?”

“글쎄······.”


막심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안드레이프가 어법이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 고치라고 했는데, 틀린 부분을 모르겠다.

어디가 잘못됐지?

올던은 막심이 듣든 말든 자기 나름의 상상을 펴기 시작했다.


“우리 몰래 진짜 마법사의 소굴로 간 거 아니야? 아니면 보물상자에 돈을 가지러 갔다든가.”


막심은 여전히 건성이었다.


“응, 맞아. 말을 지키고 있으라고 한 걸 보면 멀리 간 건 아니야.”


열려 있는 창문의 나무 덧문 너머로 말과 말이 매여 있는 나무가 보였다.


“도시 안으로 갔겠지?”


막심은 도저히 답이 짐작이 안 됐다. 어제 고쳤던 공고문을 가져와 오늘 숙제와 비교해 봤다.


“······ 고양이를 찾아주면 사레은를 드립니다. 사례은? 아니고. 사례금? 이렇게 써야 하나? 사례로 은화를?”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 막심 혼자만 남아 있었다.


‘올던이 어디 갔지?’


창 너머로 올던이 셋집 마당을 벗어나는 게 보였다.

어쩔까 고민하던 막심은 곧 박스 위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같이 가, 올던.”


설마.

누가 마당 안의 말을 훔쳐 가진 않겠지.



***



그리고 올던과 막심은 시청광장에서 벌어진 일을 목격하게 됐다.

지붕 위에서 목격한 안드레이프의 무술 솜씨는 대단했다. 순식간에 경비대장과 경비병을 제압하는 장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거나 가르쳐주지, 왜 마법이니 정령술을 가르치려는 거지.”


막심 역시 공감했다.

저렇게 몸을 움직이면, 그동안 다른 패거리들에게 그렇게 맞고 구박당하지 않아도 됐는데.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쓸모가 많아 보였다.

몸에 밴 듯한 스승의 동작들은 예술에 가까웠다. 여기서 막심의 결론은 올던이랑 달라졌다.

안드레이프의 무술을 자신이 따라 배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언변이라면 가능할 거 같았다.

안드레이프가 휘황찬란한 언변을 선보였을 때 막심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렇게 말할 수 있다면······.’


몸 움직임은 따라가기 어려워도 혀의 움직임은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안드레이프와 사람 서넛이 안으로 들어간 후 올던이 막심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고블린 잡는 건가?”

“아직 모르지 않아?”


시청 사무실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갈지 궁금해졌다. 자신들의 운명이 그 이야기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정문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서기와 시민 여러 명이 문을 붙잡고 실랑이 중이였다.


“여러분, 여기는 시청입니다. 도떼기시장이 아니에요. 파는 물건 없으니까 구경하려고 들어오지 마세요.”


부은 얼굴로 소리치는 서기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흥분해서 앞사람을 밀어 대고 끌어당기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말들에 묻혔다.


“밀어, 밀어버려.”

“너도 해 먹었냐?”

“뒤로 좀 가요. 나가게.”

“문 붙잡아. 못 닫게.”

“서기, 어떻게 된 거요. 허가서 안 떼준다면서······ 돈 주면 떼 주는 거요?”

“상점세에 부가세 붙는다는 게 혹시 경비대장 재량이었소?”


소리높여 항의하는 사람, 구경하다가 뒤로 빠지려는 사람, 흥분해서 몸부터 쓰는 사람, 이 기회에 자기 민원을 관철하려는 사람······.

경비대원이 사라진 시청 건물 앞은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난장판이었다.


‘이쪽으론 안 되겠는데······’


어린 아이들의 몸으로 저 곳을 통과하는 건 어렵다.

막심은 중정 안에 용사 기념비가 있던 게 떠올랐다. 올던을 툭툭 건드려 뒤로 돌아가자 수신호를 보냈다.

어딘가 중정으로 통하는 뒷길이 있을 법도 했다.

시청 건물의 뒷거리로 돌아갔다.


막심의 판단은 정확했다.

시청 건물과 옆 건물 사이 고양이들이나 다닐 만한 틈이 있었다.

성인의 몸으로는 못 들어갈 공간이었다.

좁은 틈을 비집고 한참을 나갔다. 옷이 엉망이 됐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세탁 맡기면 되는 거고, 새 옷도 있고.’


비집고 들어간 틈을 통해 시청 건물의 중정으로 나왔다. 창을 올려봤다.


‘어디로 가야 하지?’


잠시 망설이는데 안드레이프의 우렁우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내가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오. 평균적인 용병처럼 대우해주는 걸 바라는 겁니다. 고블린 한 마리에 20코퍼. 하루 출정에 10코퍼. 나의 종자들에게 각각 5코퍼.”

‘종자? 씨 같은 건가? 씨앗에 5코퍼는 왜 주나.’


막심의 귀에 안드레이프에 답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렵다는 거절인 거 같은데, 자세한 내용이 들리지 않았다.

다시 안드레이프의 목소리.


“비싸다니요? 이거 2년전 공고문에 나온 가격입니다. 경비대장 말대로 ‘싯가’로 받아볼까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인데 이 정도는 받아야죠. 시장님이야말로 사람 목숨값을 싸게 보는 거 아닙니까?”


점점 톤이 올라가는 목소리에 우물쭈물 말을 돌리는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해가··· 담당자를 불러서 알아보고······ 형평에 맞게 잘 조치하여··· 새로 공지···”


전체 대화를 들으려면 조금 더 가까이 가야 했다.

막심과 올던은 시들어가는 덩굴줄기를 붙잡고 돌벽을 탔다. 돌덩이 사이 모르타르를 개어 넣은 벽은 깔끔하게 마감이 되지 않아 곳곳에 돌부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막심과 올던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이곳저곳 붙잡고 디디며 안드레이프의 목소리가 나오는 곳까지 갈 수 있었으니까.

중간중간 안드레이프 말고 다른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덧창을 살짝 들고 안을 엿봤다.

괜찮은 옷을 입은 시민 한 명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아니, 기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블린 토벌이 불가능한 게 아닌데, 그동안 왜 불가능하다고 한 거요? 우리 시가 서쪽 육로를 잃으면서 상인들이 얼마나 피해를 봤는지 알아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얼굴의 배불뚝이 신사가 손을 들어 올리며 흥분한 젠트리의 말을 끊었다.


“시장으로서 제 최우선 책무는 마키아 시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입니다. 군사적 성과를 내는 게 제 임무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 인간이 시장이야?’


시장은 좁은 응접실 안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얼굴이 보이다가, 안 보이다가 했다.



***



얼마 전.

아이들이 시청 건물 뒤로 돌기 전의 일이었다.

비서가 안드레이프를 안내해 몇 명의 시민을 안으로 들였을 때 안드레이프는 재빨리 머리를 돌렸다.

안드레이프가 새로운 계약의 증인만 필요로 했던 건 아니었다.


‘내 몸은 하나. 혼자서는 어려울 거다.’


우선 문이 안 닫히게 부러진 창대를 걸쳐놓았다. 열린 문으로 여러 명의 사람이 들어와 서기에게 말을 쐈다.

서기에게 문을 닫으라 눈짓하던 비서가 포기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비서가 먼저다.’


비서의 뒤를 따라갔다. 안드레이프를 따라온 시민들도 같이 올라갔다.

비서가 삐걱거리는 나무계단 소리를 듣고 돌아보더니 일행을 저지했다.


“여러분, 이 위쪽으로 올라오시면 안 됩니다. 공무 공간이에요.”


계단 아래쪽을 보며 곤란해하는 비서의 표정을 보고 감이 왔다. 서기와 경비대장 말고도 뭐가 더 있다는 걸. 썩을 대로 썩은 걸 수도.


“아니, 사태가 이렇게 되어가는데, 시장님은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코빼기도 안 비치고.”


바로 비서를 밀쳐내며 시장실을 찾았다.

비서는 한 번 더 저항했다.


“이렇게 우르르 몰려가시면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지 않습니까? 미리 약속을 하신 것도 아닌데······.”


안드레이프는 창에 달린 덧문을 열어젖혔다. 광장 아래쪽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 아래 보이시오?”


안드레이프의 손끝을 따라갔다.

널브러진 채로 조금씩 고개를 움직이는 경비대장이 보였다. 주위 상황을 살펴보며 도망갈 타이밍을 재던 경비대장이었다.

그와 비서의 눈이 마주쳤다.

경비대장은 비서의 옆에 선 안드레이프를 봤다.


‘이크, 걸렸다.’


경비대장은 잽싸게 눈을 감고 기절한 모습을 연기했다.


그 장면을 본 비서의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은 생각이 오갔다.


‘이걸 왜 보여주지? 나도 저렇게 된다는 건가?’


경비대장의 퉁퉁 부은 얼굴이 비서의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안드레이프의 목소리.


“시장실이 어디요?”


비서의 손이 한쪽 문을 향했다.

안드레이프는 비서가 가리킨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깜짝 놀란 시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비서를 찾았다.


“아니, 이분은 누구신가? 약속 안 된 손님은 받지 말라고 했잖아.”

“나는 안드레이프 볼로비치 야크신이라고 합니다.”


억눌리고 낮은 톤의 목소리가 으르렁대듯 울렸다. 날카로운 눈빛이 시장의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시장은 본능적으로 감이 왔다.


‘중앙에서 온 감찰관이든가, 아니면 반대파의 끄나풀이다.’


시장의 감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중요한 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눈앞의 사내가 바깥의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것과 어쩐지 밀려 들어온 사람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걸.


‘어떻게든 시간을 때우다 퇴근해야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시민들의 화가 가라앉을 거다.

그것이 시장의 대책이었다.

시장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드레이프 일행과 시장 사이에서 설전이 벌어졌다. 올던과 막심이 창 사이로 들여다본 게 이때쯤이었다.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됐다.

시장은 책임을 벗어나고 잘못을 덮고 모르쇠로 일관하려고 했고, 안드레이프 쪽에서는 의심스러운 정황을 들이밀며 추궁을 계속했다.


“대책을 내놓으시고, 확언을 해 주시라고요.”


미꾸라지처럼 벗어나며 아무 약속도 안 해주려는 시장의 성의 없는 대답에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


대치가 한참이나 지속되자 막심과 올던은 지루해졌다.

뭔가 결정적인 일이 확 이뤄질 줄 알았는데, 끝없이 돌고 도는 소리뿐이었다. 슬슬 벽을 버티고 선 팔과 다리도 아파졌다.


‘재미없다.’


먼저 내려간 건 막심이었다. 그걸 보고 올던도 마음먹었다.


‘내려가야겠다.’


올던과 막심이 살짝 열린 채 버려 둔 창의 덧문 사이로 안드레이프가 시장에게 다가서는 모습이 엿보였다.

안드레이프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대로 계속 가면 해가 지고 만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사람들이 각자 집으로 흩어지고 나면, 없던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시장의 태도를 보면 기억상실증이라도 온 것처럼 오늘 일을 잊어버릴 수도.

안드레이프는 시장에게 다가가 등을 떠밀었다. 땅딸막한 몸이 무지막지한 완력에 밀려 움직였다.


“일어나 시민들 앞으로 나가시지요. 지금 이 자리에서 여쭤본 것 말고도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이 많다고 하는데······”


시장은 엉거주춤 일어서서 어기적거리며 걸음을 뗐다. 안드레이프의 정중하고 강력한 리드에 따르기는 해도 나가기가 싫은 모양이었다.

불쾌한 기색을 보이다가 기어코 한 마디 입을 열었다.


“이거 이렇게 미시면 안 됩니다. 제 몸에 손 대시면······.”


안드레이프는 시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당신을 보호할 경비대장은 아래층에 뻗어 있습니다. 얌전히 나가시는 게 좋을 거요.”

“당신, 내가 두고 봅니다.”


시장은 모욕당한 것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안드레이프를 손가락질했다. 짜증이 난 다른 시민들이 시장의 입을 막고 끌고 나갔다. 바깥 분위기를 모르는 척하려는 인간에게 몸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안드레이프는 그 뒤를 따라갔다.


‘그냥 뒀으면 조용히 빠져나가든가, 시간을 끌며 핑계를 생각해냈을 거다.’


제값 받고 용병 짓하기가 이래 어려워서야 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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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마르-아시르의 결단 24.03.16 61 4 12쪽
34 The Hanged Man 24.03.15 54 7 12쪽
33 마법사의 상상력 24.03.14 60 4 13쪽
32 맥없이 물러나는 고블린 (수정) 24.03.13 66 8 12쪽
31 그는 좋은 추장이었습니다 +1 24.03.12 78 5 12쪽
30 타리우스의 소문 (2) +1 24.03.11 78 6 11쪽
29 타리우스의 소문 +2 24.03.10 96 9 15쪽
28 토성을 지켜라! (4) +3 24.03.09 105 12 12쪽
27 토성을 지켜라! (3) 24.03.08 115 9 12쪽
26 토성을 지켜라! (2) +1 24.03.07 111 6 13쪽
25 토성을 지켜라! +1 24.03.06 121 7 12쪽
24 고블린 전쟁의 서막 (3) 24.03.05 112 8 12쪽
23 고블린 전쟁의 서막 (2) +1 24.03.04 114 8 12쪽
22 고블린 전쟁의 서막 24.03.03 116 8 12쪽
21 낙하산 대장과 함께, 출정! +2 24.03.02 117 9 12쪽
20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3) +1 24.03.01 121 7 14쪽
19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 24.02.29 128 8 12쪽
18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4.02.28 140 8 13쪽
17 마도학과 무기술 24.02.27 156 9 13쪽
16 정령술에 능숙한 기사 24.02.26 147 11 12쪽
15 계획의 재구성 (5) 24.02.26 137 9 13쪽
» 계획의 재구성 (4) 24.02.25 148 9 12쪽
13 계획의 재구성 (3) +1 24.02.24 144 11 11쪽
12 계획의 재구성 (2) +4 24.02.23 151 12 12쪽
11 계획의 재구성 24.02.22 150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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