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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랑고래
작품등록일 :
2024.02.09 05: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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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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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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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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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뚱뚱한 참주의 과도한 욕심

DUMMY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서른 여섯 번째 이야기






루밀레코를 부르지 말 걸 그랬나.

신임 시장 얀누스는 골치가 아팠다.


“공성전을 대비해야 되오.”


저 놈의 공성전, 공성전. 남의 의견 무시하고 자기 의견만 쏟아내는 거 보면, 확실했다.


‘또 뭘 꾸미고 있다.’


공성전무새가 된 루밀레코의 의견은 도움이 안 됐다. 방해가 됐으면 됐지.


“안드레이프 씨는 뭐라고 합니까?”


얀누스를 대신해 새 시 위원으로 뽑힌 중도파 위원이 물었다.


“세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하나는 고블린들의 행군 방향이 결정되지 않아 지켜봐야 한다. 남쪽 도강지점이나 숲을 향하는 거 같기는 한데, 확실하지 않다.


둘째는 행렬의 차림새를 봐서는 아예 거주지를 옮기는 거 같다.”


무기명 투표를 요구했던 중도파 위원이 뜸을 들이는 얀누스를 재촉했다.


“마지막은 뭡니까?”

“무척이나 많은 숫자가 이동하는 만큼 머무르는 곳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고블린들이 마키아 시를 향할 경우 요격전을 통해 수를 줄이는 게 좋아 보인다, 고 덧붙였습니다.”

“요격전이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요. 추산으로 4천이 되는 고블린이요. 고블린 천 마리에 의용군 이십여명이 쓸려나가던 걸 잊었단 말이오?”


루밀레코 파의 의원 하나가 목소리를 높이며 시 위원회는 다시 고성이 오가는 말싸움판이 되었다.

군사전문가가 없어 답이 나올 수 없는 억측과 주장이 난무하는 난장판이.

떠들 만큼 떠들고, 나올 주장은 다 나온 이후에 얀누스가 맥을 짚었다.


“우선 요격전이 가능할지 살펴봅시다. 군적과 무기고를 살펴볼까요?”


***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무기고가, 무기고가······


비서와 서기가 수선을 떨며 무기의 수량을 확인했다. 마치 자신들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이.

비서가 장부를 읽어 내려갔다.


“롱소드 다섯 자루.”


서기는 무기고 안쪽까지 살피는 시늉을 한번 해 줬다. 시 위원들이 보고 있었다.


“없습니다.”

“하나도?”

“하나 있긴 한데······.”


그러면서 서기는 검집도 없이 먼지가 풀풀 쌓여 있는 검 한 자루를 들어 올렸다.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날을 한 번 때려 봤다.

먼지가 떨어지고, 검붉은 것도 떨어졌다.


‘이제야 날이 보이네.’


안 보는 게 나았을 수도.

녹이 슬었는지 날이 붉다.


“이거 못 쓰겠는데요?”


비서는 장부 옆에 새 수치를 기록했다.


【 카이트 쉴드 스물. 둘.

창 스물다섯 자루. 없음.

롱소드 다섯 자루. 한 자루, 불용. 】


무기고의 상태에 충격을 받았던 얀누스가 정신을 차렸다.


“이 자리에서 바로 판단하지 말고 대장간에 가서 맡기세요. 혹시 압니까? 괜찮게 변할지.”


서기는 검을 들고 대장간으로 나섰다. 으레 하는 절차에 신물이 나던 참이었다.


길길이 날뛰던 시 위원이 루밀레코를 찾았다. 관종형의 그 위원이었다.


“이게 다 뭡니까!! 루밀레코!! 루밀레코는 어디 갔습니까?”


루밀레코가 눈앞에 있다면 때려눕힐 기세였다.

군수물품과 시의 행정물품을 독점 공급해 온 상인께서 이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모습을 감춘 루밀레코 대신에 전임 시장때부터 근무해 온 비서에게 날이 돌아갔다.


“당신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알고 있지?”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모르긴 뭘 몰라!”


시 위원은 소리를 지르며 가까이 있던 비서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너희들이 관리했잖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비서는 냉담한 눈으로 위원과 눈을 마주쳐 갔다.


“위원님께서도 관리문서에 서명하셨습니다.”

“뭐?”

“이 손 놓으시죠.”


바쁘게 돌아가는 시 위원의 머릿속에 어딘가 이상했던 문서가 떠올랐다.


‘그게 그 내용이었나.’


전-전임 경비대장이 한사코 무기고 공개를 거부했었지.

위원은 버벅대면서 사건의 전모를 그려보려고 애썼다.


“니들, 경비대장이랑 한패 아니야?”

“저는 모르는 일이니, 경비대장을 찾아보시든가요.”


이제 와서 어디에서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망연해진 시 위원이 비서의 멱살을 놓쳤다.


비서는 자신의 윗옷을 정돈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이 새끼, 꼭 조져 놓고 만다. 감히 내 몸을 건드려? 건방진 새끼.’



***



무기고 다음에는 군적을 확인해야 했다. 징집병으로 선택되어 훈련을 받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군적에는 매분기마다 훈련을 받았다고 되어 있는데요?”

“그게······”


말할듯 말듯 망설이는 공방의 직인을 안심시키느라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대답이 돌아온 건 공방의 마스터 쪽이었다.


“10코퍼씩 낸다고 하면 면제를 해준다고 해서 돈을 냈소.”

“누구한테요? 기억이 납니까?”

“경비대장이 와서 걷어 가던데?”


게거품을 무는 중도파 위원.


“군적에 기록도 안 하고 군역세를 대신 받았다고요?”


근육이 울퉁불퉁한 마스터는 어깨를 으쓱했다.


“군적이니 뭐니 우리가 그런 걸 알겠소? 젠트리들끼리 쑥덕쑥덕해서 결정하는걸. 10코퍼만 내면 알아서 해 주겠다니 그런 줄 알았지.”


마스터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예전에야 악타라도 내붙여서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알았지.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뭘 알 수 있겠나.


마스터는 돌아앉아 혀를 찼다.


‘문제가 코앞에 닥쳐서야 고치려 드니 되겠나, 저게. 마키아 시 사람 중에 누가 군사훈련을 받았다고.’


군적도 믿을 수 없었다.

징집병을 어찌해야 할까.

얀누스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루밀레코의 사병이라도 빌려다 써야 하나.’


얀누스는 안드레이프를 볼 낯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상의는 해 봐야지.’


***


그 시각 루밀레코는 항구에 있었다.


“전부 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싹 다.”


루밀레코의 집사는 항구를 돌아다니며 모든 배의 선주를 수소문했다.


“실례합니다. 선주님 계십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저희가 이 배를 좀 쓰고 싶은데요.”

“용선계약을 원하시는 겁니까?”


겨울이었다.

긴 항해를 떠나는 배들은 별로 없다. 수선에 들어간 배들도 꽤 있었고.

루밀레코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마음이 급했다.

어서 빨리 마키아 항구의 모든 배와 용선계약을 맺아야 했다.


‘그래야 크게 한 탕 하지.’


공성전으로 들어가면 보급품이 중요해진다.

최근의 경험으로 배웠다.


‘안드레이프에게 들어갈 보급품을 갖고 흔드니까 시 위원회도 조용해지지 않았나.’


보급선은 전쟁터의 생명줄. 이걸 잡고 흔들면 돈을 크게 벌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마키아 항구에 들어오는 모든 배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어야 했다.


‘444년의 계약만을 믿었다가는 저번처럼 발등 찍힌단 말이지.’


그래야 식량이든 무기든 비싸게 팔아먹지.


무기고와 군적의 상태는 볼 필요가 없었다. 지난 6년간 늘 그 모양, 그 꼴이었으니까.

군납과 군적은 루밀레코에게 소소한 이득을 안겨다 줬다. 그리 큰돈은 안 아니어도 심심할 때 사치품 하나 둘 사들일 돈은 됐다.


‘이번에 제대로 땡길 기회가 왔다 이거지.’


시의 무장 상태를 고려하면 공성전으로 가게 되는 건 자명한 사실.

잘 하면 마키아 시를 빚더미에 앉히고, 시장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채권자로서 모든 권한을 휘두르게 될지도.


***


시를 대신한 심부름꾼으로 루밀레코를 찾아온 건 서기였다.


“얀누스 시장이?”

“네,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시청으로 와 달라고 하시더군요.”

“내가 왜? 직접 오시라고 해라.”


군적 문제인지 군납 문제인지는 몰라도 귀찮은 일은 질색이었다.


‘와서 또 되지도 않는 정의를 운운하며 인간의 도리를 설파할 게 뻔하다.’


루밀레코는 얀누스의 취임 연설을 떠올렸다.

인간의 도리와 모두를 위한 충정이라니, 우스운 소리를. 비웃음 사기 좋은 소리다.

자유도시에 누가 충성을 바치나.

여기는 이익이 모든 걸 삼키는 곳이다. 안전한 보금자리라기보다는 소용돌이에 가깝다.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는.

7년간 자신이 만들어온 도시의 분위기였다.


‘인간이란 게 다 그런 거야.’


루밀레코는 그렇게 한심한 소리를 하며 자신을 합리화했다.


***


급박한 상황이었다.

성벽 밖으로 고블린 수천 마리가 야영하고 있다.

이 상황에 애가 탄 루밀레코 파의 위원이 중재에 나서 루밀레코와 얀누스는 회동을 가지기로 했다.

루밀레코의 저택과 시청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이왕이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좋겠지요?”


회동 장소는 루밀레코 파의 위원이 골랐다.

싱글싱글 눈웃음이 푸근한 살집에 가려진 위원이었다. 합리성과 엄밀함을 내세우는 이 위원을, 얀누스는 믿지 않았다.


“어디라고?”

“네, 히드라 타번에서 보자고 하셨습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서기는 시청 광장 어귀에 있는 3층 타번으로 얀누스를 안내해 갔다.

술과 침대가 그려진 간판에 익숙한 낙서가 보였다.


‘어딘가 했더니, 그 술취한 젠트리를 봤던 곳이군.’


서기가 문을 열고 얀누스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2층 입구에는 루밀레코의 사병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이 계단을 오르자 검문 절차가 진행됐다. 루밀레코는 사병들의 행동을 보고서도 태연히 맥주를 들이켰다.

서기도 이번만큼은 루밀레코의 행동이 못마땅했다.


‘그냥 들여보내라고 해도 되는걸. 하여튼 속이 더럽게 좁다니까. 좋게 좋게 살아야지.’


기세 싸움에서는 밀려서는 안 된다, 는 게 루밀레코의 철칙이었다.


검문을 마친 얀누스는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한 게 이상한 오후지만, 인사는 여쭤야지요?”


계단을 등지고 앉아 있던 루밀레코 파의 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신임 시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얀누스는 시종 유머러스한 태도 속의 숨긴 진담을 이어 나갔다.


“루밀레코 위원께서는 제가 위험한 인물로 보이셨나 봅니다?”


병사들의 검문을 에둘러 탓하는 말이었다.


“병사들은 절차대로 했을 뿐이오. 그러라고 돈을 주는 거니까.”


사무적이고 무뚝뚝한 태도로 말을 자른 루밀레코가 자신 앞의 의자를 가리켰다.


서기는 시장의 눈치를 살폈다. 루밀레코의 행동이 도를 넘는 거 같았다.

루밀레코는 볼수록 철면피였다.


‘척이라도 좀 하지.’


인사도 안 해, 반기지도 않아, 검문은 검문대로 다 해, 의전은 생략해. 시장 보고 오라가라 해.

무시해도 이렇게 무시할 데가.


‘전-전임 시장 때도 이랬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전-전임과는 많이 싸웠다.

꼭두각시인 전임시장은 오히려 이렇게 하대하지 않았다.


‘명백하게 적이 된 건가.’


왜 저러나 몰라. 좋은 게 좋은 건데.

그러나 서기는 자신의 어디에 줄을 타고, 어떻게 타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얌전히, 있는 듯 없는 듯 앉아 있어야 했다.


‘나는 토르소다.’


살롱에 장식되어 있는 조각상처럼, 입을 닫고 가만히.


***


시장 얀누스가 자신의 요구사항을 내놓았다.


“시 위원의 일원으로서 시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협력할 것을 요청합니다.”


루밀레코는 그 태도가 고깝다. 괜히 퉁명스럽게 퉁겨 본다.


“협력이라니 이 병자에게 무슨 말씀이시오?”


병자라니, 멀쩡하면서.


‘지 편리할 때만 병이 나네, 아주 좋겠어.’


얀누스는 속에서 울컥울컥 무엇인가 솟구쳐 오르는 느낌을 받았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고블린이 먼저였다.


‘눈앞의 고블린을 해결하지 못 한다면 미래가 없다. 내 감정은 나중 일이다.’


얀누스는 침착하게 운을 떼었다.


“루밀레코 씨가 따로 육성하신 병사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병사라고 할 것까지야 있나요. 몇 사람에게 보디가드를 맡겼을 뿐이오.”

“검과 창을 쓸 줄 아는 병사들이 그리 흔하지는 않던데요?”


루밀레코는 손을 들어 올려 얀누스의 말을 끊으며, 목이 마른듯 맥잔을 들어 올렸다.

의뭉스럽게 뭉개며 논점을 흐리고 시간을 끄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루밀레코 파의 위원마저 상황을 걱정스럽게 지켜봤다.


‘이런 중대사를 어쩌려고 그러는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마이 페이스. 서기의 평가가 맞았다. 루밀레코는 대단한 철면피였다.


시간이 흐르든 말든, 얀누스의 속이 타든 말든.

루밀레코는 자기가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술만 축냈다.


얀누스가 아무리 안건을 꺼내고 설득을 시도해도 흥, 하고 비웃기나 할 뿐, 딴소리다.


“아시겠지만, 고블린들이 대이동을 합니다. 자칫하다간 성곽 밖의 식량과 사람들이 쓸려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북해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바다로 도망간다고 하던데, 우리도 그리하면 안 됩니까?”


그러면서 북해의 청어 이야기를 꺼냈다.


‘도대체 청어가 여기서 왜 나오는 거야?’


피자 도우를 돌리듯 화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루밀레코의 화법을 참다못한 얀누스가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병사들을 시에 빌려주시지요. 루밀레코 씨도 재산과 저택을 지켜야 되지 않습니까?”

“무슨 말이신지? 고블린들이 성벽을 넘어 들어오기라도 한답니까?”


또, 또, 또, 저 빌어먹을 태도. 내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무관심하다는 제스처.

그러면서 얀누스의 표정을, 대화 상대방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하는 저 뱀 같은 눈빛. 속으로 주판알을 열심히 튕기고 있겠지.

울화가 안 치솟을 수가 없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까지 한참 동안 설명한 요격전에 이 뱀 같은 인간은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


‘그러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가 뭔가.’


할 말 없으면 나가든가.

알다가도 모를 속이었다.


***


루밀레코는 적당히 속을 긁었다 싶을 때쯤, 본색을 드러냈다.


“사병을 보태면 나는 무엇을 얻습니까?”

“마키아 시의 안전과 평화, 시 위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는 평가가 따르겠지요.”


이 답답한 인간을 보소. 비웃음이 절로 나오네.


“여보세요, 시장. 나는 상인이에요. 시민 모두의 안위가 왜 중요합니까? 그건 당신한테나 중요한 거지. 내가 시장도 아닌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오.”


얀누스는 부르르 떨리는 손을 감추려고, 주먹을 꽉 쥐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반응이다. 이렇게 대놓고 나올 줄은 몰랐지만.


‘이 인간이 이기적인 인간인 건 알았지만 이건 너무하다.’


이 정도면 같은 인간이라는 게 창피한 수준 아닌가. 어째서 이 인간이 마키아 시를 주무르는 참주인 것일까.

얀누스는 분노로 떨리는 몸이 가라앉았다 느껴질 즈음 말을 꺼냈다. 루밀레코의 의향을 떠봐야 했다.


“필요하신 게 뭡니까?”

“444년 시와 루밀레코 상사간에 체결된 계약건을 어긴 데 대한 사과 및 보상금.”


루밀레코의 말은 이어졌다.


“이게 협상을 위한 기본조건이오.”


***


난감해하는 얀누스 앞에서 루밀레코는 한참이나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떠들었다.

루밀레코의 장광설을 짧게 정리하자면 이런 거다.

해안절벽가에 기지를 만들고 들어앉은 안드레이프에게 물자를 보급한 거 위법이다.

군수물자의 독점공급권을 쥐고 있는 루밀레코 상사를 업신여긴 월권행위다. 대단한 위법사항이므로, 보상해야 한다.


‘어째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이상한데······.’


이상해도 어쩌겠나. 짧게 정리하면 그런 말인데.

심지어 이게 협상의 조건도 아니고, 협상을 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들어줘야 할 요구사항이었다.

이 요구조건을 들어주면 협상을 해볼 의향이 있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아, 어지러워.’


얀누스의 어지러운 머리를 더 어지럽게 하는 건 동석한 서기와 시 위원의 태도였다.

자신들도 마키아 시민이면서 왜 가만히 있지. 뭐라고 나무라야 하는 것 아닌가.


나만 루밀레코가 너무하다고 느끼는 건가.

시의 위기를 이용해 한탕 해 먹겠다는 건데······. 어쩌면 저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얀누스가 한참이나 대답이 없자 루밀레코가 회동을 마무리지었다.


“잘 생각해 보시고 다시 연락하시오.”


일방적인 의사 전달 후 루밀레코는 자리를 일어섰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얀누스 씨가 신사로서 비밀을 지킬 것이라고 믿소.”

“네?”

“사람, 참. 그래서야 시장하겠소?”


서기가 재빨리 말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했던 말들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란 뜻 같습니다.”


서기의 번역이 얀누스에게 마지막 치명타를 날렸다.


‘도대체 나는 어떤 도시의 시장이 된 건가. 이것이 내가 알고 있던 마키아 시가 맞는가.’


어지러워진 그는 눈을 감았다, 떴다.


루밀레코가 계단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단장을 짚고 멋을 부리며 뒤뚱뒤뚱 멀어졌다.


‘살 좀 빼야겠네, 저 인간. 조금 더 찌면 제대로 걷지도 못 하겠어.’


루밀레코가 딛고 내려가는 계단들이 비명을 지르듯 삐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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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마법사의 상상력 24.03.14 60 4 13쪽
32 맥없이 물러나는 고블린 (수정) 24.03.13 66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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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타리우스의 소문 +2 24.03.10 96 9 15쪽
28 토성을 지켜라! (4) +3 24.03.09 105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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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토성을 지켜라! +1 24.03.06 121 7 12쪽
24 고블린 전쟁의 서막 (3) 24.03.05 112 8 12쪽
23 고블린 전쟁의 서막 (2) +1 24.03.04 114 8 12쪽
22 고블린 전쟁의 서막 24.03.03 116 8 12쪽
21 낙하산 대장과 함께, 출정! +2 24.03.02 118 9 12쪽
20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3) +1 24.03.01 121 7 14쪽
19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 24.02.29 128 8 12쪽
18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4.02.28 140 8 13쪽
17 마도학과 무기술 24.02.27 156 9 13쪽
16 정령술에 능숙한 기사 24.02.26 147 11 12쪽
15 계획의 재구성 (5) 24.02.26 137 9 13쪽
14 계획의 재구성 (4) 24.02.25 148 9 12쪽
13 계획의 재구성 (3) +1 24.02.24 144 11 11쪽
12 계획의 재구성 (2) +4 24.02.23 151 12 12쪽
11 계획의 재구성 24.02.22 150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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