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노랑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랑고래
작품등록일 :
2024.02.09 05: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6: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6,418
추천수 :
396
글자수 :
220,424

작성
24.03.02 15:35
조회
117
추천
9
글자
12쪽

낙하산 대장과 함께, 출정!

DUMMY

[메레이라 대륙에서 살아가는 법] 스물한 번째 이야기






남쪽 성문 밖.

안드레이프가 시청에서 돌아왔을 땐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멀리서 통행금지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올던과 막심이 길가에 호롱을 들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저기 오네.”


‘저 녀석들, 저게 양초를 얼마나 많이 태우는데.’


혀를 차면서 가까이 가 보는데 뭐가 이상했다.

셋집에 사 둔 양초는 동물지방으로 만든 싸구려 양초다. 그 양초를 쓰면 동물 기름이 타는 끔찍한 냄새가 났다.


‘불쾌한 냄새가 없다.’


호롱 안을 자세히 보니 빛 정령 몇이 춤을 추고 있었다.


- 신나, 신나.

- 볼륨을 높여요, 올던.

- 안드레이프, 안녕!


뭐가 그리 신나냐.

세상 시름 다 사라진 듯한 그 장면에 시청에서의 불쾌한 기억이 싹 날아갔다.

허허허.


“오셨어요.”

“왜 이리 늦었어.”


올던 이 녀석 툴툴대기는.


영리하네.

허공에 빛정령을 소환하면, 도깨비불이니 유령불이니 하면서 세탁부들이 무서워할 게 뻔했다.

현명한 행동이었다.


“들어가자.”


셋집 안에서 안드레이프는 올던과 막심에게 다가올 고블린 전쟁에 대해서 간략하게만 얘기해줬다. 어른의 사정은 빼고.


“조만간 토벌에 나설 거다.”


갑작스런 일정 공지에 막심은 다소 놀랐고, 걱정스러워했다.


“저희 셋이서 할 수 있을까요?”

“한 명이 더 붙는다고 하더구나.”


안드레이프는 시청의 결정이 달갑지 않았다.

한 명을 지휘하는 지휘관이라니, 이게 뭔.

지휘권을 무시했다간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자이트라는 자, 실력은 있을까?

짐덩어리면 곤란하다.

그놈, 마키아 시의 경비대원보다는 나을 거다. 검술 실력은 그렇겠지.

돈 좀 있는 상인이 허접한 검사를 채용하진 않았을 거니까.


겉멋만 든 놈팡이였던 이전 경비대장보다 나을 수도 있다.

어디 꽤 괜찮은 귀족의 사생아일지도.


“잘 된 거 아니야, 표정이 왜 그래?”


올던이 말한 것처럼 잘된 일일 수도 있다.

루밀레코의 태도를 못 봤으면 그렇게 낙관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문제는 믿을 수 있냐는 거다.

지휘권도 영 골치 아프고.


‘그 자이트라는 자, 지휘 경험은 있을까?’


합리적인 판단만 내려준다면 좋겠는데.

기병 또는 숙련된 검사로서의 자질과 장교로서의 자질은 다르다.


용기와 만용을 구분 못 하는 젊은 기사들이 무모한 짓을 벌이는 걸 너무나 많이 보아온 안드레이프였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만용과 근자감으로 무장한 지휘관.

그것이 안드레이프가 생각한 최악이었을까?


안드레이프가 떠올린 최악보다 더 최악의 경우도 있었다.



***



다음날 새벽.

지평선에 걸친 해가 어슴푸레한 빛을 뿌리기 시작할 때 안드레이프는 올던과 막심을 깨웠다.


“일어나라, 특별훈련이다.”


특별훈련 별거 없다.

밝아오는 벌판을 달린다.

달리기만 하면 난이도가 너무 쉬우니, 말을 타고 재촉을 좀 해줬다.


“더 빨리, 더 빨리.”


헉헉.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막심의 거센 숨소리. 막심은 이미 한계였다.

올던은 뛰는 게 싫었다.

잘 못 뛰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안드레이프를 만나기 전까지 막심이랑 이골이 나도록 뛰어봤다.


‘도망 다닐 일이 많았으니까.’


막심을 만나기 전 혼자 다닐 때는 더 했다.

악덕 영주가 풀어놓은 사냥개를 피해서 죽어라 뛴 적도 있었다.


‘그땐 정말 죽을 뻔 했어.’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싫다.

이 특별훈련은 탐탁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도망가기 위한 뜀박질 훈련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가죽 공방에 도착하자 안드레이프가 소리쳤다.


“잠깐 휴식.”


막심이 앉으려 들자 일으켜 세워서 걷게 했다.


“휴식이라면서요?”

“휴식 중엔 걷는다.”


조금 걷다가 다시 뛰었다.

뒤돌아서 남쪽 성문까지.

남쪽 성문에 도착하고 나서 잠깐 걷기.

다시 셋집까지 뛰기.

아침 먹기 전부터 이렇게 힘을 빼서야.


‘아, 이건 좀.’


왜 이런 훈련이 추가된 거야, 정말.

시 위원회 짜증나네.

스승이 위원회에 갔다 올 때마다 뭐가 추가됐다.


안드레이프가 훈련이라 말하긴 했지만, 이건 훈련이 아니었다.

확인을 위해 구실을 붙였을 뿐.

무슨 일이 생기든 쉼 없이 성문까지 도망칠 체력이 되는지 알아본 거였다.


‘도망을 많이 다녀봐서 그런지 체력은 충분하네.’


전장에서는 당연한 게 없다.

도망을 가려면 쫓아오는 적보다 빠르게 오래 뛸 수 있어야 했다.

덕분에 안드레이프에게 선택지가 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탈출로를 열고 올던과 막심을 먼저 보내준다.’



***



‘어째서지?’


스승이 서두르는 느낌이다.

하루가 정신없이 지났다.


식량을 사고, 마실 걸 사고, 또 이것저것 물어보고 사고, 사고, 사고.


일어나자마자 찾은 곳은 삯바느질을 하는 여인의 집이었다.


“이 주 전에 주문했던 감베손 있지요? 다 됐습니까?”


이 여자한테 보석을 건네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예쁘던데.


목공예 공방에 들러 단봉을 찾으면서 같이 주문했던 말뚝을 가져왔다.


목공예 공방의 마스터는 목수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여러 가지 주문이 가능했다.


지금 이 자재처럼.

한쪽을 날카롭게 깎아낸 말뚝과 목제 망치.

말에 실은 이 자재들을 보고 올던이 물어봤다.


“이건 뭐야? 드라큘라라도 잡으러 가?”

“그건 너희들의 생명줄이다.”

“줄처럼 생기지는 않았는데?”


땅에다 말뚝을 박고 임시 방어 거점을 마련한다, 는 게 안드레이프의 복안이었다.

전투 경험이 없는 두 꼬맹이가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운다 해도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 거다.

땅에다 말뚝을 박아 방어거점을 마련하고, 이를 지켜주기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전장에서 패닉만 안 일으켜도 어디인가.’


대장간에서는 스틸레토가 아직 완성이 안 됐다고 했다.


안드레이프는 올던과 막심에게 대거를 하나씩 사줬다. 단검술 연습 때 쓰던 목제 단검처럼 찌르기에 특화된 단검이었다.

올던과 막심에게 나이프도 하나씩 사 줬다.

가죽을 벗길 때 쓰는 사냥용 나이프였다.


“그걸로 고블린의 귀를 자를 거다. 고블린 귀를 자르고 나서는 깨끗하게 닦아내라. 녹색 피가 안 보이게.”


안드레이프는 여유가 줄어든 표정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안드레이프의 이상한 행동은 계속됐다.

잡화점에 들려서 보석 비스무리한 것도 샀다. 저 비싼 걸 왜 사지. 좋아하는 여자라도 생겼나.


‘오늘 밤 후회 없이 보내겠다는 뭐 그런건가.’


발칙한 상상을 해 보는, 알 건 아는 꼬마 올던이었다.


‘고블린 잡는 걸로 저 돈 메꾸려면 백 마리는 잡아야 할 거 같은데.’



***



오후의 정령술 수업에서는 뜬금없이 땅에 말뚝을 박고 요새를 세우는 법을 배웠다.


2인 1조로 활동한다.

한 명이 경계를 서는 동안 다른 한 명이 불의 정령을 불러내 땅을 녹인다.

한 명이 말뚝을 잡아주고, 다른 한 명이 망치로 내리친다.

서로 반대쪽을 보며 주변 시야를 유지할 것.


“···정령의 힘이 부족할 때는 횃불을 활용해 땅을 녹인다.”


언 땅이 녹으면 목책을 박는다. 목책의 끝을 갈아내 날카롭게 만든다.

간단한 내용인데, 이걸 왜 연습시키지?


“연습해라. 당장 내일부터 쓸 수 있게. 지금 속도로는 택도 없다.”


올던은 시키는 대로 연습을 하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 불다람쥐 같은 건 언제 가르쳐줘?”


안드레이프는 올던을 마주보고 잠시 말이 없었다. 무언가를 재는 것처럼.


‘이 녀석이 벌써 그걸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데······.’


그래도 뭐라도 하나 더 가르치고 보내는 게 낫지 않겠나. 일단 정령의 이해도부터 짚어 보자.


“정령의 모습은 어떻지?”

“다 다르게 생겼지.”


음.

맞는 말이긴 한데······.


“정령의 이름을 붙이기 나름인 것처럼 그 양태 역시 마찬가지다.”

“양태가 뭐야?”

“모습이라고 해 두자. 너, 정령을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냐?”

“그런 것도 가능해?”


대답 대신 시범을 보여줬다.

안드레이프의 손 위로 불꽃의 정령이 모여들었다. 불도마뱀의 모습으로 빚어진 정령들이 다시 구 형태가 되더니, 이번에는 날다람쥐의 모습으로 변했다.

올던은 어안이 벙벙했다.


‘저게 돼?’


올던을 향해 날아올랐던 불꽃정령들은 이내 나비로 변했다. 올던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들의 색이 조금씩 변했다.

어떤 나비는 주황, 어떤 나비는 노랑, 어떤 나비는 보라. 색의 변화는 있어도 밝고 따뜻한 톤이라는 점은 같았다.


안드레이프가 신호하며 손가락을 치켜들자 나비들이 그쪽으로 몰려갔다.

안드레이프가 올던의 눈을 들여보면서 얘기한다.


“니 관념을 깨야 된다.”


이것만 보고 알 거라고는 기대 안 한다.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시간을 줄일 수 있다.



***



그 시간 시청 사무실.

자이트가 경비대장에 임명됐고, 다음날 토벌대 출정이 결정됐다. 루밀레코의 뜻대로.


열혈시민은 이 상황에 유감을 표했다.


“루밀레코 위원.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당사자도 없는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고 내일 아침에 통보를 해 준다니요? 사실상 강제징집 아닙니까? 다수결에 붙일 사항이 아니니, 조금만 더 논의해 보시죠.”


그러나 반대는 묵살됐다.


“자이트, 경비대장으로서의 첫 임무다. 저 위원들을 댁으로 모셔다 드리도록.”


자이트가 비릿한 미소를 띠면서 앞으로 나섰다. 자이트와 호위들의 행동은 에스코트라기보다는 연행에 가까웠다.

열혈 시민위원은 끝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루밀레코, 이러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에요.”


뭐라는 건가, 힘없고 대책 없고 주제 모르는 인간이. 젠트리라고 다 같은 줄 아나.



***



“사수 정위치”


성문 개방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울렸다.


나 올던, 열 살 생일이 1개월 지난 오늘.

첫 출정에 나섰다.


아침 일과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경비병이 왔고,시 위원회에서 보낸 명령서를 내밀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어쩐지 스승이 서두르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성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시에서 나온 검사가 떠들었다.


“고블린을 잡으면 오른쪽 귀, 오른쪽 귀를 자른다. 이상 출발.”


그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우리는 우리끼리 준비를 마쳤다.

스승이 횃불을 하나씩 나랑 막심에게 건네줬다.


“이건 뭐야?”

“날씨가 흐리잖니.”


그러면서 나에게 윙크를 해 보인다.

고갯짓으로 자이트를 가리키는 걸 봐서는 뭐가 있는 거 같다. 뭔 뜻인지는 모르겠다.

쟤한테는 비밀이라는 건가.


자이트의 신호를 받은 경비대원들이 성문을 내렸다.


말의 고삐를 잡고 있던 안드레이프가 나를 돌아봤다.


“올던, 너는 초식동물이냐?”


뭔 소리야, 이 할아범. 아침에 내가 소시지를 몇 개를 먹었는데.


“초식동물은 뒤쪽까지 살펴봐야 해서 눈이 양쪽에 달려 있다고도 하지. 그런 초식동물들도 서로의 경계를 돕는다.

인간의 시야각은 좁다. 서로 뒤를 지켜줘라.”


긴장돼서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렸다. 시야각이랑 초식동물이랑 우리가 뭔 상관이람.

막심 말하는 건가?


성문이 내려갔다.

자이트가 말을 타고 앞서가고, 우리가 그 뒤를 따랐다.

우리 말에는 안드레이프가 이것저것 가득 실어놔서 탈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벌판이 조용하다.

나서자마자 엄청난 싸움이라도 벌어질 줄 알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두고 스승과 자이트가 말싸움을 벌였다.


“삼림지대로 들어가서 북서북 방향 산으로 접근하죠.”

“숲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어디에 매복해 있을 줄 알고요.”

“그럼 어디에 가서 고블린들을 찾습니까? 거주지로 바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막심이 내 옷자락을 붙잡으며 소곤거렸다.


“싸우는 거 보니까 아직은 괜찮은 거지?”


그렇지.

최악의 상황은 아닌 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비축분 소진 후 잠정적으로... 24.03.14 133 0 -
39 얼굴 없는 자 +10 24.03.29 31 2 16쪽
38 전열을 갖춰라 +4 24.03.28 43 4 17쪽
37 혼란 속에 희미해지는 기회 +2 24.03.19 45 3 13쪽
36 뚱뚱한 참주의 과도한 욕심 +2 24.03.17 52 3 17쪽
35 마르-아시르의 결단 24.03.16 61 4 12쪽
34 The Hanged Man 24.03.15 54 7 12쪽
33 마법사의 상상력 24.03.14 60 4 13쪽
32 맥없이 물러나는 고블린 (수정) 24.03.13 66 8 12쪽
31 그는 좋은 추장이었습니다 +1 24.03.12 78 5 12쪽
30 타리우스의 소문 (2) +1 24.03.11 79 6 11쪽
29 타리우스의 소문 +2 24.03.10 96 9 15쪽
28 토성을 지켜라! (4) +3 24.03.09 105 12 12쪽
27 토성을 지켜라! (3) 24.03.08 115 9 12쪽
26 토성을 지켜라! (2) +1 24.03.07 111 6 13쪽
25 토성을 지켜라! +1 24.03.06 121 7 12쪽
24 고블린 전쟁의 서막 (3) 24.03.05 112 8 12쪽
23 고블린 전쟁의 서막 (2) +1 24.03.04 114 8 12쪽
22 고블린 전쟁의 서막 24.03.03 116 8 12쪽
» 낙하산 대장과 함께, 출정! +2 24.03.02 118 9 12쪽
20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3) +1 24.03.01 121 7 14쪽
19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 24.02.29 128 8 12쪽
18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24.02.28 140 8 13쪽
17 마도학과 무기술 24.02.27 156 9 13쪽
16 정령술에 능숙한 기사 24.02.26 147 11 12쪽
15 계획의 재구성 (5) 24.02.26 137 9 13쪽
14 계획의 재구성 (4) 24.02.25 148 9 12쪽
13 계획의 재구성 (3) +1 24.02.24 144 11 11쪽
12 계획의 재구성 (2) +4 24.02.23 151 12 12쪽
11 계획의 재구성 24.02.22 150 1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