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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904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3.12.2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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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버스전용차선의 카니발

DUMMY

"형님, 누님......"


셋은 홍대입구역을 나와 삼겹살집으로 이동했다.

경찰과 기자들이 몰려오기 전에 서둘러 움직일 필요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팠던 것이다.


"아니....... 벌써 두 분 삽겹살만 각각 10인분 씩 드시고 계시는 거 아세요?"


정중재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삼겹살이 서민음식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옛날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요즘은 아니다. 치킨 한 마리도 배불리 먹으려면 2만원은 줘야 하는데, 삼겹살이라고 오죽한가.

서민들의 지갑사정은 생각도 않으면서, 눈치없이 물가는 미친듯이 치솟고 있었다.


"더 먹어도 되냐?"

"......되겠습니까, 누님?"


저 두 사제들을 위해 고기를 굽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한 정중재였다.

애초에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았지만, 도합 20인분의 삼겹살이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마치 마법처럼 사라진 그 광경에 벌어진 입은 다물줄을 몰랐다.

주방에 있는 가게 주인과 알바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단들 하셔.'


저렇게 먹고 또 먹고 싶은 생각이 들까?

기본적으로 삼겹살은 초반이 제일 맛있지, 먹다보면 느글느글해져서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그럼 후식은 먹어도 되냐?"

"......식사 말씀이십니까, 형님?"

"응. 나는 김치말이 국수랑 말아먹을 공기밥 하나. 너는?"

"나는 물냉이랑 비냉 한 그릇씩. 아, 우거지 국밥도 하나만 추가해줘."


경악스럽다.

내가 사제들을 모시는 게 아니라 돼지들을 모시고 있었구나.

놀라움도 잠시, 정중재는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는듯 고개를 내젓더니, 익숙하게 주문을 시작했다.


"어...... 그러니까, 김치말이 국수 하나, 공기밥 하나, 물냉 비냉 하나씩, 우거지 국밥 말씀이시죠?"

"네. 되도록 빨리 주세요."

"넵!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주문을 받은 알바생이 총알처럼 달려나가 주방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정중재는 지갑에 얼마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현금을 몇 장 뽑아놓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유스티오가 불안한 듯 입을 열었다.


"왜 그러세요, 형님?"

"오늘따라 배가 너무 고파. 나랑 유덱스가 돈 보탤 테니까, 삼겹살 5인분이랑 차돌 2인분 더 추가하자."

"예?!"

"당연히 그래야지. 거기에 항정살이랑 가브리살도 3인분 씩 추가하자고. 맞다, 목살도 5인분 정도만 더."

"자, 잠깐만요 형님, 누님!"


미치겠다.

먹은 것도 없는데, 정중재는 목구멍 너머로 토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무리라니?"

"우리가 무리하는 것 같아?"


두 사제가 어이없다는 듯 정중재를 흘겨보았다.


"우리 지금 조신하게 먹고 있는 거야."

"최대한 참고 있는 거라고, 알겠냐?"


저게 조신하게 먹는 거라니. 아이구야.

고삐 풀렸다가는 지구에 사는 돼지들 죄다 학살해버리겠네.


*

*

*


며칠 후. 평일 이른 오전 시간.

유스티오가 인간세상에 처음 온 날, 그를 도와주었던 햄버거집 알바생 천지연은 쏘카로 빌린 K사의 레이를 운전하고 있었다.

귀여운 민트색의 레이 안에는 그녀의 친구들이 복작복작 모여 탑승 중이었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천지연은 20살이 되자마자 면허를 땄다.

타고나길 운전에 대한 감도 좋은 편이었고, 다행히 지금까지는 사고 없이 운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너 고속도로 타본 적 있어?"

"당연히 타봤지. 그 복잡한 분당고속도로도 타봤어."

"거기 은근 헷갈리더라. 내 남친 맨날 헷갈려서 딴 데로 가던데."

"처음에는 좀 헷갈리긴 해. 서현 쪽 빠질 때 은근 복잡하거든."


탑승자는 천지연을 포함해 총 4명.

이들은 시간을 맞추어 지방으로 내려가 하루를 알차게 놀 계획이었다.

친구들을 하나 하나 픽업한 천지연이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했을 때였다.


"이야, 평일이라 그런가? 차가 없네, 차가."


친구의 말대로 고속도로는 널널했다.

주말이었다면 차로 꽉꽉 들어찼을 고속도로는 휑- 하니 넓어보였다.


"그럼 좀 밟아볼까?"

"가자!"


천지연이 신나게 악셀을 밟았다.

기분 좋은 듯, 레이 역시 귀엽게 가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며 힘차게 앞으로 뻗어나갔다.


"너 운전 잘 하네!"

"악셀만 밟았는데 뭔 운전을 잘 하냐?"


천지연이 툴툴거리자, 조수석에 앉아있던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아냐, 너 잘 하는 거야. 쟤 운전 더럽게 못해. 차선 맞추는 거 못해서 일보일빵이라니까."

"일보일빵?"

"한 걸음 뗄 때마다 다른 차들한테 빵먹는다고."

"아하하!"

"그리고 나는 기능에서 떨어졌어."

"기능에서?"


어이가 없었다.

내가 아는 그 기능시험?


"도대체 어떻게 해야 기능에서 떨어질 수 있지?"

"쟤 사고낼 뻔 했거든."


조금 전 공격을 받은, 뒷좌석에 앉은 친구가 조수석에 앉은 친구를 가리켰다.


"쟤 몇 달 전에 면허 딴다고 막 난리쳤었잖아."

"맞아, 그랬었지."

"필기 붙고 나서 바로 기능 보는데, 그 주행장에서 사고낼 뻔 했잖아!"

"뭐? 어떻게 했길래 그래?"

"탈선한 거야! 탈선! 진짜 큰 사고 낼 뻔했다니까. 내가 멀리서 보는데, 쪽팔려서 죽는 줄 알았다고."

"뭐? 야, 너는 필기 세 번 떨어졌잖아!"

"사고낼 뻔한 것보단 낫지!"

"우리나라 필기시험이 얼마나 쉬운데 세 번이나 떨어지냐?"

"탈선한 것보단 낫지!"


도토리 키재기나 다름 없는 싸움에 천지연은 하하 웃더니 진지하게 충고했다.


"너희들, 절대로 운전하지 마라."


소중한 친구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런 아이들을 도로에 풀어놓을 수는 없었다.

친구들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목숨도 소중하니까.


"당연하지."

"우린 운전 안 할 거야."


다행히 친구들의 자기객관화는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유X브가 도움이 참 많이 됐지.'


차선을 3차선으로 옮기며, 천지연이 생각에 잠겼다.

최근에 자주 보는 유X브 방송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전지적 블랙박스 시점]이었다.

진행이 과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또한 실제로 운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모범적인 사례를 볼 때면 '나도 저렇게 해야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고, 누가 봐도 빌런인 경우에는 '저런 식으로 운전을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자기반성이 들었다.


영상을 보며 머릿속으로 수십 차례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까지 했다. 그러니 운전에 도움이 될 수 밖에.


"아, 뚫린다 싶더니 막히네."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투덜거렸다.

실제로 고속도로는 서서히 막히고 있었다.


"신갈이잖아. 여긴 늘 그래. 안 막히는 날이 없다니까."

"어? 저거 카니발 아니야?"


운전석 뒤에 앉아있던 친구가 창 밖의 버스전용 차선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리니 버스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는 검은색 카니발 한 대가 보였다.


"어, 카니발 맞네."

"근데 카니발 1차선 가도 돼? 안 되지 않아? 버스전용차선 아니야?

"음......"


천지연은 생각에 잠겼다.

카니발은 레이와 달리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차량이다.

즉, 카니발에 탑승한 인원이 특정 숫자를 넘게 될 경우 버스전용차선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인원 수를 채우지 못한다면, 해당 차선은 이용할 수 없다.


"......가능은...... 하지. 가능은."


카니발이 레이 옆을 지나쳤다. 그 덕에 차량의 내부가 일부 눈에 들어왔다.


"......가능은 해. 가능은."


해당 차량에는 단 한 사람만이 탑승하고 있었다.


*

*

*


친구들과 신나는 시간을 보낸 후 며칠 뒤, 천지연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유명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를 하는 그녀는 졸린 눈을 비비며 머리망을 썼다. 졸리든 어쨌든, 청결은 중요했으니까.


"흐아암."


졸음이 마구마구 쏟아진다.

또 놀러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제는 돈을 벌어야 할 때였다.


"어우......"


마치 폭풍같았던 점심시간이 지나고, 여유가 찾아왔다.

간간히 배달주문이 들어오긴 했지만, 조금 전의 점심시간 보다는 충분히 여유로웠다.

그러나 점심시간의 후폭풍이 지나갔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온갖 관절이 욱씬거렸다.


딸랑-


잠시 쉬는시간을 틈타 작은 주먹으로 허리를 콩콩 두들기고 있는데,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


낡은 의자에 앉아있던 천지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손님이었다.


'그때 그분이잖아. 옆에는 누구지?'


햄버거 먹고 화장실만 40분을 넘게 있었던 김정의 옆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이젠 잘 사용하시네.'


김정의가 능숙한 자세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것을 보니, 그를 처음 마주했던 날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젊은 남자가 왜 저렇게 키오스크를 사용할 줄 모르나 싶었었는데,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건만 알고 보니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치킨버거 여섯 개 매장식사- 콜라는 제로로- 사이드 감튀는 라지로 바꾼답니다-"


설마 또 디아블로 버거를 주문하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치킨버거를 주문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햄버거를 여섯개나 먹나? 누가 또 오는 것일까?


"감사합니다."


햄버거가 완성되고 번호가 불리자마자, 남자가 버거를 받아갔다.

천지연은 다른 일행이 오는 걸까, 고민했지만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딱히 살집도 없는 두 사람이 익숙한 듯 햄버거 6개를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돼지들인가.'


"너 매운 거 먹는 다고 하지 않았나?"


남자 앞에 앉은 여자가 감자튀김을 씹으며 물었다.


"무슨, 디아블로 버건가? 그거 먹는다면서? 먹어서 혼쭐을 내주겠다고 했잖아?"

"아, 그거."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려고 했는데,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안 좋은 기억?"

"......먹어서 좋을 게 없어. 40분 넘게 갇혀있기 싫으면."

"뭔 말이야?"

"있어, 그런 게. 그보다 너는 그 햄버거 먹을 생각 하지 마라. 그런 햄버거는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악마의 버거나 다름없으니까."


의도치 않게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게 된 천지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 버거는 출시되자마자 욕을 바가지로 먹은 버거였다. 온갖 SNS와 각종 커뮤니티에서 수많은 리뷰들이 쏟아졌고, 그와 동시에 수많은 비난이 함께 쏟아졌다.


'아마 곧 단종될 거예요.'


잠시 후 식사를 끝낸 두 사람이 가게를 빠져나갔다.

약간 아쉬운 마음을 한 켠에 품은 채, 천지연은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더러워진 매장 바닥을 닦기 위해 걸레를 집어들었다.


"요즘 뉴 아반떼 좀 보고 있어. 소나타도 요즘은 디자인 잘 나오더라고."


그녀가 청소를 하는 동안, 좀처럼 열심히 일하는 법이 없는 두 남자 직원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근데 저번에 그거 진짠가?"

"뭐가?"

"그, 검은색 카니발 한 대 붙잡힌 거. 머리에 지붕 얹고 다니는."

"아, 그거?"

"어. 시발, 존나 무섭던데. 카니발 안에 뭐가 있었는 줄 아냐?"


'카니발' 이 세 단어가 천지연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시체가 있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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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전용차선의 카니발 +2 23.12.28 25 2 11쪽
68 살아라 +2 23.12.27 22 2 16쪽
67 홍대입구역에서 생긴 일 +2 23.12.26 24 2 13쪽
66 변이 +2 23.12.25 20 2 14쪽
65 이론은 이론일 뿐 오해하지 말자 +2 23.12.24 28 2 12쪽
64 화물차 +2 23.12.23 2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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