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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898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3.12.2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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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화물차

DUMMY

"나, 나 지금 대체 뭘 한 거냐......?"


펠리세이드 차주의 두 손이 굳어버렸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주의 어머니는 여전히 '배고프다'를 연발하며 두 다리를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배고파! 배고프다고!"

"나... 어쩌지...... 씨바......."

"배가 고프단 말이야!"

"좀 조용히 좀 해요! 시끄러우니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차주는 생각했다.

차에서 내려 확인해보지 않아도 상황은 이미 충분히 처참했다.

양 옆에 주차되어있던 X6와 에쿠스의 문이 시원하게 긁혀있었으니까.

긁힌 것도 모자라 사이드미러까지 박살이 나버렸다. 이 정도면 내가 안 긁었소, 라며 발뺌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말도 안 돼.'


차주는 인정할 수 없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스타리아 같은 대형 차량도 수월하게 주차할 수 있을 정도로 주차칸이 넓었었다.

X6는 대형 SUV아니던가. 에쿠스 역시 대형 세단 아니던가. 그 두 차량이 여유있게 주차하는데 펠리세이드가 못 할 건 또 뭐란 말인가.


현재 펠리세이드는 X6와 에쿠스 사이에 끼어있었다.

주차를 하기 위해 두 차량 사이로 몸통이 절반만 들어간 상태였던 것이다.

여기서 나오긴 해야 할 텐데, 함부로 나왔다가는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싹 다 무시하고 냅다 주차하자니 그것도 딱히 좋은 방법은 아닐 것 같았다.


그냥 주차를 하느냐, 아니면 빠져나와서 재빨리 튀느냐.

무엇을 선택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배가 고프단 말이야, 배가 고프단 말이야!"

"아, 입 좀 다무시라고요!

"배...... 배......"

"입 좀 다물라고요! 시끄러우니까!"


쉬지도 않고 '배고프다' 타령을 하는 어머니께 차주가 빽 소리를 내질렀다.

지금은 차에서 내릴 수 있어도 문제고, 내릴 수 없어도 문제다. 그 누구보다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차주였다. 어머니가 굳이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지 않아도 충분히 괴로웠다.


쿵쿵-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누군가 펠리세이드 운전석 창문을 두들겼다.

꽤나 건장한 체격의 두 사람이었는데, 순간 펠리세이드 차주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두 사람이 바로, X6와 에쿠스의 차주들이라는 것을.


"왜, 왜 그러십니까......?"


운전석 창문을 내리니, 험상궂은 얼굴이 더욱 선명히 드러났다.

X6차주로 보이는 한 40대 남자가 인상을 한껏 구기며 말했다.


"이거, 당신이 한 짓이지?"

"예?"

"내 차도 당신이 긁었지?"


X6차주 옆에 서있던 60대 남자가 에쿠스를 가리켰다.

펠리세이드 차주는 고개를 힘차게 내저었다.


"아, 아뇨! 제가 긁은 게 아닙니다!"

"네가 긁은 게 아니면, 왜 네 차가 여기 사이에 끼어있지?"


X6차주가 운전석 창문 너머 위협적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블랙박스 다 찍혔으니까 발뺌할 생각 하지 마라."

"저, 저기, 그러니까......"

"넌 오늘 어디 못 간다."


차주는 울고 싶어졌다.


*

*

*


펠리세이드 차주가 겨우 차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정중재와 유스티오는 한참 고속도로를 이동중이었다.

정중재는 운전 중인 유스티오에게 물었다.


"그런데 형님, 아까 무슨 일입니까? 펠리 차주 표정이 영 안 좋아보이던데요."

"아, 그거."


유스티오가 입 안에 든 호두과자를 씹으며 말했다.


"별 거 아냐. 휴게소에 차가 많았잖아. 펠리세이드는 가뜩이나 차도 큰데 주차할 곳이 더 없었던 거지."

"아, 그래서 양보해주신 겁니까? 형님께서?"

"그렇지."

"이야-"


정중재가 감동한 듯 두 눈을 빛내더니, 유스티오의 입에 제일 통통한 호두과자 두 개를 밀어넣어주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양보도 하시고, 저도 본받아야겠습니다!"


유스티오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

*

*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온 후 며칠 뒤, 나는 홀로 황금마티즈를 타고 서울 부근을 순찰하고 있었다.

몇몇 동네들을 제외하면, 서울에는 의외로 언덕길이 많이 존재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가파른 언덕길이.

나는 이런 언덕길에 차를 끌고 간 것이다.


부우웅-


황금마티즈가 가파른 오르막길을 천천히 주행하고 있다.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니, 세갈래길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길목이 늘 그렇듯이, 시야를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불법으로 주차된 차량들이 한 둘이 아니었기에, 시야를 넓게 보긴 어려웠던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아아악!"


킥보드 한 대에 학생 세 명이 타고 있었다.

그 킥보드는 내가 있는 쪽으로 쌩 달려오다가, 나를 발견한 후 놀랐는지 핸들을 급히 틀어버렸다.

그 바람에.


쾅! 쿠우웅! 쿵!


다른 차량과 킥보드가 그만 충돌하고 말았다.

다행히 학생들이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았다. 차량과의 충돌도 큰 것은 아니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봐야 할 진 모르겠지만, 킥보드를 운전하던 학생이 핸들을 틀어 큰 충돌을 막은 것이다.


그래도 충돌은 충돌이다. 상대차가 내 차에 아주 작게 '문콕'만 했다 해도 충돌은 충돌인 법이다.

그러니 저 차량이 부서지지는 않았다 한들 최소 기스는 났을 텐데.


"얼씨구."


낄낄 웃어대던 세 명의 학생들이 킥보드에 다시 올라탔다. 그리곤 무어라 말을 걸 틈도 없이 쌩-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참- 내가 볼 때는 킥보드가 문제야, 문제."


이 도로 위에서 조금의 실용성이나 도움도 안 되는 것들인데, 왜 킥보드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일까. 최소한 속도라도 제한하는 게 옳지 않을까.


부우웅-


어쨌든 나는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

복잡한 언덕길을 내려와 일반 도로에 도착했는데, 가게 옆 도로에 정차되어있는 대형 화물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화물차량을 피해 가기 위해 나는 좌측 깜박이를 켰는데, 그 순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바로 옆 인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 화물차량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는 말이다.

내가 그 여자의 존재를 눈치챈 바로 그 순간.


구우웅-


대형 화물차량이 여자쪽을 향해 기울기 시작했다.


'뭐야?!'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저 덤프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냅다 드리프트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정차된 상태인데 갑자기 기울리가 있나. 저 큰 놈이!


그러나 의문도 잠시, 나는 서둘러 차에서 내려 여자쪽을 향해 기울어지는 화물차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켜요, 비켜!"

"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화물차량의 존재를 눈치챈 여자가 공포가 뒤섞인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터업-!


자리를 박차고 내달린 나는 재빨리 여자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신성력을 끌어모아 기울어진 화물차량을 한 손으로 막아냈다.


"괜찮으십니까?"


쿠우우웅!


기울어졌던 차량을 원래 대로 돌려놓은 뒤, 여자에게 물었다. 화물차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네, 네! 저, 저는 괜찮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차량 근처를 지날 때는 조심하세요.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나는 말꼬리를 늘렸다.

일부러 늘리려고 늘린 건 아니었고, 여자의 얼굴이 어쩐지 익숙했기 때문이다.

언제 한 번 이 여자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구면인 것 같단 말이지. 누구더라.


"혹시, 버거왕에서 일하시지 않습니까?"

"그걸 어떻게...... 아!"


여자 역시 내 얼굴을 봤던 것이 기억나는지 손뼉을 쳤다.


"그, 화장실에서 한 시간 동안 앉아있던 그 분 맞으시죠?"


......왜 저런 식으로 기억을 하는 거지.


"배 아픈 건 좀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습니다. 그보다 그때 도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뭘요. 별 것도 아닌데. 그런데......"


여자가 화물차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알아차렸던 거지만, 표정이 어째 얼떨떨해보인다.

그럴 만도 하다. 내가 사제니까 저 무거운 화물차량을 막을 수 있었던 거지, 평범한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


"구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걸......"

"혹시 지금 알바 하러 가십니까?"


나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설명해봐야 이해도 못할 테고,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네? 아, 네! 지금 가야 해요."

"그럼 얼른 가십시오."

"뭐...... 그렇게 까지 늦은 건 아닌데."

"아뇨, 늦었을 겁니다. 얼른 가세요."


아까부터 저 화물차량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마력덩어리인가. 아니, 아니다. 마력덩어리보다 조금 더 진한 기운.


"가,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얼른 가세요! 일하러 가야죠!"

"네! 지, 진짜 감사해요!"


서둘러 여자를 돌려보낸 후, 나는 주위를 살폈다.


"......역시."


여자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화물차량이 사라졌다.

내가 시선을 돌린 사이 바람처럼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운전해 사라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물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화물차량이 괜히 기운 게 아니었어."


상식적으로 지면과의 접촉 면적이 넓은 화물차량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기울리가 없다.


'쫓아간다.'


화물차량이 이렇게 된 원인이라면, 단 하나뿐이다.


*

*

*


여자를 죽일 뻔 했던 화물차량이 고속도로 위를 내달리고 있다.

방향은 하행방향. 번호판에 적힌 [경북]이라는 단어가 색이 바랬는지 히끄무레하게 보인다.

차량의 앞유리창을 살펴보니, 운전자는 탑승하고 있지 않았다.

대신 조수석에 누군가가 누워있었는데, 바로 마인이었다.


{아, 그 새끼가 거기서 갑자기 나올 줄은 나도 몰랐지.}


조수석에 드러누운 마인은 다리를 꼬며 중얼거렸다.

해당 마인은 하급마인으로, 하급마인 중에서도 제법 급이 높은 마인이었다.

1등급 하급사제와 10등급 하급사제의 능력치가 하늘과 땅 차이인 것처럼, 마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 여자를 죽여버릴 수 있었는데.}


차에 깔려 죽는다는 것, 그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일 것이다.

어지간한 인간들의 몸통보다 굵고 커다란 바퀴가 몸통을 짓이길 때의 고통. 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파괴될 때의 그 고통.


하물며 일반 승용차도 이렇게 고통스러울진데, 대형 화물차량이라고 오죽할까.

마인은 아까 보았던 그 여자가 고통을 느끼기를 원했다.

그 여자가 죽어가면서 볼 수 있는 절망스러운 표정과, 눈깔이 뒤집어지는 그 광경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한낱 하급사제에 불과한 애송이가 그 모든 것을 다 망쳐버린 것이다.


{귀찮은 놈.}


분명 디케교의 사제일 것이다. 다른 마인들에게 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으니까.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놈의 사지를 절단내 버릴 것이다.


부아아아아아앙-


이런 마인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황금마티즈 한 대가 화물차량의 뒤를 바싹 쫓아오기 시작했다.


{......아하.}


마인의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역시 네놈이 올 줄 알았지.}


오늘이 바로 네 제삿날이 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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