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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933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3.12.11 08:10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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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거든

DUMMY

재판이 끝나고 우린 병실로 돌아왔다.


조승범은 침대에 누워 깊게 잠들어있었다.

그는 잠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울고 있었다. 꿈이 괴로운 지, 버둥버둥 몸부림을 치느라 이불이 바닥에 떨어질 정도였다.


이마에는 형을 선고받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황금비둘기 문양의 낙인이 깊게 새겨져있었다. 낙인을 새기는 동안 피가 많이 흘렀기 때문일까, 이마 주변이 지저분했다.


'이런 벌을 받고 싶지 않다면 애초에 죄를 안 저지르면 간단한 일인 것을.'


조승범으로부터 빠져나온 마력덩어리는 이미 흡수한 지 오래다. 냄새가 꽤나 독했다. 오랜만에 내 손가락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독한 냄새가 어느 정도 사라졌을 즈음, 나는 오른손을 들어보였다.

조금 전에 품에 안았던 조승연의 어린 영혼이 생각난다.


겨우 7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영혼이 살고 싶어 버둥거리던 그 모습.

살아남아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 울부짖던 그 모습.

그러다가 결국 포기한 채, 모든 의욕을 상실한 그 모습.


'힘들었겠지.'


나는 작게 성호를 그었다. 그러자 연한 황금빛 바람이 순간 일렁이더니 병실 창문 밖으로 나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부디 저 하늘에서는 편히 지내길 바란다.'


어쨌거나 이제 내 할 일은 다 마쳤다. 슬슬 이곳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벌금형에 자자형이라.'


기한 내에 정해진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조승범은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터.

물론 그런 건 내 알 바가 아니긴 하지만.


"어유, 이제 갑니까?"

"네. 슬슬 갈 시간이 됐네요. 형님이 일어나지 않으시기도 하고. 피곤하신가 봅니다."


내가 조승범의 침대를 뒤로 한 채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자, 병실에 있던 아저씨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들 어디 뒷골목에서 한 가닥 했을 법한 인상들이었지만, 꽤 친절하고 좋은 분들이었다.


"대학동아리 후배라고 했었나?"

"네."

"이야, 선배랑은 완전 딴판이구만. 이렇게 좋은 사람이 저런 쓰레기 같은 놈 밑에 있다니. 내가 좀 오지랖 좀 부려도 되나? 저런 놈 형님이라고 모시고 살 거 없수. 그냥 무시하고 가버려."

"에이, 그래도 같은 대학 나온 정이 있지요."

"정같은 소리하네 정말. 저 놈은 정을 줄 필요도 없는 놈이야."

"하하.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래요. 몸 조심하고!"

"네!"


병실을 빠져나온 후 나는 생각했다.

저 인간, 대학 후배들에게도 외면받고 가족에게도 외면받더니.


하다못해 이젠 병실 사람들한테까지 외면을 받는구나.

못난인간 같으니라고.


*

*

*


조승범이 천천히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잠시 후 시야가 선명해지자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창문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머리가 복잡했다. 급하게 몸을 벌떡 일으키자 전신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마치 누군가에게 일주일을 밤낮으로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뭐야. 내가 왜 여기 있어? 병실 아냐?'


주변을 살피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조폭처럼 생긴 병실의 환자들, 그리고 단 한 명의 방문자도 없는 쓸쓸한 나의 침대까지.


'그 새끼는?'


민정희, 아니 그 사기꾼은 보이지 않았다.

꿈이었나? 단지 꿈을 꾼 것 뿐이었나?

그래. 분명 꿈일거야. 꿈이었을 거야. 디케교니 뭐니 하는 게 있을리가.


"쿨럭! ...헉!"


안심하려던 찰나,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침이 시작되었다.

어찌나 시끄럽고 요란하게 기침을 했는지, 병실의 아저씨들이 일제히 조승범을 노려볼 정도였다.

애써 기침 소리를 죽여가던 조승범은 자신의 손에 묻은 피와 이빨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그러고 보니까...'


입 안에 느껴지는 극한의 통증을 애써 잊으려 노력하며, 조승범은 꿈 속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 사기꾼놈이 분명 내 얼굴을 발로 찼었지.

하지만 그저 꿈일 뿐이잖아? 꿈인데 진짜로 얻어맞는다고?


'설마 저 아저씨들이?'


그럴리는 없겠지.

병원에서 난리를 피웠다가 무슨 욕을 얻어먹을라고.

게다가 저 아저씨들은 하나같이 다리나 팔이 부러져 있잖아. 그럴 만한 기력은 없을거야.


잠깐만. 만약 꿈이 아니라면, 현실이라는 말인가?


"아아아아악!"

"입 닥쳐, 새끼야!"


조승범이 두 손으로 재빨리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던 것이다.

덕분에 병실의 아저씨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미쳤냐?!"

"지금 여기 전세 냈어?! 자면서 별 생지랄을 하더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목이 떨어져 나가라 연신 고개를 숙이던 조승범이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주워들었다. 그리곤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그럼 그 사기꾼은 꿈이 아니었던거야?

진짜로 내가 디켄지 뭐시긴지 하는 놈한테 벌을 받은 거야?

뭐라고 했었더라. 자자형하고 벌금형이랬나.


그러고보니 꿈 속에서 내 이마에 무슨 낙인 같은 걸 찍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꿈 속이라지만 너무 아팠어.


벌떡!


조승범이 자리에서 허겁지겁 일어났다. 병실 밖으로 나가려던 그의 움직임이 어찌나 급한지, 바로 옆 침대에 있던 아저씨의 짐을 발로 차고 말았다.


"눈 똑바로 뜨고 다녀 이 개새끼야!"

"죄, 죄송합니다!"


아저씨에게 허리가 부서져라 연신 사과를 한 후, 조승범은 복도에 있는 남자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살펴 보았다.


"아아아아아아악?!"


이마에 낙인이 찍혀있었다.

황금비둘기 문양의 낙인. 틀림없었다.


"저, 저, 저게 어떻게, 저게!!!"


쿠우웅!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을 보며 말을 더듬던 조승범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더니,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허리와 꼬리뼈를 바닥에 정통으로 부딪혔는지,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끄으으..."


끔찍한 고통이다. 뼈가 부러지는 것 말이다.

마음같아서는 비명을 크게 내지르고 싶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작은 비명조차 내지를 기운도 없었다.


'결국.'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 드러누운 채, 조승범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뿌린 대로 거두는군.'


*

*

*


조승범이 화장실에서 넘어진 후 약 15분이 지나 겨우 발견되었을 때 쯤이었다. 정중재는 카페에 있었다.

조금 전, 그는 천전명과의 통화를 마쳤다.


- 네. 피해자랑 합의 봐서 없던 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 갑자기요? 피해자가 먼저 연락을 한 건가요?


믿기 어려웠다.

천전명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피해자 측에서 그냥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었다.


- 네. 제가 피해자분께 보험처리 안 하는대신 치료비를 드린다고 했는데, 피해자분께서 안 받아도 되니까 앞으로 아는 척 하지 말자고 하시더라고요.

- 좋게 끝나서 참 다행이긴 합니다만... 제보자님은 괜찮으신 거죠?


천전명의 목소리는 밝았다.


- 네! 저는 괜찮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진짜 고민 많았는데, 유X버님 덕분에 잘 해결한 것 같아요.

- 아이고, 제가 한 게 있겠습니까. 제보자님께서 잘 해결하신 거지요.

- 아뇨. 그래도 감사하죠. 저는 유X버님이 절 도와주셨다고 생각합니다.

- 하하. 어쨌든 정말 다행이네요. 사실 질질 끌어봐야 좋을 게 없죠.

- 맞습니다. 아, 저 이제 회사 다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좋은 영상 부탁드립니다!


쪼로록-


정중재는 마시던 아이스카페라떼를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다이어트 할 때는 한 입도 못 댔었는데, 살을 좀 빼니까 적당히 먹을 수 있어 좋았다.


'해결이 됐으니 다행이군.'


아마 형님 덕분에 해결이 된 거겠지. 그게 아니고서야, 그 피해자가 갑자기 돌변할리가 없잖아.


'역시 디케여신님.'


다 마신 커피를 카운터에 반납한 후, 정중재는 카페를 나섰다. 집에 가서 나머지 영상편집을 좀 마무리 해야 할 것 같았다.


'영상편집은 노동이다, 노동이야. 돈 더 많이 벌면 편집자 좀 써야지.'


카페 밖으로 나와 우측으로 쭉 걸어가면 횡단보도가 하나 나왔다. 정중재는 그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끼이이이이이익!

쿵!


바로 그 순간, 수상쩍은 소리가 정중재의 두 귀를 파고들었다.

무슨 상황인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뻔히 예상되는 저 소리.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니, 렉서스 SUV차량 한 대가 멈춰서 있었다. 그 앞에는 자전거 한 대가 넘어져 있었다.


'사람이 다친 것 같진 않은데.'


자전거 바로 옆에는 20대 초반 정도로 추정되는 젊은 남자가 서있었다. 넘어진 자전거의 주인이었다.


'차가 잘못한 건가? 아!'


상황을 파악하기 전, 정중재는 차가 자전거를 친 것으로 생각했다. 다시 말해 차가 가해자인 줄 알았던 것이다.


'우회전 하는 곳에서 사고가 났잖아?'


걸음을 옮겨 사고 현장을 천천히 살펴보니, 가해자는 자동차가 아니었다.

애초에 사고지점에는 횡단보도가 없었다. 즉, 자전거가 인도로 다니다가 앞 뒤 안 재고 냅다 도로로 돌진한 것이다.


횡단보도가 있기야 했지만, 그건 바로 뒤에 있었다. 사고지점과는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게 뭔 말이야? 내가 언제 냅다 우회전을 했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렉서스 차주와 자전거 주인은 이미 한바탕 언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블박 봐봐! 보라고! 내가 우회전 하기 전에, 횡단보도가 있으니까 잠깐 일시 정지했다가! 그리고 천천히 우회전 했잖아! 직진차량있나 확인하면서 우회전하는데 네가 갑자기 끼어든 거 아냐! 인도로 가던 새끼가 왜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와?!"


렉서스 차주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나이는 대충 50대로 보이는데, 혈압이 걱정된다.


"시발, 아저씨가 사람 쳤잖아요!"

"아 치긴 쳤지! 근데 네가 애초에 안 끼어들었으면 되잖아! 들어올 거면 저기부터 들어오던가, 아니면 천천히 들어와야지 그냥 냅다 들어와?!"

"자전거도 도로로 다닐 수 있거든요? 그 나이 먹고 그런것도 모르세요?"

"나도 아는데, 애초에 네가 이상하게 들어왔잖아!"

"아 시발, 이래서 늙은이들이랑은 대화가 안 통한다고."


삐삐-


자전거 주인은 화가 났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부딪힐 때 생긴 건지는 몰라도, 핸드폰 액정이 깨져있었다.


"아빠!"


그가 전화를 건 상대는 다름 아닌 그의 아빠였다.

자전거 주인은 현재 상황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받아 봐요!"


자전거 주인이 스피커를 켜 놓은 핸드폰을 렉서스 차주에게 들이밀었다.


"우리 아빠예요. 받아봐요!"


차주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스친다.

지금 이 새끼가 이게 뭐 하자는 시츄에이션이야? 어?

지 아빠한테 전화해서 뭐 어쩌라고?


"여보세요!"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렉서스 차주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스피커 너머로 찢어질 듯한 소음이 울려퍼졌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애가 냅다 들어온 게 아니라 네가 잘못한 거겠지! 애초에 운전을 왜 그따위로 하냐고? 어?!


얼굴도 모르는 사이건만, 냅다 욕부터 들어먹은 차주가 어이가 없는 듯 뒷목을 잡았다.

이런 차주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 우리 아들, 의대생이야 의대생! 어? 그 유명한 한국대 의대라고! 그런데 그런 애가 거짓말을 하겠어?! 당신이 잘못한 거지 무조건!! 의대생이 거짓말을 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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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거든 +2 23.12.11 2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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