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도로 위의 재판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941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3.12.22 08:10
조회
23
추천
2
글자
11쪽

인간 라바콘

DUMMY

'경찰이라고?'


렉스턴 차주의 뒷목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설마, 저 황금마티즈는 암행경찰이었던 것인가?


"우회전 금지 차선인 1차선에서 3차선을 침범해 우회전을 하고, 위협운전에 폭력까지."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혀를 끌끌 찼다.


"따라오시죠."


차주는 고민했다.

튈까, 말까. 그러나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는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 다리가 딱딱하게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앞범퍼가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네요."


경찰이 택시기사의 차량을 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남성분께서 보상해주실 겁니다. 여기 이거, 남성분 전화번홉니다."

"예.....?"

"그러니 우선 가시죠. 내일 오전 중으로 아마 보상금이 들어올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우선 댁으로 가 계시죠."


여전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의 택시기사를 보낸 후, 경찰이 렉스턴 차주가 있는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자, 제 차에 타시죠."

"제, 제 차는......."

"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곧 이곳에 다른 경찰들이 올 것이고, 차 역시 같이 갈 테니까요."

"그, 그래도 제 찬데, 제가 운전을 해야......"

"글쎄요, 그건 어려울 것 같군요.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있다 보니."


결국 렉스턴차주는 경찰이 타고왔던 황금마티즈의 뒷좌석에 앉게 되었다.

경찰이 해당 차량에 탑승할 때까지도, 다른 경찰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수상했다.

암행경찰차라 해도 안에 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건 그냥 낡은 황금마티즈 아닌가?


'쓸데없이 승차감은 또 좋네.'


황금마티즈도 황금마티즌데, 의문점은 더 있었다.

분명히 저 젊은 경찰이, 이곳에 다른 경찰들이 와서 렉스턴을 가져갈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경찰은 무슨, 경찰견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다른 경찰들이 이곳에 올 것 같지 않았다.


'설마.'


어쩌면, 저 놈은 경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 이건 사기일지도 몰라.


덜컥- 덜컥-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아난 렉스턴차주가 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잠금장치를 풀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가고 싶으십니까?"


경찰이 물었다.

차주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채 문을 열려고 발버둥을 쳤다.


"죄송하지만 나갈 수는 없을 겁니다."

"야 이 개새끼야!"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텐데요."


투우우웅!


차주의 우악스러운 두 손이 경찰의 목을 조르려고 할 때였다.

손의 끝이 경찰의 살갗에 닿기도 전에, 그의 몸이 스프링처럼 붕- 튕겨 나갔다.


"어억!"


가뜩이나 좁은 차에서 튕겨 날아가니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아무래도 목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재판은 금방 끝나게 될 겁니다. 별 거 없어요."


잠시 후,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충격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렉스턴 차주는 겨우 두 눈을 움직여 창밖을 내다보았다.

자신의 차량인 렉스턴은 온데간데 없었고, 곧 이상한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죄인에게 벌금형 9,000,000원을 선고한다-]


눈부신 황금빛으로 가득찬 신전.

그곳은 바로 재판의 방이었다.


*

*

*


렉스턴 차주 사건이 있은 뒤 얼마 후.

나와 정중재는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먼저 가자고 한 건 아니었고, 정중재 녀석이 가고 싶다고 졸랐기 때문이다.


"제가 일찌감치 형님 모시고 좋은 곳에 갔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들뜬 표정의 정중재가 신이 난듯 입을 열었다.


"제가 맛집도 다 알아놨고요, 경치 좋은 곳도 다 알아봤습니다. 형님은 그저 편안하게 차에 몸만 실으시면 됩니다."


운전은 정중재 녀석이 했다. 황금마티즈는 현재 내 집 주차장에 고이 모셔둔 상태였고, 내가 타고 있는 이 차는 녀석의 아반떼였다.


"아, 형님. 회 좋아하십니까? 그러고보니 아직 못 드셔봤죠?"


회라.

말만 들었지, 아직 못 먹어봤네.


"어차피 바닷가라 횟집이 많긴 하거든요. 그럼 거기서 하나 고르면 될.... 으윽!"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녀석이 묵직한 신음소리를 내뱉더니, 갑자기 차선을 바꾸었다.


"뭐야? 왜 그래? 어디 아프냐?"

"가, 갑자기... 배가..."


이런.

운전할 때 다른 건 다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지.


"얼른 휴게소로 가."

"네...... 알겠습니다......!"


휴게소, 만남의 광장.

이곳의 주차장은 거의 만석이었다. 결국 내가 운전대를 대신 잡았고, 정중재는 엉덩이를 붙잡은 채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갔다.


'차가 참 많구만.'


어딘가 급해보이는 정중재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몇 번 차준 뒤, 나는 주차장에 빈 자리가 어디 있을까, 고민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경차 자리 역시 거의 다 찬 상태였다. 이 정도면 정중재가 볼일을 다 보고 올 때까지 빙빙 돌기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떡하나.'


아까 봤던 정중재의 그 뒷모습. 절대로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은데.


'아! 저기 있다.'


드디어 자리 하나를 발견했다. 경차 자리는 아니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자리만 있으면 됐지. 주차칸도 아주 넓으니 좋네.


'......?'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일순간 밝아졌던 내 얼굴은 곧 부서진 설탕과자처럼 일그러지고 말았다.


"뭐야?"


빈 주차칸에 누군가 서있었다. 70대로 보이는 한 여성 노인이었다.

왜 저기 멀뚱하니 서있는거야? 위험하게시리.


"저기요."


나는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할머니, 좀 비켜주세요. 주차 좀 하겠습니다."

"......"


할머니가 대답하지 않는다.

귀가 안 좋은가? 더 큰소리로 말해야 하는 건가.


"할머니!"

"우리 아들이 올 거야!"


깜짝이야.

왜 저렇게 화를 내시나.


"우리 아들이 올 거야!"


아.

그런 거였나.

저 할머니는 인간 라바콘이었던 건가.


할머니라 뭐라고 따지기도 참 애매하다. 노인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가 결국 나만 욕을 먹을 테니까.

그래도 이대로 입 다물고 있을 수는 없겠지.


"할머니. 주차할 차량이 오지도 않았는데 먼저 서있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싫어!"


아니, 왜 애처럼 떼를 쓰시는 거야.

느낌이 약간...... 평범한 할머니는 아닌 듯한데.


"......할머니. 자리 어차피 또 납니다. 제발 좀 비켜주세요."

"싫어! 싫어! 싫다구!"

"할머니!"

"넌 뭔데 우리 엄마한테 소리를 질러?!"


나의 참을성에 한계가 오고 있는데, 누군가 나타났다.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아들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흰색 펠리세이드를 끌고 있었다.


빵빠앙-!


나의 바로 뒤에 있던 펠리세이드가 경적을 울린다. 아마 비키라는 뜻이겠지.

그러나 나는 비켜줄 생각이 없다. 내가 왜 비켜야 한단 말인가.


"이봐, 비키라고 했잖아! 우리가 먼저 왔잖아!"


제 딴에서는 나의 이러한 태도가 답답했는지, 할머니 아들이 차에서 내려 내 차로 다가왔다.

마치 벌크업한 쥐처럼 생긴 할머니 아들은 내 운전석 창문을 거칠게 두들겨댔다.


"경차는 그냥 아무대나 대도 되잖아! 비켜!"


지이잉-


나는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제가 먼저 왔습니다만."

"우리 엄마가 먼저 왔잖아! 저 노인네가 가뜩이나 무릎도 안 좋은데 한참 동안이나 저러고 있었다고!"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굳이 재판의 방까지 갈 필요는 없겠지. 사실상 좀 귀찮기도 하고.


'그럼 방법은 하나뿐.'


"빨리 비키라니까!"

"좋아요. 비켜드리지요."


마침 정중재도 화장실에서 나왔고. 저기 어기적거리면서 걸어오는 게 보이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아, 그런데 이거 하난 알아두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슈아아아아아-


황금마티즈의 배기구 부근에서 황금빛이 새어나오더니 할머니가 서있는 주차칸을 휘감았다.


"펠리세이드는 여기 주차하기엔 좀 벅찰 겁니다."

"내가 무사고로 운전만 30년 한 사람이야. 주차같은 건 껌이야, 껌. 이것보다 더 한 곳에서도 주차해봤다고."

"그런가요?"


글쎄, 뭐.


"형님! 이번엔 형님이 운전 하시는 겁니까? 그래도 제가 해야죠! 제가 모시기로 했는데!"


마음대로 해 봐라.


"괜찮아, 일단 빨리 타."

"넵! 그런데... 무슨 일 있었습니까?"


조수석에 탑승하자마자, 정중재가 궁금한 듯 주변을 살폈다.

나는 씩 웃으며 악셀을 밟았다.


"어. 별 일 아냐."


부아아아앙-


어디 한 번 주차 잘 해보라지.


*

*

*


유스티오와 정중재가 사라진 후, 펠리세이드 차주와 그의 어머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두 사람의 욕을 하기 시작했다.


"배고파! 배가 고파!"

"네네, 엄마. 금방 가요, 가."


조수석에 앉은 할머니에게 안전벨트를 채우며, 펠리세이드 차주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 개같은 놈...... 오래 살다보니 별의 별 놈들을 다 만나보네. 기분 나쁘니까 빨리 주차하고 화장실이나 가야지."


차주는 서둘러 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펠리세이드 차량 뒷편으로 새로 들어온 차량들이 계속해서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칸이 좀 좁아보이긴 하는데.'


아까 그 마티즈 끌던 남자가 차주에게 경고했었다. 이곳 주차칸은 상당히 좁다고.


'근데 원래 이렇게 좁았었나? 아까 봤을 때는 꽤 넓었는데. 카니발이나 스타리아도 무난하게 주차할 수준이었는데.'


물론 착각했을 수도 있다. 주차칸을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시각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니까.


'어쨌든 천천히 주차를 해보자고.'


물론 좁아도 상관은 없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무수히 많은 좁은 길을 지나왔던가. 이 정도는 좁은 축에도 못 낀다. 그저 애교 수준일 뿐이다.


붕-


차주는 주차를 완벽하게 하기 위한 각을 잡은 후, 기어를 R에 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후방 카메라도 확인하면서, 양 측 사이드 미러를 체크한다.

왼쪽 오케이, 오른쪽 오케이. 양 옆에 주차된 차에 닿지 않고 완벽하다. 역시 나는 최고야.

이제 핸들을 돌리고, 그대로 후진만 하면 된다. 이대로 후진하면 양 옆 차량에 닿지 않고 완벽한 주차를 할 수 있을 테니까.


......

분명 그렇다고, 차주는 생각했다.

그러나.


부우우욱! 북!


얖 옆의 차량을 시원하게 긁고 말았다. 얼마나 시원하게 긁었는지, 오른쪽에 주차되어있던 BMW 뉴 X6의 사이드미러가 박살이 났을 정도였다. 왼쪽에 있는 구형 에쿠스 역시 마찬가지로 사이드미러가 박살나버렸다.


"아, 아니.....!"


차주는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완벽했다. 사이드미러로 확인까지 했다.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사고가 날 수 없는 빈틈없이 완벽한 주차였는데.


당황한 건 차주 뿐만이 아니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여전히 투정을 부릴 뿐이었다.


"나 배고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도로 위의 재판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6 은혜 갚은 덩치 +2 24.01.04 17 2 15쪽
75 비 올 때는 고속도로 따위 타고 싶지 않아 +2 24.01.03 20 2 14쪽
74 고속도로에서는 함부로 핸들을 꺾지 맙시다 +2 24.01.02 22 2 13쪽
73 주차를 잘 합시다 +2 24.01.01 20 2 13쪽
72 이래도 되는 건가요 +2 23.12.31 19 2 13쪽
71 원래 멍청하면 사기도 못 치거든 +2 23.12.30 19 2 12쪽
70 문콕 +2 23.12.29 20 2 12쪽
69 버스전용차선의 카니발 +2 23.12.28 25 2 11쪽
68 살아라 +2 23.12.27 22 2 16쪽
67 홍대입구역에서 생긴 일 +2 23.12.26 25 2 13쪽
66 변이 +2 23.12.25 20 2 14쪽
65 이론은 이론일 뿐 오해하지 말자 +2 23.12.24 28 2 12쪽
64 화물차 +2 23.12.23 26 2 11쪽
» 인간 라바콘 +2 23.12.22 24 2 11쪽
62 융통성? +2 23.12.21 28 2 17쪽
61 KTX +2 23.12.20 26 2 15쪽
60 에르마나 유덱스 +2 23.12.19 24 2 13쪽
59 간절하게 +2 23.12.18 21 2 11쪽
58 무면허? +2 23.12.17 24 2 13쪽
57 붙었다 +2 23.12.16 22 2 13쪽
56 여보세요? +2 23.12.15 24 2 13쪽
55 중고차 딜러 +2 23.12.14 23 2 13쪽
54 아버지 +2 23.12.13 22 2 16쪽
53 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지 +2 23.12.12 19 2 14쪽
52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거든 +2 23.12.11 27 2 12쪽
51 Money, Money, Money +2 23.12.10 26 2 16쪽
50 누구세요? +2 23.12.09 22 2 12쪽
49 이번 사고, 누구 잘못이 더 클까요? +2 23.12.08 28 2 11쪽
48 정차 시에는 기어를 꼭 P에 두세요 +2 23.12.07 29 2 12쪽
47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2 23.12.06 30 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