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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938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3.12.0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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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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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이번 사고, 누구 잘못이 더 클까요?

DUMMY

잠시후, 정지신호에서 파란불로 바뀌었다.

2차선 중앙에 서있던 나와 오피러스를 제외한 다른 모든 차량들은 우리를 앞질러 앞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 뒤에 있던 차량들은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다가, 사고가 났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하나 둘 차선을 바꾸어 우리를 지나쳤다.


"일단 자리를 옮기도록 하죠."

"아이고, 내가 미안해서 어쩌나."


오피러스의 차주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였다. 손주를 봤어도 한참 전에 봤을 법한 그런 나이.


"괜찮습니다. 그보다 여기에 있다가는 다른 차량들 통행에 방해가 될 테니, 자리를 구석으로 좀 옮기도록 하죠."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고개를 숙여가며 내게 연신 사과를 했다.

그런 할아버지를 겨우 설득한 끝에, 다른 차량들에 방해가 되지 않는 구석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신경이 거슬리는 경적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이.


"내가 미안합니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할아버지의 사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큰 사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내게 미안해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지금 별 생각이 없다.

할아버지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도 알고, 이런 걸로 굳이 재판의 방까지 갈 이유는 없다.


물론 프라우스였다면 얘기가 달랐을지도 모르지.

아마 늙은이는 죄다 죽어야 한다며 사형을 집행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어르신."

"내가 미안합니다. 정말로 미안해요. 얼마 주면 될까요? 수리비가 얼마나 되지요?"


조금은 놀랍다.

지금까지 이 삭막하기 그지 없는 도로 위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은, 나의 황금마티즈를 보고 경차라며 무시하기 일쑤였는데.

이분은 그런 말은 조금도 언급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어르신. 돈 안 주셔도 됩니다."

"그래도 그게 아니에요. 내가 잘못한 일인데, 내가 수습을 해야지. 얼마면 될까요? 수리비가 어느 정도 나오는지 내가 잘 몰라서. 어디보자, 내 지갑이 여기있구나."


낡은 지갑이다.

어쩐지, 그리우면서도 익숙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됐습니다 어르신. 별 것도 아닌데요."

"그래도 그게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여기 보세요."

"으음?"


나는 할아버지에게 내 차량의 앞 범퍼를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 오피러스의 뒷 범퍼를 보여주었다.


"멀쩡하잖습니까? 기스도 없고, 작은 흠집 하나 없으니 그냥 서로 갈 길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이게... 이럴 수가 있나...?"


할아버지는 당장이라도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내 차량과 자신의 차량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딱 봐도 아무런 흠집도 안 났건만,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좀처럼 믿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믿든지 믿지 않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내 황금마티즈는 덤프트럭이 와서 박아도 코딱지만한 흠집도 나지 않으니까.

물론 오피러스는 약간 찌그러지긴 했었다만, 그건 내 신성마법으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르신."


이제 집에 보내드려야지.


"이제 그만 집에 가세요. 집에 가셔서 뜨거운 물로 씻으시고, 맛있는 거 드시고 쉬십시오. 오늘은 이만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렇게 당황한 상태로 운전 계속 해 봐야, 의도치 않은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운전이라는 행위는 상당한 섬세함을 요구하는 행위인지라, 당황하면 브레이크 밟아야 할 때 악셀을 밟게 되는 법이니까.


"어이구,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차 멀쩡하죠?"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것 참. 신기할세."


할아버지가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도록 간단한 기도를 해 준 후, 나 역시 집으로 돌아왔다.

어째, 집으로 오는 동안 별의 별 사고를 다 마주한 기분이 드네. 집에 오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이제왔냐구구! 배고프다구구! 밥을 내놓아라구구!}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피죤이 반가운 듯 나를 반겨주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밥을 반긴 건가?

이자식, 그만 날아다녀라. 집 안 여기저기에 새 깃털이 떨어지잖아. 바로 어제 청소했는데.


"나를 기다린 게 아니고 밥을 기다린건가?"

{그럴리가 있냐구구?}

"은근히 내 시선을 피하는데?"

{구구-}


나는 내 어깨 위에 내려앉은 피죤을 장난스럽게 노려보다가 새우맛 과자 한 봉지를 꺼내 녀석에게 던져주었다.

먹이를 발견한 녀석은 퉁퉁한 부리로 과자봉지를 냉큼 낚아채더니, 거실 구석으로 이동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바닥에 가루 떨어져 임마!"


피죤에게 따끔한 경고를 날린 후, 나는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따라 참 피곤하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그러고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됐네.

뭘 먹어야 하나. 개인적으로 밥하고 따듯한 국물요리를 먹고 싶은데.

하지만 밥을 하긴 귀찮다. 시켜 먹을까?


아니지. 국물요리는 모름지기 직접 먹어야 맛이 좋은 법.

배달해서 먹는 김치찌개와, 직접 끓여서 바로 먹는 김치찌개의 맛은 천지차이니까.


웅웅웅-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이 울린다. 아까 진동 모드로 바꿔놔서 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발신인이 누군지 확인하자마자, 나는 전화를 받았다.


{형님!}


정중재였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형님, 저녁 드셨습니까?}

"저녁?"

{예! 아직 안 드셨으면 날도 슬슬 쓸쓸해지는데, 제가 국밥 사드리겠습니다!}

"국밥?"

{옙! 순대국밥 어떠십니까?}


어떻긴 뭐가 어때?

완전 땡큐지.


*

*

*


"형님 벌써 순대국밥 특대로 네그릇이나 드셨습니다. 지금 드시는 것까지 합하면 다섯그릇째예요."

"뭘 새삼스럽게."


정중재가 소개해 준 국밥집은 참 맛있었다.

순대국밥을 주로 하는 집이었는데, 무엇보다 이 깍두기가 요물이다. 직접 만드는 모양인데.


"하긴, 새삼스러울 것도 없죠. 형님이야 워낙 대식가시니까요. 그래도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물려서 못 먹거나 배가 너무 불러서 못 먹을 텐데요."

"마음 같아서는 10그릇도 넘게 먹을 수 있지만 참는 거야. 네 지갑사정 때문에."

"에이, 10그릇 정도야 충분히 사드릴 수 있죠. 제 형님인데요."

"그럼 소고기 특수부위로 50인분은 어떠냐?"


툭, 숟가락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국밥그릇에 처박아 두었던 고개를 드니, 굳은 표정의 정중재가 보였다.


"그, 그건 좀... 뭐, 뭐랄까... 돼지고기면... 가능할지도... 아니......"

"장난이야, 장난. 내가 설마 너한테 그러겠냐."

"자, 장난이죠 형님......? 50인분은......"

"그래. 장난이야, 장난."


물론 진심이다.

정중재에게 고기를 50인분이나 사달라고 하는 것 말고, 50인분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갈비도 괜찮지. 양념갈비 말고, 생갈비로. 구워서 무생채랑 같이 먹으면 진짜 맛있거든.


"그나저나."


국밥을 다 먹은 후, 마지막으로 순대국밥 한 그릇을 더 주문한 후 정중재에게 물었다.


"계속 방송하느라 바쁘더니, 어쩐일로 연락을 다 했냐?"

"그걸 참 빨리도 물어보시는군요, 형님!"

"어쨌든 대답해 봐."

"형님, 제 방송 계속 보고 계시죠?"

"그래."


꾸준히 챙겨봤지.

다만, 이렇다 할 마력덩어리를 품은 자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마인도.


"아직 방송에 나간 건 아닌데요, 최근에 들어온 제보영상 하나가 있었습니다."

"...제보영상?"

"네. 제 채널 구독자분께서 보내주신 제보영상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 우선 한 번 보시죠. 그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정중재가 얇은 카키색 자켓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 앞에 놓았다. 화면 속에서는 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제가 이 영상을 보자마자, 우선 형님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제보자님께서 억울하다고 하시는데, 해결방법을 원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법적인 지식이 많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럽네요. 제보자님 편을 들어도 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확실한 판단히 잘 안 섭니다."


결국 도와달라는 얘기로구만.

어쨌거나 영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제보자는 시내에 있는 일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왕복 3차선 도로였다.

영상 속에는 차량 신호가 보였는데, 정지신호였다. 반면, 제보자 차량 바로 앞에 있던 횡단보도의 신호는 파란불이었다.


그러니 멈춰야 할 텐데, 제보자는 멈추지 않았다. 핸드폰을 보며 운전한 것이다.

정중재의 설명에 의하면, 제보자는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다가 사고를 냈다고 한다.


"제보자님께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시긴 했습니다. 핸드폰을 본 죄를 인정한다고요."


영상은 계속되었다.

제보자는 결국, 횡단보도에서 걸어가던 40대 남자 한 명을 치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고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보통 차가 사람을 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 아니던가?


'쳤다고 보기도 애매하네.'


쉽게 비유하자면, 그냥 손가락으로 툭, 하고 친 정도다.

이 정도로는 어린 아이도 안 다친다. 털끝 하나도.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 제보자의 속도 자체가 빠르진 않았다.


'그래도 사고는 사고다.'


사고가 크게 났건, 혹은 작게 났건간에 어쨌거나 사람과 차가 부딪힌 건 사실이니까.

또한 제보자가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보행자신호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보다가 사고를 낸 게 맞긴 하니까.


"제보자님께서는 바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돈을 드리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영상이 끝나자, 정중재가 자켓주머니에 핸드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또 상대측도 그렇게 하자고 합의를 본 거고요. 그냥 자기들끼리 합의 보고 깔끔하게 끝내자고 했던 거죠. 그런데 다음 날 연락이 왔답니다."

"갑자기? 연락이 왔다고?"

"네. 입원을 했다는 거예요."


입원?


"솔직히 말해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정도 사고는 사고라고 보기도 애매하다고 생각합니다. 입원은 커녕, 새끼손가락 감쌀 수준의 밴드 붙이기도 뭐하죠. 상처가 날 수가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긴 해.

그렇지만 제보자가 핸드폰을 보며 운전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제보자가 가해자인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데.


"아무튼 상대측이 병원에 입원을 해서 돈을 계속 요구하는 것 같아요."

"흐음..."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뭐? 더 있어?"

"제보자님께서는 자기 잘못을 인정 하셨잖아요. 이때까지만 해도 들어주려고 했대요. 근데 갑자기 상대측이 여행을 간 거예요. 한, 3박 4일 정도."

"갑자기? 입원까지 해 놓고서?"

"네.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제주도였는지, 일본이었는지 아무튼 그랬다네요."

"여행 다녀와서? 그 뒤로는?"

"여행 다녀와서, 또 병원에 입원했답니다. 목이랑 허리 쪽이 망가진 것 같다네요."


어이가 없네.

허리랑 목이 박살났는데 비행기 탈 수는 있냐? 제주도를 가든 일본을 가든 어쨌든 걸어야 할 텐데, 허리 박살난 새끼가 걸을 수 있느냐고?


아, 이거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영상 속에 마력덩어리는 보이는데 말이지.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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