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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943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3.12.1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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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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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여보세요?

DUMMY

"씨발."


사고가 났다.

심지어 보통 사고도 아니었다.

범퍼나 차문을 긁었다던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차라리 문콕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씨발."


조금 전 송대근의 차는 보통 도로에서는 쉽게 나올 수 없는 수준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과속.


원래도 과속을 하며 차량의 속도감을 즐기던 송대근이다. 거기에 음주운전이라는 최악의 조건까지 덧붙여졌으니, 사고가 크게 나는 건 당연한 수순.


'씨바아알!'


술이 깬다.

병나발을 몇 병이나 불었건만, 언제 술을 먹었냐는 듯이 정신이 멀쩡해졌다.

송대근의 차와 부딪힌 상대 차량의 앞범퍼는 박살이 났다. 아니, 박살난 수준이 아니었다. 실력 좋은 중화요리사가 칼로 썰기라도 한듯이 잘려나갔다.


해당 피해 차량은 09년식 제네시스 쿠페.

제 신호에 맞추어 천천히 이동 중이었는데, 캄캄한 어둠 속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송대근에 의해 피해를 보았다.


쿠페 차주의 목숨은 과연 멀쩡한 것일까. 차주의 움직임이 전혀 없다. 앓는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목숨이 붙어있는지, 떨어졌는지, 그 사실은 알 수 없지만, 119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누군가 신고를 한 모양이다.

설령 목숨이 멀쩡하다 한들 신체의 부속기관이 과연 멀쩡할지는 의문이다.


119에 실려간 쿠페 차주는 즉시 수술실로 이송되었다. 예상보다 길어진 수술 끝에 차주는 회복실로 보내졌다.

아직 차주는 깨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알고 있었다. 수술의 결과를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차주는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모든 신경이 끊어졌을 뿐더러, 희망은 전혀 없었다.

차주의 나이 올해로 33살. 아직 파릇파릇한 한창 때의 나이다.

어느 새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옮겨진 차주의 곁에는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그와 올해 겨울에 결혼하기로 했던 약혼녀였다.


"흐어어어어엉!!"


다리를 절단하는 큰 수술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차주는 정신이 든 상태였다.

정신은 멀쩡했지만 가슴은 아파왔다. 그는 멍 때리며 침대 옆 창문을 내다보았다.

여자친구가 곁에서 엉엉 울고 있었지만, 차마 위로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절망적인 장면만 떠올랐다.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몸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 여자와 결혼하는 게 맞는 걸까? 괜히 잘못 결혼했다가, 얘한테 피해만 주지 않을까? 제대로 된 남편 구실도 못 할 텐데, 그냥 보내주는 게 맞을지도 모르잖아.


'그 새끼, 어디로 갔을까.'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다행히 기억력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차주는 사고 당시 자신을 공격했던 놈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졌다.


"서연아, 부탁 좀 해도 될까?"

".......응?"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 떠올랐다.


"나 이렇게 만든 놈, 누군지 알아야겠어."


자초지종 끝에 겨우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사고 당시 블랙박스는 촬영이 잘 된 상태였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블랙박스의 화질이 좋지 않았다. 얼마나 좋지 않은지, 가해 차량의 차종이 무엇인지 겨우 확인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떡하지.'


경찰에 신고를 해야한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 뿐이다.

하지만 경찰이 잘 잡아줄까?

번호판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라고 하진 않겠지?


아니면, 주변 CCTV를 확인해야 하나?

하지만 그 거리에는 CCTV가 없다.

있다 한들 고장난 것들 뿐이다. 애초에 관리를 안 하니까.


"오빠."

"음?"


침대 곁에 앉아 블랙박스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서연'이라는 여자가 입을 열었다.


"오빠가 자주 보던 그 방송 있잖아."

"방송?"

"응, 블랙박스 방송."

"아, 전지적 블랙박스 시점?"

"거기 제보해 봐."

"에이."


차주가 손사래를 쳤다.


"거긴 그냥 제보만 하는 방송이야. 뭔가 해결은 안 된다고. 그 사람은 변호사가 아냐."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도움이 될 거야."

"도움이 된다니?"

"그 방송 보는 사람들 많잖아. 관련 커뮤니티도 있을 거고."


바로 그 순간, 차주는 깨달았다.


"......무슨 소리 하는지 알겠어."

"그래?"

"그래. 경찰은 못 잡아도."


네티즌은 잡을 수 있지.


*

*

*


"형님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중재의 집에서 녀석의 어머니와 밥을 먹은 후, 녀석은 나를 자기 방으로 따로 불러냈다.

녀석이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블랙박스 영상이었다. 구독자가 보내 준 영상이라고 했는데, 상당히 처참한 영상이었다.


"우선 가해차량은 분명 마약 아니면 음주운전 일 겁니다. 만약 맨정신이라면 그게 더 무섭지만요."

"그럼 사고 당시 가해자의 상태는 총 세 가지로 분류가 되겠군. 마약, 음주, 그리고 마지막으로 맨정신."

"네. 가해자는 사고가 발생한 후 5분도 채 되지 않아 현장을 떠났습니다. 제보자님께서는 경찰에 바로 신고하셨지만, 사건 접수를 한 경찰 관계자가 이런 건 잡기 어렵다며 도리어 비웃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큰 사건을 그냥 버려둘 수는 없지.

좋은 경찰들도 분명 많지만, 그저 편하게만 살고자 하는 양심 없는 놈들도 있긴 있으니 원.


"그래서...... 형님께서는 왠지 아실 것 같아서요. 이 가해자가 누군지 말입니다."

"가해자가 누군지는 나도 몰라."

"그런가요......?"


정중재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감돌았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지금 그 놈이 어디 있느냐야."

"가해자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조용."


나는 흥분해 목소리를 높인 녀석을 말렸다.


"번호판 따윈 상관없어."


영상 속에서 느껴지는 마력덩어리의 기운.


"오늘이 다 가기 전에, 그 새끼 잡아줄게."


그것만큼은 블랙박스가 가릴 수 없지.


*

*

*


"후욱, 훅."


오늘은 분명 주말이 아닌 평일일진데.

송대근은 어찌하여 출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어우, 씨발."


사고가 나자마자 술이 확 깸과 동시에, 송대근은 깨달았다.

이건 보통 사고가 아니다.


그는 당시 목격했다.

상대 피해자의 다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일부가 잘려나간 그 끔찍한 모습을.


"괜찮아."


두려웠다.

그때 들었던, 그리고 지금까지 들고 있는 이 감정. 두려움이었다.


"난 괜찮다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건 별 거 아니라는 만용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일단 시간이 지났으니 음주운전은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아니야."


어쩌면, 오히려 음주운전이라는 게 드러나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야 벌을 받더라도 감형이 되지 않겠는가.


"애초에 지가 방어운전을 제대로 했어야 할 거 아냐!"


어쨌든 내 잘못은 아니다.

모든 건 그 놈 잘못이야.

난 원래 술 먹고 운전해도 잘 하는데, 그 놈이 그날따라 막 달린 탓이야.

아무리 자기 신호여도 주변을 잘 살피고, 천천히 움직여야 할 거 아냐?


이거 보험사에도 물어봐라.

내 차를 봤을 거 아냐? 그럼 미리 예방할 수 있다고 걔들도 말할 걸?

그러니까 이건 결국, 쌍방과실이야. 쌍방과실이라고!


"에이씨."


무작정 차를 끌고 도망쳤다.

정처 없이, 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냥 계속 달렸다. 뭐가 됐든 서울만 벗어나면 될 것 같았다.


"......배고프네."


얼마나 달렸던 것일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악셀을 밟았더니, 벌써 남은 기름은 단 한 칸 뿐이었다.

주변 눈치를 보며 겨우 기름을 넣은 후 다시 이동하려는데, 배가 고파왔다.

마침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의 장난인지. 주유소 바로 근처에 카페가 하나 있었다. 주변이 온통 나무로 둘러싸인 한적한 카페였다.

시간이 나름 사람들이 붐빌 때일 텐데도 불구하고, 카페에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직원 한 명 뿐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사람들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대근은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직원으로부터 계산한 카드와 진동벨을 건네받은 후, 그는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래, 어쩌면 여기가 나을지도 몰라. 사람도 없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이 아니지.'


그때 진동벨이 울렸다.


"어악!"


카페에서 주는 진동벨이야 딱히 놀랄 것도 없다만, 송대근은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 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쪽팔림이 뒤섞인 감정을 품은 채 그는 커피를 가져와 빠르게 마시기 시작했다.

원래 같으면 천천히 마셨겠지만, 오늘따라 속이 타들어간 탓이었다.

시원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들어가야 답답한 이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릴 것 같았다.


웅웅웅웅웅-


불안한 두 눈을 굴리며 빨대를 쪽쪽 빨아들이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뭐야?"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직후, 송대근은 스마트폰의 전원을 바로 꺼버렸기 때문이다.

전원이 꺼진 스마트폰이 어떻게 전화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씨발."


이 스마트폰을 구매한 지 벌써 4년 째.

그럼 가끔 이상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

이런 식으로 애써 소름끼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송대근은 계속해서 걸려오는 전화를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연락은 계속되었다.

그것도 한 번도 통화음이 끊기지 않은 채였다.

보통 특정 시간이 지나면,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 저절로 통화가 종료되지 않던가?


"이게, 이게 대체 뭐냐고."


결국 송대근은 스마트폰의 전원을 다시 한 번 더 끄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전원은 꺼지지 않았다.

당장 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네가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걸 거라는 듯이, 스마트폰은 막무가내였다.


"......여보세요?"


결국 송대근은 두려운 듯 양 손을 떨며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뜻밖의 존재였다.


- 야, 너 여기 카페에 있는 거 맞아? 아! 저기 있네. 창가에 앉았지?

"......뭐라고?"


송대근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친구들이 보였다.

그들이 카페 내부로 들어오자마자 송대근은 빽, 소리를 내질렀다.


"여길 니들이 왜 와?!"


그러자 친구들은 당황해하며 말했다.


"네가 여기로 오라며? 급한 일이 있다면서?"

"......뭐?"


뭔 개소리야.


"난 그런 적 없어."

"그런 적 없기는 무슨. 이거 봐라. 통화 내역. 네가 나한테 씨발, 끈질기게 전화했지. 여기로 오라고."


친구가 보여준 스마트폰 화면에는, 송대근이 친구에게 끈질기게 전화를 했다는 내역이 적혀있었다.

심지어 오늘 통화한 것이었다. 그것도 10분이나.


'말도 안 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전원이 꺼졌는데, 어떻게 전화가 와?

그리고 난 쟤한테 연락한 적이 없는데, 왜 연락한 걸로 되어있어?


".......아!"

"야!"


행운의 여신이 손을 들어준 것일까.

몇 번의 시도 끝에 송대근은 스마트폰의 전원을 꺼버리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송대근! 여기 주인 어디갔냐? 알바도 없어."


카페에 왔으니 먹을 것을 시키려고 카운터에 간 친구들이,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든 송대근이 그들에게 반문했다.


"......뭐라고?"

"주인새끼 없다고! 아, 가게 비우고 어디로 간 거?"


우르릉-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화창하니 소풍가기 딱 좋은 분위기를 풍기던 하늘에는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무거워진 먹구름들은 곧 차갑고 어두운 비를 하나 둘 토해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주변이 어두워진다.

가게의 불빛도 꺼졌다.


"아! 뭐야?! 여기 전기세 안 내냐?"

"송대근 니는 뭐 이딴 카페로 오라고 하냐? 외곽에 좋은 카페가 얼마나 많은데 이런 데를 와?"


웅웅웅웅웅-


친구들의 투덜거림에 송대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스마트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발신인은 없다.

그런데 전화가 온다.

스마트폰은 꺼진 채였다.


"이 새끼야, 전화 좀 받아라."

"누군데 안 받는 거야? 여자야?"

"씨발 뭔 개소리야!"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은 송대근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친구들은 어이가 없었는지 친구의 뒷통수를 한 번씩 가볍게 쳤다.


"아니면 아닌거지 새끼가 존나 뭐라고 하네."

"그냥 좀 받어! 받고 주인한테 전화 좀 해봐라. 여기 가게가 왜 이따구냐?"


친구들은 송대근의 곁을 떠나 가게 주인, 혹은 알바가 어디있나 찾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가게의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씨발."


어두운 테이블 위에 놓인 스마트폰을 노려보던 송대근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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