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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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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5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3.12.2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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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융통성?

DUMMY

장례식장을 나온 후, 나는 주차장으로 즉시 이동했다. 피죤은 집에 홀로 내버려 둔 채였다.


- 날 두고 가다니, 가다 발병이나 나버려라구구! 집에 오지 말고 밖에서 자라구구!

- 어차피 차 타고 가서 발병나도 집에 올 수 있는데.

- 짜증난다구구!


내 머리를 쪼으려는 피죤을 피해 겨우 장례식장으로 올 수 있었다.


"끝났어? 부조금은?"


주차장에 가니, 멋드러진 검은색 각그랜져 옆에 삐딱하게 서있는 유덱스가 보였다. 그 옆에는 나의 황금마티즈가 보였다.

어째, 갑자기 비교되는 느낌이 드는데.


"...내고 왔어."

"범인이 누군지 알 것 같다고?"

"그래."


유덱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어떻게 알지? 넌 사고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잖아?"

"현장에 없었지만, 냄새는 기억해."

"냄새?"

"내가 인간세상에 처음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판의 방에 간 적이 있어. 죄인 한 명하고. 지금 느껴지는 이 냄새는."


킁킁-


"그 새끼 냄새야."

"잠깐만."


무언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지 유덱스가 머리를 마구 헝클어 뜨리며 말했다.


"나 생각 좀 해보자. 좀 복잡하네."

"뭘 생각해?"

"네가 방금 그랬잖아. 재판의 방에 죄인을 데려갔다고."

"그렇지."

"그럼 죄인은 분명히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합당한 판결을 받았을 거고."

"맞아."

"그런데 그런 판결을 받은 죄인이 또 죄를 저지른다? 이게 말이 돼?"

"말이 돼."


재판의 방에서 벌금형이나 자자형 등의 형벌을 받게 된 죄인은, 또 다시 죄를 저지를 수 있다.

한 번 거짓말을 한 아이가 어른에게 혼난다 한들, 또다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계속해서 죄를 저지를 경우 해당 죄인에게 수많은 패널티가 쌓이게 되겠지만, 어쨌든 가능은 하다.

'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결국 본인의 의지에 의한 행위이니까.


"판결을 받은 죄인이 계속해서 죄를 저지를 수는 없어. 결국 본인에게 해가 갈 텐데?"

"그걸 알면서도 짓는 게 바로 죄야, 유덱스. 너도 많이 봐서 알잖아?"

".......그렇다면."


그제서야 납득을 했는지 유덱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번 사건에 대한 죄인을 잡게 된다면."


그녀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평범한 형벌은 결코 아니겠군."


*

*

*


새벽 2시.

아무도 없는 텅 빈 도로 위에 황금마티즈와 각그랜져가 나란히 달리고 있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오지 않을 거라면서?"


두 사제는 전화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었다.

유스티오는 우측 사이드미러를 보며 천천히 차선을 변경하며 유덱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온 거냐?"

- 마침 할 일이 없기도 했고.


각그랜져 역시 황금마티즈를 따라 차선을 변경했다.


- 이번 사건이 워낙에 큰 사건이잖아. 내가 같이 가 주는 게 나을 것 같았거든.

"혼자 할 수 있는데."

- 네가 그랬잖아.


답답하다는 듯 유덱스가 말했다.


- 이번에 느껴지는 죄인의 마력덩어리가 심상치 않다고 말이야. 나도 느끼고 있어. 너만 느끼는 게 아냐. 이번 마력덩어리는 뭔가 달라. 내가 인간세상에 와서 본 것 중에서 가장 최악이라고.


한참을 달렸을까. 두 차량은 어느 새 경기권으로 내려왔다.

이곳은 오산 진위면에 위치한 공장지대의 구석자리. 아주 늦은 새벽이라 사람도 차도 없었다. 심지어 가로등도 불빛이 약했다.


깜빡깜빡- 치직-


당장이라도 꺼질 듯이 불안하게 깜박거리던 가로등이 파밧, 소리를 내더니 꺼져버렸다.

덕분에 좁은 시골길은 암흑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러한 암흑 속에서 홀로 유독 밝게 빛나는 차 한 대가 있었다.


흰색 카니발이었다.


"씨....이.....바..."


해당 차량의 차주는 배서혁.

그는 얼마 전 유스티오에 의해 벌금형은 물론이요, 덤으로 자자형까지 선고받은 인간이었다. 유스티오의 면허시험을 방해했었던 바로 그 남자.


벌금형도 벌금형인데, 이놈의 자자형이 가장 큰 문제였다.

벌금은 어떻게든 대출받고 캐피탈 빌려서 하면 된다지만, 자자형은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자자형 때문에 취업준비도 못 하고.

취직도 못하고.

알바도 못하고.

심지어 구걸조차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경제행위가 일절 차단되었으니까.


바닥에 떨어진 동전조차도 주울 수 없었다.

그에게 허락된 것은 '경제 행위'가 아닌, '약탈하는 행위' 뿐이었다.


"나 혼자는 못 뒤져......"


어느 새 홀쭉해진 그의 두 볼이 징그럽게 일그러졌다.

그는 억울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만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때 KTX와 충돌했던 그 뉴그랜져. 그 안에는 단란한 가족이 타고 있었다.

바로 그 모습을 배서혁은 꼴보기 싫었던 것이다. 왜 나만 빼고 행복하단 말인가. 나는 이렇게 X같은데.

내가 괴롭고 불행한데 너희는 행복하면 안 되지. 가정을 이루고, 토끼처럼 귀여운 딸을 낳으면 안 되는 거잖아.


너희들이 가족끼리 희희낙락할 동안, 나는 기름값도 못 번다. 사람도 죽여가며 지갑까지 훔쳤단 말이다. 나 혼자 망할 수는 없다.


"씨발!"


배서혁은 이 빌어먹을 공장지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곳 역시 그가 원해서 온 곳이 아니었다.

마침 기름이 딱 떨어져버렸고, 차는 더 이상 굴러가지 않았다.

이래서 새 차를 사야 하는데, 이래서 하이브리드를 사야 하는데.


"배서혁?"


그런 배서혁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아니, 누군가'들'이었다.


이 목소리.

배서혁은 이 목소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인생을 지옥으로 끌고 가버린 그 새끼.


"......너, 씨발."

"아, 역시 맞군."


그 새끼 옆에는 처음 보는 화려한 미인이 함께 서있었다.

그 모습에 배서혁은 부아가 치밀었다.


*

*

*


"너 때문에!!!"


바닥에 엎어진 채 울부짖던 배서혁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달려왔다.

놈은 나의 멱살을 잡고 울분을 토해내며 마구 흔들어댔다.

물론 내 몸이 흔들리진 않았다. 놈이 아무리 내 몸을 흔들어봤자 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너 때문에!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잖아!! 좋냐, 좋아? 어?"


배서혁의 시선이 내 뒤에 있던 유덱스를 향했다. 그러자 놈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아주 즐겁게 살고 있나봐? 어? 내 인생은 시궁창으로 보내 놓고 즐거워? 여자랑 즐겁냐고 씨발새끼야!!"


죄를 저지른 죄인 중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반성하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디케교 사제인 내가 장담컨데, 그 비율은 결코 많지 않다.

오히려 많은 죄인들이 회개는 커녕, 내 잘못은 없다고 억울해 할 뿐이니까.


"난 잘못이 없어. 애초에, 애초에 네가 운전을 이상하게 했던 거라고. 그런데 겨우 그런 걸로 벌금을 매겨? KTX도 봐봐. 그게 내 잘못이야? 애초에 나라가 잘못된거야, 이건. 그러게 왜 기차 다니는 철길에 차가 같이 오게 만들어?"


이런 죄인들의 패턴은 늘 똑같다.

일단 나는 잘못이 없고.

모든 건 다 너 때문이고.

내가 그런 짓을 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배서혁."

"너 때문이야!"

"배서혁!"


웃기지 않은가.

아마 이런 죄인들은 신경성 스트레스 따위 받지 않을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위염도, 두통도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잘못이 없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옳은 사람이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네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


이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아가면 얼마나 편할까.

내가 이런 유형의 잘못을 저질렀구나,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야지 같은 자기반성따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얼마나 편할까.


"디케교 사제의 권리로, 지금 이 자리에서."


그래.

그렇게 편하게 살아라.

네가 남들에게 저지른 죄를 그저 남의 탓으로 돌리며 살아라.

잘못을 회개하지도 못한 채로, 그대로 살아라.


"즉결심판을 진행한다."

"유, 유스티오!"


나의 손끝에서 진한 황금색 빛이 뿜어져 나와 배서혁을 덮쳤다. 내 뒤에 있던 유덱스가 소리쳤다.


"즉결심판이라면...... 너 설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디케교 사제만이 할 수 있는 즉결심판.

재판의 방에 데려가 여신상에 의해 재판을 받지 않고 바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신성마법이다.

유덱스가 놀란 이유는 간단하다. 즉결심판을 받게 된 죄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죄인에게 거열형을 선고한다-"


거열형, 혹은 사형을 받게 되어 있으니까.

또한, 사제로서의 권리를 이용해 디케여신, 혹은 여신상을 거치지 않고 심판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한 신성력의 소모가 상당히 극심하기에, 어지간해서는 즉결심판을 내리지 않는다. 이 마법을 사용한 후에 극심한 피로를 느끼게 되니까.

피로를 느끼는 이유는 있다. 죄인을 심판할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으로 디케여신에게만 있다. 사제들은 그저 그런 여신을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니까. 재판의 방에서도 심판은 여신상이 하지,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이러한 사정을 무시하고 즉결심판은 사제에게 죄인을 심판할 권리를 일시적으로 부여한다.

신의 권리를 감히 사제가 이용하고 있으니, 신성력의 소모가 상당할 수밖에.


"거, 거, 거열.......형......? 그게, 그게 뭐야!"


배서혁이 고개를 쳐들며 울부짖었다. 이미 놈의 우악스러운 손은 나의 멱살을 떠난지 오래였다.


"그게 뭐냐고! 거열형? 거열형이 뭐냐고!"


대답을 해줄 생각은 없었다.

배서혁 역시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래고래 악을 쓸 뿐이었다.


스스스스-


그때였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허공에 튼튼한 밧줄 네 개가 나타나 배서혁의 사지와 목을 단단히 묶었다.

이제 배서혁은 목과 사지가 묶인 채, 허공에 둥둥 떠오른 상태였다.


"이, 이게 뭐야? 이봐! 이봐!!! 살려줘, 살려달라고!"


유덱스가 고개를 돌렸다.

이해는 간다. 지금부터 나올 장면은, 결코 유쾌한 장면이라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


"제, 제발 살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형벌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죄인의 비명이 그쳤고.

무언가 찢어지고 갈라지는 끔찍한 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지더니.


"......."


바닥에 남은 것은, 죄인의 처참한 찢어진 가죽 뿐이었다.


*

*

*


죽은 자는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에게 위로 정도는 건네줄 수 있겠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겨우 사제의 위로로 치유가 될 리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유덱스는 최선을 다해 KTX사건 피해 유족에게 신성마법을 사용했다.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그들의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배서혁의 심판을 마친 후, 나와 유덱스는 다시 서울로 복귀했다.

올라오는 도중에 24시 중국집이 있기에, 배가 고팠던 우리는 서둘러 그곳으로 들어갔다.

유덱스는 몰라도, 나는 즉결심판을 사용했기에 피로가 극심했던 것이다. 뭐라도 열량이 높은 음식을 먹을 필요가 있었다.


"짬뽕은 처음 먹어보는데."


메뉴판을 훑던 유덱스가 중얼거렸다.


"넌 뭐 먹을거야, 유스티오?"

"짜장면."


짬뽕을 먹을까 했지만, 두 번 다시는 매운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기에 짜장면을 선택했다.


"좋아, 그럼 나도 짜장면으로 하지."

"다른 거 먹어도 상관없는데."

"아냐, 한 번 먹어볼래. 짜장면도 먹어본 적 없거든."

"탕수육이랑 군만두도 시킬게."

"그럼 나야 좋지. 많이 시킬 수록 좋아. 밥은 뭐든 푸짐하게 먹어야 좋다고."

"네가 사는 거지?"

".......뭐?"


음식을 주문한 후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까 배서혁을 심판한 후 튀어나왔던 마력덩어리.


'이상해. 이미 배서혁의 마력덩어리는 흡수한 상태인데.'


그런데 어떻게 또 마력덩어리가 나올 수 있는 걸까?

감기에 한 번 걸리면 언제든지 또 걸릴 수 있듯이 마력덩어리도 똑같은 것일까?


"아, 맞다. 유스티오, 이거 줄게. 아까 준다고 하고 까먹었네."

"뭔데?"


유덱스가 이번에는 짬뽕 한 그릇을 주문하더니 내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어어. 아직 꺼내지마. 주머니에 그냥 바로 넣어."

"......이게 뭐냐니까?"

“그거 잘 이용하면, 꽤 유용할 거야. 내가 장담할게. 무조건 유용하다, 그거. 대신 아무대서나 막 꺼내지마. 정말 필요할 때, 유용하다 싶을 때만 꺼내라고.”

"......우리가 하는 일에 관련된 거야?"

"맞아. 그러니까 잘 써봐. 나한테 고마워 할 날이 올 거다."

"너 설마 이거 하나 줬다고 이번에 밥 안 사려는 건 아니겠지?"

"......"


결국 밥은 유덱스가 샀다.


*

*

*


유덱스와 헤어진 후, 나는 집을 향해 서둘러 차를 몰았다.

늦은 밤시간. 나는 좌회전만 가능한 직진금지차선인 2차선으로 가고 있었다. 애초에 전방에 직진할 수 있는 길도 없는 상태였으니까.

내 옆 1차선에는 뉴렉스턴 차량이 있었다. 나는 오른쪽 깜박이를 켠 후 우회전 차선인 3차선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빠아아아아앙!!


1차선에 있던 렉스턴이 갑자기 3차선으로 밀고 들어왔다.

애초에 1차선과 2차선에서는 좌회전만 가능하다. 어떤 미친놈이 1차선에 있다가 냅다 3차선으로 들어온단 말인가.


그나마 내가 방어운전을 했기에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그냥 바로 사고났을 터.

그래, 먼저 가라 먼저 가. 대한민국 도로가 다 거기서 거기지, 겨우 몇 분 먼저 간다고 네가 부산까지 가겠냐. 가봐야 거기서 거기인 서울 땅이지.


아무튼 나와 렉스턴은 3차선으로 우회전을 한 후, 계속해서 끝차선으로 직진 중이었다.

그렇게 직진을 하다가 렉스턴이 우회전 깜박이를 켰고, 나 역시 깜박이를 켰다. 우리 둘 다 우회전으로 골목에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이 골목길은 아주 좁은 길이었다. 마치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날 법한 그런 좁은 길. 우회전을 하고 들어가보니 반대 차선에 택시 한 대가 정차중이었다. 손님을 태우려는 것이다.

손님을 받는 택시 앞에도 또 다른 택시 한 대가 서있었다. 때문에 손님을 받은 택시가 중앙선을 조금 침범한 후 이동을 하려는 듯했는데.


빠아아아아아아앙!!!


손님을 받은 택시의 반대편, 즉 내 앞에 있던 렉스턴이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댔다.


"뭐야?"


당황스러웠다.

택시가 위험하게 중앙선을 침범한 것도 아니고, 사실상 택시와 렉스턴의 거리는 과장하자면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만큼 넓었다.

아무리 이곳 길이 좁다고 한들, 충분히 기다려 줄 수 있었을 텐데?


"미쳤어?! 어?! 어디 미친 개택시가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달려?!"


렉스턴 차주가 손님을 태운 택시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중앙선을 넘은 게 잘한 건 아니지만, 상황을 생각하면 꼭 욕을 할 수 없는 상황 아니던가.

그럼 손님 태워놓고 어쩌란 말인가. 후진으로 빠져나가? 이건 융통성 있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 아닌가?


"저 그지같은 개택시!"


렉스턴이 움직이더니 손님을 태운 택시 앞을 가로막아 버렸다.

그 바람에, 택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봐요, 좀 비켜줘요. 손님 태웠는데."

"사과해!!"


렉스턴 차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이게 뭐하는 거냐.

왜 중앙선을 침범해서 날 위협하느냐.

택시라고 그딴 식으로 운전해도 되느냐.

당신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운전 똑바로 해라.


"아니, 내가 위험하게 들어온 것도 아니고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합니까?"

"위험하게 들어왔잖아!"


말이 안 통한다.

택시 기사는 뒷자리에 탑승한 손님에게 무어라 말을 하더니, 렉스턴 차주를 향해 말했다.


"좀 비켜줘요. 손님 태운 거 안 보입니까?"

"손님 태웠으면 더 안전하게 운전해야지, 그딴 식으로 운전을 하면 어떡해?"


택시 기사의 나이는 6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반면 렉스턴 차주는 30대 중반 정도의 남성.

초면에 함부로 반말 하기에는 나이차이가 너무 나지 않나 싶다.


"야!!!"


렉스턴 차주가 차에서 내렸다.

그러더니.


콰앙!


오른발로 택시의 앞 범퍼를 강하게 내려찼다.

이미 해당 택시에 탑승했던 손님은 도로 내린 지 오래였다.


"이게 뭐하는 겁니까? 예?!"

"내가 잘못한 거냐? 어? 내가 잘못한 거냐고? 니가 애초에 중앙선을 왜 침범하냐고!"

"하아......"


택시기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놈한테 잘못걸렸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래요, 내가 잘못했소.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냥 가쇼."

"뭐?! 이대로 가라고? 나한테 보상을 해야 할 거 아냐!"

"내가 무슨 보상을 합니까? 사고도 안 났는데?"

"내가 너 때문에 피해를 봤잖아! 보상해, 당장!!"

"보상할 게 있어야 보상을 하지요!"

"이 씨발놈아!"


덥썩-


렉스턴 차주의 굵은 오른팔이 상대적으로 마르고 작은 택시기사를 위협하려 쳐들었을 때였다.

나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렉스턴 차주의 팔목을 붙잡았다.


"넌 또 뭐야?!"

"저 말입니까?"


유덱스가 왜 이걸 줬는지 알겠네.


"경찰입니다. 저랑 얘기하시죠."


아주 유용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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