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조회수 :
362,713
추천수 :
3,806
글자수 :
842,547

작성
18.08.22 21:20
조회
2,709
추천
31
글자
12쪽

공부가 제일 싫어요 -54

DUMMY

새로운 하루가 밝았다. 오전 첫 수업은 야외수업이다. 초급반 학생들은 연무장이 아닌 후원 공터에서 수련했다. 작은 연무장을 중급반과 돌아가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연무장은 상급반과 고급반 차지였고 말이다.


주상이는 이곳도 괜찮다고 느꼈다. 후원이라 한적하고 넓은 데다가 공터 주변으로는 예쁜 꽃이 만발했다. 푸른 나무도 우거져 참 아늑하다.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들도 있었다.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서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수업을 맡은 사부가 다름 아닌 천하제일인 천마였기에.



궁 사부님이 좀 늦는다. 학생들은 긴장한 신색을 유지했지만, 어제 홍의를 입고 있던 소녀를 포함해 고급반 학생들은 연신 불평불만을 터트린다.


“이런 흙바닥에서 수련해야 한다니, 옷이 더러워질까 걱정이네요.”


“초급반이 그렇지 뭐. 정말 한심스럽기 짝이 없어.”


말을 듣고 있던 설대연이 와락 인상을 찌푸린다.


“그럼 고급반으로 돌아가. 애들처럼 투정부리지 말고.”


고급스럽고 화려한 문양의 신발을 툭툭 털던 청년이 애써 밝게 웃는다.


“저희는 설 공자님께서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겁니다.”


“맞아요. 저희는 공자님과 한 몸이에요. 그래서 초급반에 들어온 거라고요.”


“조용히 해! 사부님 오시잖아.”


멀리서 검은 무복을 입은 중년인이 휘적휘적 걸어온다. 꽤 늦게 왔음에도 전혀 급할 것 없다는 표정인데.


“저 사부님은 정말 마음에 안 들어요. 오만하고 건방져, 짜증 나.”


“입 닥쳐!”


설대연이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자 학생들이 어깨를 움츠린다. 그때 옆에서 누가 쫑알댄다.


“화내지 마. 너 보기보다 무섭다?”


“입 닥치라고 했잖아! 지금 내 말이 말 같지······.”


잔뜩 화난 얼굴로 고개를 돌리던 설대연, 이내 새파랗게 질려버린다. 괜히 욕을 얻어먹은 두윤이는 입을 삐죽였다.


“그냥 조용히 하라면 될 걸 가지고. 알았어, 미안해.”


“아니, 저 그게 아니라요. 저기...”


한없이 새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대연이.


“왜 이렇게 시끄럽나!”


천마의 외침, 설대연은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반장!”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너 말이야.”


두윤이가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킨다.


“그래 너!”


“저요? 제가 왜 반장이에요. 어제 쟤가 하기로 한 것 아닌가요?”


두윤이의 지목에 가만히 있던 제갈은경이 팔짝 뛴다.


“아닙니다! 사부님께서 당일 임시 반장을 결정하셨습니다. 확실합니다.”


“맞다. 네가 이 반의 임시반장이야.”


“아이참, 저는 반장하기 싫다니까요. 제발 다른 사람 시키세요.”


“대체 왜 그러느냐? 반장은 영광스러운 자리다. 더는 내 말에 토 달지 마라.”


천마가 매듭을 지어버리자, 두윤이는 입을 삐죽였다.


“그런데, 반장!”


“왜요!”


“너는 반장이라는 놈이 사부께서 오셨는데 차도 안 끓여 놓고 뭐 했어?!”


“우이씨...”


반장이 하는 일은 딱히 없다. 행사 준비를 한다거나 의견을 모은다거나, 특히 사부의 심부름도 해야 했는데 가장 중요한 업무는 수업 시작 전 차를 내오는 일이다.


그런데 차를 끓이려면 찻잎과 찻잔, 찻주전자가 필요하다. 무턱대고 전각 쪽으로 뛰어가던 두윤이가 어쩔 줄 몰라 한다.


“저놈 방황하는 거 봐. 쯧쯧! 네가 같이 가거라.”


천마의 명령에 주상이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오늘은 첫 수업이니 가볍게 몸이나 풀어보지.”


천마는 뚜벅뚜벅 공터 한가운데 섰다.


“너희들의 실력을 알아보고자 한다. 덤벼라.”


“.....!”


설대연은 가슴이 쿵쾅쿵쾅 두근거렸다. 덤비라잖은가. 감히 천하제일인과 대련을 할 수 있다니, 이는 더할 수 없는 특혜다. 초급반에 들어와 그동안 주변의 비웃음을 참아냈다. 그렇지만, 천마와 대련을 할 수 있음에, 그 모든 서러움과 울분이 눈 녹듯 사라진다.


“시간이 없으니까 웬만하면 한꺼번에 덤비거라.”


학생들은 천마를 중앙에 두고 빙 둘러 포위했다. 선뜻 손을 쓰는 사람은 없다. 설대연은 목검을 꼬나 들고 빈틈을 찾으려 했다. 한가로이 산책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뒷짐을 지고 있는 천마, 빈틈이 너무 많아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반면, 천마의 정체를 모르는 고급반 학생들은 입가에 살짝 비웃음이 걸려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고급반이라면 적어도 일류고수에 이르는 막강한 무공실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그곳을 가르치는 사부도 연습대련에서만큼은 학생과 비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정파와 사파 쪽 학생들이 서로 눈길을 주고받는다. 사부를 골탕 먹일 생각에는 또 죽이 척척 맞나보다.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던 중,


“차압!”


고급진 신발을 신은 청년이 장쾌한 기합을 터트리며 선공을 가한다. 그 뒤로 다른 학생들이 연환공격을 펼친다. 각자의 목검이 새파랗게 빛나는데, 대단한 내공이 집약된 검기다. 전력을 다하는 태도로 망신을 주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쿵!’


천마가 발을 구른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흙먼지가 원을 그리며 비산하자, 허공에 몸을 띄웠던 학생들이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가 버린다. 거칠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학생들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정신 줄을 놓고 있구나.”


천마가 바닥을 ‘탁’ 찬다. 돌가루가 튀어 오르고, 입을 떡하니 벌리고 섰던 설대연은 눈을 치떴다. 돌가루 하나하나가 엄청난 기세로 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있다간 벌집이 될 터. 설대연은 뒤로 물러서며 필사적으로 목검을 휘둘렀다. 파랑처럼 일어난 검기가 얇은 막을 형성한다.


‘퍼퍼퍽!’


귀를 찢어발기는 소성과 함께 구멍이 숭숭 뚫린다. 설대연은 본능적으로 땅바닥에 몸을 날렸다. 나려타곤을 펼쳤지만, 전혀 수치스럽지 않다. 흙먼지를 털 생각도 못 한 채, 겨우 몸을 일으킨 설대연은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정신 바싹 차려라. 기습은 순식간이다.”


옅은 미소를 띠고 있던 천마가 손목을 거꾸로 해서 손가락을 튕긴다. 등 뒤에서 슬금슬금 접근하던 구문혁이 혼비백산한 표정을 짓는다. 묵빛 지강이 목검을 꿰뚫어버리고 목덜미를 스쳐 지난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구문혁이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하압!”


반쯤 포기한 얼굴로 제갈은경이 목검을 꼬나 들고 천마에게 달려든다. 그녀는 다른 손에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힘껏 떨치니 조약돌 몇 개가 천마의 발밑에 떨어진다. 제갈은경은 그 사이로 목검을 꽂아 넣었다.


“기문진과 검법의 조합이구나.”


말을 잇던 천마가 조약돌 하나를 밟아 버린다. 제갈은경은 사색이 된 얼굴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부르르 떨던 손아귀에서 스르륵 목검이 떨어져 내린다.


“좋은 발상이다. 넌 상점 일 점.”


천마는 구석 자리를 쳐다봤다. 두 녀석이 아직도 차를 끓이느라 여념이 없다.


“아주 한세월이구나. 찻잎을 따러 갔어도 벌써 갔다 왔을 게다.”


“땔감을 구하느라 오래 걸렸단 말이에요!”


불에 장작을 집어넣던 두윤이가 볼멘소리로 외친다. 천마는 뒷짐을 진 채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찻주전자에 찻물만 끓여오면 되는데 무슨 모닥불을 피우고 난리냐?”


“제가 그러자고 했는데요. 얘가 괜히 차가 식는다고 해서...”


주상이가 새빨개진 얼굴로 항변한다.


“그건 다도의 예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게다가 여기서 식당이 얼마나 먼 줄 알아?”


천마가 혀를 끌끌 찬다.


“그냥 대충 가져와라.”


주섬주섬하던 두윤이가 찻잔을 들고 조심조심 걸어온다. 설대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한없이 어수룩해 보이는 소년. 문득 아버지의 당부가 떠오른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가 천무임을 명심해라. 허면, 네게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쏴아아’


난데없이 공터를 둘러싼 나뭇가지가 세차게 흔들린다. 파릇파릇한 나뭇잎은 검게 물들어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천마묵강이다. 어서 피해!”


구문혁이 날카로운 외침을 토한다. 설대연과 제갈은경은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렸다. 동시에 나뭇잎이 벌떼처럼 일어나 맹렬히 회전한다. 묵빛 강기를 머금은 나뭇잎은 그 자체로 비수처럼 번뜩였다. 수많은 칼날이 모여 만든 회오리바람, 가히 세상이 무너지듯 두려운 광경이다.


“응? 갑자기 바람이 불고 그래...”


행여 찻물이 샐까 찻잔을 보듬어 안는 녀석, 동시에 나뭇잎이 일정 거리를 두고 허공에 꽂혀 버린다. 그 모습이 마치 고슴도치를 연상케 했는데.


‘퍼퍼퍽!’


가공할 압력에 저항하던 나뭇잎이 전부 가루로 바스러져 버린다.


“저, 저런 무공이!”


불현듯 천마가 땅을 박찬다. 뿌연 먼지와 함께 부챗살처럼 퍼져나가는 작은 파편들, 설대연은 조금 전 기억이 떠올라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파편은 허공에서 뭔가에 부딪혀 파도의 물거품처럼 하얗게 부서져 버린다.


그 사이로 드러난 광경, 설대연은 똑똑히 목격했다. 햇볕에 반사된 투명한 막이 천마묵강의 모든 기운을 차단하고 있음을.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두윤이가 찻잔을 내민다. 찻물에 뽀얀 흙먼지가 내려앉아 있고. 천마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휙 몸을 돌렸다.


“너나 마셔라!”



오전 두 번째 수업시간. 천기수사 임사군은 교탁 위에 놓인 찻잔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찻잔 이곳저곳에 손자국이 남았고 뭔가 불결해 보인다.


“이건 뭡니까?”


두윤이가 손을 번쩍 든다.


“오늘부터 제가 임시반장이거든요. 차를 끓이는 일도 반장이 할 일이래요.”


천무가 직접 끓여 우린 차란다. 내심 그 맛이 궁금했는데. 차를 한 모금 마신 임사군은 오만가지 인상을 썼다.

찻잎이 우려지기는커녕 아예 푹 삶아서 쓸개를 씹은 것처럼 쓰다. 게다가 뭐가 이렇게 지근거리는가. 임사군은 ‘탁!’하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누가 그런 쓸데없는 일을 시켰습니까?”


“궁 사부님이요!”


임사군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수업에서는 모르겠으나 내 수업에서는 차를 내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교탁 제일 끝으로 찻잔을 밀어버린 임사군은 책을 펼쳤다. 그런데 제법 많은 수의 자리가 비어있다.


“나머지 학생들은 어디 갔습니까?”


“아파서 의원에 갔어요.”


두윤이의 외침에 임사군은 책을 내려놓고 출석부를 펼쳤다.


“몸이 불편하면 사전에 찾아와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이렇듯 무단으로 수업에 불참하다니, 벌점 삼 점입니다.”


“저, 사부님...”


설대연이 조심스레 손을 든다.


“뭡니까?”


“그게, 몸이 불편한 게 아니라 전 시간에 있었던 대련에서 부상을 당한 것입니다. 미리 보고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라 그럴 여력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수업 전 미리 찾아와 보고를 해야 합니다. 임시반장!”


“네?”


“보고 불이행으로 벌점 일 점을 깎겠습니다.”


“사부님! 진짜 너무해요.”


“너무할 것 없습니다. 설대연 학생의 말대로 미리 보고하지 않은 일은 반장의 잘못입니다.”


“우이씨... 너!”


두윤이가 획하고 고개를 돌려 설대연을 쏘아본다. 크게 당황한 설대연이 어깨를 움츠리며 책상에 엎드려 버리고.


“자자, 조용! 오늘은 여러분이 무공 이론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시험을 보겠습니다.”


종이가 한 장씩 자리에 나눠진다. 문제가 잔뜩 적혀 있는데, 시험지를 받아든 두윤이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옆 사람을 훔쳐보거나 책을 펼치면 부정행위로 간주하겠습니다. 처분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지요.”


미리 준비도 안 했는데 갑작스럽게 시험이 시작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두윤이의 무림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공부가 제일 싫어요 -55 +2 18.08.24 2,590 27 11쪽
» 공부가 제일 싫어요 -54 +3 18.08.22 2,710 31 12쪽
53 여기 무서워요 -53 +1 18.08.20 2,725 30 13쪽
52 여기 무서워요 -52 +2 18.08.19 2,764 25 14쪽
51 진짜 이해가 안 가요 -51 +2 18.08.17 2,888 28 11쪽
50 진짜 이해가 안 가요 -50 +4 18.08.15 2,963 30 15쪽
49 진짜 이해가 안 가요 -49 +3 18.08.13 2,950 28 13쪽
48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8 +3 18.08.12 2,845 32 13쪽
47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7 +2 18.08.11 2,822 32 14쪽
46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6 +1 18.08.10 3,026 28 11쪽
45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5 +2 18.08.08 2,998 29 12쪽
44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4 +2 18.08.06 2,975 30 12쪽
43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3 +1 18.08.05 2,942 29 15쪽
42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2 +2 18.08.03 3,014 29 14쪽
41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1 +3 18.08.02 3,013 31 11쪽
40 화첩을 잃어버렸어요 -40 +4 18.08.01 2,971 37 13쪽
39 화첩을 잃어버렸어요 -39 +3 18.07.30 3,121 30 13쪽
38 화첩을 잃어버렸어요 -38 +3 18.07.28 3,041 35 13쪽
37 고양이 도둑은 나빠요 -37 +2 18.07.27 3,070 30 13쪽
36 고양이 도둑은 나빠요 -36 +2 18.07.25 3,049 35 14쪽
35 고양이 도둑은 나빠요 -35 +3 18.07.23 3,123 35 14쪽
34 여긴 너무 답답해요 -34 +2 18.07.22 3,172 26 11쪽
33 여긴 너무 답답해요 -33 +3 18.07.20 3,157 39 13쪽
32 여긴 너무 답답해요 -32 +1 18.07.18 3,193 33 14쪽
31 정말 귀찮아요 -31 +3 18.07.16 3,231 31 13쪽
30 정말 귀찮아요 -30 +2 18.07.14 3,376 39 13쪽
29 정말 귀찮아요 -29 +2 18.07.13 3,553 33 14쪽
28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요 -28 +4 18.07.11 3,375 40 13쪽
27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요 -27 +2 18.07.09 3,356 30 13쪽
26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요 -26 +2 18.07.07 3,425 3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