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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조회수 :
364,432
추천수 :
3,806
글자수 :
842,547

작성
18.08.17 21:11
조회
2,897
추천
28
글자
11쪽

진짜 이해가 안 가요 -51

DUMMY

구천마련의 구중심처 사황부(邪荒府).


이미 마련의 모든 실권을 장악한 사황이지만, 눈앞의 사람에게는 납작 엎드렸다. 그의 한마디면 사황부는 순식간에 지도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자색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인물, 오른쪽 눈이 안대로 가려져 있다. 사황은 마주 올려다볼 생각도 않고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결국 오지 않았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사황은 더욱 깊게 엎드렸다.


“그렇습니다. 다시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합니다.”


문득, 공기가 무거워진다. 피부에서 끈적끈적함이 느껴지고 거대한 압력이 등골을 짓누른다.


“천마도 함께 라던가?”


“그렇다고 합니다.”


가슴을 저미는 압력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하긴, 천존령패 따위 애초부터 명분이었어. 그 이상도 아니라지만...”


자색 복면인은 검지로 태사의 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다.


“어쨌든, 덕분에 시일이 지체되겠군.”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옵니다. 그동안 힘을 기르려 하겠지요.”


“세외는 어찌 되어 가는가?”


사황은 공손히 말을 받으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서둘러 세력을 규합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대뢰음사와 포달랍궁 측에서 아직 답신이 없는지라.”


“다시 가서 잘 설득하게. 이 일은 힘보다는 명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알겠사옵니다.”


“그대가 바빠지겠군.”


“모두 천존궁을 위한 일입니다.”


복면인이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킨다.


“천마가 함께 있더라. 당분간 손을 쓰기가 힘들겠어. 허나,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


은연중에 피어오르는 패도적인 기운이 방안 전체를 감싼다. 사황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서장과 남만으로 떠난 만독림의 고수들이 곧 돌아올 것입니다. 이미 약제도 완성했다는 보고입니다.”


“대업의 성취가 눈앞이로다. 사황, 끝까지 방심하지 말라. 천무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복면인의 신형이 연기처럼 증발한다. 사황은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문밖에서 대기하던 소리장도 나배반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밖으로 나서는 사황의 얼굴이 짜증으로 가득하다.


“일이 귀찮게 되었어. 쯧쯧.”


“하명하십시오.”


“애들보고 좀 서두르라고 해.”


“알겠습니다.”


사황이 얼굴 가득 비웃음을 머금는다.


“그런데 말이야. 평생 무공만 판 애송이라서 그런지 상황판단이 영 흐릿해.”


“그랬습니까?”


“멍청하기 짝이 없는 애꾸 놈! 마음에 안 들어. 크크킄.”


경박하게 웃어젖히는 사황은 어찌 보면 미친 노인네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나배반은 알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전혀 웃고 있지 않음을. 황량하고 메마른 웃음 속에 뱀처럼 번들거리는 잔인함이 내재되어 있다.


“대체로 말이지. 떠받들어주면 기고만장하는 녀석들은 남을 잘 믿기 마련이야. 상대가 발톱을 숨긴 맹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지. 그만큼 자신만만하다는 뜻인가?”


“그래도 무공만큼은 대단할 겁니다. 그 정도의 자만심은 사치라 할 수 없지요.”


“크크큭, 자네가 내 앞에서 빈틈을 보이는가? 하긴 최근 일 처리 하는 것을 보면 영 실망스럽기는 해.”


나배반은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사황은 경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리하다 싶으면 때론 무릎을 꿇을 줄도 알아야 해. 그게 자네를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해. 기분 나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크키키키, 좋아, 좋아! 이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한다니까. 일어나, 얼른 일어나.”


나배반은 무릎을 꿇은 채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일어나래도 그러네.”


“송구하옵니다.”


나배반은 자리에서 일어나다 슬쩍 시선을 외면했다. 뱀처럼 번들거리는 그의 눈동자를 대하느니, 차라리 허리를 숙이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이제 곧 천하가 내 손 안에 들어올 거야. 그 멍청한 애꾸 놈 덕분이지. 왜 이렇게 순진할까?”


“감축드리옵니다.”


“감축 따위 필요 없어!”


사황이 신경질적으로 외친다. 나배반은 어깨를 움츠리며 다시 허리를 숙였다.


“최대한 빨리 준비를 끝마쳐. 놈이 눈치를 채기 전에 좀 더 서두르란 말이다!”


“이미 독촉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서두르라 이르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그동안 날 모욕한 놈들을 발로 짓이겨버릴 거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놈은 어떻게 할까? 서서히 목을 조여 죽일까, 아니면 끓는 물에 데쳐 버릴까. 아니야, 일단 살려 준다고 해야겠어. 그래야 죽을 때 실망도 크겠지?”


나배반은 조용히 신음성을 삼켰다.


“그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 아주 기대돼! 그런 의미에서 마공 수련은 잘 하고 있겠지? 물론 반쪽짜리지만,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수련하라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사옵니다.”


사황은 입가로 미소를 지었다. 황량하고 메마른 웃음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네. 하긴, 일이 끝나면 자네에게는 쓸모없는 무공이야. 그래서 날개를 반쪽만 달아준 거지.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


“아닙니다. 사황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크크큭, 마음에도 없는 소리! 자네야말로 거짓말과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지 않던가.”


“······.”


“이제 때가 오고 있음이야.”


사황은 비릿한 조소를 머금고 창밖을 응시했다. 드넓은 중원이 펼쳐져 있다.


“첫 번째는 애꾸 놈이야. 두 번째는 그 잘난 천하제일인이고, 세 번째는 누구로 할까?”


고개를 갸웃하던 사황은 손바닥을 ‘탁’쳤다.


“그래, 그 녀석으로 해야겠어. 내가 심혈을 기울여 짠 계략을 분쇄한 그놈! 어쩌면 오히려 날 도와준 것도 같아. 녀석 덕분에 애꾸 놈이 천존령패를 찾는답시고 저리 호들갑을 떨어대잖아. 안 그런가?”


“상황이 그렇게 됐지요.”


“일이 끝나면 말이야. 녀석에게 상을 줘야겠어. 제일 잔인한 걸로 골라야지. 아마 비명을 지르며 좋아하겠지? 크크큭.”


나배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은 진심이었다.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무림서원에 봄이 찾아왔다. 길에는 화사한 꽃이 피었고, 무관과 문관을 가로지르는 강어귀에도 푸른 초목이 우거졌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무림서원은 제법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무림서원 입학식이 바로 내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껏 부푼 꿈을 안고 희망에 찬 얼굴로 서원을 돌아보는 신입생들, 그런데 몇몇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무림맹의 심처, 이제 겨우 어린애 티를 벗은 소년이 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있다.


“가라면 가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아버지! 소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왜 초급반에 들어가야 합니까?”


이미 고급반에 다니고 있는 소년, 아니 설대연은 아버지의 명령을 받들 수 없었는데.


“네가 비록 지난 무림대회에서 아쉽게 준결승에 머물렀지만, 이미 무림대회에서 우승할 실력을 지녔다. 무공 수위 역시 절정에 이르렀잖느냐.”


“그럼, 어째서 초급반에 들어가라 하십니까?”


무림맹주 설무백은 진지한 표정으로 아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 이상의 것을 배우려면 고급반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초급반은 부족하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오히려 넘친다. 너만 잘한다면...”


“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제게 이런 명령을 내리시는 겁니까.”


“이건 명령이 아니라, 이 아비의 부탁이다.”


“아버지...”


설무백은 짐짓 무신경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 네가 반대한다면 더는 강요하지 않겠다. 헌데, 구천마련의 구문혁도 초급반에 입학 원서를 냈다더구나.”


“그 녀석이 말입니까?”


설대연이 와락 인상을 찡그린다. 양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데, 전날 준결승에서 구문혁에게 패한 일이 아직도 화가 나는 모양이다.


“녀석이 왜 초급반에...”


“구문혁 뿐만이 아니다. 제갈세가의 제갈은경도 초급반에 입학할 예정이다.”


이미 문관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가 다시 초급반에 들어온단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버지, 초급반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설무백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이 아비가 하는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또한, 이 일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직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다.”


“대체 어떤 비밀이기에...”


설대연은 침을 꼴깍 삼키며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한편, 그 시각.


주상이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급히 무림맹으로 달려오신 것이다. 아버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네가 초급반에 입학한다니 말리지는 않겠다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조금 망설여지는구나.”


“두윤이를 혼자 둘 수 없습니다. 소자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물론, 너희 둘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겠지. 허나, 이번 일은 위험해 보이는구나.”


“소자, 위험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번에 새로 오신 초급반 사부님은 아주 든든한 분이십니다.”


“하긴, 그야 그렇지.”


남궁문은 실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알았다. 대신 마음가짐을 철저히 하고 몸조심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건 그거고.”


남궁문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서찰이었는데 장문의 글이 빼곡히 쓰여 있다.


“이건 공손학당에서 보낸 항의서한이다. 네가 공손 선생께 저지른 일이 낱낱이 적혀 있구나.”


주상이는 빨갛게 얼굴을 붉히면서도 당황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다.


“공손 선생께서 두윤이에게 먼저 심한 말을 했습니다. 소자, 그 말을 듣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참을 수 없었으니 그런 망발을 했겠지.”


남궁문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서찰을 내려놓았다.


“네 행동은 옳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하오나, 소자 후회하지 않습니다.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그리할 것입니다.”


“그럼 또 사고를 치겠다는 말이냐?”


“그, 그런 것이 아니오라...”


“내가 전날 분명히 말했지. 사고를 치면 크게 혼날 거라고.”


주상이는 울상을 지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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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이해가 안 가요 -51 +2 18.08.17 2,898 28 11쪽
50 진짜 이해가 안 가요 -50 +4 18.08.15 2,975 30 15쪽
49 진짜 이해가 안 가요 -49 +3 18.08.13 2,959 28 13쪽
48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8 +3 18.08.12 2,855 32 13쪽
47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7 +2 18.08.11 2,831 32 14쪽
46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6 +1 18.08.10 3,039 28 11쪽
45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5 +2 18.08.08 3,008 29 12쪽
44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4 +2 18.08.06 2,984 30 12쪽
43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3 +1 18.08.05 2,953 29 15쪽
42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2 +2 18.08.03 3,025 29 14쪽
41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1 +3 18.08.02 3,021 3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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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화첩을 잃어버렸어요 -38 +3 18.07.28 3,055 35 13쪽
37 고양이 도둑은 나빠요 -37 +2 18.07.27 3,081 30 13쪽
36 고양이 도둑은 나빠요 -36 +2 18.07.25 3,058 35 14쪽
35 고양이 도둑은 나빠요 -35 +3 18.07.23 3,132 3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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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여긴 너무 답답해요 -33 +3 18.07.20 3,167 3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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