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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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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827
추천수 :
3,806
글자수 :
842,547

작성
18.08.0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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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
12쪽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4

DUMMY

찻잔을 앞에 두고 제갈진현이 다짜고짜 사과를 해댄다. 그 옆에는 제갈은경이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인 채다.


사건의 경위를 전해 들은 남궁문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천무님과 남궁세가에 큰 폐를 끼쳤습니다. 당일 사과를 드리려 했는데 여의치 않아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제갈진현의 사과에 남궁문은 슬쩍 옆을 돌아봤다. 제갈은경이 공손히 머리를 조아린다.


“모든 일이 제 잘못이에요. 호승심을 못 이겨 천무님을 시험한 죄, 벌을 받아 마땅해요.”


말과는 다르게 그녀의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하다. 남궁문은 양해를 구한 후,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버지! 소자, 가지 않겠습니다.”


주상이가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내젓는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제갈세가의 가주께서 직접 오셨다.”


“사과받을 생각 없습니다.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화가 치밉니다.”


남궁문은 굳은 표정으로 내려 봤다.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다.”


“네?”


“어서 가주님께 용서를 구하거라.”


오히려 사과하라는 말에 주상이는 쌍심지를 켰다.


“아버지께서 사건의 전말을 듣지 못하셔서 그렇습니다.”


“다 들었다. 그러니 사과하라는 것이야.”


주상이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부르르 떨리는 양 주먹은 핏기마저 가셨다. 남궁문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너희는 제갈세가에 큰 실례를 범했다. 출입이 금지된 곳을 무단으로 드나들었으며.”


주상이가 화난 얼굴로 고개를 쳐든다.


“진을 어지럽힌 것도 모자라 기물까지 파손했다. 게다가 강연에 참석한 여러 명사께 누를 끼쳤으니, 이는 제갈세가에 망신을 준 것이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내 말이 거짓이라는 게냐?”


“그건 아니지만...”


얼마나 화가 났는지 주상이는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들은 저와 천무를 무시했습니다. 그 자리에 직접 계셨다면, 먼저 사과하라는 말씀은 못 하셨을 겁니다.”


“무시를 당한 것이 그토록 화가 나느냐? 너 역시 전날 천무를 무시하지 않았더냐.”


“제가 어떻게! 전 그런 기억이...”


남궁문은 외원에 있는 객원 건물을 바라봤다.


“두윤이가 처음 이곳에 온 날이 생각나는구나.”


당시 두윤이는 빌린 돈을 갚겠다며 남궁세가를 찾았다. 그럼에도 바로 만나지 못한 채, 한동안 객원에서 머물며 인부들의 일손을 도왔다.


“두윤이는 너를 만나러 그 먼 길을 찾아왔다. 넌 어찌 대했느냐?”


항변하려던 주상이는 푹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근신 중이었다고 변명을 하진 않았겠지.”


“······.”


“물론 그 일이 너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었지. 그런데도 두윤이는 어땠느냐? 화를 내지도 우리에게 사과를 원하지도 않았어.”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는 주상이.


“네가 사과할 생각이 없다면, 그 의견은 존중해주마. 그런데 말이다.”


남궁문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네게 가장 친한 친구는 두윤이가 아니라 천무였던 게로구나.”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얼마 후, 주상이는 두윤이와 함께 제갈진현을 찾아갔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주상이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자, 두윤이도 따라 한다.


“저도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남궁세가 가주의 아들과 무림을 쩌렁하게 울리는 천무의 사과에 제갈진현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오. 오히려 우리가 두 분께 큰 실례를 저질렀소.”


제갈진현은 마주 예를 올리다가 슬쩍 제갈은경에게 눈치를 주었다.


“또한 천무 대협을 시험한 죄, 이는 크나큰 잘못이오. 은경아, 어서 천무 대협과 남궁 공자께 사과드리거라.”


제갈은경이 예를 취하려 하자, 주상이는 말려 세웠다.


“아닙니다. 가주님과 제갈 낭자께 먼저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


천무도 나선다.


“맞아요. 제가 그때 정신이 없어서 죄송하다는 말도 못 드렸어요. 거기 들어가지 말아야 했는데, 사실 저도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고요. 누가 들어가도 좋다고 해서 그런 거예요. 맞다! 저 녀석이 그랬어요.”


저 녀석? 사람들의 시선이 제갈은경에게로 모인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래요! 제가 그랬어요. 그렇지만 먼저 시비를 건 쪽은 천무라고요.”


“내가 언제 시비를 걸었는데?”


“그게 그러니까...”


제갈은경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강당에서 망신당한 일을 이 자리에서 발설할 수 있을까. 도리어 생각해보면 천무는 잘못이 없었다. 괜히 녀석을 가까이서 살피려 면사를 쓴 일은 엄연히 자신의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천무가 졸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테지만,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그마저도 잘못이었다.


“아하, 그 일 때문에 그렇구나.”


두윤이가 손바닥을 ‘탁’친다.


“그 강당 안에서 면사를 썼던 사람이 너지! 면사를 쓰고 있었다고 선생님께 혼났잖아.”


“아니야! 아버님, 전 아니에요. 제발 소녀를 믿어주세요.”


“맞는 것 같은데?”


두윤이가 눈을 게슴츠레 뜨자 제갈은경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여자는 백의를 입었다고! 난 그때 홍의 경장 차림이었어. 우리 아버지가 증인이야.”


제갈진현이 잔뜩 당황해한다.


“은경아, 너 천무님께 그 무슨 말버릇이냐.”


“죄송해요. 하지만 전 억울하다고요.”


“그랬군요. 제가 괜한 오해를 했나 봐요. 죄송해요.”


두윤이가 풀이 죽은 채로 사과를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제갈은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헌데, 너는 면사 여인이 백의를 입은 것을 어찌 알았느냐? 몸이 아파 전 수업은 듣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의 날카로운 질문에 제갈은경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갈은경은 남궁세가의 후원을 거닐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화가 식지를 않는다. 멀리서 두 녀석이 다가오는 걸 발견한 그녀는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숨을까 말까 하던 중, 천무가 히죽히죽 웃으며 큰소리로 외친다.


“면사를 덮어쓰고 있다니. 배우려는 자세가 글러 먹었어!”


“이런, 씨...!”


주상이가 급히 만류한다.


“두윤아, 하지 마! 어쩌려고 이래.”


그렇다고 기가 죽을 그녀가 아니다. 제갈은경은 당당하게 두 사람에게 걸어갔다.


“그러는 천무께서도 당당할 건 없네요. 강연 시간에 잠이나 쳐 자빠져 자다니요.”


“저기, 낭자께서도 좀 참으세요.”


“어머? 남궁 공자도 보셨잖아요. 먼저 시비를 건 쪽은 천무세요.”


“주상아, 너도 그때 봤지? 정말 웃겼어. 그지?”


천무가 방글방글 웃자, 제갈은경은 붉으락푸르락해서 녀석을 쏘아봤다.


“두윤아, 너도 그만해. 손님께 실례잖아. 어서 사과드려.”


“저 녀석이 먼저 그랬다니까. 사과받을 사람은 오히려 나라고!”


“자꾸 이 녀석 저 녀석 하는데, 천무께서는 대체 예의를 어디다 팔아먹은 거죠?”


제갈은경이 막 나오자, 두윤이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흥! 장서관에 멋진 석상이 있다면서? 이런 거짓말쟁이!”


“아니 뭐야?!”


쌍심지를 켜고 맞서는 두 사람, 주상이는 빽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 다 그만해! 애들처럼 이게 뭐야?”


남궁세가의 후원이 오늘따라 무척 시끄럽다.




이제는 떠날 시간, 제갈은경은 뿔이 난 얼굴로 먼저 마차에 올라타 버렸다. 그 꼴을 바라보던 제갈진현은 또다시 당황해했다.


“은경아! 그 태도는 무엇이냐? 어서 나와 가주님과 천무님께 예를 갖추어라.”


마차 문이 벌컥 열리고, 꿍한 얼굴로 제갈은경이 걸어 나온다.


“가주님께 실례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천무님께도 사과드려야지.”


몸을 움찔한 제갈은경.


“미안하군요. 됐나요?”


“아이고, 엎드려 절 받기 힘드네요.”


두윤이가 한소리 하자, 제갈은경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허! 두윤아, 손님께 그 무슨 말버릇이냐.”


남궁문이 엄한 목소리로 질책하자 두윤이가 어깨를 움츠린다.


“죄송해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갈진현은 눈을 빛냈다. 현 무림에서 천무를 이토록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소문에는, 아니 믿을 만한 정보통에 따르면 무림쌍성조차 천무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고 전한다. 그런데 남궁문은 오히려 천무를 나무라기까지 한다. 제갈진현은 그동안 보았던 남궁문에 대한 정보가 잘못된 것이라 굳게 믿었다.


제갈진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남궁문에게 예를 올렸다.


“저희는 이만 돌아갈까 합니다. 그동안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쳤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가주님께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


남궁문이 마주 예를 올리자, 제갈진현은 옆에 선 주상이를 힐끗 쳐다봤다.


“그런데 이번 무림서원 졸업시험에 남궁세가의 졸업생도 있던가요?”


“작년에는 있었습니다만, 올해는 없습니다.”


제갈진현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허, 올해 졸업시험은 아주 성대할 겁니다. 삼 황자님께서 이번에 졸업하시기에 황실에서도 관심이 뜨겁지요.”


황제의 아들은 수없이 많았는데, 그중 셋째가 무림서원을 졸업하는 모양이다. 거기에 고관대작의 자제들과 친인척들 역시 졸업이 예정되어 있으니, 아무래도 큰 행사가 열릴 모양인데.


“저는 여력이 안 되어 참석할 수 없을 듯합니다.”


“가주님께서 직접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면 좋으련만, 정말 아쉽습니다. 허면,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떠나자, 주상이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두윤이를 돌아봤다.


“두윤아! 무림서원에서 졸업식을 한데.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무림서원? 그게 뭔데.”


서원(書院)이란 말 그대로 공부를 가르치는 사설 교육기관이다. 초기 서원은 명망이 높은 대학자가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연구하는 학술모임 성격이 짙었다. 그런데 제자가 늘어나 규모가 커지면서 본격적인 교육기관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초기 무림 문파가 형성되는 과정과도 비슷했는데, 서원을 세운 학자의 명성이 대단할수록 규모도 커졌다.



무림서원(武林書院)의 본래 이름은 백운서원(白雲書院)으로 무림맹이 서원을 인수하면서 개칭되었다. 무림맹은 백운서원을 그대로 유지했는데, 그런 이유로 문과 무를 동시에 가르치는 서원은 무림서원이 유일했다.


주상이는 꿈꾸듯 말했다.


“무림서원의 백미는 학예회와 졸업시험이야. 특히 졸업시험은 정말 대단하다고. 졸업생들이 그동안 배우고 익힌 졸업 작품을 선보이는데 엄청난 구경거리래.”


무림서원을 졸업하려면 학업 능력이나 무공 수준에 따라 정해진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뛰어난 성적을 거둔 학생은 관리로 등용되는 등 혜택이 많았기에 졸업시험은 말 그대로 성대하게 치러졌는데.


“난 졸업시험을 구경해 본 적이 없어. 정말 재미있을 거야. 막 가슴이 두근거려.”


앞서 걷던 남궁문이 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게 두근거릴 필요 없다. 넌 가지 않을 테니까.”


“아버지!”


“넌 가봐야 또 사고나 칠 게 뻔해.”


주상이가 한달음에 달려가 남궁문 앞을 막아선다.


“아버지, 이건 정말 큰 기회입니다. 무릇 대인이 되려면 견문을 넓히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전 아직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졸업시험은 그런 것과 상관없다. 아무튼, 허락할 수 없어.”


남궁문이 허락을 안 해주자, 주상이는 두윤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두윤아, 너도 졸업시험에 가고 싶잖아. 얼른 가고 싶다고 말씀드려.”


“글쎄, 난 별로 안 땡기는데?”


“아니 왜!”


“경험상 네가 재미있다는 곳은 별로 재미없던걸?”


“뭐야!?”


주상이가 버럭 하자 두윤이는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렇잖아. 시내 구경을 시켜준다고 했으면서 온종일 서점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또, 제갈세가에서도 그래. 난 그 강연이 정말 지루했단 말이야.”


주상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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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진짜 이해가 안 가요 -50 +4 18.08.15 2,955 30 15쪽
49 진짜 이해가 안 가요 -49 +3 18.08.13 2,943 28 13쪽
48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8 +3 18.08.12 2,837 32 13쪽
47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7 +2 18.08.11 2,814 32 14쪽
46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6 +1 18.08.10 3,019 28 11쪽
45 무림서원은 대단해요 -45 +2 18.08.08 2,989 29 12쪽
»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4 +2 18.08.06 2,967 30 12쪽
43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3 +1 18.08.05 2,933 29 15쪽
42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2 +2 18.08.03 3,005 29 14쪽
41 제갈세가에 놀러가요 -41 +3 18.08.02 3,006 3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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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화첩을 잃어버렸어요 -39 +3 18.07.30 3,114 30 13쪽
38 화첩을 잃어버렸어요 -38 +3 18.07.28 3,033 35 13쪽
37 고양이 도둑은 나빠요 -37 +2 18.07.27 3,060 30 13쪽
36 고양이 도둑은 나빠요 -36 +2 18.07.25 3,039 35 14쪽
35 고양이 도둑은 나빠요 -35 +3 18.07.23 3,113 3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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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여긴 너무 답답해요 -33 +3 18.07.20 3,149 3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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