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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넓은강 님의 서재입니다.

내려다보는 남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제법넓은강
작품등록일 :
2017.07.18 13:10
최근연재일 :
2021.02.05 09:20
연재수 :
1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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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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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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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491

작성
21.02.0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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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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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글자
32쪽

에필로그

DUMMY

Epilogue






“수신 제가 평천하...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있지요.”


한참 바쁘던 일들이 적당히 정리되었다.

모처럼 마주한 자리에서 조용히 찻잔을 기울이던 이윤상은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낸 김태훈에게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서 어설프게 대꾸했다.

하지만 너무 건성으로 답한 게 아닐까 싶어 살짝 난감해하며 안경을 고쳐 쓰려니, 그런 건 신경쓰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의 김태훈이 말을 이었다.


“어째 저는 그게 반대로 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그제야 김태훈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조금 알 것 같아서, 이윤상은 비슷하게 쓴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다시금 찻잔을 들었다.


“그렇다고 평천하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주 큰 세상에서 바쁘게 움직이다가 문득 생각해보니, 정작 제 주변을 소홀히하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자주 오셔서 일하셨지 않습니까. 하루를 열흘처럼 사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이윤상이 아부를 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김태훈은 정말 바쁘게 움직였고, 그만큼 많은 일들을 행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가 염라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건 알고 계시죠?”

“예. 지구 바깥에선 그렇게 불리신다고....”

“정작 이쪽에선 여전히 클랜 마스터 정도에 머물고 있지요.”

“그저 클랜이라고 하기엔 우리의 규모가 다소 커진 게 아닐까 싶긴 합니다. 물론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필요한 조치가 있다면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아니요. 이건 제가 나서야 할 부분도 커서요.”


김태훈은 한동안 소통을 않고 있던, 자신의 고향 시스템과 슬슬 대화를 재개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상대적으로 이쪽에 소홀해있던 동안 온갖 잡스런 것들이 나름대로의 힘을 부여받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허락한 게 아니라면 벌어지지 않을 일들이죠. 분명 얻어먹는 게 있을 겁니다.”


은행의 소유권도, 타 시스템과의 소통 권한도 갖지 못한 놈은 나름대로 지구 안에서 어떻게든 수익을 얻기 위해 수를 쓰고 있었다.

그런 결과인지, 놈이 지고 있던 빚이 어느새 일정 부분 감소해있는 것도 최근에 얼핏 확인했다.


“그래도 그냥 두고 볼 수 없겠더군요. 시스템에게는 이득일지 몰라도, 우리 인간들 기준으로 보면 답 안 나올 정도로 썩고 있어요.”

“제 불찰이 큰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클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이대로 시스템을 배제하고 지역을 삼키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놈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어야 이용가치가 있기에, 김태훈은 나름의 방식으로 지금의 썩은내를 정화해볼 참이었다.


“시스템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적당히 발품 좀 팔면 되겠고... 문제 없겠네요.”


하지만 시스템은 분명 협조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장담한대로, 시스템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상당히 불협조적이라고 하셨었는데....”

“빚을 까줬습니다. 꽤 많이.”

“아하....”


어떤 부분을 협상했기에 빚을 까줬나 했더니, 조금 전 언급했던 ‘염라’ 라는 별명과 연관된 일이었던 듯 했다.


“이제 죽어서도 달아나지 못할 겁니다.”

“.......”


그런 대화가 있은 후.

이윤상은 바로 다음날부터 이어진 보고 사항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보고서도 보고서지만, 실시간으로 뉴스에 터져 나오는 온갖 속보들이 어느 하나 가볍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국가의 범위를 넘어선 대형 스캔들이 연이어 터져나오는 중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적당히 꼬리를 자르고 입막음했을 일들이, 심지어 살인멸구를 행했음에도 막지 못하고 있었다.


“염라....”


이윤상은 마스터 김태훈의 별명을 중얼거렸다. 지구에서야 그의 별명을 아는 이가 드물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태훈은 죽음으로 입막음을 당한 이들에게 ‘부활’과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그들이 지니고 있던 비밀들을 넘겨받았다.

물론 영혼에 남아있는 기억 데이터가 있으니 그냥 가져다 활용해도 될 테지만, 해당 기억의 소유주 본인이 직접 공개하는 것이 더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으니 그 정도 비용 소모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지구의 오너는 아니어도 그 이상의 힘은 지니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고향인 지구를 좋게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런 저런 일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음. 그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군요.”

“비용이 좀 들긴 하지만, 나름 괜찮겠는데.”


그런 일들은 강찬호와 박지훈의 능력들을 연계해야 가능하기에, 김태훈은 지난 번의 3자계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다른 두 사람 또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을 구원하는 목적 외에도 그런 식의 활용 또한 가능하다는 것에 무척 흥미로워했다.


“아무래도 우리도 지구니까요. 그 인간들이 그 인간들이니 안 썩은 데가 없어요.”

“그렇지 뭐. 나는 좀 다르긴 하지만.”


박지훈은 지구가 아닌 작은 지역의 오너라 사정이 좀 다르긴 하지만, 강찬호는 무척 적극적으로 관련 내역서를 살펴보았다.


“정 재수 없으면 그냥 죽여버리고 영혼을 조질까 생각했었는데, 이 방식이면 지구 내에서도 충분히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정도 인간들이면 심판대에 세워도 형량 얼마 안 나오지 않아?”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일단 법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봐야지.”


김태훈이 고향 지역에 제대로 신경을 쓰기 시작하자, 그 효과는 곧장 나타났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비밀조직이나 암막 뒤에 숨어있던 존재들이 아무렇지 않게 끄집어내지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거대한 혼란 때문에 세계질서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식의 반대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뭔 헛소리들이야.”


하지만 단지 흙탕물에서 미꾸라지들을 건져냈을 뿐, 시간이 지나면 물은 다시 맑아질 거라고 김태훈은 확신했다.

물론 인간들에게 자유의지가 있는 이상 각자의 이상과 욕심은 또 다른 마찰을 발생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는 크게 엇나가지 않는 방향에서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우, 큰 결단 하셨네요.”

“고민 좀 했는데, 일단 저질렀습니다.”


지구에서 핵이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각국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가, 심지어 비밀리에 지니고 있던 것들까지 싸그리 사라진 것이다.

다만 발전소와 관련된 자원은 그대로 두었고, 대신 재처리된 폐기물들은 무기화할 수 없도록 넘겨받았다.

그렇게 넘겨받은 핵무기와 더불어, 그동안 각국에 자리한 적재장 및 바닷속에 쌓여있던 오래된 폐기물들은 김태훈이 별도로 지니고 있던 자신의 소유 지역 쪽으로 옮겨졌다.


“포인트로 바꾸거나 시스템 계에서 매물로 내놓을까 했는데, 지난 번에 말씀하신 게 기억나서요.”

“아. 그렇죠.”


연합 사람들이 어지간하면 갖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일단 쟁여놓은 것이다.


“쓸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최선이죠.”


그나저나, 휴양지로 쓸까 싶어서 구입했던 지역이 쓰레기장이 되었다.

모슈에게서 샀던 소유지역.

별장 같은 걸 지어놓고 이것 저것 꾸며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사실 그런 건 이제 암흑지역이나 지구 쪽에도 할 수 있으니 애매하게 붕 떠버렸다.

그래도 위험물질 폐기 및 보관 용도의 지역으로 별도 관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긴 했다.


“핵이면 큰데, 그렇게 깔끔하게 처리가 됩니까?”

“깔끔하진 않았죠. 저도 꽤 죽었습니다.”

“큭큭....”

“제가 좀 잘 죽으니까요.”

“그래서요?”

“뭐, 적당히 능력껏 움직였지요.”

“김태훈씨한테 능력껏이면... 어우.”


혀를 내두르던 강찬호는 문득 최근에 김태훈이 잠시 자신의 지역에 그쪽의 일부 인원을 보냈던 것이 기억났다.


“제 가족과 친척, 지인들입니다. 클랜 주요 멤버들도 있었고요.”

“아... 그래서 보내셨던 거군요.”

“만약 죽더라도 되살릴 수야 있겠지만, 일단은 안 그렇게 해주는 게 옳은 것 같아서요.”

“그게 맞지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렇게 넘어왔던 이들은 이미 돌아갔다.

아마 나름대로의 안전 조치가 취해졌을 거라고 짐작한 강찬호는 그 부분에 대해선 더 묻지 않았다.


“제 능력이 어느 정도 알려지고 나니까, 어설프게 대항하려던 이들이 사라지더군요.”

“시스템이 수작 부리진 않고요?”

“반대급부로 적잖게 챙겨줘서 그런지, 조용합니다.”


오너는 아니다.

그러나 이미 그 가진 능력이 지구 범위를 넘어선 그에게 있어서 지구 내에서의 위협은 그저 반항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시스템이 끼어들어 분탕을 친다면 다소 번거로워질 수야 있겠지만, 그만큼 보상을 해주니 그쪽도 얌전했다.


“어떻게 방법을 찾았는지, 저 말고 오너를 지정해보려고 여기 저기 제안을 보낸 적도 있던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근데 안 되었나보네요.”

“뭐, 지역 재정 상황이랑 이런 저런 핸디캡 보면... 수락하는 게 멍청한 일이죠.”


게다가 이제는 지구 내에서도 김태훈과 시스템의 관계가 적잖게 알려졌으니, 오너가 된다는 게 그와 대립하는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아.”

“왜 그러십니까?”


그러다 문득 표정을 굳힌 김태훈은 곧 강찬호에게 특정 인물의 신체 데이터를 보내주었다.


“또 살인멸구입니까?”

“아직 정신 못 차린 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딴에는 완벽하게 자살로 위장했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아마도 김태훈이 망자의 영혼에 남아있는 기억을 열람한다는 것까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바로 제작 들어가겠습니다. 특별한 부분은 없지만... 이분 폐암이 있으시군요.”

“음. 그 부분은 빼주세요.”

“그러죠. 굳이 그런 것까지 동일하게 하긴 좀 그렇긴 해요. 그럼 다 제작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직접 가서 보는 게 빨라서요.”

“예.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또 하나의 범죄조직이 일망타진되었다.

김태훈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존재들일 경우 자신의 일에 반대하는지의 여부보다는 옳은 활동을 하는지를 주로 확인하고 그 인물이나 단체의 존속이나 지원을 정했다.

개중에는 단체의 이상이 옳아도 그를 위한 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배제한 경우도 있었다.

지구 내에선 갑자기 벌어진 온갖 혼란들을 뒤에서 조장하는 흑막이 따로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메이저 언론에서 김태훈의 이름이 나온 적은 없었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것 같은데, 알아서 사리는 건지... 그럴 필요 없는데.’


어쩌다보니 흑막이 되어버린 김태훈은 모처럼 지구의 집으로 방문한 박지훈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흑막놀이라면 저도 잠깐 해본 적이 있었죠.”


허공을 날아다니는 각양각색의 정령들을 보며 웃던 박지훈의 말에, 김태훈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놀이... 로 접근한 건 아닙니다.”

“아. 제가 표현을 잘못했군요. 비하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얼른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 박지훈은 ‘주인을 험담하지 말라’ 며 영문 모를 작은 공을 강스파이크로 날리는 바람정령을 보며 한 손바닥을 들어 막았다.


“그래도,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맞습니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잘 이어가지지가 않겠지요. 하나 하나 관리하자니 옳지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놓아버리자니 눈에 밟히는 게 많아요.”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관심이 없었을 때는 별 생각 없이 넘어갔지만, 제대로 세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전에는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썩거나 곪은 곳이 많았다.

그것을 도려내기 시작하자 벌어진 것이 바로 지금의 혼란이었다.

썩은 부위를 도려냈으니 새 살이 돋아나고 나면 괜찮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만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쁜 놈들을 계속 없애도 어디선가 비슷한 놈들이 계속해서 나오니, 어지간히 끈기 있게 접근하지 않는 이상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일인 것도 같았다.


“그래도 제가 적게나마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적은 도움이라뇨. 무척 큰 힘이 됩니다.”


박지훈이 도와주고 있는 부분은 이쪽 지구 내에 존재하는 모든 자원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쪽 시스템을 완전히 소유하지 않고 있는 터라 별도로 구축해야 하는데, 혼자서 처음부터 시작하려니 막막했던 걸 박지훈의 도움을 받아 수월하게 진행 중이었다.

이미 박지훈은 비슷한 일을 예전부터 해오고 있었고, 데이터 정리와 관리 측면에선 따라갈 자가 없다는 평가를 실제로 보여주었다.


“얼추 한 달 정도면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고려해보셔야 할 부분은 이겁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었던 거죠.”

“음. 서버를 어디에 두는지 여부군요.”


박지훈이 보내준 자료 화면을 들여다본 김태훈은 예전에 그것을 봤을 때 뒤로 미뤄두었던 고민을 다시금 꺼내야 했다.

그것은 정리해둔 데이터베이스를 독립적으로 관리할지, 아니면 지금처럼 박지훈의 도움을 받아 그쪽 클라우드 서버와 연동해 관리할 지의 여부였다.

전자의 경우라면 완전히 독립적으로 보안체계를 구축하여 관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그 분야에 아는 게 없는 그로선 결국 관련 부서를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인원을 충원하고 맡겨야 한다는 점에선 지금하고 딱히 다를 것도 없는 일이고.


‘지구 쪽 인원을 할당하자니 그것도 좀 그렇고.’


세상의 이면을 공개해야 한다는 부분은 이미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있다.

다만 그가 지구의 전체 자원을 거의 소유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 즉 지금 벌어지는 일들의 흑막이 그라는 것에 대한 공개는 살짝 애매했다.


“굳이 다 알릴 필요는 없지요. 시스템에 직접 연결하는 게 아니니까, 그 정도는 가릴 수 있습니다.”


시스템과 제휴 형식으로 데이터 공유만 가능하다면 실시간 연동도 문제는 없지만, 그렇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시스템이 그의 존재와 관련 사항을 세상에 공개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그저 인원이든 자원이든 할당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각 데이터를 최신화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적당한 수준의 흑막 취급이라면야 저도 반길 생각인데, 이 정도면 아예 신급으로 올라갈 것 같아서요. 많이 시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하죠. 오너가 있는 시스템들도, 일반 세상에 오너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한 명의 각성자 정도로 시스템이 가려주는 거죠.”

“이쪽 시스템이 그런 협조를 해줄 것 같진 않군요.”


박지훈이 운영하는 클라우드 서버에 자리를 두고 관리를 맡긴다면, 일단 보안이든 데이터 최신화든 별도로 손을 쓸 필요가 없다.

보안의 경우 디버거 건 때 살짝 뚫린 적이 있긴 했지만, 그것을 감안하고라도 박지훈과 그가 부리고 있는 인공지능의 보안 수준이 대단한 건 맞았다.


“제가 직접 하는 것보단 역시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사실 좀 더 과거의 그였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고민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소속 지역의 전체 자원 데이터를 공유한다는 건 내 약점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쩌면 박지훈이 그것을 악용하거나 배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수도 있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별로 고민하지 않고 결정할 수 있는 건 어느새 그가 박지훈을 어려워하지 않을 만큼 나름대로의 역량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박지훈이 나름 믿을 만한 인물이라는 점도 있지만,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섣불리 배신 같은 행위를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능력이 이쪽에도 있다는 것.

잠시 속으로 지금 자신이 확보하고 있는 역량에 대해 생각해보던 김태훈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는 박지훈의 설명을 들었다.


“그럼 그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관리 비용은 최대한 절충해드리지요. 우리 사이가 사이니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지요.”


박지훈 쪽에 맡기게 되면, 직접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보다는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시행착오도 있을 테고, 잘 모르는 부분은 결국 돈으로 때우는 게 정답이 될 테니까.


“아. 기존에 이용하시고 계시던 데이터베이스도 그쪽으로 통합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시고 싶으신지요?”

“기존이라면, 영혼 데이터군요.”

“예. 굳이 따로 분류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뭐, 이유가 있으시다면 지금처럼 분리해서 관리하겠지만요.”

“지금 바로도 되는 겁니까? 완전히 구축하고 나서야 되는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예. 지금도 가능합니다. 기계 장치를 만들거나 하는 것하고는 다른 개념이어서요. 지금도 정리된 데이터에 대해선 확인이나 관리가 가능하십니다. 어떻게, 통합할까요?”

“예. 그렇게 해주세요. 관리자들의 이용 방법에는 변화가 없는 거죠?”

“그렇죠. 지금 그대로 쓰시면 됩니다.”


그렇게 악수를 나눈 박지훈은 여전히 허공을 날아다니며 나름대로의 공격을 행하고 있는 정령들을 보며 웃었다.


“이 집 정령들이 저를 안 좋아하나봅니다.”

“다들 장난을 좋아해서요.”


물론 그런 공격들이 그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라고 해도 별다른 충격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약한 수준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또한 눈에 보이는 정령들이 워낙 귀엽다보니, 화가 나긴커녕 거듭 웃음이 나던 박지훈은 자신의 작업실에도 정령들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면 좀 덜 삭막하려나.’


돌아가면 제이팩스와 이야기를 해봐야지 싶었다.




***




“워어, 저삼이네.”

“오! 저삼 왔어?”


간만에 연합 사람들과 합동 작전을 위해 방문했더니, 이쪽을 보며 하는 이야기가 언뜻 귀에 들렸다.


“저삼이 뭡니까?”


어리둥절해서 묻는 김태훈을 본 강찬호가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저승 삼형제요.”

“......?”

“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 때문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저세상 삼형제 아니었어?”


옆에서 그렇게 묻던 박지훈은 얼굴을 구기는 강찬호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나까지 저승으로 묶냐 이거지.”


악의 섞인 별명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별명이 퍼지기 시작한 이유 또한 그들 셋이 각자의 능력을 모아 제휴하며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에서 출발했으니, 어느 정도 우스개 삼긴 했어도 좋은 의도였을 것 같긴 했다.


“저지방 삼겹살 같은 어감인데요.”

“삼겹살에 저지방도 있어요?”

“아니요. 어감이.”

“.......”


새삼, 어디 가서 농담은 하지 말라던 여동생들의 조언이 떠오른 김태훈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옮겼다.


“디버거 쪽은 잔재까지 싹 정리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엄청 성가셨죠. 그래도 뿌리 뽑긴 했습니다.”


지금 향하는 곳은 그 정도로 대단한 적은 아닌 모양이었다. 단순히 대연합들의 전쟁 쪽에 한 손 거들기로 했다고.


“그럼 난 연합도 아닌데 왜 불렀어?”

“그쪽에 엘카인이 붙었다던데, 빠질 거야?”

“아. 그런 거군. 진작 말하지.”


그 자식은 내가 직접 조져야 된다고 이를 가는 박지훈의 모습을 보니, 아마 개인적인 원한 관계가 있는 건가 싶었다.

김태훈은 옆에서 슬쩍 고개를 들이미는 박지훈을 보았다.


“혹시, 그놈 확인하면 영혼을 붙잡아줄 수 있으십니까? 그거 하면 도망 못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예. 일단 제가 붙잡고 있는 동안은 지역 이동 못합니다.”

“그럼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놈이 도망을 잘 쳐서....”

“확실히 끝내야 될 만큼 원한이 깊으신가보네요.”

“예.”


어떤 사정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이야기가 길다는 말에 나중에 제대로 듣기로 했다.

얼핏 옆을 보니 강찬호도 그 사연을 조금 알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개전 메시지 왔습니다. 우리도 슬슬 움직입시다.”

“용병 뛴다고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긴장 타자.”

“출바알!”


그렇게 참여한 타인들의 전쟁.

김태훈은 그곳에서 박지훈이 말했던 자를 찾아 붙잡을 수 있었다.

그쪽의 동료들인지 적지 않은 숫자가 그를 빼가려고 노력했지만, 이쪽에서 버티고 있는 강찬호 하나만으로도 그들을 막아내기엔 충분하고 넘쳤다.





“저승 삼형제라... 웃기긴 하군.”


암흑공간.

이제는 ‘명계’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그곳으로 복귀한 그는 부유섬의 한쪽 절벽, 그가 평소 지상을 내려다보는 장소의 의자에 앉아 시스템 메시지를 훑어보았다.

고향의 가족과 지인들이 보낸 편지에는 조금 어색하게 웃었고, 클랜의 이윤상이 보낸 보고서엔 자못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지구 쪽은 그럭저럭 수습이 되는 모양새구나. 그래도 아직 멀었지.’


계속해서 쳐내고 있음에도, 마치 세상에는 일정한 악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처럼 어느새 새로운 악이 고개를 들곤 했다.

그나마 집중해서 관리하기 시작한 후로는 대놓고 밖에 나와 활동하는 자들이 줄어든다는 게 다행일까.


“오셨습니까.”


마침 부유섬의 저택에 있었던 건지, 백작이 나와서 예를 취했다.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자, 그녀가 조심스레 두어 걸음 옆쪽으로 다가와 같은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요즘...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 생에서 그런 건 없을 줄 알았거든요.”

“보람 좋지. 나도 꽤 느끼고 있어.”


뿌듯함이라도 없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한 그는 시스템 창을 열고 새로운 내용을 확인했다.


“얼추 다 되었군.”

“예?”

“지구 쪽하고 새로운 땅에 통로를 연결하던 중이었거든. 크몬들이 사는 지역 말이야.”

“크몬에게만 주기엔 너무 넓다고 하셨었죠.”


악마들의 도움을 받아 그쪽 지역을 확실히 분석한 지도 꽤 되었다.

물론 지역 분석 보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던 시스템이기에, 해당 금액은 고스란히 빚에 더해졌었고.

그렇게 확보한 땅은 그냥 두기가 애매했다.

개인 소유 지역에 붙여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러면 그 지역이 또 애매하게 커졌다.

결국 그 상태로 유지시키던 중에, 문득 지구 쪽과 연결해서 써먹을 만한 방법이 떠올랐다.

그것은 해당 지역을 클랜 전용 사유지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지구와 직접 연결까진 하지 않아도, 시스템으로 통로를 뚫어놓으면 클랜 시스템을 통해서 자유롭게 오가도록 할 수 있었다.


“별도의 거점이나 피난처가 필요하긴 했으니까. 원래 내 사유지 쪽에 마련해두었었는데, 그쪽은 지금 핵폐기장 비슷한 게 되어버려서 별도 지역이 필요하더라고.”


단순히 클랜의 피난처 정도로만 활용하기엔 워낙 넓은 땅이었기에, 별도로 훈련장이나 사냥터 같은 식의 구분도 해두고 있었다.

그쪽에는 원래부터 서식하고 있던 몬스터들도 있으니, 클랜원들의 전투 훈련 쪽에도 적잖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사냥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수익도 있겠고.


“지역을 소유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내 사람들은 잘 챙겨야지.”


중얼거리는 듯한 그의 말에, 백작은 별다른 대꾸 없이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다른 이유도 있고.”


또 하나의 목적은 정령들을 위한 장소였다. 지구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오너가 아닌 이상 아무래도 단번에 개선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가 비용을 들여서 개선하더라도 엉뚱한 놈들이 그 성과를 누리거나, 아니면 애써서 고쳐놨더니 도로 오염시켜놓는 경우까지 있었다.

하여 정령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제 2의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크몬이 살고 있는 지역은 별다른 오염이 존재하지 않기에, 정령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게 숫자가 늘어나면, 지구 쪽에도 그만큼 좋은 영향을 주겠지.”

“여전히 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다들 내가 일을 만들어서 한다고 이야기하더군. 그래도 뭐, 보람 있잖아.”

“하하. 네.”


이제는 누구의 눈치를 볼 일도, 스스로의 표정에 어색해할 일도 없이 웃을 수 있다는 것.

백작은 자신과 더불어 많은 이들을 그렇게 이끌어준 이를 향해 다시금 고개를 숙여 예를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는 인물은 왠지 모르게 고독해보였다.


“.......”


어쩌면 이제는 스스로가 인간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된 탓일까.

아니면 그 때문에 본래의 가족이나 지인들조차도 ‘다른 종’을 보듯 보게 되어버린 탓일까.


“괜찮아.”


그런 그녀의 시선을 느꼈을까.

여전히 지상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김태훈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가끔은... 제가 말상대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둔 나름의 투정이, 지금의 고독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토로가 필요하지 않을까.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아니야. 뭘 그렇게까지 이야기해.”


다시금 웃음을 짓는 그의 두 눈에, 지평선 근처까지 뻗어나간 그의 영역이 가득 들어왔다.

이제는 워낙 넓어져서, 안개로 막힌 지역까지 한 눈에 볼 수도 없을 정도가 된 그의 ‘명계’엔 지금도 수많은 영혼들이 쉴 새 없이 찾아오고, 또한 각자가 가야 할 곳으로 다시금 떠나가는 중이었다.


“덕분이야.”

“......?”

“많이 도움이 돼.”


그리고 김태훈은 지금 보이는 것들을 만드는 동안 백작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마계와의 통로를 담당하고 있는 마수왕과 다른 마종주들도, 저 멀리 외부에 나가 활동 중인 마군주와 다른 정찰대도 물론 고생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그만큼 열심히 일해준 백작이었다.


“나 혼자서 한 일은 없어. 모두 다 같이 한 거지.”


생각해보면 그렇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럭저럭 힘을 키워나갈 수 있던 것도 타 시스템과의 소통과 연계 덕분이었고, 시스템의 분탕질에서 자유로워진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기능들도 타 시스템으로부터 구입하거나, 제휴하거나, 계약해서 공유했지.’


결국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있었던 거다.

물론 다들 바쁘니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이 드물긴 하지만, 강찬호나 박지훈 같은 이들만 하더라도 이제는 동료 오너라기보다 친구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고.


“그러니까, 충분히 괜찮아.”


지금의 고독함 같은 건 여느 오너들이나 갖고 있을, 나름대로 절대자 비슷한 존재의 필연적 요소라고 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김태훈은 다시금 시스템 창을 열고 새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일거리가 또 쌓였군.”

“...저도 가보겠습니다. 결재해야 할 사안들이 있어서.”

“그래. 또 달려보자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한껏 기지개를 켠 후 그곳을 나섰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동안 홀로 산속에서 죽어갔던 실족 등산객이 무사히 산 아래에서 정신을 차렸다.


나쁜 친구들의 꾐에 이끌려 몹쓸짓을 당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어린 여학생은 그날따라 잠이 깊이 들었는지 다음날 아침에야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메시지가 없었고, 몇몇 친구들은 갑작스레 전학을 갔다며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손상된 보호복에 의존한 채 사람들을 구하다 전신 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던 소방관이 사망판정 한 시간 만에 멀쩡한 몸으로 의식을 찾아 신의 기적을 증명했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 또한 수많은 이들이 반대로 조용히 세상에서 지워지기도 했다.




***




“이쪽으로 쭈욱 가면 저승인가요?”

“네, 어르신.”

“그러면 이제 우리 진순이 밥은 누가 멕이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 노파의 시선은 아직 자신의 죽음조차 알지 못한 채로 곤히 잠들어있는 자신의 딸을 향해 있었다.

이미 중년의 나이가 된 딸은 몸이 성치 못하고 지능도 부족해서, 그녀가 없이는 하루도 생활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올 겁니다. 걱정 마세요.”

“정말이죠?”

“네. 정말입니다.”

“우리는 돈도 없는데....”

“무료입니다. JS재단이라고 들어보셨지요?”

“뉴스에서 보긴 한 것 같은데. 정말 거기서 우리 진순이를 챙겨줘요?”

“네. 그러니까 마음 푹 놓으세요.”

“다행이네. 다행이야.”


그 즈음 조용했던 원룸의 문이 열리고, 깔끔한 유니폼을 걸친 재단 사람들이 모습을 보였다.

노파의 눈에 보인 그들은 무척이나 친절해서, 잠에서 깬 딸아이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그들의 말에 따르고 있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노파는 뺨을 흘러내린 눈물을 소매로 훔쳐낸 후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런데 저승사자 양반 손이 왜 이렇게 따뜻해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추운 것보단 따뜻한 게 좋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뜻해서 좋긴 하네요.”


그렇게 웃은 노파는 검은 정장 칼라에 꽃송이가 수놓아진, 손이 따뜻한 저승사자의 인도를 받아 한 걸음 한 걸음, 빛무리로 가득한 저편으로 나아갔다.




***




“저삼 재단이 뭡니까, 네이밍 센스 진짜.”

“그래서 영어로 지었잖습니까, JS라고.”

“그게 뭔 차이냐고요. 에이.”


고개를 젓는 박지훈이었지만, 그 표정은 하는 말과 달리 기분 좋아보였다.


“아니 왜 마음대로... 우리 이름까지 들어간 거니까, 저도 3분의 1 지원하겠습니다.”


이어진 강찬호의 말에, 김태훈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며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정확히 33퍼센트씩 지분을 나눈다는 계약서에는 나머지 1퍼센트의 지분란에 다른 인물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최만득옹이 왜 여기서 나와요?”

“좋은 일 한 팔 거들고 싶다시더군요.”

“한 팔이 겨우 1퍼센트? 거 참 쪼잔하시네.”

“지분만 그렇고, 별도로 지원 많이 해주시고 계십니다.”


재단 이름을 보아하니 세 사람이 중심이 되는 거냐며, 그러면 3등분하고 자신에겐 1퍼센트만 달라던 것이 최만득옹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상당한 금액을 수시로 지원해오고 있어서, 복지재단 운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음. 그분이 좋은 일 많이 하시긴 하죠. 그러려고 개처럼 돈 버는 거라던가.”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를 더 키워서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태훈은 해당 재단을 자신의 고향에서만 운영할 생각이 없었다. 단순한 한 지역을 넘어, 시스템 계에서 활동하는 복지재단을 구상한 것이다.


“그게 쉽게 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시스템 권한이나 오너 권리도 있고.”

“지원만 받고 입 닦는 놈들도 있을 거고요.”

“그거야 지금 일반 세상에 존재하는 재단도 비슷하니까요. 그래도 누군가는 혜택을 받겠지요. 우리가 더 열심히 할수록 제대로 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갑자기 코 꿰였네.”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박지훈은 손에 든 머그컵에 담긴 핫초코를 홀짝이다 슬쩍 손을 뻗었다.


“여기 서명하면 됩니까?”


계약서를 확인한 강찬호 역시 별다른 조율 없이 그대로 수락했다.

그렇게 단순한 동업 계약 외에도 재단이라는 형식을 통해 뭉치게 된 세 사람은 그만큼 강해진 결속력으로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다.


-뭐야. 자기들끼리 좋은 일 해? 나도 1퍼센트 줘. 얼마면 되는 건데?

-그냥 후원만 할 수도 있지? 돈 뒀다 뭐하나 싶었는데, 좋은 일이나 해야겠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스템계에 출범한 재단은 연합 멤버들을 시작으로 점점 더 많은 이들과 연을 맺게 되었다.

소멸 위기의 지역들을 돕는 일, 혹은 악덕 오너에 힘겨워하는 지역들의 구성원들을 구해내는 일 등등 그들이 할 만한 일은 무척이나 많았다.

그런 활동 과정에 적잖은 시스템들과 마찰을 빚는 일도 생겼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랬듯 더 많은 이들이 그들을 도와 맞서주었다.


“여전히 종 정체성이 혼란스럽습니까?”


문득 누군가가 건넨 물음에, 김태훈은 접속 중이던 자신의 캐릭터를 잠시 바라보다 빙긋 웃었다.


“요즘은, 그래도 나름 ‘인간적’ 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다행이군요.”

“예?”

“아. 저희 쪽 지구에서 누가 소개 좀 해달라고 요청이 와서요.”

“아니, 그건 좀....”

“일단 연락처는 드릴게요.”

“.......”


어느샌가 사라진 이와 시스템 메시지로 날아든 누군가의 연락처.

잠시 멍한 얼굴로 서있던 김태훈은 해당 메시지를 삭제하려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뭐. 나쁠 거 없나.”


잠시 머뭇거리던 손가락은 이어서 ‘해당 지역으로 이동’ 메뉴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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