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다보는 남자 131
[SYSTEM : 해당 데이터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SYSTEM : 설치하기 좋은 자리를 총 217곳 찾아두었습니다.]
“너, 진짜 절실한가보구나.”
그렇게 자리로 돌아온 김태훈은 반응을 기다리는 상대에게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부분을 물었다.
“설치 비용은 어떻게 되죠?”
“무료입니다.”
“계약합시다.”
그렇게 계약 사항을 다시금 처음부터 꼼꼼하게 확인하고 나서 서명했을 때였다. 머릿속에서 가끔 들은 적 있던 팡파레 소리가 터졌다.
[큰 거래를 성공하셨습니다!]
[업적에 따라 보상을 획득합니다!]
-칭호 : 현명한 거래자-
효과 : 오프라인 마켓 수수료 면제
-인벤토리 10,000블록 대여권 (판매 불가)
‘그렇게 기쁘냐?’
근데 슬쩍 봐도 뭔가 대단한 보상은 딱히 없는 게, 역시 짠했다. 하긴, 녀석한테도 지금 이것이 특별한 기회인 건 분명해보였다.
“그런데, 사명은 정하셨습니까?”
“사명이요?”
서류를 넣고 일어나려던 강찬호의 물음에, 김태훈과 고반테는 어리둥절해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회사명을 말하는 것이었다.
“자판기 사업과 연계하는 곳들은 모두 회사명을 정하고, 특정한 상인 연합에 모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합 내에서 서로 돕고, 할인도 해주고 하는 거죠.”
“아... 회사명이라. 뭐 없어?”
“왜 나를 봐?”
고반테는 작명 같은 건 질색이라며, 전적으로 맡길 테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젓던 김태훈은 잠시 뺨을 긁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태훈제약으로 하죠.”
“왜 네 이름만 넣냐!”
“내가 알아서 하라며!”
고반테와 틱탁거리던 김태훈은 [뿌리제약] 이라는 이름으로 최종 결정하고 이야기했다.
“뿌리라, 의미가 있어보이는군요.”
“예.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예. 좋습니다. 지금 시간부로 뿌리 제약은 ‘게돈 상회 연합’의 회원사가 되셨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저희도 잘 부탁드립니다.”
악수를 나눈 그들은 웃으며 헤어졌다.
김태훈은 고반테가 1천만 포인트를 송금받았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정말로 계약을 했다는 것이 실감났다.
“메시지가 왔어. 일단 1천만은 초기 투자 비용이고, 그것으로 기본 생산 라인 깔고 나서 추가 투자 진행한대.”
“자판기 쪽 납품은?”
“두 달 정도 걸릴 거라는데? 기본 생산량 하루에 1만병부터 납품 들어가자고.”
“1만 병이라....”
순수익을 따져야 하니까, 팔리기 전까지는 수익을 예측할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계약이 그에게 굉장히 큰 이득을 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수액 채취 시설도 확장해야겠지. 아니, 하루 1만 병인데 뿌리가 감당이 되려나?’
너무 주먹구구로 계약했을까?
일단 크몬숲으로 돌아간 그는 현재까지 체크한 모든 지역의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했다. 게다가 악마들이 열심히 달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지역 확인이 다 안 끝났다는 것도.
‘대체 얼마나 큰 지역인 거야?’
그나마 숲이 끝났다는 게 긍정적일까?
아니, 지금 상황에는 아닐 수도 있다. 뿌리가 그곳까지 뻗어가야 할 테니, 오히려 그쪽에 새로 나무를 심어야 한다.
‘나무가 아니라 작물이나 과수를 심어야겠네. 그게 빨리 자라고 얻을 것도 많으니까.’
한동안 또 바쁘게 생겼지만, 왠지 즐거웠다.
누가 그랬던가.
사람은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잘은 모르겠지만, 김태훈은 오늘 겪은 일이 그에게 있어 바로 그 세 번의 기회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큰 계약을 따낸 것만이 아니라, 유명인과 인맥을 쌓은 것도 좋은 일이었다. 또한 꽤나 큰 연합에 들어가게 된 것도 긍정적이고.
‘연합이라는 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들었는데 말이지. 상인연합은 좀 다른가?’
게돈 상회 연합.
게돈이라는 게 사람 이름인지 다른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속된 회사의 숫자만 1천 곳이 넘어가는 대형 연합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아주 큰 물에 들어간 것 같아. 하지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잡아먹힐 지도 모르지.”
긴장해야지.
그는 오랜만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
“이봐, 시스템! 이거 설명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크몬 지역의 숲 외곽을 돌아다닐 때였다. 비로소 한쪽 숲이 끝나고 비탈과 산, 황무지와 물길등등 다른 지형들을 보았는데... 이게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이미 지도를 통해서 대충 파악하고 온 거긴 하지만, 실제 눈으로 본 건 처음일 텐데 처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하여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느 지형을 보고 깨달았다. 아, 이거 거기였네. 하고.
“왜 내가 새로 확보한 땅덩어리들이 여기에 와서 붙어있는 거야? 설명해보라고.”
최근 계속해서 시스템의 부탁이나 퀘스트를 받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부분 외부 지역의 땅덩어리를 확보하는 일이었는데, 좌표를 아예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그냥 나가서 몇 곳을 확보해라 라는 식도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확보한 지형들 중에는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이하게 생긴 산, 혹은 거대한 바위 등등의 대상을 포함한 곳들이 있었는데, 그게 왜 여기에 와서 붙어있느냐 이거다.
“혹시... 일부러 분석 안 끝나게 하려고 계속 새 땅 이어붙이고 있는 거냐? 분석 보상 주기 싫어서.”
이미 분석된 지역만 해도 한반도 크기를 넘어간 지가 오래였다. 하루 1만 병의 수액을 채취해도 문제가 없을까 확인해보았는데, 현재 수준으로 일일 5만병까지는 괜찮을 것 같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무튼 지금 포션이 문제가 아니다.
이게 설마 숲이었던 지역만 원래의 땅이고 그 바깥은 모두 새로 시스템이 이어붙인 땅이라면, 이미 받았어야 할 분석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설명해보라니까? 어이. 듣고 있어?”
시스템은 마치 옛날처럼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정말 꼼수를 부리다 들킨 건가? 보상을 주기 싫어서 새 땅을 늘려 분석을 이어가게 한 걸까?
하지만 그렇게 확보한 새 땅들은 이미 퀘스트든 계약이든 하는 형식으로 수행했기에 그에 해당되는 보상도 받은 지 오래였다.
그러니까, 아직 받지 못한 건 숲으로 뒤덮여있는 원래의 크몬 지역에 대한 분석 대금 뿐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이 정도 면적이면... 얼마나 받아야 되지?’
아마도 지역의 크기로 계산하는 것 같은데,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못 받아도 10만포인트는 받아야 한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아서 그런 거고, 잘하면 그 두 배까지도 가능할 것 같다.
‘설마하니 10만포인트가 없어서 그딴 짓을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그제야 특유의 그 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도착했다.
[SYSTEM : 해당 지역은 아직 분석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분석에 대한 보상을 지급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분석이 끝나지 않은 게 네가 새 땅을 이어붙여서 그런 거 아니냐고. 저쪽으로 숲이 아직 더 있긴 하지만, 그렇게 멀진 않은 것 같으니까 거의 끝난 게 맞잖아.”
[SYSTEM : 분석은 지하까지 진행됩니다. 아직 기존 지역의 지하에 대한 분석이 진행 중입니다.]
“지하?”
현재 지도 상에는 지하가 표시되지 않는다.
시스템의 지역 관련 메뉴에도 그런 이야기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시스템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을까?
“그러면, 현재 속도로 하면 기존 지역에 대한 분석 완료 시점이 언제쯤이야?”
[SYSTEM : 17일 후입니다.]
“외부에 추가한 지역은 제외하는 거지?”
한 번은 속았다고 쳐도 계속 속아줄 수는 없다. 그렇게 이것 저것 확답을 들어놓은 김태훈은 그제야 새 지역을 다시 돌아보았다.
‘외부에서 확보한 땅을 어떻게 하나 했더니, 여기다가 붙이고 있던 거였어.’
왜 지구가 아니라 이쪽에 붙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스템에게도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다만 지하까지 분석을 한다는 게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도 의심이 되었다.
“지하라....”
기본 제공하는 시스템 지도가 그것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찾아서 추가하면 될 일이다.
굳이 시스템에게 해당 기능을 지원해달라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지않은 그는 조용히 그런 기능을 찾아서 구매, 적용했다.
‘속인 건 아닌 모양이네.’
그렇게 보니, 실제로 지하가 존재했다.
이미 뿌리를 확인하느라 어느 정도 깊이까지 들어가보긴 했지만, 지도 상에 표시된 것은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깊이의 지하였다. 아직 분석이 진행되고 있어서인지, 지도에 표시되고 있는 깊이 역시 계속해서 깊어지고 있었다.
‘오히려 17일만에 된다는 게 안 믿길 정도네. 역시 행성 같은 형태의 세상은 아닌 모양이군.’
땅의 깊이가 10킬로미터라고 쳐도 그렇게 깊은 건 아니다. 역시 이 지역 또한 어느 세상이 박살나면서 떨어져나온 파편인 것 같았다.
‘그런데 파편 치고는 크네.’
다른 세상의 각성자들이 부수러 오지 않는 것도 특이한데, 어쩌면 이미 이쪽 시스템의 소유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관리자나 오너는 파편지역의 핵을 입수하면 그 지역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던데. 혹시 내가 하고 있는 지역 분석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최근 확보하고 있는 주인 없는 땅들도 그렇고, 분석만으로 이쪽 시스템이 마음대로 갖다 붙이는 걸 보면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커보였다.
‘파편지역에서도 지역분석이 먹히려나.’
아직 시도해본 적 없는 일이다.
혹시 기회가 되면 해봐야지 생각한 그는 시스템 마켓으로 들어가 판매 현황을 확인했다.
그에게 있어 시스템 마켓은 두 종류인데, 외부 마켓과 지구 한정 마켓으로 나뉘었다. 그 중에서 지구에서만 활용할 수 있는 마켓을 이쪽 시스템은 ‘오프라인 마켓’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난 번 업적을 통해, 그는 지구 한정 마켓에서는 구매나 판매를 할 때 시스템에 내야 할 수수료를 면제받았다.
이게 생각보다 큰 혜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가 본격적으로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대단한 상품들이 많다더니....’
강찬호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현재 지구 곳곳에 배치된 자판기 수백대, 또한 시스템의 동의를 얻어 그렇게 오프라인 마켓에서도 취급하기 시작한 ‘게돈 상회 연합’ 의 상품들은 일반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또한 외부 마켓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상품들이 많았다.
일단 블러디 포션도 아니고 퓨어 포션을 자판기에서 취급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농도가 무척 낮아서 거의 물 탄 포션 취급을 받긴 하지만, 그만큼 가격대도 저렴하기에 각성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고급 강장제 취급을 하며 구입하고 있었다.
또한 내상이나 질병은 치료하지 못해도 외상 쪽에는 포션과 동일한 효과를 지닌, 그럼에도 가격이 상대적으로 무척 저렴한 ‘붕대형’ 혹은 ‘밴드형’ 상품들도 있었다.
일반적인 상처용 밴드와 똑같이 생긴 상품들의 경우, 그것을 붙이면 어지간한 베인 상처는 몇 분 안에 아물게 해주었다. 물론 일반 밴드보다는 훨씬 비싸지만, 그래도 아주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몬스터 사냥을 주로 다니는 각성자들이 열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은 사냥이 끝난 후에 그 과정에 얻은 자잘한 상처와 부상 회복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했지만, 이제 하루 이틀 정도 쉬어야 할 정도의 외상은 그 때 그 때 치료할 수 있으니 그만큼 휴식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상품은 그것들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찍어내는 건지는 몰라도 마법서들이 자판기에 들어왔다. 마법서 자체가 희귀품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믿기 힘든 일이었다.
다만 마법서의 경우 100포인트를 지불하면 랜덤한 마법서가 구매되는 방식이라서, 혹시나 좋은 마법서가 나올까 싶어 돈을 탕진하는 각성자들이 속출했다.
실제로 드문 확률로 고급에 속하는 마법서가 나오기도 하니, 마치 복권처럼 혹시나 하고 사게 되는 것이다.
“이거 완전....”
하지만 김태훈은 그것을 사지 않았다.
연합의 회원인 그는 굳이 무작위 확률에 도박을 하지 않아도, 제 값을 주고 특정 마법서를 찾거나 구매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별로 필요 없는 마법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나아서 하나씩 사다 익혀놓기도 했다.
‘마법서를 대량으로 찍어낸다니. 상상도 못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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