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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 님의 서재입니다.

독 2.0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강양1
작품등록일 :
2021.01.01 23:02
최근연재일 :
2021.03.15 16:00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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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수 :
207,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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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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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4. 발병

DUMMY

서울 홍제역 4번 출구.


퇴근 시간이 되어 발걸음이 분주해진 사람들이 멀리 보이는 인왕산을 눈에 담으며 자신의 목적지로 떠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꺄아악!”


갑작스러운 여자의 비명이 역 입구에서 울려 퍼졌다. 비명을 지른 것은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여자였다.


정장을 입은 여자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커다랗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여자의 손.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의 손가락 끝에는 주먹만 한 뭔가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작지만 인간의 뇌처럼 생긴 것이었다. 여기저기 징그럽게 주름진 뇌의 모습 끝에는 얇지만 길게 척추 같은 것이 돋아나 있었다.


뇌에서 연장된 척추는 손가락 속으로 파고들어 있었고 길게 늘어선 척추 주위로는 신경으로 보이는 것들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뇌와 척추의 중간에는 콩알만 한 크기로······


안구가 달려 있었다.


여자가 비명을 지른 것은 바로 이 안구와 자신의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갑자기 손이 이상해 살피자 눈알이 보였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여자가 왜 비명을 질렀는지 살피다가 여자 손가락 끝에 달린 흉측한 것을 보고는 입을 가리며 놀랐다.


“으으윽······”


패닉에 빠진 여자가 손에 돋은 뇌를 잡아 뜯기 시작했다.


“악!”


하지만 곧 고통에 차 비명을 질렀다. 뇌를 뜯어내자 자신의 살을 찢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 번을 시도하던 여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끔찍한 것이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고통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뇌에 달린 눈에서 희미하게······시각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시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뭔가 다른 감각이라고 해야 할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누가······누가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여자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회사원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전화기를 꺼내 119를 불렀다.


“홍제역 4번 출구요. 네. 지금······설명 하기가 좀. 하여튼 빨리 오시는 게 좋을 것······”


119에 상황을 설명하던 남자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남자의 눈에 끔찍한 광경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자의 블라우스 배 부분에 붉은 점 하나가 생기더니 순식간에 커지기 시작했다.


“아아악!”


여자가 갑작스러운 고통에 자신의 배를 잡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블라우스 안에서는 피 말고도 뭔가가 삐져나오는지 단추 부분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투툭.”


내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블라우스 단추가 터져나갔고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살덩어리였다.


살덩어리가 붉은 이유는 피에 젖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피로 번들거리지 않는 부분의 색 또한 약간 불그스름한 색을 띄고 있었다.


살덩어리는 마치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배에서 커지고 있었다. 살덩어리 주변으로 내장이 얽혀있었다.


“우욱······”


옆에서 보고 있던 행인 하나가 끔찍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구토를 해댔다.


“으어어아.”


자신의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기절하지도 그렇다고 제정신을 유지할 수도 없는 여자는 이상한 신음을 내며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배에서 돋아난 살덩이는 점점 더 부풀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을 넘기자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형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입술과 닮아 있었다. 아니 입술이었다.


“촤륵.”


잠시 뒤 입술 내부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혀였다. 혀와 입술 사이에는 놀랍게도 하얀색의 치아가 돋아 있었다.


“왜······나에게 이런 일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며 중얼거리던 여자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놀랍게도 배에서 돋아난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의 입술이 여자의 말을 따라 하고 있었다.


“꺄악!”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배의 그것이 여자의 입 모양을 따라했다.



84명.


첫 번째 이상징후를 보이는 환자가 나타나고 24시간 이내에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대한민국 내에서만 84명 발생했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같은 증상의 환자가 보고 되고 있었다.


증상은 단순했다. 몸에 불특정한 신체 기관이 자라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팔에서 내장들이 자라나거나 코에서 항문이 자라나거나 하는 식으로.


새로 생성된 신체 기관들은 원래 그 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입술이 생겼다고 해서 그 부분으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대가 없으므로. 하지만 입술을 움직이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원래는 없던 기관을 움직여야 해서 이를 제어하는 뇌에도 변화가 생기고 따로 그것과 연결된 신경들도 생겼다. 실제로 환자들의 뇌 MRI 촬영결과 뇌의 형태와 기능에 변화가 있음을 추측할 수 있는 징후들이 관찰되었다.


각국의 정부들에서는 즉각 비상조치가 발령되어 감염자들을 격리하고 유관 기관들은 따로 대응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대응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신규 감염자의 숫자는 전국적으로 100명이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는 만 명이 넘는 감염 사례가 보고 되었고.



“젠장. 이럴 때 정훈이 자식은 어딜 간 거야?”


자취방에서 티브이를 보던 광현이 분통을 터뜨렸다. 저것은 틀림없는 개고 바이러스였다.


그리고 정훈은 전 세계에서 개고 바이러스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의 하나였고. 물론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었지만.


정훈이 떠난 것과 이번 사건 간에는 대략 4주 정도의 시차가 있었다. 어쩌면 둘 사이에 조그만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광현의 머릿속에는 그보다 더 혐의가 짙은 이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광현은 몇 달 전 남대문 시장에서 보았던 테러리스트들이었다. 그들은 개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었다.


물론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시 그들의 감염은 퍼지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야 와서 다시 시작된 것일지도.


정훈의 말에 따르면 개고 바이러스의 전염 모델은 불확실하다고 했으니까.


“그럼 나도······”


광현은 테러리스트들과 밀접 접촉을 했다. 온몸에 그들의 피를 뒤집어썼으니까. 이제야 그들이 퍼뜨린 개고 바이러스가 잠복기를 거쳐 발병하기 시작했다면 광현도 위험했다.


“뭐 괜찮겠지.”


광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 생각을 머리에서 털어냈다. 어차피 걸릴 것이라면 답은 없었다. 치료제나 백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걱정해봐야 머리만 아팠다.


“밥이나 먹자.”


광현은 밥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서울 북한산 모처의 숲.


“우웅.”


광현의 주먹 주위로 마치 거대한 물방울이 맺힌 것 같은 왜곡이 발생하고 있었다. 권기였다.


아주 오래전에는 권강이라고도 불렀지만 근대로 들어오면서 무공의 발달로 인해 기준치가 많이 조정되었고 이제 이 정도는 그냥 권기로 취급하고 있었다.


절정이니 초절정이니 하는 것도 조정된 기준으로 불리고 있었고.


아마 지금 절정의 경지를 가진 무림인이 300년 전쯤으로 돌아가면 초절정이나 그 이상의 수준으로 분류될 것이었다. 물론 광현이 봤을 때 그런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과거에 비해 무림의 무공의 수준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과거보다 내공을 쌓는 속도도 더 빨라졌음을 의미했다. 내공 수련법의 개선과 내공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짐에 따라 과거에 비해 내공을 쌓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런 수련법의 개선이나 내공 자체의 이해가 높아진 것을 차치하더라도 과거보다 내공의 수련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 한 무공 연구가는 현재 무림인의 내공 증가 속도가 주변 여건 그러니까 수련법과 내공 이해도의 증가폭보다 많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여러 수련법과 내공 이해도를 철저히 수치화해 내놓은 이 논문에서 무림인의 최종적인 내공 증가율은 수련법과 이해도로 향상되는 양을 많이 뛰어넘고 있었다.


이 논문이 화제가 되자 한 무림맹 차원에서 실험이 실시되었다. 실험대상을 선정해 아이 때부터 현대의 내공 개념이 아닌 과거의 내공 개념을 주입하고 개선된 내공 수련법이 아닌 완전 과거의 수련방식으로 무공을 수련하게 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분명 현대적인 방식의 내공 수련법보다 효율은 떨어졌지만 과거에 같은 수련법으로 이루었던 내공의 성취를 훨씬 웃도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결과에 대해 무림맹은 연구를 거듭했지만 아직도 그것에 대한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하여튼 현대인의 내공 성취가 과거보다 빨라졌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고 그에 따라 내공 등급이 재조정되었다.


조정 기준은 간단했다. 1갑자. 그러니까 60년 간 내공을 쌓았을 때 얻을 수 있는 내공의 양을 과거의 것에서 현대인의 평균으로 바꾼 것이다. 갑자의 양이 조정되자 나머지 수준도 당연히 알아서 조정되었다. 당연히 그것은 과거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광현이 보여주는 내공의 수준은 그런 개선된 평균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성취였다.


“쾅!”


광현의 주먹에서 날아간 권기가 앞에 있는 나무를 완전히 박살 냈다. 소림의 백보신권이 완전한 모습으로 발휘된 것이었다. 하지만 광현의 호흡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쾅쾅쾅!”


연달아 주먹에서 날아간 권기가 조금 떨어져있던 바위를 직격하자 파편이 튀며 바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후우.”


그 모습을 본 광현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제야 조금 숨이 찬 모양이었다. 겨우 나무 한 그루 박살내고 피를 토하던 광현의 모습은 이제 없었다.


이 정도면 거의 절정급의 내공 운용으로 봐도 손색이 없었다.


문제는 이걸 단 석 달 만에 이뤘다는 것이었다. 세계와 자신의 왜곡을 진정시키고 내공이 복구되었을 당시 광현의 수준은 아무리 잘 봐줘도 일류 초입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후 단 석 달 만에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다. 무공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보았다면 보고도 믿지 못할 수준의 성과였다. 물론 광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광현은 과거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적이 있었다.


그게 벌써 40년 전이었다. 그 후로 엄한 짓을 하다가 내공을 거의 쓰지 못하고 폐인으로 살긴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무공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었다.


만약 폐인이 되지 않았다면 초절정 이상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건 이미 걸어본 길을 걷는 건 당연히 어려운 건 아니었다. 거기에 지난 몇 십년 간의 연구로 광현의 무공 이론은 과거의 것보다 훨씬 진보해있었다. 덕분에 내공을 찾자마자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하아. 근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광현이 주먹을 내려다 보며 한숨을 쉬었다. 습관적으로 무공을 수련하고는 있었지만, 특별히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억지로 이유를 찾자면 그냥 몸을 움직이면 시원해지는 느낌이 나서? 그 정도 이유가 다였다.


“그만할까?”


광현은 알고 있었다. 가진 힘이 강할수록 더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을. 과거 그걸 모르고 깝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낭비했던가.


그냥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오토바이 배달이나 하면서 혼자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면 딱 그 정도의 일만 생길 것이다.


그 이상의 일이 생기면 도망치면 그만이다. 지금 가진 무공의 수준이라면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몸 빼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지금은 지켜야 할 인연도 없었다.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민기는 죽었고 정훈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중구에서 벌어졌던 괴물 사태가 또다시 일어나더라도 그냥 몸만 빼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되겠지?”


광현은 쥐었던 주먹을 펴더니 손을 탈탈 털었다. 그리고 가져왔던 물건을 챙겨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경기 지역 분원 특수 격리 병동.


신종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이 병동에는 며칠 전부터 발생한 신종 괴질 환자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하지만 음압시설 외에도 각종 전염병 상황에 대응하는 시설을 갖춘 이곳도 며칠 전 의료진 중 한 명이 신종 괴질에 감염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완벽한 전신 방호복과 환자와 거리를 둬 관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상황이라 의료진 측에서도 놀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덕분에 이 괴질의 전파경로와 전파 매개를 두고 여러 추측 혹은 억측이 흘러나왔고 결국 결론은 전파 경로가 명확해 질 때까지 환자와의 접촉을 금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환자들은 사실상 완전 격리되었고 겨우 드론에 의해 음식물만 이따금 내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괴질에 걸린 환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음식을 섭취할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결국 몇몇 환자들의 영양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의사들은 드론 말고도 다른 원격 수단을 이용해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려 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격리 병동 내부.


“끄으억.”


정수는 자신의 숨소리를 들으며 경악했다. 분명 어제만 해도 이 정도로 끔찍한 숨소리가 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자 호흡기에 뭔가가 돋아난 것인지 숨을 쉴 때마다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커컥······도와······도와······주세요.”


정수가 입을 열어 말을 했다. 원래 달려 있던 입 말고 허리 쪽에서 소리가 나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입은 며칠 전 정수가 괴질에 걸렸을 초기에 귀가 돋아나며 조금씩 막히기 시작했었다.


물론 정수는 입이 사라지는 과정을 제대로 목격하지는 못했다.


입에서 귀가 돋아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안쪽에서 귀가 돋아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정수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추측하기로는 입과 눈 부분을 빼고도 온몸에 귀가 돋아난 것 같았다. 몸 전체에서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눈은 멀었지만, 온몸이 소리라는 감각에 굉장히 민감해졌다. 전에는 느껴볼 수 없었던 기묘한 감각이었다.


덕분에 작은 소리의 반향만으로도 주변 공간의 형태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그저 귀가 많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떤 질적인 변화에 가까웠다. 시각과 촉각 그리고 미세하나마 후각까지 청각을 통해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아니. 그것을 넘어 소리를 통해 다른 존재의 감정이나 생각까지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격리된 바람에 타인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겨우 세 평이나 될까 말까 할 공간의 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문은 원격으로 통제실에서 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가끔 문 아래 조그마한 부분이 열리며 기계로 된 뭔가가 음식을 두고 나갔다. 아마도 드론을 이용해 음식을 나르는 것 같았다.


가끔은 드론 말고 뭔가 다른 기계들이 드나들긴 했지만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다시 돌아갔다. 정수는 그 모든 것을 소리로만 듣고 알 수 있었다.


정수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몸의 변형이 너무 심해 손과 발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거기에 음식물을 섭취하는 입의 위치가 완전히 허리 아래로 바뀌었다. 남의 도움이 없다면 음식물을 섭취하는 게 불가능 해진 것이다.


그랬기에 며칠을 굶었는지 몰랐다. 처음에는 배가 고팠지만, 이제는 그런 감각조차 희미해졌다. 신체가 격렬한 변화를 겪었기 때문인지 기존의 욕구가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그래도 먹어야 할 텐데. 식욕이 거의 사라지다니. 대체 몸이 어떻게 된 거지?’


정수는 궁금한 마음에 자신의 몸을 가볍게 흔들어보았다. 그러자 몸이 움직이며 미세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정수는 그 소리의 반향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가늠해보았다.


변형은 절망적으로 심했다. 기존의 신체는 거의 사라지고 귀가 온몸에 돋아나 있었다.


마치 몸 전체가 소리를 듣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정수의 머리에는 온몸에 귀가 돋아난 고깃덩이가 그려졌다.


‘아니. 이걸 내가 그리고 있는 건가? 아니면 듣고 있는 것인가?’


분명 시각적인 형상을 이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것은 청각적인 이미지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청각 외에 다른 이미지는 이제 떠올릴 수 없는 것처럼.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제 뇌마저 이상해진 건가?’


정수가 자신의 신체에 대해 조금씩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이제야 내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거야?”


갑자기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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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철혈생대 21.02.26 27 0 14쪽
22 22. 옛날일 21.02.19 20 0 15쪽
21 21. 집 21.02.15 24 0 13쪽
20 20. 독의 요람 21.02.12 22 0 14쪽
19 19. 단서 21.02.10 24 0 15쪽
18 18. 공장의 내면 21.02.08 30 0 16쪽
17 17. 웰컴 투 동토의 사슬 21.02.05 20 0 14쪽
16 16. 괴물의 바다 21.02.03 22 0 14쪽
15 15. 재생 21.02.01 23 0 17쪽
» 14. 발병 21.01.29 35 0 17쪽
13 13. 굿바이 아이스크림 21.01.27 51 0 16쪽
12 12. 니르바나 21.01.25 27 0 13쪽
11 11. 놈의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 21.01.23 25 0 21쪽
10 10. 타이밍 이쓰 에부리띵 21.01.22 31 0 21쪽
9 9. 러스트 우먼 21.01.20 56 0 19쪽
8 8. 내면의 혐오 21.01.18 36 0 20쪽
7 7. 한없이 녹색에 가까운 정사각형 21.01.15 40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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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바이러스와 신사(3) 21.01.11 54 1 19쪽
4 4. 바이러스와 신사(2) 21.01.08 64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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