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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 님의 서재입니다.

독 2.0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강양1
작품등록일 :
2021.01.01 23:02
최근연재일 :
2021.03.15 16:00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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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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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9. 러스트 우먼

DUMMY

“와. 씨발. 엄청나네 이거.”


서울 남산타워. 얼굴에 위장 크림을 바른 상병 하나가 산 아래 펼쳐진 중구를 내려다보며 거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랬다. 그것은 차라리 감탄할만한 것이었다.


물론 남산에서 보는 서울의 풍경은 원래도 감탄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서울의 광경. 특히 중구 쪽을 바라봤을 때의 광경은 절로 탄사가 날 만한 것이었다.


그곳에 우리가 아는 서울의 모습은 없었다. 거대한 기계 덩어리가 곳곳에 돋아난 중구의 모습은 마치 역겨운 종양이 돋아난 피부와 비슷했다.


건물들은 기계 군체 그러니까 이제는 공장이라고 불리는 현상에 휩쓸려 사라지거나 아니면 공장에서 뻗어 나온 선들이 휘감겨 부식되고 무너져내렸다. 마치 기계가 건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그런 황폐한 대지 위를 기계와 생물이 뒤섞인 괴물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서울 중구는 이제 인간의 땅이 아니었다.


그런 중구를 다시 인간에게 돌려주기 위해 수많은 군인들이 라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한 개의 기계화 보병사단 그리고 두 개의 보병사단으로 이루어진 진압부대와 후방지원을 담당하는 두 개의 포병 여단 거기에 육군 항공대와 공군의 지원이 가세한 대규모 작전이었다.


“위이이잉!”


이윽고 정오가 되자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쿠쿵.”


땅이 울리는 소리가 나더니 공장 하나가 불바다가 됐다. 포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거 우리까지 나설 필요도 없겠는데?”


남산 타워 근처에 설치된 지휘통제실에서 포탄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며 화룡 기계화 보병 부대 사단장 황현준 중장이 중얼거렸다.


두 개의 포병 여단과 공군의 폭격기가 포탄을 퍼부어대자 중구의 공장들이 순식간에 박살 나기 시작했다. 포화에 휘말린 괴물들은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삭제됐다.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나?”


황현준 중장은 사실 섬멸 작전에 대해 조금은 미온적인 입장이었다. 일단 상대에 대해 많은 정보가 없었고 맞춤 전략 전술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황 준장은 군대는 시스템에 따라 효율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고 이런 전략의 부재가 불편했다.


그는 어차피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차라리 더 시간을 들여 좀 더 효율적인 전투를 하길 원했다. 더 많은 정보와 전략을 세운 후. 하지만 정부와 여론의 입장은 단호했다.


하루빨리 서울을 점거한 괴물들을 쓸어버리길 원했다. 그리고 군의 전체적인 입장도 주전론에 가까웠고.


그런 기류에 기름을 쏟아버린 것이 바로 박관형 대위였다.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숭고한 군인의 스토리가 알려지자 여론은 과열됐다.


지지부진한 보상 문제 협상으로 지지율이 내려가는 중이었던 정부가 이 기세를 타고 지지율 반등을 위해 섬멸 작전을 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섬멸 작전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 즈음해서 신호등 인간처럼 몇 가지 거슬리는 특이사항들이 보고 되었기 때문이다.


황 중장은 이 정보들을 더 분석한 다음 섬멸 작전을 해도 늦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누구도 황 중장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일사천리로 날짜와 시간이 못 박혔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과연 박관형 대위도 이걸 원했으려나?’


황 중장도 이 작전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한국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국가였고 덕분에 매년 어마어마한 예산을 국방비로 써대고 있었다.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끽 해야 짐승 정도의 지성을 지닌 저 괴물들이 그런 체계화되고 고도화 된 국군의 폭력을 버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 작전에 희생이 없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희생은 크든 작든 그 정보의 부재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아니 높았다고 생각했다.


“이건 너무 일방적인데?”


하지만 겨우 포격 정도에 괴물들은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있었다. 황 중장은 자기 생각이 기우였다는 것이 너무 명확한 나머지 헛웃음을 짓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 공장은 다 무너졌으니 진격해서 남은 기계 괴물들만 처리하면 됐다.


“포격 끝나면 진입하라고 해.”


황 중장의 명령을 들은 장교 하나가 각 하위 부대에 명령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서울 광화문.


“자 다들 가자.”


포격이 끝나자 소총을 든 보병들이 시청 쪽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괴물들의 영역은 아니었지만 군인들의 눈에는 긴장감이 단단히 박혀있었다.


그런 보병들 앞으로는 K-21 보병전투장갑차들이 미속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오른쪽 얼굴이 날아가버린 이순신 장군 동상이 군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같은 시간 중구의 다른 방향에서도 군인들이 진입하고 있을 것이었다. 광화문, 신금호역, 서울역, 남산 이렇게 네 방향에서 진입해 괴물들을 격파한 후 중구청에서 모이는 것이 작전의 골자였으니까.


그 작전에 따라 군인들은 광화문 교보 문고 앞을 지나 우체국을 건넜다.


교보 문고와 우체국 사이의 횡단보도에는 뭔가가 매달려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횡단보도 신호등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바로 신호등 인간이었다.


신호등 인간을 본 군인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신호등 인간이 있다는 것은 괴물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라는 소리였으니까.


대략 하나의 신호등 인간이 붙어 있는 곳 반경 200미터까지 괴물들의 활동이 가능했다.


“야 저 새끼 떼어내.”


중위 계급을 단 군인 하나가 손가락으로 신호등 인간을 가리키자 병사들이 신호등을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씨발 저 새끼는 저기까지 어떻게 기어올라간거야?”


일병 하나가 신호등을 기어 올라가려다 잘 안 되자 욕설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에 소총과 탄창 수류탄에 수통, 탄띠, 방독면까지 차고 있었던지라 민첩한 움직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있는 다른 병사들이 도왔지만 워낙 높은 곳에 매달려 있던지라 쉽게 떼어내기가 어려웠다.


“씨발 야 비켜.”


보다 못한 중위가 성질을 내며 다가왔다. 혼자서는 별거 아닌 신호등 인간이었지만 괴물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는 역할을 했다.


가만히 뒀다가는 괴물들의 습격을 받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괴물들이 이리로 이동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중위는 이미 그런 괴물들의 습격을 당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중위는 독하게 마음먹었다.


“타다당!”


중위가 들고 있던 소총이 불을 뿜자 총에 맞은 신호등 인간이 팔을 크게 벌리더니 지면으로 떨어졌다.


“야 의무병.”


떨어진 신호등 인간을 보며 중위가 소리치자 의무병이 달려와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치료를 하던 의무병이 곧 손을 뗐다.


“사망······했습니다.”


“씨발. 야 계속 진입해.”


의무병의 보고를 들은 중위가 소리치자 보고 있던 병사들이 다시 장갑차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섬멸 부대가 기계 괴물들과 첫 조우를 시작한 것은 시청 근처에 다다라서였다. 시청 앞 3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공장의 잔해 옆을 지날 무렵.


시청 옆 프라자 호텔 건물 벽이 무너져 내리더니 안에서 괴물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숨어있었어. 각 인원 엄폐 후 응전해라!”


무전을 통해 명령이 내려오자 병사들이 덕수궁 근처 구조물 뒤로 몸을 숨겼다. 괴물들이 총을 든 것은 아니었지만 개체 중에는 강력한 원거리 공격능력을 가진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엄폐물을 뒤로 몸을 숨긴 병사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타다당!”


괴물들은 크기가 작은 개체가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숫자는 많았지만. 말 그대로 득실득실 할 정도의 숫자였다.


“젠장 그렇게 포격을 했는데도 아직도 남은 놈들이 있었네.”


병사들이 불평을 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괴물과 병사들 간의 거리는 대략 100미터 정도. 멀다면 멀고 짧다면 짧은 거리였지만 괴물들은 쉽사리 그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덕수궁과 프라자 호텔 사이에는 시청 앞 광장과 도로뿐이었고 실질적인 개활지에서 군인들은 마음 놓고 사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숫자의 괴물들이었고 이동 속도도 빨랐기 때문에 시체를 방패 삼아가며 군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펑펑펑!”


시청역 1번 출구 쪽 도로에 서 있던 K-21 보병전투장갑차 몇 대가 괴물들을 향해 40미리 기관포 사격을 시작했다.


기관포에서 발사된 복합기능탄이 공중에서 폭발하며 파편을 뿌려대자 괴물들이 말 그대로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와우. 대단하네.”


기관포의 위력을 본 보병들이 감탄하며 열심히 괴물들을 향해 소총과 기관총을 발사했다.


괴물들이 쓰러지는 와중에 뒤쪽에 있던 장대 괴물 몇이 몸에 꽂혀 있던 장대를 장갑차를 향해 날려댔지만, 장갑 표면을 뚫지 못하고 장대가 깨져버렸다.


장갑차 격파에 실패한 장대 괴물이 몸을 보병들 쪽으로 돌리더니 장대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푸슉!”


특유의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유압장치를 지닌 몸에서 장대가 발사되자


“퍽!”


날아온 장대가 기관총을 잡고 있던 병사 하나의 머리에 박히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뚫고 지나 가버렸다.


“장갑차는 원거리 공격을 하는 개체 위주로 제압사격 하기 바란다.”


장대 괴물이 보병들을 노리자 통신망에 제압 명령이 하달됐다.


“펑펑펑!”


그러자 장갑차들이 괴물 대열의 후미를 향해 기관포를 발사했다. 정확히는 장대 괴물 무리를 향해.


“퍽퍽.”


기관포에 맞은 장대 괴물의 신체가 순식간에 넝마로 변하며 검은 체액을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나자 장대 괴물 뿐 아니라 아예 괴물 대열 후미가 박살이 나 있었다.


여전히 호텔에서는 조금씩 괴물들이 나오며 후미를 채우고는 있었지만 그 기세가 처음과는 다르게 많이 약해져있었다. 그리고 그나마도 보병과 장갑차의 공격에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갈 무렵.


“숭례문 방향에서 대규모 적 개체 출현. 대 장갑차량 개체 포함.”


무선으로 급보가 날아들었다. 병사들이 고개를 돌려보자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 저 멀리 남대문 방향에서 오는 게 보였다.


중간중간 대형 개체가 끼어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예의 산성 푸딩. 그러니까 젤리 같은 산을 방출해 기갑차량을 녹여버리는 거대한 괴물이 저 멀리서 꿈틀거리며 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젠장. 포격을 그렇게 때렸는데 아직도 이렇게 남은거야? 다들 준비해라.”


중사 하나가 휘하의 병사들에게 긴장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플라자 호텔의 괴물을 모두 정리한 병사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총구를 남대문 쪽 도로로 돌렸다.


“펑펑펑!”


장갑차는 벌써 괴물들을 향해 사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아 표도 나지 않았다.


병사들 또한 들고 있던 무기로 사격을 시작했다. 선두의 괴물들이 조금 쓰러질 무렵. 갑자기 병사들의 귀에 살벌한 소리가 들렸다.


“콰르르.”


그것은 공기가 떨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러더니······


“콰과광!”


굉음과 함께 괴물들이 있던 남대문 방향 도로에서 섬광과 화염이 일었다.


“숙여!”


지휘관 하나가 옆의 병사를 보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 누구도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모든 소리가 사라졌으니까. 아니 모든 소리가 의미를 잃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단 하나의 소리를 빼고.


K9 자주포의 일제 사격은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 정도였다. 하지만 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맞는 것이었다.


155미리 이중목적 고폭탄이 공중에서 폭발하며 수십 개의 자탄을 뿌려댔고 자탄들은 지상에 죽음의 비를 내렸다. 폭발에 휘말린 괴물과 건물 그리고 그 외의 이름이 붙은 존재들이 동시에 존재를 상실했다.


하지만 이런 상실에도 불구하고 자주포의 사격은 멈추지 않았다. 괴물들이 있던 자리를 향해 느리지만 꾸준히 그리고 악의를 잔뜩 담아 포탄이 떨어졌다.


포 사격으로 인한 먼지와 소음으로 근처에 있던 병사들은 눈을 뜰 수도 그리고 말을 나눌 수도 없었다.


그저 죽음의 교향곡을 온몸으로 듣고 느끼며 머리에 마구 떠오르는 상념들을 직시할 뿐이었다.



“적 군체 섬멸 확인했습니다.”


“오!”


작전 장교의 보고에 지휘통제실에 있는 황현준 중장이 환호했다.


“아군 측 피해는?”


“프라자 호텔 앞에 전투에서 생긴 사망자 5명 외에는 없답니다.”


황 중장은 보고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황 중장도 대규모 괴물 무리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예의 푸딩 괴물-공식 명칭은 대형 산성 유기체인-이 섞여 있다는 사실이 긴장감을 더했다.


자칫하면 아군의 기계화 전력이 아예 초장부터 박살 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병력 안으로 더 진입시켜.”


황 중장이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황 중장은 자신이 너무 일찍 웃는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사실 그 미소는 꽤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보고된 바에 따르면 방금 섬멸된 괴물 무리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종류의 괴물 개체가 있었다. 특히 그 푸딩까지.


그런 무리를 포격 한 번으로 모두 섬멸한 것이었다. 이것으로 괴물들에게 포격에 저항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과 작전 계획이 올바로 수립되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물론 아직은 방심할 수 없었다. 대규모 무리가 숨어있을 확률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천천히 보병으로 진격하면서 공중 정찰로 발견하지 못한 상대를 포격으로 갉아먹으면서 상대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보병의 희생은 있겠지만 공장이 파괴된 상태에서 괴물들이 포병에 대항하지 못하는 이상 게임은 끝난 거라고 봐도 됐다.


“계속 주시하도록.”


황 중장은 혹시 병력이 방심할까 주의를 환기했지만 이미 그 어조는 가벼웠다. 그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허헉······헉.”


포격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포격 위치가 가까웠던 탓에 병사들은 포격의 여파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시야가 흔들리고 귀가 윙윙거렸다.


잠시 멍하니 있던 병사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포격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말 그대로 폐허나 다름없었다.


무너진 건물과 괴물의 파편들이 하나가 되어 뒹굴고 있었고 거리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있었다. 전차포를 맞고도 멀쩡했던 푸딩 괴물은 흔적도 없는 상태였다.


한마디로 하자면 살아있다고 표현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정형이 부정형으로 바뀐 것이다.


“부우웅.”


그 부정형의 공간으로 가장 먼저 이동을 시작한 것은 장갑차들이었다. 일반차량이라면 포격으로 폐허가 된 도로에서 움직일 수 없었겠지만, 무한궤도를 장착한 K-21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간중간 무너진 건물들이 도로를 막는 경우가 있었지만 다행히 우회할 공간들이 있어 진격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병력이 명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였다.


“철그럭.”


선두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녹슨 쇠붙이처럼 붉은색이 도는 외피를 가진 뭔가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완벽히 일어선 그것은 딱 사람의 형태와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온몸을 감싼 적갈색의 외피는 구식 미늘 갑옷을 연상시켰고 손에 돋아난 기다란 뼈는 마치 장검을 든 것처럼 보였다. 머리의 외피는 마치 기와지붕처럼 돋아있었고 그 사이로 눈으로 추정되는 뭔가가 붉게 이글거렸다.


“뭐야? 저건? 아직 남은 놈이 있었나?”


워낙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탓에 병사들은 그것이 인간이 아님을 한눈에 알아봤다.


“야 쏴버려.”


분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열 맨 앞에 있던 병사들이 총을 들어 녀석을 겨눴다.


“투타다당.”


수십 발의 총알이 괴물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총알이 녀석의 30㎝ 앞쪽 허공에서 막히더니 불꽃을 일으키며 튕겨 나갔다.


“뭐야? 저거?”


총알을 튕겨낸 걸 본 병사들이 놀라 재차 사격을 개시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녀석이 병사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녀석의 속도는 인간의 눈으로는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거기에 직선이 아니라 벽을 타며 지그재그로 달려오는 통에 총을 맞추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100미터의 거리를 좁힌 괴물이 팔에서 돋아난 뼈를 휘두르자 병사 둘의 상체가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타당!”


당황한 병사들이 괴물을 향해 총을 발사했지만 총알은 녀석의 외피까지 닿지도 못했다.


“휘릭!”


녀석이 마치 도수체조라도 하는 것처럼 가벼운 손짓으로 팔을 휘두르자 또다시 몇 명의 병사들이 그 자리에서 잘려나갔다.


“젠장. 떨어져!”


누군가의 외침에 괴물 근처의 병사들이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괴물은 병사들을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촤악!”


칼날이 닿지도 않았는데 5명의 병사가 동시에 절단됐다. 마치 보이지 않는 칼날이 휩쓸고 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발사해!”


“펑펑펑!”


피해가 발생했지만 어쨌든 병사들이 괴물과 떨어지자 장갑차들이 사격을 개시했다.


“팍!”


40미리 기관포탄이 녀석의 가까이서 폭발했다. 기관포탄이 하나씩 적중할 때마다 녀석이 휘청거리는 게 보였다. 소총탄과는 위력이 확실히 달랐다.


“펑펑펑!”


그렇게 수십 발의 기관포탄이 작열하자 녀석의 보이지 않는 방어벽이 무너지더니 결국 몇 발의 기관포탄이 녀석의 가슴에 적중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갑옷 같은 외피가 박살 나며 녀석이 뒤로 날아가 버렸다.


“두두두두.”


“쾅!”


그리고 쓰러진 괴물을 향해 총알과 수류탄 그리고 기관포 사격이 날아들었다.


그 모든 공격을 고스란히 받던 괴물이 힘겹게 몸을 움직이더니 오른손을 들어 장갑차를 가리켰다. 왼손은 이미 날아가 없는 상태.


하지만 병사들과 장갑차는 녀석을 향해 망설임 없이 총을 쏘고 있었다.


“쩡!”


갑자기 녀석의 손에 달려있던 칼날 같은 뼈가 굉음을 내며 발사됐다. 마치 섬광처럼 날아간 뼈가 장갑차의 전면 장갑을 그대로 꿰뚫었다.


그러자 장갑차의 사격이 멈추며 내부에서 쇠 뒤틀리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끼잉!”


뼈에 관통된 장갑차 내부가 순간적으로 부풀어 오르더니 장갑을 뚫고 내부에서 가시처럼 생긴 뼈들이 사방으로 튀어나왔다.


“슈욱!”


뼈들은 주변의 병사들의 몸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장갑차 또한 뚫고 들어갔다.


그 자리에서 가시에 관통당한 수십 명의 병사가 절명하고 장갑차의 사격이 멈췄다.


“철그럭.”


사격이 약해진 틈을 타 괴물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외피 아래에 있는 눈이 빛을 발하자 날아간 팔과 박살 난 외피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오른손의 끝에서 장검처럼 긴 뼈가 다시 돋아났다.


“티딩!”


그리고 또다시 날아온 총알을 튕겨내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사부 저거······”


광화문 근처 KT빌딩 옥상.


괴물과 병사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정훈이 놀란 듯 신음을 흘렸다. 괴물이 싸우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장. 역시 그거였나?”


광현 또한 그 모습을 알아보고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제야 광현은 이 사태의 윤곽이 대략 잡히기 시작했다.


“근데 이 자식들 60년 전에······어떻게 아직도 있지?”


광현이 말하는 그들은 바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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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바이러스와 신사(2) 21.01.08 70 1 15쪽
3 3. 바이러스와 신사(1) 21.01.06 86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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