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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 님의 서재입니다.

독 2.0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강양1
작품등록일 :
2021.01.01 23:02
최근연재일 :
2021.03.15 16:00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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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2
추천수 :
11
글자수 :
207,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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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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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11. 놈의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

DUMMY

“쾅!”


날아오던 포탄 중 일부가 공중에서 폭발하거나 방향이 틀어져 엉뚱한 곳으로 떨어졌다.


놀랍게도 포탄을 요격한 건 뼛조각들이었다.


내공이 실린 뼈 대검이 공중에서 폭발하며 날린 뼛조각이 포탄들을 덮친 것이다. 대부분 바늘 크기 정도의 뼛조각들이었지만 내공이 실린 탓에 그 위력은 포탄의 운동에너지를 훨씬 웃돌았다.


덕분에 중구의 상공 위에서 자주포에서 발사된 포탄을 요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콰과광!”


운 좋게 요격을 피한 포탄들에게 또 다른 뼛조각들이 날아들었다.


“쾅!”


몇 개의 포탄이 공중에서 폭발하고 소수의 포탄이 목표 지점에 떨어졌다. 목표 지점에 있던 공장이 포탄의 파편에 휩쓸려 완전히 박살이 났다.


하지만 위력이 많이 떨어진 탓인지 여전히 남은 공장은 멀쩡히 괴물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척.”


이제는 원래의 모습이 거의 사라진 남대문 위. 무너진 우진각 지붕 위에서 예의 갑주 괴물이 들고 있던 팔을 내렸다.


남대문뿐만이 아니었다. 중구 곳곳의 건물 옥상에서 갑주 괴물들이 날아오는 포탄을 요격하는 중이었다.


내공으로 강화된 갑주 괴물의 감각과 어검술을 이용하자 근거리 포탄 요격이라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할 수 있었다.


“촤라락.”


몇 초가 지났을까? 늘어진 괴물의 팔에서 뼈 대검이 다시 자라났다. 그러자 괴물이 또다시 날아오는 포탄들을 향해 뼈 대검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산 위의 포병 여단이 퍼붓는 포탄의 양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갑주 괴물들이 아무리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숫자가 부족했다.


결국 모든 포탄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쾅!”


그 중 몇 발이 남대문 위에 있던 갑주 괴물의 머리 위에서 폭발했다. 잠시 뒤 폭발로 일어난 먼지가 가라앉자 그곳에서 지붕이 완전 날아가 버린 남대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남대문의 잔해 속에 상체가 사라진 갑주 괴물의 널브러져 있었다. 강력한 호신강기와 생명력에도 불구하고 전차조차 걸레로 만들어버리는 대구경 포탄을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걸레짝이 되어버린 동료의 시체를 조금 떨어진 건물 옥상의 다른 갑주 괴물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주 속의 눈이 조금 붉게 빛나더니 다시 손을 들어 날아오는 포탄을 향해 뼈 대검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이태원 역 4번 출구.


“끼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사람들 몇 명이 도로를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는 차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직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야만 한다는 의식만이 그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쾅!”


도로를 지나던 승용차가 미처 그들 중 하나를 피하지 못하고 부딪히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거리를 통제하고 있던 군인들이 다가왔다. 근처 중구에서 벌어지는 전투로 인해 발생할 소요 사태를 제어하기 위해 투입된 병력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 여자가 갑자기 앞으로 뛰어들었어요.”


군인의 물음에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차에 치여 쓰러진 여자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놀랍게도 그 여자는 차에 치였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움직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얼마나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지 치마 아래로 드러난 다리가 부러져 덜렁거리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젠장. 신호등 인간이잖아. 김 상병아 본부에 연락해. 나머지는 나랑 신호등 인간들 잡으러 간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군인 하나가 저 멀리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더니 주변 군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바로 일어나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탄띠와 소총을 메고 앞서 달려가는 신호등 인간들을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젠장.”


군인은 총과 탄띠를 거칠게 벗어던졌다. 민간인이 옆에 있는데 총과 탄띠를 버리는 건 원래라면 꽤 중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군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상부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신호등 인간들을 막으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총과 탄띠를 버린 군인들은 겨우 신호등 인간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쿠당!”


몸을 날려 그들을 넘어뜨린 군인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신호등 인간들을 몸으로 눌렀다. 신호등 인간들은 군인들을 떼어내려 버둥거렸지만 군인들은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으며 소리쳤다.


“야 아무나 가서 빨리 포승줄 가져와!”


그렇게 주변 군인들이 포승줄을 가지러 간 사이 신호등 인간을 찍어누르던 군인 하나가 옆을 돌아봤다.


“박 병장님 저기.”


그가 뭔가를 보고 놀란 듯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은 박 병장이 옆을 돌아보았다.


“젠장. 뭐야 갑자기?”


이태원 역에서 한강진 역 방향으로 가는 도로 위를 바라본 그는 욕을 내뱉었다. 그곳에는 수십. 아니 백 명은 족히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이곳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풀린 눈과 괴성이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그들 모두 신호등 인간이라는 사실을.



“갑자기 신호등 인간들의 활동량 증가가 감지됐다고 합니다.”


작전 장교의 보고에 화룡 기계화 보병 부대 사단장 황현준 중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나타난 새로운 갑주 타입 괴물에 의해 병력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괴물은 날아오는 포탄까지 요격할 수 있다고 했다. 며칠 전 있었던 포탄이 요격됐다는 보고는 모두 녀석들의 짓이었던 모양이었다.


포탄까지 요격하는 강력한 괴물의 출현에 황 중장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거기에 신호등 인간이 끼어든다면 괴물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전선이 급격히 무너질 수도 있었다.


기필코 막아야 했다.


“신호등 어디 어디 나왔는데?”


“이태원역 부근과 한강진 그리고 금호역 일대에서도 출몰했다고 합니다. 지금 지원 병력이 막고 있는데 워낙 숫자가 많아서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점점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심상치 않답니다.”


황 중장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흘끗 지도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우연이 아니야.’


지금 왜 어떻게 이 시점에 신호등 인간들이 대거 출현했는지 원인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들의 목표는 분명했다. 지도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VIP 연결해.”


황 중장의 말에 통신병 하나가 전화기를 가져다주었다. 황 중장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귀에 댔다. 그리고 잠시 뒤.


“대통령님. 비상상황입니다. 네. 전에 말씀드렸던.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네.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선에서 하겠습니다. 여론전은 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충성.”


전화를 끊은 황 중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명령을 들은 모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태원역에서 녹사평역으로 이어지는 도로 위. 바리케이드를 친 군인들 앞으로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달려들고 있었다.


신호등 인간들이었다. 군인들은 스크럼을 짜 온몸으로 그들을 막으며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앞으로 나가려는 몸짓 외에는 다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밀고 밀리는 힘싸움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군인들의 라인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점점 신호등 인간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명이 넘는 인원이 군인들의 라인으로 쇄도해 들어와 몸으로 밀어대고 있었다.


“진짭니까? 알겠습니다.”


그 라인 뒤에서 군인들을 지휘하고 있던 대위 하나가 무전기로 명령을 받더니 죽을 상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야 보내줘.”


대위의 명령에 신호등 인간을 막던 군인들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보내줍니까?”


군인 하나의 물음에 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들은 군인들이 스크럼을 풀고 신호등 인간들을 보내주었다.


“끼아아악!”


신호등 인간들은 갑자기 길이 열리자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어리둥절했지만,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녹사평역 쪽으로 달려가던 신호등 인간들을 반긴 것은······


“타다당!”


녹사평역에서 경리단길로 가는 모퉁이. 이미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그곳에서 소총과 기관총을 든 군인들이 신호등 인간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신호등 인간은 일종의 환자로 구분하는 것이 현재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 기조였다. 실제로 신호등 인간은 신호등이나 간판 혹은 그 외의 랜드마크 같은 상징에 매달리려는 것 말고는 다른 위해를 가한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그들이 자리를 잡은 곳은 괴물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소로 변하긴 하지만 그들 자체로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괴물들의 라인과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들을 최대한 인도적으로 격리시설에 수용해 보호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퍽!”


5.56미리 탄환이 남자 하나의 이마를 꿰뚫자 피가 터져 나오며 쓰러져버렸다. 쓰러진 남자는 간헐적으로 손발을 떨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쿠에엑!”


그 바로 옆에 있던 여자는 옆 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줄이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괴성을 지르며 가던 길을 달릴 뿐.


하지만 그런 여자의 벌린 입으로 총알이 날아들자 뒤통수가 아예 날아가며 뒤로 꼬꾸라졌다.


“젠장.”


총을 발사하고 있는 군인들도 편한 심정은 아니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이들이 별 위협이 되지 않는 환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물론 신호등 인간이 이쪽으로 진입하게 되면 위험했다. 전장의 균형이 깨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조금만 관점을 바꾸면 민간인 학살이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젠장. 왜 갑자기 몰려 오고 지랄이야! 이 괴물 새끼들.”


그래서 그들을 괴물로 몰아야만 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으니까.



하지만 학살을 동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신호등 인간은 그 이름처럼 신호등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상징이나 이미지 그리고 기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반응해 달라붙었다. 왜 특정 개체가 특정 기호에 집착하는 것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렇기에 신호등 인간들은 신호등이 있는 도로뿐 아니라 이태원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중이었다.


“잡아! 저기로 간다!”


소총을 든 군인 하나가 이태원 해밀턴 호텔 방향의 골목으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다른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전력으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곧 막다른 길에 막히고 말았다


“뭐야? 여기가 아닌가?”


남산과 이어지는 이 골목들은 좁고 복잡했다. 덕분에 이곳으로 뛰어든 몇몇의 신호등 인간을 놓치고 말았다. 신기하게도 신호등 인간들은 이곳의 길을 알고 있는 듯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여긴 삽살개 하나. 목표를 놓쳤다. 목표의 방향은 남산으로 추정된다. 이상.”


“알았다. 삽살개 하나. 라인 지키도록 이상.”


무전을 마친 군인이 다른 군인들을 불러모았다. 여기저기 가파른 비탈을 뛰어다니느라 지친 군인들이 터덜거리는 걸음걸이로 돌아왔다.


벌써 몇 번째 수색인지 몰랐다. 적지만 꾸준한 숫자의 신호등 인간들이 이 지역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덕분에 골목을 뛰어다니며 찾느라 군인들의 체력은 이미 바닥났다.


“젠장. 몇 명 놓쳤지?”


무전기를 들고 있던 군인의 물음에 다른 군인 하나가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그 손가락을 본 무전기가 한숨을 쉬었다.


파악하고 있는 것만 셋. 아마도 더 될 것이었다. 이 복잡한 골목으로 누가 언제 들어왔는지 전부 정확히 체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좆 되는 거 아니야? 모르겠다. 알아서 하겠지. 산에 신호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전기를 든 군인은 불안감에 한숨을 쉬다 남산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저기 있습니다.”


하얏트 호텔 주변 남산 공원. 입구에 매복하고 있던 병사 하나가 신호등 인간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타다당!”


총성이 울리고 몇 발의 총이 명중한 듯 신호등 인간의 몸이 휘청하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신호등 인간의 몸으로 또 다시 총알이 날아들었다.


“타당”


머리가 날아간 신호등 인간이 움직임을 멈췄다.


“썅. 의외로 아래에서 많이 놓치나 본데?”


매복해 있던 군인 하나가 욕을 내뱉었다. 아래에는 신호등 인간을 막기 위한 병력이 꽤 많긴 했지만, 이태원 특유의 복잡한 길을 모두 커버하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벌써 남산 군 지휘소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곳의 병사들이 죽인 수만 해도 10명이 넘었다.


이곳을 지나면 조금만 가면 중구 수복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관들이 모여있는 천막이 있었기 때문에 군인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만약 신호등 인간이 이곳을 통과해 천막 근처에 매달리면 위험했다.


남산의 절반은 괴물들이 움직일 수 있는 라인과 맞닿아 있었으니까. 몇 명의 신호등 인간만 매달려도 괴물들의 라인과 이어져 괴물들이 밀고 들어올 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퍽!”


욕지기를 내뱉은 군인의 머리에 긴 장대가 꽃힌 것이 보였다.


“뭐야?”


놀란 군인들이 주위를 둘러보자 장대 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녀석의 뒤로 다른 괴물들의 모습도 보였다.


“젠장 뚫렸다!”


어느새인가 놓친 신호등 인간이 괴물들의 라인과 이어진 모양이었다.


“저기!”


누군가가 손으로 공원 한구석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숲이 우거진 곳에 신호등 인간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나무의 이름을 적어놓은 팻말 부분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씨발. 빨리 죽여!”


신호등 인간이 죽으면 그 신호등 인간으로 인해 괴물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공간이 사라진다. 그러면 괴물들은 모든 행동을 멈추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으로 도망간다.


제압은 그때 해도 늦지 않았다.


“타다당!”


소총 사격이 신호등 인간을 향해 시작됐고 거기에 맞은 신호등 인간이 툭 소리를 내더니 팻말에서 떨어졌다.


“크어어!”


신호등 인간이 사라지자 괴물들이 다시 자신들의 영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온몸에 쇠침이 잔뜩 박힌 괴물이 쓰러진 신호등 인간 쪽으로 움직였다.


괴물은 방금 나무에서 떨어진 신호등 인간의 몸으로 올라타더니 침을 박고 뭔가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헉!”


쓰러졌던 신호등 인간의 상처가 회복되더니 옆에 있던 나무로 다시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돌아가던 괴물들의 움직임이 우뚝하고 멈추더니 군인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키아악!”


그 와중에 쇠침 괴물들은 입구에 쓰러져 있는 신호등 인간들의 시체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사단장님 라인이 무너졌습니다. 괴물들이 이쪽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남산 공원 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답니다.”


지휘통제실 천막 안. 갑작스러운 급보가 날아들었다. 황 중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남산까지 괴물들이 들어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녔다. 첫째 지휘를 하는 자신들을 노렸다는 것과 두 번째는······


‘포병.’


지휘통제실 근처 남산 능선 쪽에는 화력을 지원해주는 두 개의 포병 여단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금호역에 있었다.


그리고 금호역 주변도 대규모 신호등 인간이 출몰한 곳이었다. 대체 어떻게 눈치챈 것인 지는 모르지만 괴물들은 포병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틀림없었다.


“포병들 신속하게 전선 뒤로 물리고 우리도 퇴각한다. 퇴각 완료될 때까지 이태원 애들한테 신호등 목숨 걸고 막으라고 해.”


다행히 아직 포병이 있는 곳까지 괴물들이 닿은 것은 아니었다. 신속하게 라인 바깥으로 물러나서 사격하면 된다. 현재 사격 중인 포병은 대부분 자주포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신속한 이동이 가능했다.


물론 그 동안 포격 지원은 끊어지겠지만.


‘젠장 이래서 포병을 더 후방으로 두어야 한다고 했는데.’


황 중장은 포병의 위치를 더 후방으로 두고 싶었다. 혹시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전 계획을 살펴본 야당 의원 중 일부가 포병과 적들 사이에 민간인 구역이 있다는 걸 문제 삼았다. 시민들의 머리 위로 포탄이 지나가는 게 말이 되냐며.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때 마침 군에서 총기 오발 사고로 민간인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던지라 여론이 좋지 않았다.


군에서는 해당 지역의 민간인을 대피시킨 후 작전을 진행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부동산 주인들이 대규모 시위를 하는 바람에 그것도 여의치 않게 돼버렸다.


덕분에 포병은 그 장점인 긴 사정거리를 포기하고 전선 코앞에 주둔할 수밖에 없었다.


작전을 진행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아래에서 신호등 막고 있으니까 우린 괴물 활동 범위 바깥으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어서 움직여.”


황 중장의 명령에 다른 군인들이 후다닥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단장님. 이상합니다. 분명 신호등 인간을 막고 있는데 괴물들의 영역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벌써 몇 군데 초소가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뭐라고? 말도 안되는······”


놀란 황 중장이 천막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망원경을 들어 살피자 이미 괴물들이 지휘소 근방까지 치고 들어온 것이 눈에 보였다.


포격으로 인해 많이 죽은 탓인지 괴물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적었다. 아마도 남은 괴물들의 전력을 싹싹 끌어모은 것 같았다.


문제는 중간 중간 갑주를 걸친 것 같은 녀석이 섞여 있는 것이었다. 갑주 괴물들이 엄청난 위력으로 아군을 도륙 내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신호등 인간 몇을 놓쳤다고 이토록 괴물들의 영토가 빠르게 늘어날 리가 없었다. 그런 황 중장의 눈에 쓰러진 신호등 인간 하나가 들어왔다. 막사 근처까지 왔다가 총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 민간인에게 쇠침이 달린 괴물이 뭔가를 주입하자 신호등 인간의 몸이 꿈틀대더니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젠장 저거였군.”


분명 아래에서 신호등 인간을 막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거길 통과해 오는 신호등 인간만으로는 이 정도로 빨리 괴물의 영토가 늘어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괴물들이 죽은 신호등 인간들을 되살려 쓴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쾅!”


바로 그때였다. 남산의 능선 쪽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보자 괴물들에게 둘러싸인 자주포들이 보였다. 그중 몇 대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주포가 당하······전 병력 후퇴한다!”


황 중장이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악을 질렀다.



“하아. 씨발.”


주위를 둘러본 광현이 한숨을 쉬며 욕을 내뱉었다. 주변에는 수십 명의 신호등 인간들이 각자 좋아하는 상징에 붙어 감상을 즐기고 있었다.


기계 괴물들은 그런 신호등 인간들을 보호하려는 듯 남은 군인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거기에 몇몇 공장들은 어느새인가 다시 자라나 작게나마 괴물들을 뱉어내는 곳도 보였다.


“사부 살아나셨군요.”


정훈이 광현을 보며 짧게 입을 열었다. 그 또한 밀려드는 괴물들을 향해 암기를 던지며 맞서 싸우는 중이었다.


광현은 길게 물어보지 않고도 정훈이 살아난 자신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광현은 정훈의 생각대로 해줄 생각이 없었다.


“나 안가. 아니 못가.”


광현의 말에 정훈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광현을 바라보았다.


“전황이 불리한 것 같습니다. 여기 있다 다시 죽으면 무슨 사태가 일어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방금 단 한 번의 죽음으로 엄청난 수의 신호등 인간이 생성되었다. 광현의 죽음이 신호등 인간을 만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큰 파급효과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아마도 죽음이 반복될수록 효과가 강해지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서 도박을 할 생각이야.”


“도박······말입니까?”


광현의 말에 약간 불안함을 느낀 정훈이 묻자 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이 사태에 내가 관련된 건 확실한 거 같아. 그러니 내 자신을 좀 돌아봐야겠어.”


“그게 무슨 말입니까?”


“31년 전 난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었지. 그러다 내공도 다 날아가고 살아있는 게······아니 존재하는 것이 신기한 인간이 되어버렸고. 그 짓을 다시 해보겠다는 말이야.”


“설마······”


“그래. 그 설마다. 넌 도망쳐. 잘못되면 다 죽어. 여기서 네가 죽으면 죽은 네 엄마 볼 면목이 없다.”


광현의 말에 뭐라고 반박하려던 정훈은 그의 단호한 얼굴을 보고 포기했다. 그러더니······


“다들 살고 싶으시면 저를 따라 오십시오.”


근처 군인들을 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암기를 뿌려대며 괴물들 사이로 길을 열기 시작했다.


광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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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타이밍 이쓰 에부리띵 21.01.22 32 0 21쪽
9 9. 러스트 우먼 21.01.20 56 0 19쪽
8 8. 내면의 혐오 21.01.18 36 0 20쪽
7 7. 한없이 녹색에 가까운 정사각형 21.01.15 40 1 16쪽
6 6. 플랜테이션 21.01.13 45 1 22쪽
5 5. 바이러스와 신사(3) 21.01.11 54 1 19쪽
4 4. 바이러스와 신사(2) 21.01.08 64 1 15쪽
3 3. 바이러스와 신사(1) 21.01.06 86 2 19쪽
2 2. 사우스게이트 파티 헬(2) 21.01.04 84 2 18쪽
1 1. 사우스 게이트 파티 헬(1) +2 21.01.01 234 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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