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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 님의 서재입니다.

독 2.0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강양1
작품등록일 :
2021.01.01 23:02
최근연재일 :
2021.03.15 16:00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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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8
추천수 :
11
글자수 :
207,361

작성
21.01.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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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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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5. 바이러스와 신사(3)

DUMMY

그 덩어리는 수많은 기계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니. 완벽한 기계도 아니었다.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온갖 기계의 연결 중간 중간에는 인간의 장기와 닯은 살점 덩어리들이 보였으니까. 살아 펄떡이는 장기에는 파이프들이 수십 개씩 박혀 있었다.


여기저기 이어져 있는 파이프에서는 담즙 같은 것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 기괴한 기계 덩어리의 크기는 대략 반경 30미터 정도 높이는 건물 2층 높이로 형성되어 있었다. 덩어리 그러니까 기계 군체는 한군데가 아니라 도시 여기저기에 만들어져 있었다.


바로 그때 군체의 한 구석. 마치 자궁처럼 생긴 거대한 금속 구조물의 아래에서 뭔가가 기어 나왔다.


“기잉!”


그것은 아까 여자를 공격했던 그 기계 괴물이었다. 깨어난 기게 괴물은 주변에 있는 뭔가를 물고 기계 군체의 한구석으로 이동했다.


구석에는 인간의 입술 확대해 놓은 듯한 구조물이 있었다. 그 입술 내부에는 이빨 대신 톱날이 돌고 있었다.


기계 괴물은 들고 있던 것을 그 입술 안으로 집어넣었다. 괴물이 집어넣은 것은 바로.


절단된 인간의 신체였다.


“이게······뭐야?”


광현이 경악에 차 중얼거렸다. 광현도 살면서 상식 밖의 장면을 많이 본 사람이었지만 이런 종류의 것들은 아니었다.


그저 소소하게 검이나 내공 맨손으로 전차를 때려 부수는 인간 정도였지.


“저걸 보십시오.”


정훈이 손을 들어 군체 근방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1미터 크기의 팔이 잔뜩 달린 기계 괴물이 사람 하나를 들고 군체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아마도 기계 내부로 사람을 넣으려 하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괴물이 들고 있는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몸을 움찔하는 게 보였다.


“잠깐 저거!”


광현은 괴물이 들고 가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광현과 함께 배달일을 하는 민기였다. 광현은 민기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안 됩니다 위험······”


그걸 본 정훈이 말렸지만 이미 달리는 광현의 곁으로 다른 기계 괴물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정훈은 할 수 없이 맨 앞의 기계 괴물을 향해 암기를 던졌다.


“퍼벅!”


암기를 맞은 기계 괴물의 프레임이 박살 나며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렀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녀석 뒤로 대략 10마리 정도의 기계가 광현을 뒤쫓고 있었다. 꽤 빠른 녀석들의 움직임에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군.”


정훈이 옆구리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기괴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한 손을 하늘로 뻗은 후 고개를 똑바로 세웠다. 마치 하늘을 향해 창을 던지는 듯한 자세였다.


“촤악!”


갑자기 정훈의 옷을 찢으며 금속성의 날붙이들이 하늘을 향해 튀어나갔다. 잠깐 시야가 가려질 정도의 엄청난 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대로 기계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가의 비기 만천화우였다.


“퍼버벅!”


면도칼처럼 얇은 날붙이였지만 그 강도는 엄청났다. 단순히 티타늄 합금으로 된 재질 때문만은 아니었다. 절정 고수 수준의 내공이 하나하나 실린 탓에 그 강도와 파괴력은 상상을 불허했다.


날붙이에 난자당한 기계들은 원래의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박살이 났다. 어느 정도 주변이 정리되자 정훈은 광현의 옆으로 따라 붙었다.


그리고 아직 살아남아 광현에게 달려드는 기계를 향해 암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정훈이 기계를 막는 사이 광현은 민기에게 도착했다.


“이야아!”


광현은 달려오는 속도를 실어 민기를 물고 있는 기계를 내려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퍽!”


광현의 손이 기계의 프레임을 뚫고 그대로 들어가 버렸다. 그 상태에서 광현이 프레임을 잡고 힘을 주자 기계가 반으로 뜯어지며 내부의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야 정신 차려!”


광현이 민기의 뺨을 때리며 소리치자 민기가 살짝 눈을 떴다.


“혀······형. 어떻게······”


“어떻게고 지랄이고 빨리 튀자. 젠장. 정훈아 더 볼 거 있냐?”


광현의 물음에 정훈이 고개를 저었다. 정훈도 개고 바이러스와 관련된 문제가 생겼다면 도움이 될까 해서 온 것이지 이런 난리통이 있을 줄 몰랐다.


“길 터라.”


광현이 민기를 둘러업으며 말하자 정훈이 몰려드는 기계들을 향해 암기를 쉴 새 없이 뿌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광현은 뒤도 돌아볼 것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기계들이 박살났을까?


“지이이이잉!”


기계 군체 저편에서 큰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촤라락!”


뭔가 많은 숫자의 것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끼기긱!”


마치 군체 전체가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격렬함에 군체를 이루고 있는 기계들도 붉은 액체를 흘려댔다.


“시발! 튀어 튀어!”


놀란 광현이 소리치며 뛰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뒤로 숫자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기계들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빌딩만큼 큰 녀석도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기계 군체 특유의 비린내가 살짝 옅어졌을 만한 거리가 되었을 때였다.


“왜 안 쫓아오지?”


한참을 달리던 광현이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신기하게도 그들을 지구 끝까지라도 쫓을 기세였던 기계들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라진 건 아니었다. 멀리서 그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기계들은 천천히 광현 쪽을 경계하며 군체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으아 죽을 뻔 했다.”


광현이 뒤를 돌아보더니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일까요? 어제만 해도 멀쩡했던 곳인데 하룻밤 만에 이런 정도의 괴물들이 나타나다니. 그리고 저 기계 군체는······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광현도 정훈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걸 생각해볼 여유는 없었다. 등에 있는 민기의 상태가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으니까.


“야 너 괜찮아? 여기 왜 왔어?”


“오토바이 찾으···쿨럭!.”


갑자기 대답하던 민기가 피를 토했다.


“으아억!”


그러더니 전신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야 얘 왜 이러냐?”


“사부 아까 그 여자가 죽었던 방식 기억하십니까? 아마 이분도 같은 게 몸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살릴 방법 없어? 너 의사잖아!”


광현의 윽박에 당정훈은 당황하지 않고 손가락을 꼿꼿하게 세웠다.


“촹!”


그러자 마치 카드 마술을 하는 것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날카로운 쇳조각이 튀어나왔다. 쇳조각의 끝에는 번들거리는 투명한 액체가 묻어 있었다.


“뭐야? 독암기잖아 그거.”


“마비독이 묻어 있는 겁니다. 농도를 조절하면 마취제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정훈은 민기의 배를 손으로 훑었다. 내공으로 인체의 이상을 알아내는 수법이었다.


“이곳이군요.”


아랫배의 옷을 걷어 올린 정훈이 망설임 없이 암기로 배를 갈랐다. 그러더니 뱃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 뒤 예의 거미 모양의 기계들이 정훈의 손에 잡혀 나왔다. 광현이 기계를 발로 밟으려 하자 하자 정훈이 제지했다.


“가벼운 내공을 주입해 관절을 부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군요. 뱃속에 이런 게 대체 몇 개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젠장. 어떻게든······어어······”


갑자기 말을 하던 광현이 다리가 풀리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까 무리하게 내공을 사용한 탓이었다.


“쿨럭.”


주저앉은 광현의 입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야 나 좀 쉴 게 다 되면 깨워라.”


광현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말하는 광현의 얼굴에는 이미 핏기가 사라진 상태였다.


광현은 뭐라고 더 말 하려다가 힘든지 입만 간신히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쓰러진 광현의 입에서 거의 끊어질 것처럼 약한 숨만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광현의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광현은 환각을 보고 있었다.



황량한 모래땅에 2미터 높이의 말뚝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말뚝에는 벌거벗은 남자 하나가 묶여 신음하는 중이었다.


말뚝은 놀랍게도 전체가 금속으로 만든 것이었다. 남자를 묶은 밧줄 또한 거무튀튀한 광택을 띄는 것이 금속성의 물질로 만든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배가 고픈가?”


각이 잡힌 군복을 입은 군인이 말뚝에 묶인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남자는 며칠을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 입에 댄 적이 없었다.


“그래. 여긴 그런 사람이 많더군.”


말을 마친 군인이 수통을 입으로 가져가 물을 마셨다.


“아 시원하군. 물? 그래. 일단 마시게나.”


군인은 말뚝에 묶인 남자의 입으로 수통을 대줬다.


“꿀꺽꿀꺽.”


고요한 황야에 물 마시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그건 차라리 우렁차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정도였다.


“다 마셨나? 더 있으니. 얼마든지 마시게.”


남자가 물을 다 마시자 군인이 수통 하나를 더 따서 입에 대주었다. 남자는 그 물마저 다 마셨다.


“무림 최고의 고수도 배고픔과 목마름에는 결국 당할 수 없나 보군. 인간적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네.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미 죽었어야 할 테니까. 사막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석 달을 버틸 인간이 어디 있겠나? 대단하군 손 발에 힘줄까지 다 잘라냈는데도 이렇게 버티다니.”


“그래서······무서운······가?”


바로 그때였다.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았던 남자의 입이 열린 것이. 물론 모래를 갈아서 성대를 만들면 나올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그래. 무섭다. 사실 당이 맹과 손을 잡은 근본적인 이유는 공포 때문이었어. 너무 무서워서 동일시 하고 싶었던 거지. 맹이 거부한다면 당은 그 입지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 공포의 한가운데 당신이 있었지.”


군인은 목이 마른 지 수통을 입으로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남자가 다 마셔버린 수통은 비어있었다. 군인은 잠깐 인상을 쓰더니 수통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잘 마시는군. 그거 아나? 여긴 참 거지 같은 땅이야. 농사는커녕 한 끼 밥 먹고 살기도 힘든 곳이지. 그래서 당에선 이곳을 일종의 정치범 수용소로 만들었어. 주민들 대다수가 당에 반역한 자들이지. 당신도 그 중 하나고. 데리고 와라.”


군인의 말에 근처에 있던 다른 군인들이 사람들 몇 명을 데리고 왔다. 모두 굶주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인사하게. 이 지방 주민들이야.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우리가 식량을 뺏었더니 저렇게들 힘들어 보이는구먼. 아 참고로 당신이 방금 마신 물도 원래는 저 사람들 거야. 자 이리 세워.”


주민들이 일렬로 서자 군인은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러더니······


“탕!”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눈알을 향해 총을 쐈다. 총을 맞은 주민 하나가 눈에서 피가 터져 나오더니 절명했다. 주민들이 경악에 차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병사들이 총을 겨누고 있는 탓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반항하는 즉시 지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 꼴이 날 테니까.


“그래. 자신의 처지들을 잘 아는군.”


그런 주민들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 듯 군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군인은 다시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할 말이 있다는 투의 눈빛.


“아 참. 그걸 말 안 했네? 누가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말이야. 당신 제자야.”


“거······짓말!”


군인의 말을 들은 남자가 버럭 화를 냈다. 군인은 그게 마음에 드는 듯 빙그레 웃었다.


“이거 보라고. 이게 뭔지 알지?”


군인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남자의 얼굴로 들이밀었다. 그것은 한문으로 적힌 명령서였다.


그리고 그 명령서에는 남자가 그토록 믿고 아꼈던 제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남자도 그 명령서가 진짜라는 걸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믿기지 않는다는 남자의 시선.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아주 맘에 드는군. 당에 반역한 자의 최후는 마땅히 이렇게 절망적이어야지. 자 그럼. 시작해볼까? 자 너희들 배고프지? 당에서 너희에게 만찬을 내리마. 이 자를 먹어라.”


군인이 말뚝에 묶인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주민들의 눈이 커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말. 그런 주민들을 보고 군인이 약간 역정을 냈다.


“왜? 배고프잖아? 먹어. 먹으라고!”


군인이 주민 중 하나의 머리채를 잡더니 묶여있는 남자의 발 쪽으로 가져갔다.


“씹어. 이 반역자 새끼야! 씹으라고!”


군인이 악을 지르자 주민이 천천히 발가락으로 입을 가져갔다.


“씹어!”


그리고 천천히 발가락을 씹기 시작했다.


“으으······”


그러자 묶여있는 남자의 입에서 신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먹어! 먹으라고! 안 그러면 모두 죽이겠다!”


군인의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남자의 발 쪽으로 다가가 입을 댔다.


“드득.”


조금씩 살이 뜯겨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


남자는 비명을 터뜨렸다.


금세 발가락이 사라지고 뼈가 드러났다. 조금 지나자 발은 씹기 어려운 뼈를 빼고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하얀 뼈 사이를 다 뜯어내지 못한 힘줄과 근육들이 드문드문 채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주민들은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됐는지 별 망설임 없이 남자의 몸을 뜯어 먹고 있었다. 눈에는 무감각에 가까운 광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기껏 초대해 놓고 냄새나는 발만 드리면 예의가 아니지. 말뚝을 내려라.”


군인의 명령에 다른 병사들이 말뚝의 아랫부분을 파내더니 말뚝을 땅에 눕혔다. 그러자 주민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남자의 온몸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끄어억악!”


살점이 뜯겨 나가는 고통에 남자는 갈라지는 비명을 질렀다. 몸에 수박을 숟가락으로 떠놓은 것 같은 자국 생겨났다. 그리고 그 자국의 파인 부분에는 핏물이 고여있었다.


“쿨럭!”


잠시 뒤 남자는 내장에 손상이 갔는지 입으로 피를 토했다. 실제로 신체 기관의 많은 부분이 없어진 상태였다.


“부욱.”


구멍 난 뱃가죽을 누군가 손을 넣어 찢어내자 내장이 흘러내렸다. 주민들은 그 내장을 손으로 집어들었다.


“끄어어.”


덜덜 떠는 남자의 배에는 흘러나온 내장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얼굴은 멀쩡한 편이었다. 산 사람의 눈을 보고 뜯어먹기는 부담이 된 것인지 결손은 주로 얼굴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덕분에 멀쩡한 얼굴과 엉망이 된 몸은 기묘한 부조화를 이루었다.


“이제 다들 배가 부른 모양이로구만. 먹는 속도가 떨어졌어.”


그걸 본 군인이 만족한 듯 말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병사들에게 손짓하자 병사들이 주민들을 남자에게서 떼어냈다. 그리고 인솔해 어디론가 데려갔다.


“꼴이 말도 아니로군. 이래서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나?”


군인은 혀를 차며 남자의 모습을 비웃었다. 먹다 남은 생선처럼 군데군데 뼈와 내장이 드러난 남자의 몸은 인간이라는 단어를 완성하기에는 양적인 측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남자는 아직 살아있었다.


“놀라운 생명력이로군. 하지만 오늘 식사에 초대한 사람들은 이게 다가 아니거든?”


군인의 말이 끝나자 몇 명의 병사가 다른 주민들을 데리고 오는 게 보였다. 주민들의 손에는 망치나 끌 같은 도구들이 들려있었다.


“원래 진짜 고기를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머리를 좋아하지.”


예외 없이 주민들을 협박하는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주민들이 남자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멍하니 힘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알겠나? 잘 먹으려면 손에 있는 도구를 사용하란 말이다.”


군인의 외침에 주민들이 들고 있던 도구를 남자의 머리로 내려쳤다. 남자는 끔찍한 통증과 함께 입 주변이 함몰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온갖 도구들이 남자의 몸을 으깨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자가 충분히 으깨지자 주민들은 남자를 먹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무상하다고 하지만 이 자식은 자기가 이렇게 죽을 거라는 사실은 몰랐겠지?”


황야의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를 보며 군인이 중얼거렸다. 그것은 시체라고 부르기도 참 민망한 것이었다.


남은 것은 척추나 두꺼운 관절 그리고 그에 붙은 약간의 근육과 힘줄이 다였다. 심지어 군인은 척추의 골수까지 모두 빨아먹게 했다.


“그것도 자기가 아끼던 제자한테 죽은 거니 얼마나 억울하겠어? 억울하게 죽으면 원한을 가진다고 하잖아. 그 원한이 나 말고 이 명령을 내린 자기 제자한테 갔으면 좋겠네.”


군인은 들고 있던 명령서를 꺼냈다. 명령서의 직인을 찍는 부분에는 광현(光顯)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또 이거냐?’


광현은 멍하니 환각을 보았다. 사실 ‘보는’ 건 아니었다. 광현은 지금의 환각이 머리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볼' 수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본 장면도 아니었다. 그저 저러리라 추측해본 적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무의식이 조합해 이런 이미지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리고 무의식이 그런 짓을 하는 이유는 사부의 죽음에 자신이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죄의식을 느낀 적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죄의식은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고통을 느낀 적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드는 죄의식과 자신의 이성을 분리해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이 마음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런 무의식에서는 가끔 그 죄의식의 실체를 가감 없이 대면해야 할 때가 있었다.


필터 없이 느껴지는 죄의식을 음미하며 광현은 고통에 빠져들었다.


‘어쩌라고.’


고통에서 최선의 방어법은 이 생각뿐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누구도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어찌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 하지만 그렇게 쉽게 자신을 이해시킬 수 있다면 후회라는 단어가 왜 생겼겠는가?


결국 광현의 의식은 죄의식으로부터 도피를 시작했다. 그의 무의식은 과거의 혹은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잡념. 번뇌. 번뇌를 사그라뜨리기 위한 또 다른 번뇌.’


그렇게 광현의 무의식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정훈의 무허가 병원. 그 병상에 광현이 누워있었다. 그리고 정훈은 광현을 보며 절망에 가까운 신음을 내뱉었다. 광현의 몸은 무리한 내공 운용으로 곧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정훈은 그런 광현의 몸을 자신의 내기를 운용해 다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내부의 움직임에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급기야는······


“뚜둑!”


갑자기 기혈이 역류하는 듯하더니 광현의 허리가 뒤로 꺾이며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안돼!”


도저히 꺾일 수 없을 방향으로 한계를 넘어 꺾였으니 내부가 엉망이 됐으리라. 정훈은 그런 광현의 몸으로 내력을 집중했지만 이미 내부는······아니 내부라고 할 것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띠······”


그리고 다음 순간 심전도 그래프가 일자를 그렸다. 정훈이 곧바로 심장마사지를 실시했지만 광현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하아.”


포기한 정훈이 지친 얼굴로 광현의 얼굴에 시트를 덮었다. 지친 정훈은 옆 침대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창백한 얼굴을 한 민기가 누워있었다.


“둘 다 미안합니다.”


정훈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있다 민기의 시트 또한 끌어올리더니 얼굴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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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단서 21.02.10 24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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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바이러스와 신사(3) 21.01.11 55 1 19쪽
4 4. 바이러스와 신사(2) 21.01.08 64 1 15쪽
3 3. 바이러스와 신사(1) 21.01.06 86 2 19쪽
2 2. 사우스게이트 파티 헬(2) 21.01.04 84 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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