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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 님의 서재입니다.

독 2.0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강양1
작품등록일 :
2021.01.01 23:02
최근연재일 :
2021.03.15 16:00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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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7
추천수 :
11
글자수 :
207,361

작성
21.01.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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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6. 플랜테이션

DUMMY

서울 충정로역 부근 봉쇄선.


종로로 이어지는 대로가 있는 충정로 역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는 아예 철제 바리케이드와 대전차 구조물까지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역 근처 종근당 건물 창문에도 기관총과 중화기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이 씨발. 전쟁 상황이나 마찬가지인데 폭격도 못하고 뭐냐 이게. 저런 것들은 그냥 폭격으로 가루를 내야 하는데.”


참호에서 망원경을 들고 관측을 하던 중사 하나가 옆에 병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서울 중구에 기계 괴물이 나타난 지 5일째. 한국정부의 대응은 말 그대로 혼란스러웠다.


총리 주재의 재난대책기구는 아직 구조작업을 마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진압 작전을 펴지 않았다.


다만 각종 행정 절차와 후처리 문제로 인해 진압 작전을 당장 펼 수 없었기 때문에 구조작업이라는 명목으로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드론과 정찰기를 이용한 조사 결과 중구 내에 생존자는 없다는 것이 정부 내부에서는 거의 정설이었다.


설사 생존자가 있다고 해도 구조대 자력으로 괴물들의 가공할 저항을 뚫고 구조작업을 하는 건 불가능했겠지만.


놀랍게도 괴물들은 현대전 병기를 맞상대할 정도의 아니 그 이상의 전투력이 있었다. 괴물마다 특징이 달랐지만 총알이나 수류탄 정도는 맨몸으로 받아내는 괴물도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일정 수 이상의 개체가 모이면 전차나 장갑차를 상대할 수 있었다.


미확인 정보 중에는 전투기에서 발사된 공대지 미사일을 요격한 괴물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런 괴물을 제압하고 구조작업을 벌인다는 건 사실상 전면적인 진압 작전과 다를 게 없었다.


“부소대장님. 그래도 괴물들이 라인 밖으로는 안 넘어 오지 말입니다.”


중사 옆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병장 하나가 중사를 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저 안에 뭐 금송아지라도 두고 있나? 왜 안 나오지?”


통칭 라인이라고 말하는 그 선은 국방부나 정부를 비롯한 아직 어느 공식문서에도 나오지 않은 단어였다. 하지만 실존하고 있는 선이기도 했다. 며칠간 이곳에서 경계를 선 병사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라인은 현재 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경계선으로 기계 괴물들은 그 라인 밖으로 절대 나오지 않았다. 병력을 뒤쫓다가도 신기하게 라인 근처만 가면 돌아갔다.


라인은 가로로는 대략 충정로역이 있는 곳부터 동대문까지 세로로는 종각에서 남산 일부까지 형성되어 있었다.


정부에서는 아직 쓸데없는 논란을 피하려고 이 라인의 존재를 외부로 알리지 않고 있었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이 정보를 주워듣고 온갖 억측을 하고 있었지만.


하여튼 라인의 존재로 인해 군은 쓸데없는 병력 손실을 줄이며 대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나마 라인이라도 있어 다행이지 말입니다. 나오면 저희 좆 되는 거 아닙니까?”


병장의 말에 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사도 한 번 괴물들과 싸워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평생 처음 눈알이 달린 걸 후회했다.


아주 잠깐의 짧은 교전이었음에도 4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어 나갔다. 나중에 시체를 치우며 봤는데 한 조각으로 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 아주 성기 되는 거지.”


중사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당시에는 국방부가 기계 괴물의 능력과 라인의 존재를 몰랐을 때의 일이었다.


덕분에 소수 병력으로 강행 돌파를 하려다가 큰 낭패를 봤었다. 그게 며칠 전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는 알게 되었다. 바로 자신들이 괴물들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을. 덕분에 군 수뇌부는 신중하게 괴물들을 대했다.


“부소대장님 무전입니다.”


통신병이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


“지금 기계 괴물들이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답니다. 대단위랍니다.”


통신병의 말에 병사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고쳐잡았다.


“저기 보입니다.”


전방을 주시하던 병사 하나가 작은 목소리로 보고 했다. 중사가 망원경을 들어 그곳을 바라보자 기계 괴물 하나가 철조망 근처에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사람 크기의 기계 괴물은 드럼통과 같이 통짜로 된 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몸 옆으로 포크레인의 암을 연상시키는 팔이 붙어있었다.


팔 끝에는 둥근 쇠공이 달려있었다. 다리는 인간의 다리와 같은 모습이었다.


“발사해.”


중사의 말에 기관총사수가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다다다당!”


참호에 거치된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그 소리에 다른 참호들도 일제히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퍼벅!”


총알이 괴물의 온몸이 부수기 시작했다. 퍽 소리를 내며 드럼통을 파고 들어가자 내부에서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 액체에는 내장조각과 비슷한 것이 섞여 있었다. 몸뿐만 아니라 다리도 총알이 적중하자 다리가 아예 부러지며 녀석이 쓰러졌다.


그리고 이동을 못하게 된 녀석의 머리 위로 다시 총알 세례가 쏟아졌다. 괴물은 곧 움직임을 멈췄다.


“뭐야 별거 아니네. 근데 여기까지 왜 왔지?”


평소 라인 밖으로 절대 넘어오는 녀석들이 아니었기에 이러 움직임은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중사의 어투에 수심이 깃들었다. 이것이 앞으로 있을 혼란의 시작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꾸에엑!”


갑자기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멀리서 방금의 포크레인 팔 기계 괴물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다리를 노려라!”


중사가 총을 발사하며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괴물들의 다리에 집중사격을 했고 다리가 박살 난 괴물들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기계 괴물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젠장. 갑자기 뭐야?”


놀란 중사가 외쳤지만, 기계 괴물들은 멈추지 않았다. 포크레인 괴물뿐 아니라 다른 괴물들도 뒤섞여 달려들기 시작했다.


“쾅!”


괴물들이 밀집된 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괴물들의 팔다리가 하늘로 치솟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후방에서 박격포 지원을 한 모양이었다.


괴물과 맞닥뜨린 지금 당연한 조치긴 했지만 이곳에 진을 치고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소리.


“젠장. 다 죽여버려!”


중사가 소리쳤다. 꽤 많은 괴물이 몰려들었지만 아직은 버틸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괴물들의 숫자가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었다.


거기에 처음 보는 종류의 괴물들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게 보였다. 거대한 유압장치처럼 생긴 몸에 긴 장대가 수십 개가 박혀 있는 괴물이나 긴 쇠파이프에 인간의 귀가 달린 괴물도 있었다. 그때였다.


“퍽!”


옆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자 기관총을 쏘던 병사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찾자 근처 건물의 벽에 꽂혀 있는 병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가슴에는 긴 장대가 꽂혀있었다.몸에 장대가 꽂힌 괴물이 발사한 것이었다.


“워 씨발 젠장.”


놀란 중사가 소리를 질렀지만 사실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퍽퍽!”


날아든 장대가 살벌한 소리를 내며 병사들을 뚫고 지나갔다. 총을 쏘던 병사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씨발 이러다가 다 죽게 생겼다. 야 통신병!”


통신병을 부르려던 중사의 눈에 온 몸에 장대가 박혀있는 통신병이 들어왔다. 그것은 꽉 찬 연필꽂이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일은 다음 순간 일어났다.


“쾅!”


갑자기 참호에서 300미터쯤 떨어진 곳에 굉음을 내며 뭔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사는 똑똑히 보았다. 그것이 F-15K 전투기였음을.


“대체······어떻게 전투기를 떨어뜨린 거야?”


놀라고 있는 중사의 옆 참호로 괴물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병사들을 도륙 낸 괴물 몇이 방어선을 넘어 멀어져 가는 걸 보았다.


하지만 괴물들은 멀리 가지는 못했다. K-1A1 전차 몇 대가 괴물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콰득!”


전차는 맨 앞의 괴물을 그대로 밟아버리며 돌진했다. 하지만 괴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차를 향해 몸을 날렸다.


“타다당!”


그런 괴물들을 향해 전차에 설치된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기관총을 맞은 괴물들이 파편을 튀기며 쓰러졌다.


“쾅!”


마지막으로 전차포가 불을 뿜자 전차포에 맞은 장대 괴물의 상반신이 박살나며 부들거렸다.


“좋았어······다 쓸어버려!”


그걸 본 중사 또한 악에 받쳐 기관총을 발사했다. 전차 돌격에 기관총 사격까지.


괴물들은 약간 주춤하며 물러났다. 하지만 괴물들이 완전히 도망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건 진형 변경에 가까웠다.


“젠장······”


작은 괴물들이 뒤로 빠지며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략 3층 건물만 한 크기의 괴물은 온몸이 투명했다. 마치 건물 크기로 만든 푸딩 같은 모습이었다.


“쾅!”


거대한 목표의 출현에 전차들이 주포를 발사했다. 몇 발의 전차포를 얻어맞은 푸딩 괴물의 신체 일부가 날아갔다. 하지만 다른 부분들이 훼손된 신체로 몰려들어 결손을 메꾸기 시작했다.


괴물의 신체는 액체에 가까워 보였다. 마치 물을 떠내도 그 자리를 다른 물이 메꾸는 것처럼.


잠시 뒤 괴물이 전차를 향해 움직였다. 언뜻 보면 둔해 보이는 녀석의 움직임은 꽤 빨랐다. 전차의 돌진 속도 이상이라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전차들은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녀석의 돌진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꿀렁.”


마치 바람에 물이 흔들리는 것을 연상시키며 움직이는 녀석과 부딪힌 전차가 뒤로 스르르 밀려났다. 그 속도는 빠르지 않았고 전차 또한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녀석과 닿은 전차의 장갑판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차가 완벽히 녹아 액체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2분. 전차가 녹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붉은 색 액체가 흘러나왔는데 아마도 내부 승무원들의 것으로 추정됐다.


다른 전차들이 뒤로 빠지며 주포를 연신 쏘아댔지만, 녀석의 돌진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 기세를 타고 다른 괴물들도 밀려들었다.


“좆됐네.”


기관총을 쏘던 중사의 곁으로 괴물들이 다시 밀려들고 있었다. 기관총을 미친듯이 갈겨댔지만 괴물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애초에 줄어든 것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바로 그때였다.


“찰그락.”


기관총에서 쇠 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총성이 멈췄다. 아마도 기관 고장을 일으킨 것 같았다.


그럴만도 했다. 이미 총열이 과열된 상태에서 너무나도 많은 탄을 발사했으니까. 예비총열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시이발.”


중사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기관총의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뗐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 씨발 존나 미친 거 같네.”


한숨을 쉬는 중사에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이 세상의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악몽 혹은 미친 화가의 그림에서나 나와야 할 모습의 괴물들.


거기에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었을 고깃덩어리들. 그 위로 쏟아지는 선명한 태양의 광선들. 그건 흔히 종교에서 말하는 종말의 모습을 4K UHD화면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 중사의 코앞으로 기꺼이 그를 박살 내줄 충분한 적의를 가진 괴물들이 새벽 배송 택배기사처럼 신속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 열의를 똑바로 볼 수 없어 중사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중사의 마지막은 오지 않았다.


갑자기 괴물들이 후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바다가 10초만에 썰물이 되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중사는 그 압도적인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뭐지?”


근처에서 후퇴하고 있는 전차 상부에 걸쳐진 잔해······중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서울 강남역. 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곳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많은 종류의 복잡성을 즉시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수많은 목적으로 오가는 사람들. 그들을 다양한 목적으로 이끄는 시스템들이 밀착된 일종의 생태계라고 말할 수 있을 공간.


부글부글 끓는 욕망 위에 만들어진 이 시스템의 공간에 지금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뭐지? 수리하는 거야?”


길을 건너던 여자가 도로 위에 있는 신호등을 보더니 깜짝 놀라 외쳤다. 신호등의 불빛이 있는 곳에 몇 명의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꽃에 달라붙은 구더기나 벌레처럼 손과 발로 신호등을 감싸 떨어지지 않게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추측처럼 수리하는 건 아닌 듯 보였다. 수리기사들이라면 응당 들고 있어야 할 공구나 안전장비 같은 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 같은데?”


그걸 알아본 회사원 하나가 신호등 위의 사람들을 보더니 의심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길 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신호등 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신호등 위에 사람들은 서로 신호등 앞쪽을 차지하기 위해 조금씩 꿈틀거리며 서로를 밀치고 있었다.


“어······어······”


불안한 그들의 행동에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무렵.


“휘릭!”


신호등 위의 거듭된 몸싸움으로 자세가 틀어진 사람 하나가 신호등을 잡고 있던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3미터 아래의 지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퍽!”


바닥과 사람이 추락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마음이 약했던 사람들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떨어진 자의 불운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빠앙!”


도로 위에 떨어져 꿈틀거리는 사람을 달려오던 차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짓밟아버린 것이다. 차가 밟고 지나가자 그는 움직임이 완전히 멈춰버렸다.


하지만 아래서 사람이 죽어 나가건 말 건 위는 여전히 신호등 끝을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이 한창이었다. 그렇게 몇 명이 더 떨어졌다.


“대체 이게 무슨 난리람? 안 그래도 강북에서 괴물 나타나서 심란한데.”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던 시민 하나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며칠 전 남대문 시장에서 일어났던 일 때문에 서울은 이미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중구는 알 수 없는 괴물들로 뒤덮여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고. 덕분에 사람들의 불안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거기에 이런 알 수 없는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까지 보게 되니 사람들은 자연히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거나 말거나 신호등 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리를 가지고 싸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만져질 것처럼 선명한 불안의 색을 집어삼키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신호등? 무슨 신호등?”


인터넷 신문 용광 일보의 편집실. 막내 기자 김영의 보고에 편집장 박순선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그러자 김영이 창문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무슨 매미도 아니고 신호등에 사람이······어머!”


놀랍게도 편집실 밖 교차로의 신호등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평범한 정장 차림의 남자 둘이었다. 그대로 회사로 출근해도 될 것 같은.


“저 사람들 뭐야?”


“지금 여기뿐만 아니라 강남이고 어디고 신호등에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속출 하고 있다는데요?”


김영의 보고에 박순선은 미간을 좁히며 잠시 생각했다.


“야! 막내! 당장 저 사람들 신상 털어와! 누구고 어디 살고 대체 왜 저러는지! 네 선배들은 다 어디 갔어? 평소에는 나가지도 않고 전화로만 취재하더니 오늘은 코빼기도 안 보이냐!”


박순선이 광분해 외쳤다. 김영은 박순선이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알고 있었다. 며칠 전 남대문 사태 때 메이저 신문들에게 주요기사를 모조리 털렸기 때문이다.


용광 일보는 아무래도 작은 언론사다 보니 메이저 신문들에 비해 취재력이 딸렸고 당연히 특종을 터뜨리는 빈도도 낮았다.


하지만 박순선은 자존심이 강한 인간이었고 그런 사실을 기자들의 발품으로 어떻게든 이겨보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남대문 사건 같은 큰 일에서 메이저 신문들에게 특종을 줄줄이 뺏기자 특유의 승부 근성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숭부 근성에 남대문 사건 이후로 기자들은 죽어나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편집장님 다녀오겠습니다!”


김영은 박순선의 시야에 더 머물러 봐야 좋을 거 없다는 걸 알았기에 신호등 위의 사람들을 취재한다는 핑계로 짐을 챙겨 편집실에서 도망쳐 나왔다.


하지만 막상 나오자 막막했다. 지금 신호등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무슨 수로 취재한단 말인가?


‘나도 올라가야 하나?’


신호등 앞에 서서 편집실 쪽을 바라보자 박순선이 눈을 부라리며 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든 하라는 뜻.


김영은 한숨을 쉬며 신호등 쪽으로 걸어갔다.


“저기요. 저 여기 용광 일보 기자인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김영은 일단 신호등에 매달린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남자는 김영을 돌아보지도 않고 오로지 신호등의 불빛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선은 마치 곤충의 눈처럼 감정이 없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아니. 저기요. 이야기 좀 하자니까요.”


김영은 섬뜩했지만 일단 편집장이 보고 있기에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역시 남자는 묵묵부답이었다.


“저기요. 저 무시하지 마세요. 대체 뭘 하길래······”


계속된 무시에 약간 열이 받은 김영이 둘 중 지면에서 그나마 가깝게 매달려 있는 남자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남자는 겨우 손이 닿을 정도의 높이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을 해도 남자는 묵묵부답. 대신······


“툭.”


남자의 바지에서 뭔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 죄송해요.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김영은 놀라며 떨어진 것을 주웠다. 그것은 꽤 오래 썼는지 여기저기 손때가 묻은 가죽 지갑이었다.


김영은 지갑을 돌려주려다가 손을 멈칫했다. 그리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지갑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것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남자의 관심은 오로지 머리 위에 있는 신호등. 그것뿐이었다.


“저기요. 저기요.”


김영은 시험 삼아 다시 남자를 불렀다. 하지만 역시나 답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명의 사람이 김영과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지갑을 가질 수는 없었다. 김영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아니. 대체 뭐하시는 분이기에 신호등에 매달려 계십니까? 제가 가족들에게 연락이라도······신분증이 어디 있나?”


김영은 능글맞게 말하더니 남자의 지갑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민등록증이 떡 하고 지갑에 꽂혀있는 게 보였다.


“박득구 씨. 어흠 이거 경찰에 신고해야겠네.”


김영은 휴대폰을 들어 신고하는 척하며 남자의 주민등록증을 사진으로 찍었다. 앞면뿐 아니라 주소가 적혀 있는 뒷면까지.


“아 네 경찰이죠. 여기 용광 일보 사옥 앞인데요. 누가 신호등에 매달려서···”


그후 대강 거짓말로 신고하는 척하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물론 지갑은 남자의 바지에 다시 넣어주었다.


‘인터뷰가 안 되길래 대신 주소 땄습니다. 여기 상황은 다른 기자들한테 좀 봐달라 해주세요. 전 취재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박순선에게 문자를 남긴 후 부리나케 지하철역으로 뛰었다.



“여긴가?”


주민등록증에 나온 주소 근처에 도착한 김영이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지도에 따르면 남자의 주소는 신림동의 한 빌라였다.


“다행히 중구는 아니네. ”


남자의 주소가 중구였다면 절대로 취재를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이미 그곳은 정체불명의 괴물로 출입이 통제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편집장은 어떻게든 들어가 보려고 했었지만. 실제로 군과 서울 시청에 취재상 출입 절차를 알아보기까지 했다.


다행히 둘 다 불허하는 바람에 기자들 누구도 괴물에게 죽는 일은 겪지 않았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다들 죽어가고 있었다.


“뭐 지금 같아선 그냥 괴물한테 먹히는 게 더 나을지도.”


자조 섞인 농담을 하는 김영 앞에 남자가 살던 빌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그때였다.


“뭐야 저 사람은?”


빌라 앞 화단에 어떤 남자가 걸터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말총머리를 하고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고 썬글라스까지 썼다.


‘포스 쩌는데?’


김영은 남자에게 잠시 눈길을 주며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빌라의 현관은 평범했다.


현관문 안으로 우편함이 있었고 계단 입구에는 인조잔디로 만든 발 깔개가 있었다.


“302호였나? 허탕이면 어쩌지?”


민증에 나온 주소라고 해서 꼭 맞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등록된 주소와 사는 곳이 다른 사람도 많으니까. 하지만 일단 확인은 해봐야 했다.


“그나저나 뭐라고 물어보지?”


분명 신호등에 매달린 사람의 가족은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거기에 대고 상황을 설명하고 원인까지 알아 내는 건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만 했다. 뭐라도 가져가야 편집장에게 밥버러지 소리를 듣지 않을 테니까.


“딩동.”


김영이 초인종의 버튼을 눌렀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뭐야? 아무도 없나?”


몇 번 더 초인종을 눌렀지만 여전히 기척이 없다.


“여보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용광 일보에서 취재 나왔습니다.”


마지못해 김영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두드려도 대답이 없다. 대신······


“끼이익!”


현관문에서 뭔가가 풀리는 느낌이 나며 살짝 문이 열렸다.


“엥 뭐야? 문이 열려있었어?”


뜻밖의 사태에 김영은 잠시 고민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복도.


‘잠깐만 보자. 잠깐 보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내가 뭘 훔치는 것도 아니잖아?’


치졸한 자기합리화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을 잊지 않고 김영은 문을 열었다. 어차피 여는 거 확 열어도 될 것이건만 찔리는 구석이 있어 살살 문을 열었다.


“헉······이게 뭐야?”


그리고 문을 연 김영은 놀라서 뒤로 자빠질 지경이 되었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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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 옛날일 21.02.19 23 0 15쪽
21 21. 집 21.02.15 27 0 13쪽
20 20. 독의 요람 21.02.12 24 0 14쪽
19 19. 단서 21.02.10 28 0 15쪽
18 18. 공장의 내면 21.02.08 33 0 16쪽
17 17. 웰컴 투 동토의 사슬 21.02.05 21 0 14쪽
16 16. 괴물의 바다 21.02.03 22 0 14쪽
15 15. 재생 21.02.01 25 0 17쪽
14 14. 발병 21.01.29 38 0 17쪽
13 13. 굿바이 아이스크림 21.01.27 53 0 16쪽
12 12. 니르바나 21.01.25 28 0 13쪽
11 11. 놈의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 21.01.23 30 0 21쪽
10 10. 타이밍 이쓰 에부리띵 21.01.22 33 0 21쪽
9 9. 러스트 우먼 21.01.20 59 0 19쪽
8 8. 내면의 혐오 21.01.18 38 0 20쪽
7 7. 한없이 녹색에 가까운 정사각형 21.01.15 44 1 16쪽
» 6. 플랜테이션 21.01.13 49 1 22쪽
5 5. 바이러스와 신사(3) 21.01.11 58 1 19쪽
4 4. 바이러스와 신사(2) 21.01.08 70 1 15쪽
3 3. 바이러스와 신사(1) 21.01.06 86 2 19쪽
2 2. 사우스게이트 파티 헬(2) 21.01.04 85 2 18쪽
1 1. 사우스 게이트 파티 헬(1) +2 21.01.01 243 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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