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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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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최근연재일 :
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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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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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는 없던 일 (6)

DUMMY

57.


전력 보급이 시원찮은 전등처럼 머릿속이 제멋대로 껌뻑이는 기분이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총량을 초과했을까. 한지혁은 다가오던 촉수를 본능적으로 쳐내면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일로이, 내가 방금 잘못 들은 건 아니지?’

-똑똑히 들었느니라. 그녀는 너를 보고 있었어.

‘아니, 정확히는 전생인 너겠지.’


주마등을 통해 샬롯의 과거를 읽었다는 사실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주마등 속에서 과거의 시점에 존재하는 인물이 말을 걸어온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심지어 아일로이를 언급했어. 마치 아일로이가 살아있다고 확신이라도 하듯이.’


생각은 복잡해졌다.

애초에 그녀는 정말 ‘과거’의 인물인 걸까? 그가 본 게 샬롯의 주마등이 맞을까?

처음부터 스탈렌의 마법에 속아 거짓된 영상을 보고 그리 믿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건 아닐 거야.’


명백히 스킬을 들여다보면 주마등의 설명이 적혀 있다. 한지혁은 샬롯의 과거를 들여다본 게 맞다.

마찬가지로 연신 생각을 이어나가던 아일로이는 나지막이 혀를 차며 말했다.


-어쩌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무슨 소리야?’

-그녀는 성좌다.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하여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버린 존재지.

‘그래서?’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 될 거란 얘기다. 시공간 따위도 사실 의미가 없는 걸지도 모르니라.


아일로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생각해보거라. 전생인 내가 당장 현생에 개입하는 것도 그렇고, 네놈의 회귀 또한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이 무엇일지.


한지혁이 가진 가장 큰 특이점은, 전생에 90층을 올라 ‘검의 별’이 되었다는 것이다.


‘초월자란 건가······.’


아일로이의 말에 어느 정도 납득할 수는 있었다.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인간이 아닌 초월자라면 과거의 시점에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고, 스킬 속 과거 시점에서 현재 시점으로 말을 걸어도 특별한 게 아닌 거야.’


그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변함없이 오롯이 존재하는 ‘별’이니까.


“그게 뭐야. 완전 사기잖아······.”


한지혁은 미간을 구기며 다가오는 촉수를 피해 다시금 칠성보를 발동했다.

어지럽게 찍히던 발걸음이 현란해질수록 그의 몸은 더더욱 가벼워지고 있었다.

한지혁이 혀를 차며 말했다.


“확실한 건 하나로군.”


주마등을 살펴봐도 스탈렌이 무명에게 개입한 이유에 대해선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인과는 절대적이다, 그런 뜬구름을 잡는 소리만을 흘리곤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는 말했다.


‘96층에서 기다린다고 했지.’


그의 전생, 회귀, 그리고 마치 아일로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굴었던 스탈렌의 태도와 관련된 모든 답은 아마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


그리고 새삼스럽지도 않게 당장 확실한 것이 하나 더 그의 앞에 드리워졌다.


“······뭐든 이놈부터 어찌 해야 하는데.”


미간을 구기며 몇 번이고 검을 휘둘러봤지만 무명에겐 그 어떤 대미지도 들어가지 않았다.

칼로 물을 베는 기분이다. 베어도, 베어도, 아무리 베어도 녀석은 원상 복구될 뿐이다.


-본질을 베어야 한다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하는 건데.’


티격태격하며 말을 몇 번이고 교환해도 답을 찾기란 참으로 모호했다.

솔직히 주마등을 몇 번을 더 훑어본다고 샬롯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과거의 일부를 들여다본다고 그 사람의 전부를 이해할 수 있을 리는 없잖아.’


아일로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당연하니라. 조각으로 전체를 판단한다는 게 가능할 리가 없잖느냐.

‘그럼 뭔데? 본질은 어떻게 보는 건데?’

-본질이란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니라.


답답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한지혁의 검이 거칠게 휘둘러졌다.

촉수 두어 개가 동시에 잘려나갔지만 네 개의 촉수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촉수의 움직임은 더더욱 첨예해졌다.

단순히 녀석이 더욱 강해지고 속도가 빨라졌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내가 느려지고 있다.’


무명의 체력은 무한이라도 되는 듯 처음과 같았고, 한지혁은 갈수록 지쳐가는 형국이다.

시간을 끌수록 결국 상처는 늘어나고 패배를 겪게 될 건 한지혁이 자명했다.


-본질을 베어라. 그것만이 답이다.


한편 아일로이의 재촉 말고도 예기치 못한 또 다른 소음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투콰앙! 투쾅! 투타타타!


폭음이 번지면서 한지혁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쪽으로 향했다.

일련의 무리가 촉수와 전투를 벌이면서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는 멀었지만 그들이 누군지는 모를 수가 없었다.

한지혁은 대번에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고, 공대장님?”


일찍이 뒤를 돌아보았다가 무명을 마주하고 전투를 시작한 일부 헌터들.

그중 김우영은 연신 총격을 가하면서 황망한 눈으로 한지혁을 보고는 놀란 눈을 떴다.

한지혁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돌아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는 공대장님은요.”

“전 일부러 돌아본 거고요.”


스거어억!


일단 그들과 합류하니 상황은 한결 나아졌다.

지난 며칠을 함께 손발을 맞춰온 덕에 팀워크도 나쁘지 않았다.

김우영은 쌍권총으로 사방을 쏘아내며 한지혁의 곁에 다가왔다.


“가장 큰 문제는 놈의 재생력입니다. 쏘아도, 찔러도, 터트려도 재생할 뿐입니다.”

“······정확히는 재생하는 게 아닙니다. 대미지를 아예 받지 않을 뿐인 거죠.”

“공대장님은 뭔가 아는 눈치로군요.”


김우영의 말에 다른 헌터들도 희망으로 가득 찬 눈으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한지혁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녀석의 본질을 노려야 합니다. 녀석을 쓰러트리려면 본질을 베어야만 해요.”

“본질이라니······ 그게 무슨?”

“제가 아는 방법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일행은 원형으로 서로의 등을 맞대며 다가오는 촉수를 힘겹게 배척해나갔다.

당장 김우영이나 다른 헌터들도 한지혁이 말한 게 무얼 뜻하는 모르는 눈치였다.

다만 여태껏 한지혁이 이뤄낸 업적이 있었으니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김우영은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무명을 향해 내던지더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본질이란 게 뭘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놈에 대해 알아낸 것부터 공유하겠습니다.”


몇 개의 수류탄을 더 무명을 향해 내던지더니, 촉수의 움직임은 아주 잠깐 더뎌졌다.

김우영은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쌍권총을 꺼내어 연신 사격을 가하며 말했다.


“무명, 30층 보스 몬스터, 촉수를 활용한 공격을 주로 하며 그 덩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음. 안개도 녀석의 능력으로 추측. 다만 그 어떤 공격을 맞든 곧바로 재생하는······.”


김우영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정정하겠습니다. 놈은 어떤 유효 타격도 입질 않습니다. 물리 공격도, 속성 공격도 소용이 없음. 공대장님의 말대로라면 공략법은 본질을 노리는 것입니다.”

“······흠.”

“아, 녀석의 촉수를 3cm가량 잘라내면 0.2초 정도 경직되는 특징도 있습니다.”


이후로도 김우영은 그가 알아낸 사소한 정보까지 모조리 공유해냈다.

그 내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세세하고 감탄할 정도로 방대한 양이었다.


“······이 짧은 시간동안 그 많은 걸 알아낸 겁니까.”

“기본입니다. 이래봬도 전 이걸로 밥 먹고 사는걸요.”

“과연······.”

“그나저나 도움이 되었을까요?”


한지혁은 잠시 김우영을 흘깃 살펴보더니 이내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네. 충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빈 말이 아니었다. 김우영이 내리 설명한 보고를 들은 이후에는, 무명란 존재에 대해 아예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들에겐 그리 비춰지는가.’


한지혁이 생각하는 무명은 전생의 세계를 부쉈던 재앙이자, 그의 미래를 파괴했던 흉물스런 악마였다.

하지만 다른 헌터들의 눈에는 녀석은 고작 30층의 보스 몬스터였고, 골치 아픈 괴물에 불과했다.

한지혁은 그제야 깨달았다.


‘난 본질도 아닌, 편견을 본 거야.’


녀석의 본질은 과거도, 미래의 모습을 비추어 살펴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정확히는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두 다 놈의 본질이다.’


호흡을 가다듬은 한지혁이 섬전같이 달려들어 무명의 촉수를 베어낸 건 그때였다.


스거어어억!


그리고 놀랍지만 이번엔 그 공격이 효과가 있었는지 손끝으로 묵직한 감각이 있었다.

놈도 방금 공격에 대미지를 입었는지 처음으로 몸을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크아아아악!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너무 옅어. 전력으로 휘둘렀는데 고작 스친 것에 불과해.’


분명 아일로이의 말마따나 본질을 꿰뚫고, 공격을 가하는 건 성공한 듯했다.

근데 어째서 이리 공격이 얕을까.


-검이 무딘 것이다.

‘뭐?’

-본질을 꿰뚫어본다는 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니라. 진짜 어려운 건 그 다음이지.

‘그 다음······?’


아일로이는 본질을 베어내려면 수십 년의 훈련으로 그 감각을 익혀야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본질을 본다고 누구나 그걸 베어낼 수 있을 리는 없다는 얘기였다.


‘그럼 결국 난 못하는 거잖아!’


노성을 터트리는 사이 무명으로부터 막대한 기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종전에 한 차례 타격을 입었던 게 녀석의 화를 돋우기라도 한 걸까. 점차 커져가는 기운은 주변의 촉수로 바로 영향을 미쳤다.

크기도 두 배는 커진 것들이 속도는 세 배나 빨라졌다. 당연히 대응하는 이쪽의 입장에선 곤욕일 수밖에 없었다.


“고, 공대장님!”

“크으윽!”

“젠장, 여기서 죽을 수는······!”


결국 한 명의 복부가 꿰뚫리면서 그대로 촉수에 이끌려 무명에게 사로잡히고야 말았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 형체는 불투명한 녀석의 몸속으로 들어가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대로는 전멸입니다!”


한지혁은 이를 악물고 검을 꽉 쥐었다. 김우영은 직감으로 끝을 예감이라도 했는지 질색한 얼굴로 총을 쏘아내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직감 따위는 믿을 게 못 돼!”


그는 한지혁을 바라보았다.


“공대장님! 공대장니이이임!”


단 한 번, 그의 직감을 무시하고 모두를 구해냈던 한지혁이라는 존재.

모든 상황이 절망적으로 끝을 바라보는 가운데에서도 김우영은 그 희망을 놓질 않았다.

그리고 이는 한지혁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해야 된다.’


이러려고 회귀한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끝나려고 그 고생을 해온 게 아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기 위해서 여기까지 돌아온 게 아니다.


‘하나만 생각하자.’


벤다. 적을 벤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명을 여기서 베어 죽여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의문이 자라나는 순간 그의 머릿속은 다시 대번에 복잡해지고 의심에 사로잡히는 듯했다.

그때 아일로이가 혀를 찼다.


-네 녀석은 가끔은 스스로가 누군지를 잊는구나.

‘······누구.’


말을 더 이을 것도 없었다. 한심하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는 아일로이를 보고도 모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난······ 검성 아일로이.’


기억은 나질 않겠지만 그의 오랜 과거엔 분명 본질이란 걸 벨 수 있었다.

그의 몸은 전혀 알 수 없는 감각이겠지만 그의 영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내가 베지 못할 건 없다.’


홀연히 빼어든 검이 다가오는 촉수를 향해 천천히 휘둘러지고 있었다.


칠성검, 일 초식.

수평 가르기.


마치 세계가 양분되듯, 촉수부터 시작하여 무명의 본체까지 모조리 수평으로 갈라졌다.

그 반향은 실로 대단했다. 아니 터무니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고작 생각을 바꾼 것만으로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으니까.


[30층─히든의 주인, ‘무명’를 처치했습니다.]


일격에 놈을 베어낸 건 물론, 안개를 비롯하여 층의 공간 자체를 베어낸 것이다.

잘려나간 공간 너머로 터무니없지만 31층의 풍경이 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 공대장님?”


그대로 의식을 잃은 한지혁은 옆으로 툭 쓰러졌고, 황망히 달려온 김우영이 그의 몸을 겨우 부축할 수 있었다.


“공대장님! 공대장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31층에 있던 다른 헌터들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즈음.


-바로 그것이다.


아일로이는 쓰러진 한지혁을 내려다보며 대견하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그런 존재이니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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