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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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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최근연재일 :
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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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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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예정에는 없던 일 (3)

DUMMY

54.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건 지극히 단순합니다. 단 하나의 규칙만 지키면 돼요.”


케로베로스의 사체를 뒤로하고 한지혁은 거대한 문 앞으로 헌터들을 도열시켰다. 망자의 미궁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이 문을 통과하기에 앞서, 반드시 알려줘야 할 내용이 있었다.

그 내용은 지극히 단순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것.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은 오직 그뿐입니다.”

“그냥 걷기만 하면 된다고요?”

“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절대 신경쓰지 않고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아니······ 고작 그것만으로 30층 보스 몬스터 공략이 스킵이 된다고요.”


누군가의 의문에 한지혁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그게 고작일까요.”

“네?”

“돌아보면 모든 게 끝입니다. 당신이란 존재는 그대로 미궁에 사로잡히게 될 테니까.”


김우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뭔가 많이 짬뽕처럼 섞인 듯한 느낌이네요.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르디케의 이야기 같군요.”

“그리 생각하면 편할 겁니다. 그쪽 세계관에서도 명계를 빠져나가는 규칙은 같잖아요.”

“뒤를 돌아보면 다시 명계에 끌려간다는 설정이었죠?”


한지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슷합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돌아보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일행을 한 차례 돌아본 한지혁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그럼, 진입합니다.”


*


끼기이익!


천천히 열린 문 너머로 초기에 망자의 미궁과도 같은 안개가 가득한 풍경이 보였다.

한치 앞도 안 보여서 전혀 어디로 나아가는지조차 알아보기 힘든 그런 공간. 그 중앙에 덩그러니 난간조차 없는 계단 하나가 일직선으로 놓여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지금부터 돌아보면 안 된다는 거죠?”

“네.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가세요.”

“언제까지요?”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네? 왜 그걸······.”

“대신 무얼 보든 한 번만 더 생각해보세요. 정말 확신할 수 있는 건지.”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에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을 걷던 인기척도 한 순간에 지워졌다.

한지혁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시작됐군.’


그가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간접 체험해본 공간.

망자의 미궁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통로였다.


‘실제로 이곳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늘어난다. 심지어 공략을 아는 사람들까지도 잡아먹어.’


한지혁이 저들에게 쉽게 끝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여긴 그들의 생각보다도 훨씬 영악한 곳이니까.


“마, 마스터어어어! 저, 저, 으아아!”

“으아아아! 아저씨!”


뒤쪽에서부터 비명이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김요한이 괴성을 질렀고 차유라는 비명을 질렀다. 다른 헌터들도 각자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면서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투콰아아앙! 투쾅!


전투 소리가 터져 나오고 코끝으로 비릿한 혈향이 감돌았다. 오감을 뒤흔들면서 다가오는 충격에 한지혁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목덜미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현실 감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아직 견딜 만해.’


물론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로 얼마나 더 걸었을까. 비명은 씻은 듯이 지워졌고 주변은 다시 고요해졌다.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해지니 그의 걸음만이 유일한 소음이 되었다. 한지혁은 그러한 망망대해를 그로부터 얼마나 더 걸었는지 모른다.

1시간? 2시간? 10시간?

시간의 흐름조차 느낄 수 없었다. 헌터폰을 꺼내어 본들 그 시간이 정확하다는 보장도 못하니까.

물론 한지혁만은 이 순간 특혜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걸어가거라. 동료들은 모두 무사하니까.

‘······알았어.’


놀랍게도 아일로이는 온갖 현혹을 모조리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련이 부족한 것이니라. 무릇 검사란 몸을 비롯하여 마음의 단련도 충분히 해내야 하는 법.

‘넌 이럴 때에도 잔소리를 하고 싶냐.’

-누가 잔소리를 하고 싶다 하더냐. 네 녀석 꼴이 하도 답답해서 말이 나오는 게 아니더냐.

‘······.’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다. 네 녀석은 멘탈이 너무 약해. 널 한 번 죽였던 놈이면 복수할 생각부터 해야지, 당장 쫄기부터 하면······.


어쩌면 그냥 현혹에 당하고 있는 게 좀 더 나을지도.


-지금 뭐라 했느냐?

‘아니야.’


한지혁은 짧게 혀를 차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서서히 걷혀가고 저 너머로 대쪽만한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출구로 보였다.


‘진짜 악랄하다니까.’


거두절미하고 출구를 지나치자 주변의 풍경은 정말 31층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들을 발견하고 환호하는 헌터들이나, 한쪽에 놓인 포탈까지 전부 현실감이 넘쳤다.


‘근데 이게 전부 조작이라는 거지.’


한지혁은 혀를 차면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 누가 말을 걸더라도 한지혁은 대꾸조차 하질 않고 나아갔다.


-결국 3명이 돌아보았느니라.

‘쯧,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물론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진짜로 출구를 통과한 것 같은 정교한 조작이었으니까.

잠에서 깨는 꿈을 꾼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잔 건지 깬 건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어지간해선 속기 쉬운 일이다.


‘하지만 진짜로 통과했다면 메시지부터 떠올랐어야지.’


즉 조금만 생각을 더 했더라면 이는 그 어떤 헌터도 빠지지 않을 함정이었다.

보스 몬스터 처치 메시지가 뜨기 전엔 보스 몬스터는 죽은 게 아니니까.


‘차유라나 김요한은 어때?’

-잘 따라오고 있느니라.

‘이상행동을 보이면 바로 알려줘.’


이후로도 한지혁은 묵묵히 앞으로 걸음을 이어나갔다. 어떻게든 그를 막고자 하는 현혹도 계속되었다.


“나, 낭떠러지입니다!”


한지혁은 전혀 나아갈 곳이 없는 낭떠러지를 보고도 멈추지 않았다.


“······여긴 캠프장이잖아요.”

“왜 여기로 돌아온 거죠?”


느닷없이 그들의 캠핑장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도 걸음을 내딛었다.


“공대장님!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됩니까?”

“발을 접질렸습니다.”


바람잡이처럼 계속해서 헌터들을 연기하는 목소리에도 굴하지 않았다.


-진짜로 길이 막혔구나.

“······가지가지 하네.”


현혹에 끝나질 않고 실제로 꽉 막힌 벽을 보면서도 한지혁은 혀를 찼다.

마력을 뭉쳐서 정면을 무너뜨리니 일개 벽이 허물어지고 다시 길이 나타났다.


“공대장님······ 여긴.”

“아저씨! 위험해요!”

“다이아몬드? 왜 바닥에 다이아몬드가······.”

“크아아아악!”


갖은 수를 써대는 통에도 한지혁은 대쪽같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이곳을 통과하는 유일한 능력은 단호한 마음가짐이 전부였다.


-6명, 아니······ 7명이 탈락했구나.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드디어 지독하던 통로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출구는, 아일로이를 통해 확인해서도 진짜 출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슬슬 주변을 걷던 다른 동료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무래도 끝에 다다랐는지 안개는 많이 옅어져 있었다.

한지혁이 말했다.


“차유라, 괜찮냐?”

“훠이, 훠이! 물러가라! 안 속는다, 이놈아!”

“차유라, 뒤돌아보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누가 속을 줄 알아? 네가 그런다고 내가 돌아볼······ 에?”


차유라는 무어라 소리치다 문득 깨달았는지 물었다.


“뒤돌아보지 말라고요? 어? 아저씨에요?”

“그래. 나 맞아.”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내가 여태 아저씨를 몇 번이나 봤는데.”

“흠······.”

“눈물콧물 질질 흘리는 아저씨는 꽤 볼만 했지만. 어쨌든 이번에도 환상일지도 모르잖아요.”


한지혁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눈물콧물 질질 흘린 건 너겠지. 야왕의 설산에서 네가 우연히 야인들의 함정에 빠졌을 때······.”

“그만! 그마아안!”


차유라는 다급히 외치더니 말했다.


“아저씨 맞네. 그래서 뭐예요? 왜 갑자기 말을 걸어요?”


이곳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방법은 하나였다.

미궁에서 말하지 않았던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것.

현혹은 여태껏 미궁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만약 여길 나갔을 때, 그곳에 내가 없더라도 절대 이곳으로 돌아와서는 안 돼.”

“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는데 난 괜찮으니까. 어쨌든 당장 나가서 네가 할 일에 대해서 몇 가지 알려줄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한지혁은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내 원룸의 현관문 비밀번호는 7885야. 일단 내 원룸부터 들러서 네가 찾아줘야 할 게 있어. 아, 너 내 원룸 주소는 알고 있지?”

“네?”

“안으로 들어가면 침대 옆 서랍 에서 두 번째를 열면 통장이 하나 있어. 비밀번호는 3002야. 우선 그 돈을 찾아서 신우민 헌터를 찾아가. 내가 의뢰했던 물건에 대한 대금이라고 하면 알 거야.”

“아저씨?”


한지혁은 계속해서 말했다.


“김요한 헌터도 듣고 있죠? 조만간 길드원을 더 영입해야 할 겁니다. 김요한 헌터가 맡아서 일을 수행해주세요.”

“······제가 그래도 될까요.”

“김요한 헌터니까 믿고 맡기는 겁니다. 물론 최종승인은 나중에 제가 할게요.”

“알겠습니다.”


이후로도 한지혁은 몇 가지를 더 당부하면서 걸음을 이어나갔다. 차유라가 큰 목소리로 말을 끊은 건 그때였다.


“그니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요! 아저씨, 왜 작별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굴어요?”

“작별은 무슨 작별이야. 나중에 일 제대로 했는지 점검할 거야. 농땡이 치지 마.”

“아니 그러니까 왜 나중······.”


한지혁이 말했다.


“되묻진 말고.”


그의 단호한 말에 차유라는 잠시 머뭇대더니 이내 축 기운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알았어요.”


한지혁은 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행렬에서 빠지니 다른 사람들의 뒷모습이 멀어지고 있었다. 한지혁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건 예정에는 없던 일인데.”


회귀 전의 세계에서도 이곳을 공략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돌아보지 말 것, 현혹되지 말 것, 그러니까 어떻게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

원래의 계획대로였다면 한지혁은 무난하게 이곳을 빠져나가 앞서 차유라나 김요한에게 말한 내용들을 그가 직접 설계했을 것이다.


“근데 아일로이, 네 말이 일리가 있더라고.”

-으음?

“도망치기만 해서는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최선을 다하기로 해놓고 그걸 번복하는 것도 우습기도 하고.”


한지혁은 짧게 혀를 차면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의 주변은 세계 자체가 달라지고 있었다.


[‘금기’를 어겼습니다.]


주변을 뒤덮은 안개가 뱀처럼 스멀스멀 그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는 한지혁은 무저갱에 빠진 것만 같은 칠흑 속에 있었다.

아니, 뭔가가 보이긴 했다.


-이름······ 내 이름.


소름끼치는 목소리와 함께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오는 수십 개의 촉수.

끔찍한 형상을 올려다보면서 한지혁은 차분하게 검을 뽑아들 뿐이었다.


“안 그러냐, 무명.”


투콰아아앙!


화답하듯 쏘아진 촉수가 바닥을 쓸 듯이 한지혁을 향해 다가왔다.

바닥을 톡 차서 높이 뛰어오른 그를 향해 또 다른 촉수가 날아오기도 했다.

그 하나를 노리고 수십 개의 촉수가 뒤엉켜 마치 손을 뻗어오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스거어억! 스거억!


한지혁은 허공에서도 검격을 이어나가며 다가오는 촉수를 차분하게 베어냈다.

하나, 둘, 넷, 열······.

횟수가 늘어날수록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한지혁은 끝내 베어낼 수 있었다.


“아니, 샬롯이라 해야 하나.”


[30층─히든의 주인 ‘□□'을 마주했습니다.]


놈이 포효했다.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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