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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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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최근연재일 :
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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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730

작성
22.05.2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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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예정에는 없던 일 (2)

DUMMY

53.


보랏빛 식물이 가득하던 망자의 미궁과는 달리, 초록이 물든 광활한 초원.

숲이 점처럼 보일 정도로 한참을 걸어 이동한 한지혁은 정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이 미궁의 출구입니다.”


하늘 높이 솟은 커다란 대문이 보였다. 드넓은 땅 위엔 덩그러니 문만이 놓여 있었다.


“X라에몽에 나오는 어디로든 문 같네요.”

“비슷해요. 출구가 31층으로 고정됐다는 것만 다르죠.”

“과연······.”


턱을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보던 차유라는 고요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끝이에요?”

“응?”

“보스 몬스터가 안 보이는데······ 아직 두 마리는 더 남지 않았어요?”


한지혁을 따라 모든 헌터가 출구 근처로 다다를 때까지도 변함은 없었다.

한지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남았지. 눈앞에 있잖아.”

“네?”


차유라는 자신의 앞에 놓인 커다란 문을 올려다보았다. 제법 크기가 큰 문이었지만 별 다른 이상한 점을 찾지는······.


“어······ 움직였다.”


나지막이 중얼거린 차유라는 문에 양각된 그림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면 생김새가 꽤 낯이 익었다.


“나 얘 그리스 신화에서 본 거 같은데.”

“혹시 공략 회의 때 졸았어? 내가 미리 말해줬잖아.”

“졸긴요! 어, 그러니까 이놈 이름이······.”


차유라가 머리를 긁적이는 사이 곧 문에서 양각되었던 그림이 스스로 고개를 바짝 들었다.

헌터들은 저마다 무기를 꺼내 쥐었고, 곧 그들의 앞으로 커다란 발자국이 찍혔다.

으르렁대는 울음과 함께 불꽃이 솟구쳐 일행의 전면을 뒤덮었다. 뜨거운 것이 차유라의 불꽃에 밀리지 않았다.


콰가가가강!


다급하게 차유라가 불꽃을 던져, 맞불을 놓질 않았더라면 싸그리 불타버렸을 것이다.


[29층─히든의 주인, ‘케로베로스’를 마주했습니다.]


차유라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래, 케로베로스! 그런 이름이었어!”


그리고 한지혁은 바로 외쳤다.


“산개해!”


창졸간에 흩어진 헌터들이 있던 자리로 케로베로스의 거대한 발이 떨어졌다.

동시에 해당 구역에 한하여 걷잡을 수 없는 균열이 생겨나더니, 그곳은 싱크홀처럼 바닥이 뚝 꺼져버리고 말았다.


“미리 말했던 대로 움직입니다. 한 번에 한 놈씩 공략해야 해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헌터들은 케로베로스의 막강한 일격에도 그다지 겁을 먹는 기색은 없었다.

당장 이곳에 있는 헌터들은 최소 B급부터 A급까지 포진한 최정예 헌터들.

최전선을 달리는 헌터들은 아니었지만, 어떤 길드를 가더라도 2군에 해당하는 이들이다.

반면 케로베로스는 29층 몬스터. 기껏해야 A급 수준에 불과한 녀석이다.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놈을 모를 때야 겁이 나지.’


미래를 본다고 알려진 한지혁이 공략 회의 때, 이미 케로베로스에 대한 정보를 털어놨다.

또한 여태껏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며 한지혁의 정보를 확신한 헌터들이었다.

사실 이곳에 들이닥치기도 전에 케로베로스를 사냥하는 건 이미 끝났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투콰아아아앙!


요리조리 쥐새끼처럼 빠져나가는 헌터들이 얄미웠는지, 케로베로스가 긴 꼬리를 치켜들고 부르르 떨었다.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2페이즈!”

“2페이즈!”

“2페이즈입니다!”


한 명의 외침을 따라서 헌터들은 복명복창하며 서로에게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케로베로스의 몸이 세 갈래로 나뉘더니, 이내 세 마리의 몬스터가 되었다.

원래 세 개의 머리를 가진 녀석이, 터무니없지만 세 개의 몸으로 나뉜 것이다.

한지혁은 짧게 혀를 찼다.


‘머리는 세 개라 쳐도······ 몸은 하나인데 왜 몸도 세 개로 늘어나는 거냐고.’


뭐, 몬스터 따위에게 상식을 들이미는 것만큼이나 무식한 생각은 없을 거다.

한지혁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김우영 헌터는 오른쪽, 차유라는 왼쪽! 작전대로 움직입니다!”


차유라가 불꽃을 쏘아내며 한 마리를 꿰어냈고, 김우영도 샛별을 이끌어 다른 한 마리를 유인해냈다.


“나머지는 제 오더를 따릅니다.”


마지막으로 정면에 있는 머리에 뿔 달린 녀석은 한지혁이 맡기로 했다.

놈의 머리에서 푸른 전격이 번쩍이더니 이내 그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놈의 속성 공격인, 전격.


“······신소연 헌터는 그림자 인류로 녀석의 눈을 현혹시키세요.”

“크리스틴은 녀석의 후방을 노립니다.”

“알렉은 크리스틴을 보조하세요. 지금입니다!”

“스벤은 날 따라서 정면을 칩니다.”


속사포처럼 쏘아진 한지혁의 명령은 헌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종하는 듯했다.

미리 공유해뒀던 작전과 별개의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한지혁은 결코 당황하질 않았다.

그는 상당히 지휘를 잘 해나갔다.

아일로이가 감탄할 정도였다.


-네놈에게서 군주의 자질을 엿보게 될 줄이야.


한지혁은 아일로이의 말에 쓰게 웃으며 항변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 법이거든.’


한지혁은 회귀 전의 세계에서 수많은 공략 영상을 봐왔다고 자부한다.

그중에서도 한지혁이 구독하고 꾸준히 챙겨보았던 한 너튜버의 채널이 있었다.

최고의 지략가로 알려진 ‘게일’.

‘전투 설계사’란 독특한 직업을 파생시킨 게일은,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냈다.

한지혁은 게일의 영상을 빠짐없이 챙겨봤고, 그의 꿀팁, 그리고 공략대에서 리더가 무얼 해야 하는지도 이미 공부해뒀다.


‘리더는 원래 가장 강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야. 강한 건 전투원이면 족하지.’


독불장군처럼 적진으로 뛰어들어 몬스터를 사냥하고, 적을 분쇄하는 건 ‘딜러’의 역할이었다.

군주나 리더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리더는 강하질 않아도 된다.


-왜 내가 찔리지.


나지막한 아일로이의 말을 뒤로 하고 한지혁은 계속해서 팀원들에게 명령을 이어나갔다.

무릇 리더란 어떤 존재인가. 그 답은 간단했다.


‘리더란 적재적소에 인재를 투입하는 자다.’


검을 쓰는 자에겐 근접 전투의 환경을, 활을 쓰는 자에겐 원거리 전투에 적합한 자리로.

치료를 잘한다면 후방으로, 요리를 잘한다면 지원병으로······.


‘전투설계의 기본은 리더가 인재를 어떻게 배치하냐에 따라 결정된다.’


투콰아아아앙! 투콰아앙!


사방에서 쏟아지는 폭음과 수시로 공격을 당해 주춤주춤 물러나는 케로베로스 삼형제.

적재적소에 배치된 인재들은 한지혁의 명령을 곧잘 따라서 공략을 이어나갔다.

기세 좋게 세 마리로 흩어졌던 녀석들이 꼬리를 말고 다시 융합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페이즈!”

“3페이즈으으으!”

“마지막이다아아!”


기함을 지르면서 헌터들이 힘겹지만 의지를 다져 한 자리로 다시 뭉쳤다.

그들의 앞엔 케로베로스가 무시무시한 눈을 치켜뜨고 있었지만, 넝마가 된 몸체를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3페이즈는 더욱 단순했다.


“놈이 즉사기를 쓰려고 합니다! 그전에 목을 쳐야 해요!”

“총 공격! 으아아아압!”

“뒈져라! 개 자식아아아!”


보랏 빛깔의 형상을 머리맡으로 띄운 케로베로스가 꼬리를 말고 높이 뛰었다.

마찬가지로 헌터들도 눈에 혈안이 되어 녀석의 목을 베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말하자면, 스피드전.

녀석이 즉사기를 먼저 완성하느냐, 혹은 녀석의 목을 이쪽이 먼저 잘라내느냐의 싸움이다.


“어딜······!”


투콰아아아앙!


차유라가 쏘아낸 불꽃은 마치 광선처럼 쏘아지더니 케로베로스의 머리 하나를 직격했다.

언제 저런 기술을 완성했는지는 몰라도 그걸로 머리 하나는 쉽게 사라졌다.


“넌 처음부터 내 몫이었다.”


나머지 하나도 김우영이 이를 악물고 달라붙은 끝에 겨우 격추시킬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어, 어? 이, 이게 무슨······!”


케로베로스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순식간에 주변으로 다섯 마리의 케로베로스를 만들어냈다.

황당하지만 이놈은 느닷없이 분신을 만들어서, 주변으로 흩뿌리고 다섯 갈래로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건 예정에 없었는데!”

“공대장님! 어떡하죠?”

“뭘 물어! 일단 하나씩 쫓자! 공대장님, 전 왼쪽 놈을 맡겠습니다!”

“난 오른쪽으로 간다!”


한지혁은 차분하게 이를 모조리 둘러보면서 숨을 가다듬었다.

과연 케로베로스가 ‘분신’이란 스킬을 쓸 줄 알던가?


‘······기억난다. 흔하진 않지만 분신을 썼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있어.’


어느덧 거리를 벌려 멀어지는 케로베로스를 보면서도 한지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일순 눈을 부릅뜨며, 들이마신 숨을 그대로 죽이기 시작했다.


[특성, ‘숨을 죽이는 자’를 발동합니다.]

[숨을 죽이는 동안 시간을 느리게 인식합니다.]


모든 게 멈춰버린 듯한 착각 속에서 한지혁은 사람들의 모든 움직임을 살필 수 있었다.

흩어진 케로베로스의 흔적, 녀석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우스운 꼴도 보았다.

그의 생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직 뭐든 바뀐 게 없다.’


케로베로스의 분신조차 이미 과거에 벌어진 적이 있는 ‘예상 내의 일’이었다.

막말로 한지혁은 이 순간 이형환위를 발동해서라도, 놈의 머리를 모조리 잘라낼 자신이 있었다.

놈이 제아무리 분신을 벌여 흩어진들 그에겐 전혀 위협조차 되질 않는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한지혁은 생각을 더욱 확장시키기로 했다.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순간을 되돌아봐도 좋았다.

생각할 시간은 많았으니까. 모든 게 느려진 순간에도 그의 생각만큼은 제약 없이 그대로였으니까.

차분하게 고민하면 알아낼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어째서 김우영의 직감이 발동했을까.’


진의를 파악하자면 간단하다.

수많은 정보를 듣고 난 그의 빅 데이터는 예상외의 결론을 도출했다는 거니까.

회귀자인 한지혁조차 무심코 놓치고 지나간 어떠한 단서가 큰 복선이 된 것이다.

한지혁은 생각을 지속했다.

이후로도 몇 번을 반복했고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점검해보기까지 했다.

단서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알지 않느냐.


아일로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처음부터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였느니라.

‘······그건.’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 줄 아느냐?


냉정한 아일로이의 말에 한지혁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외면한다고 무시할 수 있는 것이라면 끝까지 외면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

-그러나 외면한다고 바뀔 게 없다면 언젠가는 직면해야 하는 것이니라.


한지혁의 시선은 천천히 돌아가 멀리 점처럼 보이는 숲의 정경이 보였다.

망자의 미궁, 그리고 그곳에서도 망자들이 갇혔던 끔찍한 망령감옥이 떠올랐다.

누구나 다 아는 단서가 있다.


‘무명······.’


아무래도 당장 오늘 한지혁의 뒤통수를 칠 법한 변수는 오직 하나뿐이다.

과거의 그가 죽였고, 미래의 그를 죽였던, 그리고 다시금 나타난 악몽 같은 재앙.

이름을 잃은 괴물.


-놈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피할 수는 없겠지?’

-아마도.


한지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더는 숨을 죽이질 않았다. 그럴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답은 처음부터 나와 있었으니까.


스거어어어억!


거두절미하고 미리 설정해둔 검로를 따라서 한지혁은 케로베로스를 베어낼 수 있었다.

이형환위를 교차해서 사용한 덕에 전장의 곳곳엔 잔상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허억.”


한지혁은 당황하는 헌터들을 돌아보며 거칠게 호흡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 모여주세요.”


[29층─히든의 주인 ‘케로베로스’를 처치했습니다.]


보스 몬스터 처치 메시지가 떠오른 것과 동시에 한지혁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어야 할 겁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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